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4)
끝
황산까지 가는 길은 평탄했다.
그동안 벽태산과 함께 한 수련을 겸한 빠른 이동에 다들 잘 적응했는지라, 이제 웬만한 거리는 거의 먹지도 쉬지도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남창에서 황산까지는 오백 리쯤 된다. 벽태산이 진짜 작정하고 달리면 금세 도착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벽태산은 황산까지 이틀에 걸쳐 이동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 정도면 벽태산 일행이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이동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당연히 길을 안내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영광스럽게도 벽태산을 장사에서 황산까지 안내했던 그 하오문도가 길안내를 맡았다.
한 번 함께 황산에 갔던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된 것이다.
물론 하오문도는 벽태산의 선택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크게 기뻐했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자신의 실력이 몇 단계나 올라갔기에 보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더 빨리 위로 올라가는 법이었다.
하오문도는 지금도 더 빨리 달리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때 그 달리기를 벽태산과 함께 한 번만 더 하면 벽을 또 한 번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오문도는 벽태산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벽태산은 전혀 빨리 달릴 생각이 없다는 듯 그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렇게 황산까지 절반쯤 갔을 때, 제법 큰 현이 나타났다.
벽태산은 그 안으로 들어가며 하오문도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고 간다.”
“예.”
하오문도는 즉시 대답하고 객잔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객잔을 찾아 그곳의 별채에 머물기로 했다.
객잔의 별채에는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연무장까지 붙어 있었다.
제법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연무장이었다.
각종 무기도 괜찮은 것들로 쭉 진열되어 있었는데, 여길 거쳐 간 사람들이 많이 썼는지 약간 낡긴 했지만, 관리는 잘 되어 있었다.
벽태산은 연하린만 연무장으로 데려갔다.
“싸우고 싶으냐?”
벽태산의 물음에 연하린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죽을 수도 있다.”
벽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혁련휘의 사념을 통해 지금 황산에 있는 그자가 얼마나 강한지 대충 파악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연하린은 절대 그자를 이길 수 없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연하린이 투지를 불태우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떠오른 투지의 불꽃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벽태산이 그런 연하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가능성을 높여보자꾸나.”
그 말에 연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벽태산이 손을 옆으로 살짝 들었다.
그러자 담장 밖에 있던 나무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더니 훅 하고 날아왔다.
놀랍게도 날아오는 도중에 잔가지가 툭툭 떨어져 나갔고, 나뭇잎도 싹 털렸다.
벽태산의 손아귀에 잡힌 나뭇가지는 아주 매끈했다.
황산에 있는 그자의 무기는 도였다.
그래서 이렇게 도구를 준비했다.
“두 번 휘두를 것이다. 그걸 모두 막아라.”
연하린이 눈을 빛내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벽태산의 공격을 기다렸다.
대체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고 강력할까?
하지만 그런 연하린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벽태산이 아주 느릿하게 나뭇가지를 내리친 것이다.
‘이걸 막으라고?’
하지만 연하린은 방심하지 않았다. 저러다 언제 빨라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연하린은 최대한 나뭇가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검을 위로 휘둘렀다. 나뭇가지를 잘라내겠다는 각오로.
쉬익!
연하린의 검이 벽태산이 휘두른 나뭇가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따악!
“큭!”
연하린이 휘청이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털썩.
그녀는 황당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나뭇가지가 날아오던 속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그걸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방금 맞은 어깨가 욱신거렸다.
“그러고 있을 시간 없다.”
연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눈에 어린 투지가 더욱 짙어졌다.
그 뒤로 계속해서 수련이 이어졌다.
연하린은 말 그대로 곤죽이 될 때까지 얻어맞았다.
벽태산이 휘두른 검을 처음 막아낸 것은 수련을 시작한 지 두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텅!
쩌억!
한 번은 막아냈지만, 연이어 이어진 공격은 막아내지 못하고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연하린은 고통에 이를 악물고 비틀거렸지만, 얼른 자세를 갖췄다.
성취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어쨌든 한 번은 막아냈다.
그 뒤로 두 시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두 번의 연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몸을 혹사하고 내공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수련으로 얻은 성취감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오늘 수련으로 뭔가 큰 벽을 하나 부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대가로 연무장 바닥에 누워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하고 널브러졌지만 말이다.
숨을 헐떡이는 연하린에게 벽태산이 천천히 다가갔다.
연하린은 연무장 바닥에 누운 채 벽태산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벽태산이 선 채로 연하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해냈구나.”
연하린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덕분이에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제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
확답을 해주지 않자 연하린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지켜보던 벽태산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연하린이 깜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코앞에 벽태산의 얼굴이 보였다.
벽태산은 연하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숙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연하린은 벽태산에게 안긴 채 살짝 얼굴을 붉히며 살며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숙소로 들어가는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 * *
다음 날, 좀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출발했다.
전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바람에 정말 금세 황산 어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오문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여긴 예전에 왔던 곳보다 더 안쪽입니다. 이제부터는 민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제위룡을 찾으러 황산에 왔을 때와는 좀 달랐다.
그때는 황산 인근에 있는 작은 현에 간 것이고, 지금은 진짜 황산에 왔으니까.
현재 벽태산 일행이 있는 곳은 주변에 민가가 전혀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여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인적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간혹 산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황산 자체가 워낙 방대하기에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황산에는 그 크기만큼이나 산채의 수도 많았다.
