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0)
제위룡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걸 공자님께서 만드신 겁니까?”
“그럼 누가 만들었겠느냐.”
“아니, 전 그냥······ 신교에 워낙 무공서가 많으니······.”
제위룡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오늘 영감을 받아서 대충 끄적여봤다.”
제위룡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솔직히 대충 끄적인 것만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무공서가 아니었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깊이는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위룡은 책사이긴 하지만, 무공에 대한 안목도 상당했다. 스스로 천하에서 손꼽힐 정도라고 자부할 정도였다.
한데 그런 제위룡이 보기에도 이 세 권의 무공서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다.
굳이 저렇게 말하는 이유를 짐작하긴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제위룡이 그렇게 삐딱하게 보는 것과 달리 화옥은 벽태산의 말을 듣고서 경외의 감정이 더더욱 커졌다.
“이걸 오늘 만드셨단 말씀이십니까? 반나절도 안 걸려서 이런 대단한 걸 만드셨다니······!”
그런 화옥을 보는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벽태산은 시선을 약간 돌려 화옥 옆에 있는 제위룡을 쳐다봤다. 화옥을 볼 때와 달리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가서 필사해라.”
“예?”
“두 번 말해야 하느냐?”
제위룡이 얼른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닙니다. 필사하겠습니다. 한데 얼마나······.”
“내 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익혀야 하니, 그 수만큼 해라.”
“예?”
“또 두 번 말해야 하느냐?”
“모, 못 들었습니다.”
벽태산이 제위룡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제위룡은 그 눈빛을 버텨냈다. 여기서 물러나면 수천 권을 필사해야 하는데, 그걸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벽태산 밑에 있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일단 흑도 무리와 낭인들만 해도 각각 수백 명이다.
거기에 하오문과 비천단까지 있지 않은가.
그들을 다 더하면 생각하기도 싫은 숫자가 나온다.
벽태산이 시선을 돌려 화옥을 쳐다봤다.
“안 밟았느냐?”
“밟았습니다.”
화옥은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제위룡을 쳐다봤다.
제위룡은 소름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대련 주기가 더 짧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밟다니······ 설마 공자님께서······!”
벽태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월영단주가 하는 일이다.”
“예?”
제위룡은 갑자기 머릿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오래전 기억 몇 개가 불쑥 치솟았다.
그것은 그가 아직 천마신교에 있을 때, 그러니까 천마신교의 천뇌를 사부로 모시며 한창 배울 때의 기억이었다.
당시 그의 사부가 외출했다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몇 달에 한 번씩 그랬다.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월영단주와 약속이 있었다는 얘기를 지나가다 듣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는 사부의 사생활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으니까.
한데 저 말을 듣고 보니 월영단주에게 주기적으로 가서 처맞고 온 모양이었다.
“아니, 대체 왜······!”
제위룡이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대체 왜 천뇌가 그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책사에 대한 지나친 차별과 억압이다.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화옥을 쳐다봤다.
“이해했느냐?”
화옥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제위룡은 더 황당한 표정이 되어 화옥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니, 이걸 이해한단 말이오? 대체 뭘? 어떻게?”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도망가려느냐?”
제위룡은 입을 다물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도망갈 거냐고? 절대 그렇게는 못한다.
여기서 도망치면 자신이 애써 키워놓은 백 명의 책사는 어찌 한단 말인가.
이번에 금월상단을 상대로 써먹으면서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을 상당히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옥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또 몇 가지 조정을 거쳤고.
아마 이런 식으로 실전 경험을 몇 번만 더 하면 확실히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제위룡의 힘이었다.
다시 책사를 모아서 천뇌를 만드는 일은 이제 불가능했다.
한 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아니, 못 한다.
그 짓을 어찌 다시 한단 말인가.
물론 누군가가 목숨과 고통을 가지고 협박하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일이 뭐가 있겠는가.
눈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담담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벽태산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도망이나 칠 수 있게 해주고?’
이젠 벽태산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개인의 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력을 말함이다.
벽태산 아래에는 하오문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비천단이 속속 합류 중이었다.
현천상단이라는 이름이 천하에 알려진 뒤로 비천단이 합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일단 조사해보겠다고 접근한 순간 끝이다. 이쪽에서 먼저 파악하고 치고 들어간다.
설득의 과정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같은 비천단이니까.
아무튼 하오문과 비천단이 휘하에 있는데 자신이 도망치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그들의 정보력은 천뇌를 운용하면서 이미 겪어봤으니 아주 잘 알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
‘신교와 비교하면 어떨까?’
비천단은 천마신교가 가진 정보망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은 정보망이라기보다는 천하에 녹아들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진의 중심을 치기 위한 사전포석 같은 존재였다.
천마신교에는 따로 정보조직이 있었고, 그들의 실력은 굉장했다.
한데 어쩌면 지금 벽태산이 가진 정보의 힘이 그들과 비견될 정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위룡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아닌가? 아닐 거야.’
그렇게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제위룡의 귓가에 화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당분간은 대련을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해주시니 말이에요.”
제위룡이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알았어. 열심히 할게. 열심히 하면 되잖아. 농땡이 안 부린다고. 시발.’
왠지 피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제위룡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저 혼자서 그 많은 필사를 하라시는 건 아니지요?”
“백 명이나 데리고 있지 않느냐.”
그 말에 제위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혼자서 그 많은 걸 필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충분히 시킬 사람이 바로 벽태산 아닌가.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위룡은 무공서 세 권을 챙겨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집무실을 나서기 직전 벽태산이 말했다.
