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9)
“괜찮습니다.”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너 좀 하던데? 아주 맹탕인 줄 알았더니 제법 도움이 됐어.”
“감사합니다.”
소청명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실 소청명은 지금 굉장히 놀란 상태였다.
솔직히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오늘 그들 세 의원이 상대한 사람은 구룡문에서 나온 네 명의 용이었다.
구룡문에서 용이라 불리는 자들은 굉장한 고수였다.
한데 그런 고수를 고작 의원 세 명이서 넷이나 상대한 것이다.
소청명도 나름 자신이 약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청명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바라봤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나저나 원래 이렇게 싸울 일이 많습니까?”
소청명의 질문에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왜? 싸워보니까 피가 끓어? 또 싸우고 싶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전 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싸움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히려 뜯어말리고 싶은 쪽입니다.”
“우리 공자님 밑에 있으면 몸이 아주 튼튼해질 거다.”
“전 지금도 튼튼합니다.”
“싸우고 싶어질 거라고.”
“그럴 리 없습니다.”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저러고 있지만, 벽태산과 함께 있다 보면 싫어도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걸 확인해지고 싶어진다. 피에 투기가 담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천추신의는 오늘 그걸 확인했다.
“형님, 괜찮소?”
천추신의의 물음에 일침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 괜찮지. 그따위 놈들한테 내가 당하기라도 했을까봐?”
“아까 옆구리랑 허벅지에 칼 맞는 거 봤는데?”
“아, 괜찮다니까! 이런 건 그냥 침 좀 바르면 나아!”
“그게 의원이 할 소리요? 이리 와보쇼. 내가 약이라도 발라줄 테니까.”
천추신의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천추신의 특제 금창약이오. 내가 최근 틈틈이 만든 아주 특별한 약이지. 야, 너도 이리 와라. 아까 다친 거 봤으니까 헛소리 할 거면 입 닥치고.”
소청명이 잠시 망설이다가 주춤주춤 천추신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천추신의는 어느새 일침괴 옆에서 금창약을 듬뿍 퍼 올리고 있었다.
“참으쇼.”
“뭐?”
일침괴가 천추신의의 뜬금없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미 천추신의의 손에 있던 금창약이 일침괴에 허벅지에 철벅 하고 떨어졌다.
“으아아악!”
더럽게 아팠다.
“야! 이거 뭐야!”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아픈 만큼 효과도 확실하니 걱정 마쇼.”
소청명이 천추신의에게 다가가다 우뚝 멈추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천추신의가 고개를 휙 돌려 소청명을 바라봤다.
“왜? 그냥 가려고?”
소청명은 뒤로 물러나다가 그 소리에 또 멈췄다. 그의 얼굴에 굉장한 갈등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추신의에게 다가갔다.
“잘 생각했다. 이거 더럽게 아파서 그렇지 효과는 끝내준다. 우리 형님 상처 보이지? 이거 제법 작은 상처 아니잖아? 이거 사흘 본다.”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통 때문에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일침괴의 옆구리 상처에 금창약을 치덕치덕 발랐다.
일침괴가 입을 떡 벌렸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어흐흐흐흐!”
결국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침괴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쳤다.
천추신의가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만 딱 넘기면 되오. 상처도 금방 낫고, 더 이상 아플 일도 없다니까?”
소청명이 그런 천추신의 앞에 앉아 상처를 드러냈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잠시 후, 비명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 * *
싸움이 끝난 사람의 시야가 확 열렸다.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의 눈에도 아직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사람들은 주변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천추신의가 금창약을 들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다가갔다.
다가오는 천추신의를 본 사람들은 천추신의 뒤쪽에 누워있는 일침괴와 소청명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누운 채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천추신의에게 냉정히 등을 돌리고 후다닥 멀어졌다.
“야, 야! 어디가? 여기 아주 좋은 약 있다니까? 한 번만 바르면 싹 낫는다고!”
천추신의가 그렇게 소리치며 그들을 쫓아가려는데, 갑자기 등줄기가 시원해졌다. 아니, 서늘해졌다.
천추신의는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헤헤. 공자님. 언제 오셨습니까?”
벽태산이 손을 내밀었다.
천추신의가 벽태산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벽태산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추신의는 벽태산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금창약을 벽태산의 손바닥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게 효과가 아주 끝내주는 금창약입니다. 암요. 자잘한 상처는 몇 시진이면 싹 사라집니다. 한 방에 몰아서 잠깐 아프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벽태산의 손바닥 위에 있던 금창약이 통에서 터지듯 솟구쳤다.
촤라라락!
작은 덩어리로 무수히 흩어진 금창약이 천추신의를 그대로 덮쳤다.
촤촤촤촤촥!
작은 덩어리로 떨어진 금창약들이 천추신의의 몸 곳곳에 있는 모든 상처에 착착 달라붙었다.
그 중에는 눈에 거의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상처도 있었고, 제법 큼직한 상처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상처에 동시에 달라붙었다는 점이었다.
“커어어어!”
천추신의의 몸이 고통으로 바짝 경직되었다. 제대로 된 비명도 내지 못하고 숨 삼키는 소리만 났다.
털썩.
바닥에 그대로 쓰러진 천추신의는 끊임없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벽태산은 그런 천추신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고통에서 벗어난 일침괴와 소청명이 서서 천추신의를 내려다봤다.
“괜찮냐?”
일침괴의 질문에 천추신의는 눈동자만 살짝 돌려 바라볼 뿐,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여간 내가 너 조만간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다.”
일침괴는 혀를 몇 번 찬 다음 소청명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청명은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천추신의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약효가 정말 좋습니다.”
“끄어어어!”
