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2)
“깜짝 놀랐네. 그동안 자네만 잠깐잠깐 보고 간 게 후회될 정도로 잘 자랐군.”
연가장주는 연하린에게도 말했다.
“삼절검협 고복양, 유명하니까 너도 알 거라 믿는다. 내 친구다.”
연가장주가 친구라고 말할 때, 고복양을 바라봤는데, 그 눈빛에 담긴 신뢰와 정이 연하린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연하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가장주와 고복양을 번갈아 바라봤다.
“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아버지께서 한 번도 말씀을 안 해주셔서.”
연가장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해주고 싶었다. 이 사람이 내 친구라고.”
그렇게 말하는 연가장주의 표정은 더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연하린은 왠지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부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꼭 오늘 오라고 하신 거였군요.”
“그래. 이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네게 연락을 했다.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 마침 네가 무한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그러게요.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거겠죠.”
연하린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연가장주가 고복양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어떤가? 우리 딸, 예쁘지?”
연하린은 다시 놀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또 처음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자랑할 만하네. 사방에서 혼담이 엄청나게 들어오겠는데? 아, 정혼한 사람이 있다고 했었나?”
“음. 아주 마음에 드는 사람이지.”
고복양은 연가장주와 연하린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아들이라도 있으면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아들을 낳았어도 소용이 없었겠는데? 하하하하.”
“아까도 말했잖은가. 그런 얘기를 하려면 일단 혼인부터 먼저 하라고. 하하하. 아니면, 그 사이 혹 좋은 사람이라도 만났나? 꼭 그랬으면 좋겠군.”
고복양의 나이가 제법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혼인을 못 할 건 없었다.
연가장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고복양보다 좋은 사람은 천하에서 손에 꼽을 정도니까.
한데 그 말을 들은 고복양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정말 미묘한 변화였지만, 연가장주는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그냥 해본 말인데, 자네 표정을 보니 뭔가 있군. 어서 말해보게. 내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반드시 도울 테니까.”
고복양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저 너무 오랫동안 자네 얼굴을 못 본 듯하여 이렇게 찾아온 걸세.”
“정색한다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어서 말해보게. 그동안 자네에게 받은 도움이 얼마인데, 나에게도 갚을 기회를 좀 주게.”
하지만 고복양은 결코 말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 얼굴도 봤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군. 다음에는 술이라도 한 잔 나누세.”
고복양이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려 하자, 연가장주가 그의 소매를 꽉 잡았다.
“자네, 죽으러 가는 건가?”
고복양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온 건가?”
연가장주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표정을 지우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앉게. 그리고 차분히 얘기라도 해보게. 날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그렇게 해주게.”
고복양은 일어선 채로 망설였다.
그러자 연하린이 나섰다.
“혹시 힘이 필요하신 거라면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고복양이 무거운 눈으로 연하린을 바라봤다.
연하린의 표정은 담담했고, 눈빛을 맑았다.
잠시 연하린을 살피던 고복양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고복양의 시선이 이번엔 연가장주에게 향했다. 그리고 다시 연하린에게로 돌아갔다.
“허어. 이거 믿을 수가 없군.”
“뭐가 말인가?”
“자네, 자네 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건 또 갑자기 무슨 말인가?”
“자네 딸이 나보다 고수인 것 같은데, 혹시 알고 있나?”
“뭐?”
연가장주는 황당함과 경악이 뒤섞인 표정으로 고복양과 연하린을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 하린이가······ 자네보다 강하다고? 그게 말이 되나?”
고복양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묻는 것 아닌가. 보아하니 자네를 넘어선 지는 한참 된 것 같군.”
“그럴 리가······ 우리 하린이가 무공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작년까지만 해도 연하린이 두 명이라고 해도 연가장주를 이길 수 없었다.
한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무려 삼절검협 고복양을 능가하는 고수가 되었단 말인가.
그 사이 벌어진 일이라고는 연하린이 벽태산에게 간 것밖에 없다.
연하린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고복양에게 말했다.
“이제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참고로 우리 공자님이 나서시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이 될 거예요.”
연가장주는 멍하니 연하린을 바라봤다.
“네가 말하는 우리 공자님이 벽 공자를 말하는 거겠지?”
“그럼 또 누가 있겠어요?”
연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웃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지 연가장주와 고복양이 잠시 말을 잊고 멍하니 바라봤다.
연하린은 얼른 말해달라는 듯 고복양을 바라봤다.
고복양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 전, 좋은 사람을 만났네.”
그렇게 입을 떼고 나니 그 뒤의 얘기는 술술 나왔다.
“심성이 아주 훌륭한 여인이었지. 한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네. 정말······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
연가장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면 그분을 찾으러 가는 건가?”
“그렇다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은월곡과 얽힌 것 같네.”
“은월곡······!”
은월곡은 여인들만으로 이루어진 방파였다.
그들은 세상에 잘 나오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냈다.
물론 세상과 아예 연을 끊고 살 수는 없었다. 지속적으로 은월곡에 들일 제자들을 찾아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나 식량도 구해야 했으니까.
은월곡에 소속된 여인들은 대부분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쁜 마음을 먹은 자들과 불쾌하게 얽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은월곡은 세상을 향해 힘을 분출했다.
잘못 엮인 문파나 방파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는데, 은월곡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대부분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철저히 무너졌다.
물론 진짜 강력한 세력이나 가문과 얽힌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벌인 일을 통해 유추하면 최소 오대세가에 버금가는 가문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했다.
“은월곡이 납치라도 했단 말인가?”
고복양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하지만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냥 떠날 사람은 아닐세.”
연가장주는 그제야 고복양이 왜 자신에게 말을 안 꺼내려 했는지 이해했다.
