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
무사들이 지키던 방 안에 있던 사람들도 들었고,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도 다 들었다.
그 때문에 벽태산과 화령이 있던 방에는 향화루의 진법가들이 진법을 점검 중이었다.
향화루는 그저 평범한 기루가 아니었다. 평범한 기루가 진법가를 보유하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다들 걱정이라는 핑계로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내고자 했다.
화령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난······ 새로 태어났어.”
기녀들의 눈이 반짝였다. 대체 얼마나 좋았으면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어? 그런데 언니 피부가 좋아진 거 같은데요?”
“진짜네?”
피부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왠지 얼굴도 좀 달라진 것 같았다.
아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딘가 청순하고 순수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 세속의 때라고는 하나도 묻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몸도······.”
키도 약간 자란 것 같고, 몸의 굴곡도 좀 달라졌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정말로 눈에 띌 정도의 변화였다.
기녀들의 눈에 불이 확 들어왔다.
“설마······ 어제 그분이 영약이라도 주신 거예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솔직히 화령은 좀 억울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질렀던 건 어렴풋이 기억났다.
정말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좋은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억울했다.
한 가지 확실히 떠오르는 건, 자신이 새로 태어났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개운했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싶었다.
화령의 변화를 지켜본 기녀들이 의욕에 불타올랐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온다면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 * *
“아······ 예상보다 훨씬 더 쓰레기 같은 몸이로구나.”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제 벽태산이 기루에 간 이유는 증혼마공 때문이었다.
죽음과 동시에 얻은 깨달음으로 새로 태어난 증혼마공은 더 이상 마공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
혼백을 이용하는 건 맞지만, 과거처럼 죽은 자의 혼백을 뽑아 갈아 마시는 게 아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혼백을 뽑아, 거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불순한 기운과 사념들을 태워서 받아들였다.
그것들 역시 혼백이라 할 수 있었고, 그걸 태워 만들어낸 힘 역시 아주 강력했다.
일반적인 내공심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원래의 증혼마공보다는 약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완벽하게 제거했기에 아무리 큰 힘을 받아들여도 몸이 터질 염려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혼백에 혼탁한 사념이 많이 달라붙어 있을수록 효과가 좋았다.
벽태산이 굳이 기루에 가서 기녀와 하룻밤을 지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기녀의 혼백에 혼탁한 사념이 많이 달라붙어 있는 건 당연했다.
물론 살인과 약탈을 밥 먹듯 하는 흑도 놈들이 훨씬 지독한 사념을 붙이고 있겠지만, 지금 벽태산의 몸 상태로 그 정도 놈들을 뽑아먹는 건 위험했다.
금벽상단 내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좀 곤란했다. 효율도 기녀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어제 화령이라는 기녀의 혼백에 붙은 사념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이 저주받은 몸뚱이였다.
“기녀 하나를 탈탈 털었는데 고작 끊어진 거 한 가닥 이었군.”
그것도 중요한 기맥이 아니라 실핏줄이나 다름없는 가느다란 기맥 하나를 간신히 이었을 뿐이었다.
몸은 분명히 좋아졌겠지만, 겉으로는 티도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기루에서 살아야겠는데?”
괜히 흑도 놈들을 건드렸다간 오히려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색기를 통해 혼백에 붙은 때가 살기나 투기를 통해 혼백에 붙은 때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러니 한동안은 기루를 통해 혼백을 조달하기로 했다.
뭐니뭐니해도 일단 절맥을 모두 잇는 것이 급선무다.
그걸 하고 나면 굳이 혼백을 빨아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수련이 가능하니까.
벽태산은 지그시 눈을 감고 오늘 간신히 이어붙인 가느다란 기맥을 조금씩 단련했다.
그저 잇는다고 끝이 아니다. 완벽하게 치료하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 * *
“오늘 또 기루에 가신다고요?”
소소가 기겁한 얼굴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가씨가 아시면 정말 실망하실 거예요.”
“뭐, 그럼 할 수 없고.”
연하린이라는 아직 얼굴도 못 본 정혼녀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정황을 보니 그 정혼녀도 굳이 벽태산과 혼인을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벽태산에게 주어진 재산이 고작 그것뿐이라면 병들어 죽어가는 벽태산과 굳이 이어져서 뭐 하겠는가.
벽태산을 연결고리로 해서 금벽상단의 권력 다툼에 끼어들 수 있다면 또 모를까.
“그리고 너무 무리하시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내가 뭘 하는 줄 알고?”
소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그거 하시는 거잖아요! 그거!”
“그러니까 그거가 뭔데?”
소소는 결국 입술을 삐죽였다.
“공자님, 너무해요!”
벽태산은 저러면서도 자신의 옷을 챙겨주는 소소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 * *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벽태산은 기루를 나섰다.
오늘로 벌써 열흘 째였다.
그 열흘 동안 매일 향화루에 와서 하루에 한 명씩 기녀와 잠을 잤다.
첫 날은 일이 끝나자마자, 그러니까 혼백에 덕지덕지 붙은 사념들을 말끔히 흡수한 다음 바로 나왔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그 안에서 증혼마공을 통해 끊어진 맥을 손본 다음에 나왔다.
기녀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혼백이 정화되는 경험이 어디 쉽겠는가.
육체는 영혼을 따라가는 법이다. 혼백이 정화되면 그것이 몸에 영향을 미쳐 몸도 깨끗해진다.
몸이 변하는 동안 정신을 잃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벽태산과 하룻밤을 보낸 기녀들은 벽태산에게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아직 벽태산과 자지 않은 기녀들은 두근거리며 다음 차례가 부디 자신이기를 바랐다.