천추신의는 제대로 대꾸도 못 해주고 신음만 흘리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 멀리서 일침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시워언 하다!”
끝
“총 서른여섯 명을 사로잡았고, 나머지는 전부 죽었습니다.”
화옥의 보고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각월객잔을 습격한 자들의 수는 삼백 명이 넘었다.
정말로 금월상단이 단단히 각오하고 패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리해서 벌인 일이 실패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벌써 금월상단이 소유한 사업체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현천상단이 지독하게 상권을 갉아먹는 바람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 상권을 지킬 무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으니 여파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 중 열세 명이 무명 소속입니다.”
“혁련휘?”
“예. 혁련휘가 부리던 자들의 잔당입니다. 그들을 심문해 장사에 아직 남아있는 무명의 잔재를 싹 걷어낼 계획입니다.”
이제 이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벽태산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이번 습격을 막아내면서 벽태산 휘하에 있던 사람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비단 벽태산이 직접 거느리는 사람들 말고도 하오문 소속이나 비천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이번 습격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 싸웠으니까.
무명 소속 무사들이 강하긴 하지만, 진짜 고수들은 이번 습격에 전부 참여했기에 나머지는 하오문과 비천단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최근 오대세가와 무림맹, 흑련, 호무련이 회합을 가진 정황을 파악했습니다.”
“회합?”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의 회합이야 예전에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낸 적이 없었다.
사실 그 이면에는 회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물밑에서 천마신교의 다양한 조직들이 신경을 쓴 결과지만, 그런 자잘한 일이 천마에게까지 보고될 일은 없었다.
“무명에 대응하기 위한 회합으로 보입니다. 좀 더 정보가 정확해지면 추가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그냥 화옥이 알아서 하면 된다.
그렇게 한창 보고를 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옥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급히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문밖에 선 자는 하오문도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무명의 무사들을 심문하던 자중 하나였다.
화옥이 벽태산을 바라보자, 벽태산이 문을 쳐다봤다.
문이 저절로 확 열렸다.
하오문도가 화들짝 놀라 벽태산과 화옥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심문 중에 혁련균 휘하에 있던 무명의 잔당들 소식을 알아냈습니다.”
혁련균이라는 말을 들은 벽태산의 눈에 흥미가 살짝 깃들었다.
“그들이 무한 쪽에 뭔가를 하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무한?”
화옥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어찌할까요?”
당장에라도 무한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리라.
무한은 벽태산의 근간이 있는 곳이다.
금벽상단도 있고 하오문의 본단도 있다.
또한 새로 합류하는 비천단 역시 상당수가 무한에 모여 있었다.
흑도세력과 낭인시장 역시 완벽하게 벽태산의 것이 되었고.
뿐이랴, 그곳에는 천약방도 있다. 승도흥을 비롯한 진법가들도 잔뜩 모여 있고.
화옥의 다급한 시선에도 벽태산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건 정말 별 거 아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그런 벽태산을 보고 있으니 화옥도 차분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무 난데없는 보고를 들어서 잠깐 흥분한 것이다. 또한 그 사실이 좀 부끄러웠다.
그녀는 하오문도를 보며 말했다.
“알았으니 돌아가서 심문을 마저 진행하세요.”
하오문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화옥은 차분한 목소리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할까요?”
“네 생각은 어떠하냐?”
화옥은 고민도 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처음부터 작정했다면 아마 동시에 진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그들을 구하겠다고 부랴부랴 서둘러봐야 이미 늦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무한에 남은 자들의 힘도 보통은 아니다.
무한에는 육태구와 장각우가 있다. 또한 승도흥과 초서란도 있다.
비천단도 잔뜩 있고, 하오문의 정예가 있다.
마공을 익힌 흑도 무리와 낭인들도 있다.
결코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명이 마냥 쉬운 조직은 아니니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화옥은 그런 내용을 아주 차분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벽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일은 알아서 정리해라.”
화옥이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염려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공자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처리하겠습니다.”
사실 잘 처리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제 이곳 장사의 상황은 다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까.
“난 잠시 산책이나 다녀오련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화옥이 벽태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 * *
무명에서 혁련균 휘하에 있던 자들은 크게 다섯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다퉜다.
물론 직접적으로 목숨을 노릴 정도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하고 견제했다.
그 다섯 덩어리 중에서 두 덩어리가 신웅태와 함께 혁련비광에게 갔다.
남은 자들은 크게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이라도 혁련비광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로 나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신웅태와 녹천학이 접근해 혁련휘 휘하에 있던 자들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의 기습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각각 무한에 있는 백화루와 장사에 있는 각월객잔을 습격하기로 한 것이다.
무한 외곽에 모인 무명의 무사들은 약속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투기와 살기를 벼리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 모인 무사의 수는 총 백구십이 명.
그 중에서 아홉 명은 각각 스무 명의 부하를 이끄는 조장이었고, 세 명은 각각의 무리를 이끌던 자들이었다.
그 셋은 실제 무명 내부에서 대주 혹은 부대주의 직위였었다.
아홉 명의 조장은 제법 큰 규모의 무가에서 장로 자리쯤은 맡을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다.
그리고 세 명의 대주와 부대주는 각각 조장 넷이 협공을 해도 못 이길 정도로 강했다.
현재 이들을 이끄는 자는 대주 출신의 사내였다.
나머지 두 부대주가 그를 상관으로 인정한 건 아니지만, 당장 오늘 싸움은 그의 지휘를 받기로 약속했다.
“출발.”
나직한 목소리로 내린 대주의 지시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백 명에 가까운 무사들이 움직이는데도 숨소리 하나, 가벼운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그들은 무한 중심지를 향해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