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27)
왠지 머릿속을 꿰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호오. 이것 봐라?”
벽태산이 승도흥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얼른 오라는 뜻이었다.
승도흥은 혹시라도 또 어제, 아니 닷새 전과 같은 일을 당할까봐 얼른 달려갔다.
상을 준다고 해놓고 어찌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죽은 건 아니지만, 승도흥은 아직도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벽태산은 승도흥이 다가오자 더 세심히 그를 살펴봤다.
“몇 번 죽어야 할 거라고 여겼는데, 한 방에 끝났구나.”
승도흥은 그 말을 듣자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주, 죽이다니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하.”
“달라진 거 못 느끼겠느냐?”
승도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끝내 벽태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벽태산은 승도흥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일단 돌아가라. 나중에 시간을 들여 봐주마. 상으로 준 거니 확실히 몸에 새겨주지.”
승도흥은 그 말에 울상을 지으며 물러갔다.
화옥은 옆에서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승도흥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벽태산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건, 승도흥에게 뭔가 있다는 뜻이다.
“재능이 있다.”
벽태산 입에서 재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화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승도흥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자, 이제 하던 얘기를 마무리해야지.”
벽태산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천무련으로 간다고?”
백화루주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욕망이 일렁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벽태산에 대한 경외의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뭐, 나쁘지 않겠지.”
백화루주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데 좀 이상하지 않느냐?”
화옥과 백화루주는 그 질문에 표정이 살짝 굳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합니다.”
대답도 동시에 했다.
하오문은 이미 예전 암영보를 잃기 전의 성세를 되찾았다. 아니, 오히려 그때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외부에서 하오문을 보는 눈은 예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암영보를 잃은 하오문은 무림맹이나 흑련이 주목할 만한 정보조직이 아니었다.
무림맹이나 흑련은 보통 소문을 내거나 소문의 방향을 돌리길 원할 때 하오문을 이용하곤 했다.
최근 하오문의 위상이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봐야 하오문이었다.
벽태산을 만난 이후 하오문의 활동은 철저히 벽태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외부의 의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에 하오문의 실력이 알려질 일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금월상단과의 일이 하오문이 나서서 외부에 보여질 만한 것인데, 그건 상계에 깊은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려웠다.
실제로 중요한 일은 대부분 현천상단을 이용했고.
한데 고작 그런 하오문을 천무련에 영입한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백화루주는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이 추측하는 바를 얘기했다.
“아마······ 하부조직으로 써먹으려는 것 같아요.”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에도 그랬으니까.
천무련이 얼마나 큰 세력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대세가와 무림맹, 흑련에 호무련까지 손을 잡고 새로 조직하는 세력이 평범할 리 없었다.
아마 잘 키운다면 천무련에 참여한 각각의 세력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그 정도로 큰 세력이라면 몇 개의 정보조직을 운용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마 큰 조직 하나가 중심에 서고, 그 휘하에 하부조직을 몇 개 두어서 운용할 모양이었다.
하오문이 그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고.
벽태산은 백화루주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런데도 굳이 하겠느냐는 뜻이었다.
백화루주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잠시 몸을 낮추는 건 제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곳에 가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차하는 순간 그들의 아가리 속에 하오문을 털어 넣을 수도 있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벽태산의 말에 백화루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믿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자님의 믿음, 큰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화옥을 쳐다봤다.
“사마위홍이 날 찾는다고?”
“예.”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놈이 이리로 올 리는 없고······ 나보고 무림맹으로 찾아오라, 이거구나?”
“전언은 그렇습니다.”
사마위홍의 서찰이 금벽장에 도착했고, 그것이 다시 이곳 현천장으로 왔다.
화옥은 벽태산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다.
“보고 싶은 놈이 와야지.”
“그런 의도로 답장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저 말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저 새로 장원을 열어 틈을 낼 수 없어 가지 못한다는 정도로 쓸 것이다.
방문은 언제든 환영한다는 말을 덧붙이면 아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것이다.
물론 기분은 나쁘겠지만.
사마위홍에 대한 얘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화옥은 심호흡을 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천상단의 본단을 무한에 두고자 합니다.”
지금은 장사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활동 중이었다.
하지만 현천상단은 앞으로 천하를 아울러야 할 상단이다. 그러니 본단의 위치는 벽태산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건 화옥만의 생각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벽태산은 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라.”
“금벽상단의 상권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현천상단은 무한이 아닌 천하를 상대로 장사를 할 계획입니다.”
“나쁘지 않군.”
벽태산의 허락이 떨어지자 화옥이 부드럽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도 자잘한 보고가 이어졌다.
벽태산은 모든 보고가 끝난 뒤, 화옥을 보며 말했다.
“제위룡 그놈, 철저히 휘어잡아라. 말을 안 들으면 나한테 말하고. 원래 천뇌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밟아줘야 잘 돌아가는 법이다.”
화옥은 그 말에 살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제위룡을 떠올리고는 이내 빙긋 웃었다.
확실히 벽태산의 말이 맞긴 하다. 제위룡은 여전히 벽태산의 다른 수하들과는 좀 달랐다.
화옥은 그가 더 이상 그 상태로 있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무림맹에는 책사들로만 구성된 조직이 있었다.
적현각이라는 곳이었는데, 총군사인 사마위홍이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수십 명의 책사가 무림맹을 위해 매일 머리를 쥐어짜는 곳이 바로 적현각이었다.
무림맹에 소속된 조직들의 행동방침도 정하고, 혹시라도 무림맹과 관계된 분란이 생기면 그것을 조절하기도 한다.
또한 각종 정보를 받아 천하의 정세를 살피고 무림맹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도 계획한다.
