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1)
하후관천은 탐색하듯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하지만 사마위홍은 하후관천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냈다.
“하면 더 강한 사람이 련주 자리에 앉으면 되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하후관천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진심이시오?”
“당연히 진심입니다. 아니면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물론 아니오. 하면 내가 련주 자리에 앉는 것을 찬성한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소?”
사마위홍이 빙긋 웃었다.
“전 분명히 더 강한 사람이 련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어찌 찬성의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하후관천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하! 지금 그 말씀 진심이시오?”
이제야 사마위홍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나와 자웅을 겨뤄보겠다, 이 말씀이시오?”
사마위홍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지요.”
하후관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꾹 참고 사마위홍을 노려봤다.
갑자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동안 사마위홍이 무공을 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마위홍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방금 오간 대화는, 자신과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후관천은 사마위홍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뭔가 기세나 무공을 익힌 흔적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전혀 알 수 없었다.
하후관천은 천천히 일어났다.
“나갑시다. 누가 길고 누가 짧은지 알아봅시다.”
하후관천은 마음속에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방심을 지우려 애썼다.
만일 상대가 자신과 비견할 만한 고수라면 결과는 마음가짐이 결정하게 될 테니까.
* * *
하후관천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사마위홍은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후관천은 경악과 혼란, 치욕과 불신이 뒤섞인 표정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그동안······ 힘을 속이고 있었소?”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하후관천이 묻자, 사마위홍이 평소와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속인 적 없습니다. 그저 힘을 쓸 필요가 없어서 조용히 있었을 뿐이지요. 결과에 승복하십니까?”
하후관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승복하고 말고 할 것이 뭐 있겠소.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는데. 총군사, 당신······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군.”
사마위홍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칭찬 역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사마위홍의 뒷모습을 하후관천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천무련주 자리에 앉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데, 죽 쒀서 딴 놈 입에 쑤셔 넣어준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저 정도면 무림맹주보다 더 강한 거 아닌가?’
하후관천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무림맹주나 흑련주는 훨씬 더 강할 것 같았다.
‘너무 고여 있었어.’
무림맹과 흑련이 쭉쭉 치고나가는 동안 오대세가는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럴 것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니, 무림맹이나 흑련에서 나온 자들의 표정은 굉장히 담담했다. 마치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반면 오대세가 쪽에서 나온 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하후관천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걸 방관하면 그때부터가 오대세가 몰락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후관천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오대세가는, 아니, 최소한 하후세가는 오늘부터 달라질 것이다.
* * *
현천장의 운영이 자리를 잡았다.
사실 하오문과 비천단, 거기에 금벽상단까지 도움을 주는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이유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오랫동안 운영 되어 왔던 장원처럼 자연스러웠다.
일단 장원 운영이 자리를 잡고 나자, 본격적으로 무한을 장악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이것은 애초에 현천장을 세우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벽태산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 계획했던 일이었다.
최소한 무한 정도는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 향후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통은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들은 벽태산의 사람들이었다.
벽태산이 뭘 어떻게 할지 모르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또한 벽태산이 뒤에 있으니 뭘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모두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사실 현천장을 열기 전에도 무한을 반쯤은 장악한 거나 다름없었다.
무한 전역의 흑도는 장각우 휘하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만 해도 보통이 아닌데, 낭인시장의 주인인 육태구까지 있다.
육태구는 낭인시장을 통해 무한에 남아도는 인력을 빨아들였다.
비단 무공을 가르쳐 무사로 써먹기 위한 자들만 모은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꾼으로 쓸 만한 사람들도 전부 받아들였다.
일종의 인력시장을 흡수한 것이다.
이제 무한에서 육태구를 통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일꾼을 쓸 수가 없었다.
낭인시장은 힘을 쓰는 일꾼뿐 아니라, 주루나 객잔에서 일할 점소이, 혹은 시비, 심지어 기녀까지 관리하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물론 하오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현천장이 열렸고, 내실을 가볍게 다진 후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한에 있는 문파나 무가들도 결국 현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굳이 압력을 주거나 핍박하지 않아도 알아서 현천장에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그들은 현천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군소리 없이 협조할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을 잘 정리한 문서를 벽태산이 읽고 있었다.
사실 벽태산은 굳이 이런 걸 보고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하겠다는 보고를 거절하지 않는다. 이것은 천마이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단 보고를 받으면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벽태산은 모든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괜찮군. 이대로 계속 하면 되겠어.”
보고서를 모두 읽은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화옥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공자님께서 주신 무공서의 보급이 끝났습니다.”
벽태산은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런 건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익히기 싫은 놈은 안 익혀도 그만이다. 그래봐야 자기만 손해니까.
“한데 그 무공의 이름이······.”
화옥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벽태산이 불쑥 끊고 말했다.
“현천.”
그러니까 현천심법, 현천보, 현천권이라고 이름을 지으라는 뜻이다.