“닷새면 충분할 것이다.”
문을 나서는 제위룡의 발이 딱 멈췄다.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위룡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럴까봐 얼른 가려고 했던 건데.
그의 등이 축 쳐졌다.
* * *
천무련을 세우기 위한 밑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낙양에 장원을 구입했고, 그것을 더 확장하고 개조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공사에 막대한 인력과 자재를 쏟아 부었기에 조만간 공사가 끝날 예정이었다.
또한 천무련에 소속될 인재들도 선별이 끝났고, 그들을 보조하고 장원을 관리할 일꾼과 시비, 그리고 문사들도 다 모았다.
이제 남은 것은 천무련의 수뇌부를 구성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것을 위해 오대세가, 무림맹, 흑련, 호무련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 중이었다.
어차피 수뇌부는 모든 세력과 가문이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
조금 급이 떨어지는 가문이나 방파에는 좀 미안하지만, 그들 중에서 수뇌부를 뽑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천무련의 문을 열 때는 강력한 무가나 세력을 등에 업은 자들이 수뇌부에 있어야 첫 걸음을 편히 내디딜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 논의 자리에는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일단 하후세가의 가주인 하후관천이 나왔다.
하후관천은 천무련주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애초에 천무련을 계획할 때부터 그 자리에 앉기 위해 다양한 일에 개입했고, 모든 일을 직접 주도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흘러왔다.
한데 오늘 그가 긴장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저자가 왜!’
오늘 이 자리에 무림맹의 총군사인 사마위홍이 참석한 것이다.
하후관천은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사마위홍이 천무련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면, 그는 정말 강력한 경쟁자가 되리라.
하후관천의 주관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일단 전체적인 조직 구성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부터 결정했다.
물론 기본적인 조직도는 미리 작성해서 다들 확인했기에 혹시 모자란 부분이 있거나, 바꿔야 할 부분이 있을 경우 논의를 통해 수정해 나갔다.
그렇게 조직도를 구성한 다음, 각 조직의 수장 자리에 앉을 사람을 선출했다.
참여자들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각자의 가문이나 세력에 도움이 될 만한 자리를 노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수장이 정해졌고, 이내 모든 자리가 채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무련주 선출이 시작되었다.
끝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싸한 긴장감이 좌웅을 싹 훑고 지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하후세가의 가주인 하후관천과 무림맹의 총군사인 사마위홍이었다.
이제 천무련주를 뽑을 차례였다.
천무련주는 한 번 뽑히면, 자신이 원해서 물러나거나, 노환으로 인해 기력이 지나칠 정도로 쇠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천무련주뿐 아니라 다른 모든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한 번 자리에 앉은 이상,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끝까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이 고여 썩을 수도 있지만, 그거야 적절한 제도를 만들어 보완하면 된다.
보완책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 일단 자리에 앉는 것이 중요했다.
하후관천은 담담한 눈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찢어죽이고 싶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천무련주가 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마지막에 나타나 방해를 한단 말인가.
물론 사마위홍도 천무련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천무련을 세상에 알리고, 장원을 준비하고 인원을 선정하는 것까지 사마위홍의 손이 닿아 있었다.
그래서 하후관천은 사마위홍이 천무련의 총군사 자리를 원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천무련에 자신의 사람을 잔뜩 심어서 천무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설마 이렇게 천무련주 자리를 노리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후관천은 최대한 담담함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입을 열었다.
“설마 무림맹 총군사께서 천무련주 자리에 욕심을 내실 줄은 몰랐소.”
사마위홍이 빙긋 웃었다.
“향후 천하의 안정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에 나섰을 뿐입니다.”
하후관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기에 따라서 자신은 천하의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천하의 안정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지 않겠소? 나 역시 같은 마음이오.”
하후관천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총군사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소. 아마 누구나 인정하겠지. 지금의 무림맹을 만드는 데 총군사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니겠소?”
사마위홍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후관천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후관천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 능력을 천무련에서도 발휘해 주셨으면 하오. 천무련에도 총군사가 필요하지 않겠소? 전 그 자리에 사마 대협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오.”
사마위홍이 빙긋 웃었다.
“제가 천무련을 구성할 때, 책사의 수도 충분히 맞췄습니다. 그들을 이끌 만한 인재도 구했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인재가 총군사는 아니지 않소이까. 게다가······.”
하후관천은 살짝 말을 끌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몇 가지 감정을 담아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약간의 불쾌함, 그리고 적당한 우월감, 거기에 비웃음까지 살짝 섞여 있었다.
“정점에서 천무련을 이끌어 가려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통솔력과 지도력을 갖춰야 하오. 또한 고강한 무공은 필수 아니겠소?”
하후관천은 통솔력과 지도력에 대한 얘기는 담담히 하면서 무공에 대한 얘기에 힘을 주었다.
“무공? 지도력과 통솔력이야 이해한다지만, 무공이 꼭 필요하겠습니까?”
사마위홍이 부드럽게 웃으며 하후관천을 바라봤다.
하후관천은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련주가 강하면 강할수록 련주를 호위하는 데 들어가는 무인을 줄일 수 있지 않습니까. 위급한 상황에서 련주의 힘을 이용할 수 있고 말입니다.”
사마위홍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련주가 약하면 휘하 무인들 중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도 있고 말입니다.”
하후관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자신의 말을 반박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저런 말을 왜 한단 말인가.
‘설마 벌써 포기했나? 아니면 지금까지 그저 날 떠보기 위함이었나? 내 성향을 확인하고자 함인가? 내가 너무 막 나갔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