물론 적현각은 어디까지나 계획만 할 뿐이고, 그것을 행할지 말지는 맹주가 정한다.
아무리 계획만 한다고 할지라도 적현각이 제안하는 내용이 허무맹랑하지만 않다면 대부분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들의 위세는 상당했다.
당연히 총군사이자 적현각의 책임자인 사마위홍의 위세는 맹주에 버금갈 정도였다.
사마위홍은 서찰 하나를 읽고 있었다.
서찰을 읽는 내내 그의 눈썹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서찰이었다. 하지만핵심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못 온다고? 허어, 이것 참······.”
사마위홍은 서찰을 모두 읽은 후 심호흡을 했다. 대번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의 앞에는 여러 명의 책사가 각자의 서탁에 앉아 퀭한 눈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마침 잠시 눈을 주무르며 쉬고 있던 책사가 사마위홍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애송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어찌 무림맹의 총군사가 부르는데 거절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사마위홍이 쓴웃음을 지었다.
“부르면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한 내가 오만한 거 아니겠나. 그리 열을 낼 필요 없네.”
사실 좀 놀라긴 했다. 지금까지 사마위홍이 이렇게 불러서 오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그 중에는 제법 대단한 세가의 가주도 있었다.
그래서 벽태산도 당연히 그럴 거라 여겼다.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무림맹의 위상에 금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위홍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가 뭐 있겠나.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닌데.”
아쉬운 놈이 찾아가는 게 맞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하지만······!”
“그만 됐네. 하던 일이나 마저 하게.”
“예.”
책사는 금세 움츠려들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마위홍은 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벽태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영입하고자 진검대주를 무한에 보냈을 때였다.
물론 그때는 두 의원이 몸을 의탁한 금벽상단에 대한 조사에서 잠깐 언급된 정도였다.
벽태산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무림맹 천검단주 방두립의 실종을 조사하면서부터였다.
방두립의 실종에 대한 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당시 방두립이 갔던 장사에 대해 폭넓게 조사하다 보니 벽태산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벽태산이 누군지 기억한 사마위홍은 무한에 있어야 할 벽태산이 왜 장사에 있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한데 막상 조사를 시작하니, 놀랄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몸을 의탁한 것이 금벽상단이 아닌 벽태산 개인이라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게다가 천약방까지 벽태산 아래로 들어갔다.
뿐이랴, 하오문까지 벽태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보고자 했다.
벽태산 같은 인재가 천무련에 들어간다면 큰 역할을 할 것 같아서였다.
천무련에 들어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직접 추천을 할 생각이었다.
사마위홍은 과연 자신이 직접 무한으로 가서 벽태산을 만날 가치가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솔직히 냉정하게 따지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벽태산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금벽상단 둘째 공자라는 배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특별한 것이 천하를 뒤엎을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럴 시간에 무림맹과 천무련에 신경을 쓰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한데 자꾸 미련이 남았다.
왠지 한 번 꼭 보고 싶었다. 직접 만나서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사마위홍의 고민이 점점 더 깊어져갔다.
끝
이른 아침, 현천장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벽태산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접객실로 향했다.
접객실에는 금벽상단의 주인이자 벽태산의 형인 벽태수와 그의 아들인 벽제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구나.”
벽태수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벽태산은 벽태수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내공이 아주 꽉 차 있었다.
“이제 약은 그만 먹어도 되겠다. 더 먹어봐야 똥만 더 만들 뿐이야. 수련이나 제대로 해라. 보아하니 딱 한 걸음 모자라는구나.”
벽태수가 익힌 무공은 벽태산이 개조한 탐혈마공이었다.
피 대신 영약을 탐하는 마공이 되었는데, 그 덕분에 몸이 아주 좋아졌고, 내공은 단전이 터질 것처럼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실전 수련을 하지 않았기에 실력 자체가 높지는 않았다.
벽태산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해야지. 알았다. 해보마.”
벽태수는 흐뭇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예전 동생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전에 금벽을 부순 날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지기도 했고.
“얼굴이나 보자고 온 것 같지는 않고······.”
벽태산의 말에 계속 지켜만 보던 벽제혁이 얼른 나섰다.
“혹시 상단을 만드셨습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월상단 때려잡느라 하나 만들었지.”
그 말에 벽제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역시······ 그랬군요.”
얼마 전 금월상단의 본단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상계를 강타했다.
아직 금월상단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본단이 무너지고, 지부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중이었다.
한데 그걸 벽태산이 했다니.
아니, 오히려 벽태산이 했다고 하니까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벽태산이기도 하지만, 천마이기도 하지 않은가.
천마가 상단 하나 박살 내는 게 뭐 어려울까.
“한데······ 상단을 이곳 무한으로 옮기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벽태산이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의 상권에는 별 관심 없다고 하니 걱정할 거 없다. 무한은 너희가 먹어라.”
현천상단은 천하를 먹을 테니까.
그러자 벽태수가 나섰다.
“그 얘기가 아니다.”
벽태산이 그럼 뭐냐는 듯 쳐다보자, 벽태수가 말을 이었다.
“굳이 우리를 남처럼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이런 장원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는 걸 보니 세력을 만들 생각인 것 같은데, 굳이 가족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나?”
그렇게 말하는 벽태수의 눈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하긴, 금벽장에 있을 때부터 뭐 하나라도 못 줘서 안달이던 사람 아닌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합치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가.”
솔직히 상단을 누가 운영하든 별 상관없었다.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벽태산은 그저 상단이 돈을 벌어오고, 그 돈으로 수하들이 알아서 이곳 현천장을 운영하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