정말 대충 지은 듯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들 만족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보고를 마친 화옥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천무련이 조만간 문을 열 것 같습니다.”
“누가 련주가 되었다더냐.”
“사마위홍입니다.”
“사마위홍? 무림맹 총군사?”
“예. 바로 그 사마위홍입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하후세가가 련주 자리 노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예. 하후관천이 련주 자리에 앉으려고 물밑으로 많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마위홍이 련주가 되었다고?”
“예. 마지막에 무공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벽태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사마위홍이 하후세가주를 이겼다고?”
“예. 압도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래? 흐음.”
벽태산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한데 그 결과를 무림맹이나 흑련 쪽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모양입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동안 놀고 있었던 건 아니란 말이로군. 재미있어.”
천마이던 시절 사마위홍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놈이 어지간히 겁이 많아서 감히 천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래도 사마위홍에 대해 아는 건 제법 있었다. 어쨌든 유명한 놈 아닌가.
하지만 그가 무공을 익혔다는 건 벽태산조차 몰랐다.
정말로 철저히 자신을 감춘 것이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 그걸 드러낸 건,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였으리라.
이제는 천마가 없으니까.
벽태산이 화옥을 보며 물었다. 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간 것이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언제 문을 여는지 아느냐?”
“두 달 후 입니다.”
“내가 사마위홍을 다 보겠구나. 재미있겠어.”
벽태산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끝
연하린은 무한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연가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을 살짝 했다.
그동안 계속 벽태산을 따라다니느라 집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아마 별 일은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겼다면 하오문에서 바로 자신에게 알렸을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아마 굉장히 서운해 하고 계시리라.
연하린은 어느새 연가장에 도착했다.
좀 떨어진 곳에 멈춰서 정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와 달리 감정이 살짝 들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의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자라온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종리세가와 얽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종리세가가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건 당시 종리세가에서 온 종리웅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연하린의 마음은 아주 확고했다. 그래서 가문에 피해가 갈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또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그때의 일은 잘 해결되었다.
종리세가도 이젠 몰락해 버렸고.
그리고 자신이 절절히 원하던 대로 벽태산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공자님, 정말 대단하시지.’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연하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차피 벌어지지도 않은 일, 생각해서 뭐 하겠는가.
일어나지도 않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훨씬 중요하다.
연하린은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연가장의 정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 * *
연하린은 장주의 집무실 옆에 마련된 접객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아버지인 연가장주는 일을 마무리하고 오기로 했다.
연하린은 접객실에서 차를 마시며 내심 참으로 아버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연가장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 접객실의 문이 열렸다.
연하린은 아버지가 온 줄 알고 반색하며 고개를 돌려 문을 확인했다.
한데 들어온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낯선 사람이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인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풍기는 기세가 상당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연하린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하린이로구나. 어릴 때 보고는 처음이라 아마 날 모를 것이다. 허허허, 정말 많이 컸구나.”
연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공손히 인사부터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 그래. 기억 안 나지? 네가 세 살이었을 때 보고서 처음이니까.”
“예. 잘 모르겠습니다.”
“난 고복양이라고 한다. 혹시 내 이름, 들어본 적 있느냐?”
연하린의 눈이 살짝 커졌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무림에서 제법 유명세를 탄 사람이었다.
“삼절검협 어르신 아니십니까.”
고복양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있구나.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삼절검협 고복양은 굉장한 고수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세력이나 가문에 소속되지 않고 활동하기에 더 유명했다.
또한 그의 의협심이 남다르다는 점 역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수십 년을 올곧게 살다보니, 직접, 간접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니 그가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셨나요? 전혀 몰랐어요.”
연하린이 놀란 눈으로 묻자, 고복양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친구를 한 명만 꼽으라고 하면 네 아버지를 말할 것이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그동안 서찰을 통해 교류를 꾸준히 이어왔지. 그동안 연가장의 도움도 제법 많이 받았고 말이다.”
그 말에 대꾸한 것은 연하린이 아니라 막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연가장주였다.
“그 반대겠지. 그동안 자네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리 연가장이 제대로 유지나 되었겠는가.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내내 받기만 했으니 마음이 불편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런 걸로 불편할 사이는 아니지.”
연가장주의 말에 연하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이기적이라고 욕할 만한 내용 아닌가.
하지만 말을 하는 연가장주나 그 말을 듣는 고복양도 전혀 기분이 상하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저 반갑고 기쁜 미소만 가득했다.
“이 친구, 뭐가 그리 바빠서 얼굴 한 번 안 비추는 겐가. 이제 슬슬 정착하려고 온 건가? 내 자네가 원한다면 그럴듯한 집 한 채 정도는 내줄 수 있네. 내친 김에 여기서 같이 살아도 되고.”
“하하하. 내 방랑벽이 그리 쉽게 고쳐지겠나? 마음만 고맙게 받겠네.”
연가장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웃었다.
“우리 하린이 본 지가 제법 됐지? 어떤가? 잘 자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