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26)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전율이 일었다.
솔직히 무공을 익힌 이후 지금까지 무수한 수련과 실전을 반복했지만,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어떻게 강제로 깨달음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의 수준은 이런 식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어설프지 않았다.
한데 분명히 무아지경에 빠졌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지금은 예전보다 확실히 한 단계 위의 경지로 올랐다.
아직 검마와 비교하려면 멀었지만, 이런 일이 몇 번만 반복된다면 검마의 수준에 오르는 건 그리 먼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식이면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수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갑자기 그런 허무함이 찾아왔다.
나충길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마치 몸이 그림자 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억!”
나충길은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봤다.
뒤에 누가 있을 리 없었다. 이곳은 마차 안이고 뒤에는 마차의 벽만 있었으니까.
나충길은 황급히 몸을 수습했다.
깨달음 뒤에 이런 식으로 허무함에 빠지면 그건 곧장 심마가 되는 법이다.
당장 몸에 문제가 생기고, 그게 심각하게 이어지면 주화입마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행히 큰 문제가 되기 전에 정신을 차려서 쉽게 수습할 수 있었다.
나충길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질 법도 한데 그런 건 없었다.
정신이 들고 나니 육체적으로 맞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번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공자님이로군.’
역시 대단하신 분이다. 아마 자신이 심마에 빠질 거라 예상하고 구해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 생각을 하니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고작 이딴 일로 심마에 빠지다니. 아직 멀었어.’
나충길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수련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이다. 오늘부터 더 철저히 수련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몸이 부서지도록 수련해야 이따위 잡생각이 안 날 것 아닌가.
나충길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분히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건 비단 나충길에게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몇몇 높은 경지에 있던 자들은 다들 비슷한 상황에 빠졌고, 비슷한 방식으로 거기서 벗어났다.
거기에는 연하린도 천경완과 유서연도 있었다.
그들은 다들 심마에 빠졌다가 벽태산의 도움으로 벗어났고, 벽태산에게 고마워하며 차분히 명상에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차는 계속 달렸다.
* * *
어느새 벽태산 일행은 무한에 도착했다.
마차는 무한을 관통하듯 달려 어느 거대한 장원 앞에 멈췄다.
장원의 정문이 열렸고, 마차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벽태산이 머물기 위해 새로 지은 장원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장원을 하나 지으려면 사실 몇 년은 걸린다.
하지만 하오문에서는 인력과 돈을 무한정 쏟아 부어서 최대한 빠르게 장원을 완성했다.
이 장원에는 하오문은 물론이고 승도흥을 비롯한 진법가, 기관 전문가들의 모든 역량이 들어가 있었다.
장원의 정문을 넘어선 순간, 벽태산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 봐라?”
벽태산은 마차를 멈추게 하고는 내렸다.
벽태산의 마차가 멈추자, 다른 마차들도 당연히 멈췄고, 다들 내려야만 했다.
벽태산은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슥 둘러봤다.
장원 전체를 아우르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진법의 힘인지는 몰라도 장원 전체에 미약한 영력이 흐르고 있었다.
승도흥이 진법을 이용해 영력을 다룬 것이다.
“공자님? 왜 그러시는지······.”
화옥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 거 아니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장원 전체를 감각 아래에 두고 영력의 흐름을 유심히 살폈다.
보아하니 영력이 진법에서 뭔가 특별한 작용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금벽에서 뽑아낸 진법을 연구하고 그걸 응용해 자신의 진법에 써먹다보니 우연히 영력을 건드리게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이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영력이 이렇게 일정하게 흐르게 만들었다는 건, 진법의 힘으로 영력을 모았다는 뜻이다.
즉, 영력을 가진 자들이 영력을 수련하는 데 굉장히 좋은 장소가 된 셈이었다.
벽태산에게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막 영력을 각성한 자들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장원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온 사람은 승도흥이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승도흥은 납작 엎드려 절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장원을 소개하듯 팔을 쫙 펼쳤다.
“어떻습니까? 제가 정말 신경 많이 썼는데, 괜찮지 않습니까?”
승도흥이 말한 건 진법에 대한 것이다.
그는 벽태산이 자신이 설치한 진법을 모두 파악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벽태산은 승도흥을 가만히 쳐다봤다.
자신이 진법을 왜 확인하고 있겠는가. 하지만 장원에 영력이 흐르게 했다는 건 굉장히 기특한 일이었다.
“잘했다. 상을 주마.”
승도흥의 얼굴이 활짝 폈다.
“감사합니다!”
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칭찬 한 마디 받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온 것뿐이었다.
한데 친히 상을 내려주시겠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벽태산은 승도흥을 보며 가볍게 손을 횡으로 그었다.
승도흥의 눈동자가 위로 휙 올라가며 풀썩 쓰러졌다.
벽태산 근처에 있던 하오문도들이 후다닥 달려 승도흥을 챙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일행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으로 벽태산과 승도흥을 번갈아 바라봤다.
방금 벌어진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죽음을 경험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경험하다보면 영력을 쓸 수 있게 된다.
영력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다.
그걸 생각하면 분명히 상이 맞긴 하다.
하지만 아마 승도흥이 생각했던 상은 저런 게 아니었으리라.
벽태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이 복잡한 표정을 지우고 얼른 뒤로 따라붙었다.
화옥이 벽태산 옆에 붙으며 조심스럽게 뭔가를 물으려 했다.
한데 그녀가 묻기도 전에 벽태산이 먼저 말했다.
“현천장이라 해라.”
화옥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화옥은 그렇게 대답한 후, 조금 앞으로 나아가 벽태산을 안내했다.
