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1)
그거 말고는 방금 펼친 진법, 압천진법에 대한 것 정도인데, 그것도 핵심이 빠져 있으니 가져가봐야 별 거 없으리라.
‘안타까운 건, 이 지식을 세가에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것 정도로군. 뭐, 운에 맡겨야지.’
그동안 연구한 진법과 대법에 대한 내용을 황보세가의 비처에 보관해 뒀다.
나중에 운이 좋으면 세가에서 그걸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점소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자결하기 위해 심맥을 끊어버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끄아아악!”
어느새 다가와 머리를 꽉 움켜쥐고 있는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점소이는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살면서 무수한 고통을 겪어왔고, 그걸 견뎌냈지만, 이 정도 고통은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쏟아내고 있겠는가.
“으아아아악!”
“시끄럽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점소이의 아혈을 제압했다.
점소이는 입만 크게 벌리고 비명을 밖으로 쏟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되니 아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벽태산은 그렇게 점소이의 정수리를 손으로 꽉 쥐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쓰러진 놈들은 전부 정신을 잃은 채였다. 금방 깨어나지는 않을 듯했다.
그래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전부 허공에 띄워서 데려갈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벽태산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쏘아냈다.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곁에서 그걸 쓰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는데 그거 하나 못 따라하겠는가.
심지어 무슨 명령을 소리에 실었는지, 또 하오문도들이 화옥에게 보고하는 내용까지 전부 듣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건 벽태산에게 있어서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잠시 후,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벽태산은 눈짓으로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가리킨 다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손에는 점소이의 머리를 꽉 쥔 채였고, 점소이는 나오지 않는 소리로 악을 쓰고 있었다.
그 광경이 어찌나 기괴하고 무서웠는지, 그 자리에 있던 하오문도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오문도들은 서둘러 장내를 정리하고 쓰러진 자들의 혈도를 제압한 다음, 그들을 옮겼다.
이내 그곳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곳에 쓰러져 있던 자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은밀히 벽태산 일행이 머무는 객잔의 별채로 옮겨졌다.
* * *
황보세가주, 황보원후는 비각주가 운영하는 다루에 들어섰다.
비각주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직접 가서 만나더라도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평소에도 가끔 다루에 들러 차를 마시곤 했다.
이건 가주가 되기 전부터 이뤄져온 작업이었다.
가주 후보가 된 순간부터 가끔 다루에 가서 차를 마셔야 했다.
처음에는 영문 모르고 가주의 지시니 따랐지만, 가주가 된 이후에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다루에 들어선 황보원후는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뭐가 달라진 건지 살펴보니 점소이가 달라졌다.
자신을 발견한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황보원후는 세가의 가주가 쓸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요구했다.
“이 층으로 가겠다.”
점소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점소이가 황보원후를 이 층으로 안내했다.
황보원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느긋하게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 층에 올라간 황보원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도 없다고?’
길이 어긋나지 않게 미리 다루에 기별을 넣었다.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비각주의 의무였다.
그런데도 자리에 없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비각주가 배신했거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겼거나.
‘배신은 아니야.’
일단 배신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비각주는 황보세가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높은 사람 중에서 선정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대체 어떤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도 뻔하다.
그놈들이다.
황보엽의 명예를 짓밟은 놈. 양치백과 황규가 똥을 지리게 만든 바로 그놈.
그놈들이 이번엔 비각주를 쳤다.
황보원후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비각주를 쳤는데, 비각의 일반 요원들은 멀쩡할까?
비각주에 대한 정보까지 알아낸 놈들이 비각의 일반 요원들에 대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황보원후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곧장 세가로 돌아가 즉시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비각의 모든 요원들을 소집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그 소집에 응한 사람이 없었다.
끝
비각주는 깜짝 놀란 눈으로 자신의 옆에 내동댕이쳐지는 자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다루에서 일하던 점소이였다.
그리고 추측컨대, 비각을 암중에서 도와주는 황보세가의 비밀조직 소속이었다.
아니, 아마 그 조직의 수장이리라.
비각주는 자신을 납치해온 이 집단이 더더욱 두려워졌다.
대체 비각주인 자신도 모르는 정보를 어떻게 알아내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비각주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벽태산과 화옥이었다.
화옥은 공손한 자세로 벽태산 옆에 서 있었는데, 그걸 보고서 이 조직의 수장이 벽태산이라는 걸 눈치챘다.
비각주는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말했다.
“원하시는 정보를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전 이만 풀어주십시오.”
그 말에 옆에 있던 점소이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냐! 네놈이 그러고도 비각주라 할 수 있느냐! 네가 아는 걸 불면 저놈들이 널 살려줄 것 같으냐!”
비각주는 한심한 눈으로 점소이를 쳐다봤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산통을 다 깨버리는구나.’
자신이 무슨 정보를 얼마나 풀어놓을 줄 알고 저따위 말을 한단 말인가.
적당한 정보 몇 가지 넘겨주고 밀고 당기기를 잘 해서 상황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다.
황보세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당연히 시간이다.
지금 자신은 시간을 벌려고 하는데 저 머저리 같은 점소이 놈이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각주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벽태산에게 말했다.
“저놈 말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저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겁니다.”
점소이가 그 말에 발악하듯 외쳤다.
“이 멍청아! 쓸모가 다하면 어차피 죽는단 말이다! 네놈이 입 밖으로 쓸 만한 정보를 토하는 순간 네 효용가치가 사라진다고! 너 바보냐! 그런 것도 몰라? 차라리 명예롭게 입 닥치고 죽어! 비각주라면 그 정도 충성심은 있잖아!”