벽태산은 그렇게 열흘 동안 열 명의 기녀와 잤고, 열 군데의 기맥을 손볼 수 있었다.
가느다랗지만 아주 중요한 맥이었기에 약간이긴 하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물론 개미 똥보다 못했지만, 어쨌든 좋아졌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이 앞장서고, 뒤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천경완이 조용히 따라갔다.
그렇게 절반쯤 갔을 때, 벽태산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사람 한 명이 보였다.
벽태산이 그 사람에게 눈길을 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굉장한 미인이네.’
지금까지 천마로 살면서 봤던 모든 여자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인이었다.
저 정도 미인은 천마 시절에도 쉽게 보기 어려웠다.
“끝내주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천경완을 쳐다봤다.
너도 봤냐는 듯한 표정으로.
벽태산은 천경완의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는 진귀한 광경을 두 번째로 볼 수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느냐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었다.
벽태산은 그제야 다가오는 저 여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 미녀가 벽태산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
벽태산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가 바로 벽태산의 정혼녀, 연하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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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쁜 사람은
벽태산은 소소가 연하린의 미모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 그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속으로 소소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진짜 예쁜 사람은 누가 보든 무조건 예쁘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공자님······.”
연하린의 눈에 약간의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아무래도 요즘 매일 기루에 다닌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소소가 일렀나보네.”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연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소소는 그럴 아이가 아니잖아요.”
그럴 아이인지 아닌지 자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소소를 만난 지 고작 열흘 되었을 뿐인데.
물론 그 얘기를 꺼내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요즘 공자님에 대한 소문이 많아요.”
벽태산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열흘 째 매일 기녀들의 비명이 향화루를 뒤흔들고 있는데 소문이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벽태산으로서도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증혼마공이 가진 약간의 부작용이었으니까.
벽태산은 연하린을 똑바로 쳐다봤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아름다웠다. 멀리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여겼는데, 가까이서 보니 세 손가락 안으로 들어왔다.
연하린이 한 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세요.”
벽태산은 그러는 연하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냥 가만히 죽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벽태산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연하린이 말을 이었다.
“저 때문에 공자님 자신을 학대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전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학대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하는 거였지만, 굳이 구구절절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원래는 천마라고 얘기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뿐더러, 혹여 그걸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였다.
“기루에 가지 마시고 차라리 그냥 저한테 오세요.”
연하린의 말에 벽태산이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살짝 다셨다.
하지만 지금 저 말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금은 몸을 아껴야 할 때다. 함부로 굴리다간 공들여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자기를 떼어내려고 내가 이런다고 여기는 모양이네.’
벽태산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음······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금벽상단에서 내게 주어진 재산은······.”
“금 천 냥, 그리고 장원 하나. 그리고 기루와 주루 몇 개라는 거 무한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연하린은 재산을 노리고 이러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은 거나 다름없음에도 씩씩함을 잃지 않았다.
“그 말씀도 벌써 세 번째라는 거 기억하시죠?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그냥 몸만 오세요. 공자님 한 분 먹여 살릴 정도 능력은 있으니까요.”
연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한 발 더 다가갔다.
이제 거의 몸이 닿을락 말락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공자님도 포기하지 마세요.”
벽태산이 뒤로 한 발 물러나며 뺨을 긁적였다.
“포기한 적 없는데.”
연하린의 눈이 커다래졌다. 벽태산에게 저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공자님······!”
연하린이 감격에 겨운 눈으로 두 손을 꼭 맞잡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자신의 정성과 노력이 드디어 통했다는 생각에 감정이 더욱 격해졌다.
그리고 이런 식의 감정교류에 정말 익숙하지 않은, 아니, 아예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인 벽태산은 그걸 보고 있기가 굉장히 껄끄러웠다.
“그럼 오늘은 이만.”
벽태산은 후다닥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연하린은 그런 벽태산의 뒷모습을 여전히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부끄러워하시기는.”
연하린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누구든 한 번 보면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신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뿌듯했다.
그런 연하린 옆으로 늘씬하고 건강미가 넘치는 여인이 다가갔다.
허리춤에 검을 찬 그녀는 연하린의 호위무사였다.
“아가씨. 이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벌써요?”
“장주님께서 이번에는 절대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오늘 벽태산을 만나려고 일부러 이쪽으로 왔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약간 늦을 수도 있었다.
연하린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았어요. 가죠.”
그녀는 호위무사를 따라가는 내내 고개를 돌려 벽태산이 간 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 * *
“하여간 익숙해지지가 않네.”
천마인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오직 두 가지 감정뿐이었다.
경외와 공포.
천마가 가진 끝 모를 강함을 접하면 경외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두려워하거나.
한데 벽태산이 된 이후로 자신을 보는 시선에 담긴 감정은 하나같이 연민뿐이었다.
만일 천마일 때 이런 시선을 받았다면 아마 그날은 주변이 피바다에 잠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벽태산의 귓가에 천경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기루에 가실 겁니까?”
벽태산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서서 천경완을 쳐다봤다.
원래 고저가 없는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지만, 왠지 오늘따라 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왜? 따라오기 싫어?”
“그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하루 정도는 쉬셔야 하지 않을까 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벽태산이 묘한 눈으로 천경완을 보며 말했다.
“왠지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오해십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다시 몸을 휙 돌렸다.
“사람 감정이 자기 뜻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 뭐, 알아서 해.”
“오해라고 했습니다.”
천경완의 말투에 감정이 담겼다. 당황과 불쾌함이 뒤섞여 있었다.
벽태산이 다시 천천히 돌아섰다.
천경완은 벽태산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