몇몇 산채는 웬만한 문파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도 크고 많은 고수를 보유하기도 했다.
황산의 산적들은 거친 산세를 돌아다니며 사냥도 하고 빠르게 아래로 내려와 지나가는 상단이나 민가를 털고 산으로 도망친다.
그렇기에 몸놀림이 재빠르고 힘도 좋다. 무공을 익힌 자들도 다른 지역의 산채에 비해 제법 많은 편이고.
물론 그런 산적들이 벽태산의 상대가 될 리 만무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
하오문도는 이제부터 어찌 해야 할지 지시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설 테니, 잘 따라오도록 해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하린과 세 시비는 망설임 없이 벽태산을 따라갔다.
하지만 하오문도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벽태산은 하오문도나 화옥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만 다녔다.
한데 여기에 와서 난데없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황산은 규모가 엄청난 산이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한데 평생 산 한 번 안 타봤을 것 같은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
‘이거 괜히 따라왔나?’
물론 자신이 선택한 것은 아닌지라 의미 없는 생각이긴 했지만.
그리고 조금 지나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벽태산은 굉장히 빠르게 움직였다.
둘째 날 황산까지 오던 속도와 비슷했다.
문제는 평지가 아니라 산이라는 점이었다.
하오문도는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쫓아갔다. 내공이 쭉쭉 빠져나갔다.
정말 놀라운 건, 연하린과 세 명의 시비들은 전혀 무리 없이 벽태산을 쫓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오문도는 이러다가 자신만 혼자 황산에서 낙오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벽태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일행이 바짝 모여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벽태산이 보는 쪽을 바라봤다.
대체 저기에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을까 싶은 자리에 작은 산채가 하나 있었다.
“저깁니까?”
하오문도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산채는 절벽 한가운데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절벽의 중간을 파내어 산채를 만든 것이다.
그냥 동굴을 판 것이 아니었다.
절벽의 중간을, 마치 거인이 손으로 퍼내서 도려내듯이 산채를 만들었다.
그래서 아래에서도 산채 내부가 어느 정도 보였다.
가장 바깥쪽은 엉성한 울타리까지 둘러놓았다. 아마 술에 취한 채 지나가다가 떨어지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듯했다.
이곳은 황산에서도 제법 깊숙이 들어와야 하고, 위치도 상당히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경계를 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문제는 저곳까지 올라가거나 절벽 위에서 내려갈 만한 마땅한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거나, 아니면 산채에서 줄을 내려주면 그걸 잡고 올라가거나 해야 할 판이었다.
“저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하오문도가 멍하니 산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했겠지.”
벽태산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거대한 기운이 벽태산이 휘두른 손의 궤적을 따라 앞으로 쫘악 쏟아져 나갔다.
짧은 호를 그리며 쭉 나아간 기운이 절벽 아래쪽을 할퀴고 지나갔다.
꽈드드드드득!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리며 절벽 아래쪽이 움푹 파였다.
하오문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벽태산이 손 한 번 휘저은 결과, 절벽 중간에 있던 산채와 아주 똑같은 모양의 구덩이가 절벽 아랫부분에 생겨났다.
굉음에 놀란 건 하오문도뿐만이 아니었다.
산채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울타리에 다닥다닥 붙어서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저기 사람이다!”
“여자도 있어!”
산적들이 저마다 소리치며 벽태산 일행을 내려다봤다.
그들의 시선은 결국 벽태산과 함께 온 네 명의 여인들에게 꽂혔다.
이들이 여기서 산적질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에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돈이 생기면 그걸 쓰러 가야 할 것 아닌가.
당연히 그때는 산적 신분이 아닌 평범한 무인 행세를 하며 돈을 펑펑 쓰고 다녔다.
근방에 유명하다는 기루는 다 가봤다.
하지만 이곳에 온 네 명의 여인은 그들이 지금까지 본 모든 미인들 중 최고였다.
아니, 아예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섣불리 산채를 나서지 않았다.
방금 들린 그 굉음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울타리에 다닥다닥 붙은 산적들은 그랬다.
벽태산은 산적들을 슥 둘러봤다.
“제법인 놈이 섞여 있구나.”
평범한 산적 수준이 아닌 놈이 보였다.
그것도 한 놈이 아니라 셋이나 있었다. 울타리에 다닥다닥 붙은 놈들 중에서만 말이다.
벽태산의 감각에는 아직 산채 안쪽에도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 중에도 산적답지 않게 강한 놈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벽태산이 여기까지 온 이유인, 그놈도 있었고.
감각에 걸리는 느낌으로는 상당했다.
지금까지 벽태산의 몸으로 깨어난 이후 만났던 모든 무인들 중에서 가장 강했다.
벽태산은 연하린을 쳐다봤다.
확실히 많이 성장했다.
예전 연하린이 의창에서 수적들과 싸울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제법이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게다가 이제 영력까지 쓸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저 안에 있는 놈은 위험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놈에게 영력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벽태산은 다시 절벽 위에 있는 산채를 쳐다봤다.
그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쭉 솟구쳤다가 사라졌다.
울타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산적들이 갑자기 깜짝 놀라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뭔가 섬뜩한 것이 심장을 콱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잠시 후, 늙수그레한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