그녀는 벽태산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벽태산의 집무실은 굉장히 거대했다.
몇 군데로 나뉘어 있었는데, 개인 정무를 볼 수 있는 방이 있었고, 그 방 뒤에 따로 침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의 양 옆에 각각 접객실과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이 거대한 공간에는 높은 단상 위에 옥좌가 놓여 있었고, 그 옥좌를 중심으로 좌우 앞쪽에 벽태산의 수하들이 있을 자리가 쭉 이어져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쓸 일이 없는 공간이었다.
아마 정말 중대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나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화옥은 이런 구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겼다.
침실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지하에는 거대하고 튼튼한 연무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벽태산은 연무실을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곳이 바로 이 장원에 흐르는 모든 영력의 중심이 되는 자리였다.
벽태산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장원에 흐르는 영력의 질이 올라간다. 또한 벽태산이 어찌 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영력을 흐르게 할 수도 있었다.
벽태산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표정으로 연무실 곳곳을 둘러봤다.
여기를 금과 옥으로 꾸미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연무실을 찬찬히 둘러본 벽태산은 다시 집무실로 갔다.
집무실에는 화옥이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공자님, 오대세가와 무림맹, 흑련, 호무련이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회합을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손을 잡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화옥이 말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그 정도가 아닌 모양이었다.
벽태산이 관심을 가지는 듯하자 화옥이 얼른 말을 이었다.
“그들이 손잡고 천무련이라는 단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천무련?”
“예. 지금 그것 때문에 천하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무인을 모집하고, 협력 단체를 구성 중입니다.”
벽태산이 화옥을 쳐다봤다. 저런 얘기를 한다는 건, 이쪽으로도 뭔가 제안이 왔다는 뜻이리라.
“천무련에서 금벽상단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보냈습니다.”
“상단도 끼워준다고?”
“예. 금벽상단 말고도 큰 규모를 가진 몇몇 상단에 똑같은 제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화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하오문에도 제안이 왔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화옥은 얼른 말을 이었다.
“하오문주가 하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오문은 이제 벽태산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벽태산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어쩌고 싶다더냐.”
“하오문주는 욕심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라고 해라.”
화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정말입니까?”
“하고 싶으면 해야지. 하오문주가 천무련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나?”
화옥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현재 하오문은 하오문주뿐 아니라 화옥이 함께 다스리는 구조였다.
오히려 비천단까지 쓸 수 있는 화옥이 하오문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오문주가 천무련에 가서 하오문도를 이용한다고 해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그렇게 얻은 정보는 전부 벽태산의 손아귀에도 들어가게 될 테니까.
더구나 천무련 내부의 정보까지 샅샅이 알게 될 테니 오히려 나은 구석도 있었다.
물론 천무련에서는 절대 그러지 못할 거라고 여기겠지만.
“그리고······ 공자님을 뵙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누가?”
“사마위홍입니다.”
“사마위홍?”
“무림맹 총군사입니다.”
끝
“으허헉!”
승도흥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멍하니 침상에 앉아 상황을 파악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방이었다.
“내가······ 언제 여기 왔지?”
여긴 승도흥이 머무는 방이었다.
이 방에서 나가면 바로 자신이 진법을 연구하는 장소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또 나가면 진법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가 나오고.
승도흥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휘휘 저어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서서히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이 채워졌다.
“그러니까······ 공자님이 상을 주신다고 하셨고······!”
승도흥은 그제야 상황이 떠올랐다. 자신은 죽었다. 죽인 사람은 벽태산이었고.
“뭐지? 그럼 여긴 극락인가?”
지옥이라면 이보다 훨씬 지독할 테니 여기가 지옥일 리는 없다.
하지만 극락이라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승도흥은 침상을 벗어나 방을 나섰다.
그러자 하오문도 한 명이 보였다.
“여긴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데······.”
자신이 진법을 연구하는 곳이다. 당연히 아무나 들어와선 안 된다.
이곳에 있는 종이쪼가리 하나 유출되어선 안 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모든 진법에 대한 지식과 번득이는 생각들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하오문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공자님의 지시로 이 안에 있던 것은 현천장으로 옮겼습니다.”
“아······ 그렇지. 공자님께서 돌아오셨으니······.”
그동안은 장원을 완성해 놓고도 거기에서 아무도 머물지 못했다.
장원의 주인인 벽태산이 오지 않았는데 어찌 그곳에 머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벽태산이 왔으니 다들 장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마 벽태산 휘하에 있는 주요 인물들은 전부 장원 내에 거처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승도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 짐인데 내가 깨어있을 때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
승도흥의 말에 하오문도가 바로 대답했다.
“닷새입니다.”
“닷새? 그게 무슨 말인가?”
“대협께서 정신을 잃은 지 닷새 지났습니다. 이곳 장원을 처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미리 이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깨어나셨으니 저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만일 오늘도 안 깨어났으면 승도흥을 하오문도들이 현천장으로 옮기려 했다.
그런 얘기를 전부 전해들은 승도흥의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하오문도가 말했다.
“깨어나면 공자님께서 바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공자님께서?”
승도흥은 불안한 눈으로 하오문도를 바라봤다. 하지만 하오문도는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하오문도를 따라 현천장으로 향했다.
현천장에 도착한 승도흥은 벽태산의 집무실로 갔다.
벽태산의 집무실에는 화옥과 백화루주, 그러니까 하오문주가 함께 있었다.
벽태산은 승도흥이 다가오자, 그를 유심히 살폈다.
승도흥은 벽태산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