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5)
“저놈이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연하린을 쳐다봤다. 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연하린이 눈에 투지의 불꽃을 피워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울타리에 바짝 붙어서 서 있는 사내를 올려다봤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연하린 뒤에 있던 세 시비가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하오문도는 기겁하며 뒤쪽으로 후다닥 멀어졌다.
사내가 훌쩍 몸을 띄우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쿵!
지축이 울렸다.
사내는 꼿꼿이 선 채 벽태산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도가 있었는데, 도 끝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사내가 다가오자, 벽태산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마치 네 상대는 내가 아니라 연하린이라고 말하는 듯이.
사내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사납게 웃었다.
“감히······!”
그런 사내 앞으로 연하린이 성큼 나섰다.
그녀의 눈에 깃든 자신감을 본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번쩍 도를 들어 냅다 내리찍었다.
끝
쩡!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방금 내리친 도격에는 상당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웬만해서는 절대 막을 수 없고, 설사 막는다고 해도 검 째 동강 날 정도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한데 그 도격을 흘려냈다.
그냥 막은 것도 아니고 흘리다니, 믿기 어려웠다.
물론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 흘리기 편한 공격이긴 했지만 말이다.
“흐······ 재미있구나.”
사내, 홍여익이 히죽 웃었다.
그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끓어올랐다.
콰아아!
단숨에 끓어오른 기운이 폭발하듯 주변을 휘감았다.
연하린은 검을 휙휙 휘저으며 뒤로 사뿐사뿐 물러났다.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휘몰아치던 기운이 툭툭 끊어졌다.
가볍게 움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
방금 그 도격은 어제 벽태산과의 수련이 없었다면 결코 이렇게 간단히 흘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굉장해!’
연하린의 눈이 반짝였다.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실수하면 단숨에 목숨이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런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그녀를 더욱 강렬하게 자극했다.
연하린은 두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뒤꿈치를 들며 발가락에 힘을 꽉 주었다.
꽈득!
바닥이 움푹 파이며 연하린의 몸이 빛살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방금 끊어놓은 기운의 틈새를 그대로 통과해 홍여익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쩌어어어엉!
홍여익이 연하린의 검을 칼로 빗겨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의 웃음은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후웅! 후웅! 후웅!
홍여익의 칼이 연하린이 있던 공간을 휘저었다.
연하린은 기묘한 보법을 밟으며 그것을 피해냈다. 물론 전부 파하지는 못했고, 몇 번은 검을 들어 막아야 했다.
쩌저저저정!
“좋구나!”
홍여익이 환하게 웃으며 더욱 세차게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에 빛무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꽈앙! 꽈앙! 꽈앙!
연하린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막아냈다.
되도록 흘리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홍여익은 연하린이 공격을 흘리지 못하게 조금씩 휘두르는 순간과 방향을 비틀고 있었다.
홍여익의 칼에 맺힌 빛무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연하린은 이를 악물었다.
‘봐주고 있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사람은 자신과 수준을 맞춰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힘과 속도를 아주 조금씩 높이고 있었다.
홍여익은 연하린이 간신히 막아내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만 힘을 썼다.
쩌저저저저저정!
검과 도가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검기와 도기가 깨지면서 사방으로 파편이 쏟아져 나갔다.
간간이 검강과 도강이 충돌하면서 강렬한 폭발과 함께 기파를 만들어냈다.
꽈앙! 꽈앙!
주변이 두 사람의 싸움에 휩쓸려 부서지고 파이고 부러졌다.
어느새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멀찍이 피했다.
단 한 명, 벽태산을 제외하고.
벽태산은 계속 근처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봤다.
그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몇 번 경험했던 것이지만, 이번에는 좀 더 선명했다.
연하린과 선하령이 겹쳐보였다.
천마신교에서 자신을 동경하며 어떻게든 따라다니려 애쓰던 아이, 그리고 싸움이라면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벽태산이 진짜 흥미를 가진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홍여익은 연하린을 반쯤 농락하고 있었다.
연하린이 간신히 버텨낸다 싶으면 조금씩 힘을 더해 연하린이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연하린이 또 어찌어찌 따라가면 거기서 약간 더 힘을 주었다.
벌써 세 번이나 그렇게 힘을 더했다.
아마 신기할 것이다. 저렇게 위기를 연달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을 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니까.
‘지금 또.’
방금 연하린이 또 위기를 극복하고 홍여익의 공격에 적응했다.
아직 그저 막는 데 급급해서 변변한 공격조차 못하고 있지만, 흐름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반드시 균열이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연하린은 아직까지 영력을 쓰지 않았다.
벽태산의 입가에 흥미가 맴돌았다.
‘재미있군. 데려오길 잘했어. 여러모로.’
벽태산의 깊은 시선 속에서 연하린은 힘겹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쩌저정!
방금 홍여익의 도격은 한 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 번에 걸쳐 쏟아졌다.
그걸 일일이 빗겨내느라 팔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모든 상황에 대처하느라 뇌가 불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홍여익의 실력은 정말로 놀라웠다.
연하린은 죽음을 지척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실력도 쑥쑥 늘어났다.
홍여익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도를 내리쳤다.
쩌저저정!
이번엔 네 번의 도격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먹였다.