은월곡을 상대로 연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연가장주는 아무리 무모하더라도 친구를 돕겠다고 나설 것이 분명했다.
나서면 죽을 것이 확실한데, 어찌 친구를 사지에 밀어 넣겠는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자, 연하린이 얼른 나섰다.
“제가 알아볼게요.”
“네가?”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연하린을 바라봤다.
네가 무슨 수로 그걸 알아보겠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연하린은 빙긋 웃었다.
“제가 하오문이랑 연이 좀 있거든요. 잠시만 두 분이서 회포를 풀고 계세요. 제가 얼른 다녀올 테니까요.”
연하린은 그 말을 남기고 곧장 자리를 떴다.
이런 일은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연가장주와 고복양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 정신이 없었다.
연하린이 이런 식으로 끼어들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 이렇게 발 벗고 나설 거라고도 생각 못했으니까.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연하린이 살짝 문을 열고 고개만 안으로 들였다.
“벌써 왔느냐?”
연가장주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별 성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고복양은 그런 연하린을 보며 빙긋 웃었다.
“괜찮다. 어차피 나 혼자서 할 생각이었으니까. 마음만이라도 고맙구나.”
연하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일행이 좀 늘었는데 괜찮죠?”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이 늘었다고?”
그제야 연하린이 문을 활짝 열었다.
열린 문 밖으로 벽태산이 보였다.
“재미있어 보여서.”
벽태산의 말을 들은 고복양이 연가장주를 바라봤다.
연가장주가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하린이 정혼자.”
끝
은월곡은 섬서 어딘가에 있었다.
정확한 은월곡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은월곡에 소속된 자들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은월곡이 어디 있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때의 얘기였다.
만일 누군가 간절히 그것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거대한 정보조직을 움직일 힘이 있다면, 상황이 아예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달라진 상황이 찾아왔다.
고복양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어 하다 보니, 지금 길을 떠나고 있었다. 연하린이 데려온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지금 고복양 옆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녀는 고복양에게 현재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는 중이었다.
“일단 은월곡의 위치는 따로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애초에 찾을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화옥은 고복양의 얼떨떨한 표정을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은월곡이 진짜 그런 일을 했는지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소.”
하지만 고복양은 확신했다. 그녀는 지금 은월곡에 있다고.
은월곡 사람들이 그녀를 납치했든, 아니면 그녀가 스스로 그곳으로 갔든 말이다.
“따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화옥의 물음에 고복양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소저는······ 하오문이시오?”
화옥이 빙긋 웃었다.
“아뇨. 전 저기 뒤에서 오시는 공자님의 시비입니다.”
시비라는 말에 고복양의 눈이 커다래졌다. 세상에 어떤 시비가 이런 일을 맡아서 한단 말인가.
“다만 전 공자님 시중을 들기보다는 이런 자잘한 일을 맡아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잘한 일이라기에는······.”
고복양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화옥은 그의 이해를 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가 하오문 소속인 것이 아니라, 하오문이 공자님 밑에 있습니다. 제가 그걸 부리는 것뿐이지요.”
하오문을 부린다는 말에 고복양이 멍하니 화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저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고 있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고복양이 알기로 하오문이 썩 대단한 조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 개인의 밑에 들어가 부림을 당할 조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능력은 없어도 자존심은 있었으니까.
하오문은 한때 천하에서 손꼽히는 정보조직 중 하나였다.
“저 공자의 정체가 대체 뭐요? 듣기로는 상단의 공자님이라는 것 같았는데······.”
“얼마 전까지는 그랬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한 장원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무한 흑도와 낭인의 주인이기도 하고, 비천단의 주인이기도 하다.
고복양은 화옥의 설명을 듣다 보니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저 뒤에서 따라오는 벽태산과 연하린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정말 잘 어울리는군.’
연하린도 아름다웠지만, 나란히 있는 벽태산의 외모도 남달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데 함께 다니다보니, 그냥 그 정도가 아니었다.
묘하게 여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나가던 여자들 중 벽태산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돌아보면, 그때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게다가 함께 데려온 일행의 면면도 심상치 않았다.
아직 다 소개받은 건 아니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일단 함께 따라가는 여인들만 해도 그렇다.
어찌 하나같이 저리도 아름다운지, 천하에서 손꼽히는 미인은 다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런 미인이 무려 열한 명이었다. 그것도 연하린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까부터 뭔가 심통이라도 난 듯한 표정으로 따라오는 노인이 두 명 있었다.
그 두 노인의 분위기도 보통이 아니었다.
세상에 참으로 고수가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나마 자신이 해볼 만하다고 여긴 사람은 왠지 홀로 동떨어져 있는 듯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 역시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저 청년이 이 일행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저 아름다운 여인들조차 저 청년보다는 고수였다.
적어도 고복양이 보기에는 그랬다.
‘정말······ 대단하군.’
이 정도라면 아무리 은월곡이라도 함부로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복양은 약간의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를 되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그는 이들이 괜한 희생을 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 * *
“예? 설마 그 천추신의와 일침괴란 말씀이십니까?”
고복양의 놀란 외침에 천추신의가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앞에 ‘그’자를 붙이는 저의가 뭐지? 혹시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라도 들은 게 있나?”
고복양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의선과 마의 이후 천하제일의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지신 분 아니십니까.”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잘 알고 있어.”
“잘난 척 좀 그만하고 이제 이 친구 얘기도 좀 듣자.”
일침괴의 핀잔에 천추신의가 발끈하려다가 외부인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럽시다. 형님이 그러자면 응당 아우는 따라야지.”
일침괴가 코웃음을 쳤지만, 천추신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복양을 바라봤다.
고복양은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해 그냥 다른 얘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