누구보다 충성심이 높은 자를 비각주로 뽑으니 점소이의 말이 옳다. 하지만 지금 비각주는 충성을 버리고자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비각주는 슬쩍 벽태산과 화옥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과 눈빛을 보아하니 다 틀렸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점소이를 쏘아봤다.
“네가 왜 점소이나 하고 있는지 알겠다.”
비각주의 말투는 더없이 차가웠다.
점소이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비각주를 노려봤다.
비각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 멍청함 때문에 다 틀렸다. 누가 도와달라더냐?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비각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점소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제야 비각주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치챈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나서는 바람에 그걸 방해했다는 걸 알아차렸고.
원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비각주의 생각을 읽고 호응하거나 입 닥치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벽태산이 머리를 쥐고 오는 동안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머릿속은 물론이고 온갖 감정이 잔뜩 헝클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봐야 다 핑계일 뿐이다.
점소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벽태산이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화옥에게 물었다.
“나머지 놈들은?”
“다 잡았습니다.”
비각주와 점소이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놈들을 다 잡았다니,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비각주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우리 애들을 잡았다는 뜻입니까?”
화옥이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직접 말해준 정보를 토대로 잡았으니 아마 정확할 거예요.”
비각주가 화들짝 놀랐다.
“직접 말하다니, 뭘 말입니까?”
“뭐긴 뭐겠어요. 비각의 요원들에 대한 정보죠. 실제로는 황보세가의 가주가 부리는 것보다 수가 더 많은 것 같던데, 맞죠?”
얘기를 계속 듣고 있던 점소이의 고개가 부러질 것처럼 휙 돌아가 비각주를 노려봤다.
“이 미친! 벌써 배신했단 말이냐!”
“나, 난 그런 적 없소! 내가 왜 세가를 배신한단 말이오!”
화옥이 빙긋 웃었다.
“아마 본인 기억에는 없을 수도 있어요. 무공도 안 익혔는데, 나이도 많아서 약에 취한 동안의 기억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비각주는 이미 하오문의 약에 의해 심도 깊은 심문을 한 차례 거쳤다.
아직 몇 차례 더 시도해서 남은 기억까지 싹 긁어내야 하지만, 그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면 된다.
일단 가장 급하다고 판단한 비각의 요원들에 대한 정보부터 뽑아내 대응했다.
화옥은 이제 비각주가 아닌 점소이 쪽을 바라봤다.
점소이는 그런 화옥을 노려봤다.
“약으로 정신을 흐리게 해서 자백을 받는다, 이건가? 재미있는 방법을 쓰는군. 하지만 내게는 소용이 없을 거다.”
그때 벽태산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점소이가 몸을 움찔 떨었다.
본능에 각인된 공포가 몸을 쫙 훑고 지나갔다.
벽태산이 점소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점소이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억지로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노려봤다.
저 사람이 대체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처가 가능하다.
점소이는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비각주를 바라봤다.
비각주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방금 벽태산이 한 걸음 다가올 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머리를 좀 쓸 줄 아는 비각주가 도움을 줬으면 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었다.
점소이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벽태산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이 꺾인 것이다.
점소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벽태산이 입을 열었다.
“네가 황보세가의 비밀을 말하건 말건 별로 관심 없다.”
벽태산의 말에 점소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한 번쯤 믿어보고 싶게 만드는 말이었다.
벽태산은 여전히 담담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날 잡겠다고 했던 그 진법이다.”
점소이의 표정이 더 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진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 황보세가가 투자한 돈과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오? 그건 황보세가의 미래나 다름없소. 절대 말해줄 수 없소.”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군. 진법을 알려달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진법은 혼백을 뽑아 구우면 다 알게 되어 있다. 벽태산이 원하는 건 그런 지식이 아니었다.
혼백을 뽑아 구워도 쉽게 알아내기 어려운 것, 그러니까 이 점소이의 안목이나 그간 쌓은 경험을 토대로 유추한 사실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복잡한 감정과 두뇌회전의 결과로 유추하는 건 혼백을 태운다고 해서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진법 비슷한 걸 개발한 것이 황보세가 밖에 없느냐?”
점소이는 그제야 벽태산이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가 그 얘기를 해주면 내게 뭘 해주실 수 있으시오?”
벽태산은 피식 웃고 점소이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꽉 쥐었다.
“끄으아아아아악!”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니, 머리만 부서지는 게 아니라 온 몸이 부서지는 듯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
그 고통이 반 각이나 이어졌다.
벽태산이 머리를 놓아주자 점소이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손을 놓았는데도 고통이 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를 괴롭혔다.
그것만으로도 죽을 것처럼 아팠다.
“크으으으윽! 크흐흑!”
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시끄럽다.”
벽태산의 차가운 말에 점소이는 울음을 그쳤다. 아니, 그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점소이는 두려운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그런 점소이에게 담담히 말했다.
“내가 거래를 하자는 걸로 보이느냐?”
점소이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끌려올 때 머리를 잡힌 채로 왔는데, 그때 느낀 고통이 인생 최악의 고통이라고 여겼다.
한데 방금 다시 머리를 잡혀보니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얼마든지 더 아플 수 있다.
“오래전, 오대세가의 회합이 있었습니다. 당시 오대세가는 천마신교 때문에, 아니, 정확히는 천마 때문에 기를 못 펴고 있었습니다.”
점소이의 말투도 어느새 공손해졌다.
“그래서 서로의 힘과 지식을 모아 천마를 상대할 방법을 마련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오대세가가 모여서 만든 진법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느냐?”
점소이가 얼른 대답했다.
“힘을 모으긴 했지만, 압천진법을 만든 건 오직 우리 황보세가만의 연구 결과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공유해서 각자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점소이는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