한데 연하린은 그조차 아슬아슬하게 다 흘리고 막아냈다.
그 결과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긴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으하하하! 이거 정말 재미있구나!”
홍여익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연하린을 빤히 바라봤다.
“내 제자로 들어올 생각은 없느냐?”
홍여익의 말에 연하린이 코웃음을 쳤다.
“닥치고 덤벼!”
제자는 무슨 얼어 죽을 제자란 말인가. 저 눈이 과연 스승이 제자를 보는 눈일까?
저건 음적이 목표를 보는 눈이었다. 눈빛에 추악한 욕망이 가득했다.
물론 제자로 키우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내가 봐주는 건 여기까지다.”
홍여익이 살기와 정욕이 뒤섞여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연하린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슥 훑었다.
연하린이 슬쩍 시선을 돌려 근처에 서 있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 순간, 벽태산이 손을 옆으로 휙 내저었다.
뻐억!
“컥!”
홍여익의 얼굴이 무언가에 맞은 듯 휙 돌아갔다. 그리고도 그 힘이 남아 그의 몸이 훅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벽태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에 널브러진 홍여익을 쳐다봤다.
“싸우러 왔으면 싸움에 집중해라. 헛짓거리 하지 말고.”
홍여익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방금 뭐에 어떻게 당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뺨이 욱신거리고 입안에서 부러진 이가 돌아다녔다.
“퉤!”
부러진 이와 피를 뱉어낸 홍여익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경각심이 뇌를 마구 두드렸다.
생각해보니 벽태산이 저기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이다.
‘그게 말이 돼?’
아무리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없앴다고 해도 자신이 그걸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저자는 딱히 기척을 죽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너······ 뭐야?”
홍여익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눈치를 살폈다.
벽태산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연하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 하고 있느냐. 계속 싸우지 않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벽태산만 바라보고 있던 연하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홍여익에게 달려들었다.
홍여익은 이제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진심이 담긴 도격을 내리쳤다.
콰우우우!
내리치는 도를 중심으로 주변이 일그러졌다. 아니,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워낙 막대한 힘을 담고 있어서, 그 힘의 여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홍여익은 이 한 번의 도격으로 연하린을 둘로 쪼갤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 싸우면서 연하린의 수준을 아주 정확히 파악했다. 또한 그 와중에 또 발전했다면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정확히 계산했다.
지금 이 도격은 그걸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연하린은 홍여익에게 달려들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홍여익이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저 도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홍여익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영력이었다.
연하린은 이번 일격에 그동안 꽁꽁 감춰두고 아껴둔 영력을 모조리 담았다.
화아아악!
연하린의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이 확 흐르더니 검에 모여들었다.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홍여익의 도에 담은 힘은 영력이 아니었지만, 워낙 격이 높아 영력에 살짝 닿아 있었다.
그것이 연하린의 영력과 충돌했으니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두 사람은 검과 도를 맞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홍여익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대체 어떻게 이걸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연하린은 막아내는 순간 교묘하게 타점을 비틀었다.
이 와중에 그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자신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기도 하고.
‘너무 얕봤어.’
상대를 너무 얕봤다.
홍여익은 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연하린이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지독한 투기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데 뭔가 좀 이상하다.
홍여익은 이내 감탄했다.
연하린은 눈을 부릅뜬 채 기절한 것이다. 힘과 투지를 남겨둔 채 말이다.
싸움은 끝났다. 이제 도를 떼고 그대로 휘둘러 목을 치면 된다.
한데 정신을 잃었음이 분명한 연하린의 검에서 여전히 강한 힘이 느껴졌다.
도를 떼면 이대로 밀려나 몸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독······ 하군.”
홍여익이 그 말을 하며 도에 힘을 주려는 순간,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벽태산이 나섰다.
벽태산은 도와 검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 떨어뜨렸다.
“어어!”
홍여익은 대경했다. 고작 손가락으로 도를 집어서 밀었을 뿐인데, 자신이 전혀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속절없이 벽태산이 밀어내는 대로 밀려나야만 했다.
벽태산은 연하린의 손에서 검을 살짝 뺐다.
그리고 가볍게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연하린이 바로 눈을 감더니 그대로 허물어졌다.
벽태산은 손가락으로 잡은 도를 뒤로 휙 던지듯 밀어내고는 연하린을 잡았다. 그리고 세 시비를 쳐다봤다.
세 시비는 후다닥 달려와 연하린을 받았다.
벽태산은 저 멀리 나동그라진 홍여익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홍여익은 벌떡 일어나 벽태산에게 도를 겨눴다.
벽태산은 귀찮은 표정으로 휙 하고 당기듯 손짓을 했다.
홍여익이 손에 들고 있던 도가 벽태산에게 훅 날아갔다.
벽태산은 손에 들어온 도를 한 차례 슥 살펴봤다.
“제법 쓸 만한 도로군.”
홍여익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제법 쓸 만하다니. 저게 어떤 도인데 그딴 소리를 한단 말인가.
운철과 현철만을 써서 만든 도였다.
게다가 천하제일명장인 도광철의 수제자가 만든 도였다.
한데 뭐라고? 제법 쓸 만해?
하지만 홍여익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벽태산이 너무 무서웠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고작 저 나이에 저렇게 강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