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7)
“얼마 전 이곳으로 온 목연연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소!”
“목연연?”
중년 여인은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지켜보던 벽태산이 말했다.
“일단 안으로 안내해라. 내가 자리에 앉기 전까지 생각해 내는 게 좋을 거다.”
중년 여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알겠습니다! 뭣들 하느냐! 얼른 손님들을 안으로 모시지 않고!”
뒤따라 나왔던 여인들이 서둘러 벽태산 일행을 은월곡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중년 여인은 누구보다 먼저 은월곡 안으로 달려갔다. 당장 생각나지 않지만 무조건 찾아내야만 했다.
자신의 기억에 없다면, 그걸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녀의 조급한 마음만큼 달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 * *
은월곡의 여인들은 벽태산 일행을 적당한 접객실로 안내하려고 했다.
한데 어느 정도 가다가 갑자기 벽태산이 방향을 바꿨다.
“그,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여인 중 하나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벽태산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벽태산을 막아서거나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벽태산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중심이구나.”
벽태산이 온 곳은 은월곡의 중심이었다.
다들 무슨 일인가 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황금토시를 찬 손을 하늘로 뻗었다.
후웅!
영력이 토시를 통해 몇 차례 반복해서 증폭했다. 거대한 영력이 하늘로 훅 쏘아져 나갔다.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영력이 사방으로 쫙 펼쳐졌다.
마치 거대한 새장을 만들듯 영력의 줄기가 호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이어졌다.
마치 은월곡 전체를 새장으로 덮은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재료는 영력이었고 말이다.
벽태산은 자신이 완성한 거대한 영력의 새장을 보며 씨익 웃었다.
“되는군.”
왠지 될 것 같아서 해봤는데, 역시 잘 된다.
이제 누구도 자신의 허락 없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가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안내하려던 은월곡의 여인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벽태산이 앞장을 섰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로······.”
여인중 하나가 어디로 가는지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벽태산이 가는 방향 저 멀리 은월곡주의 거처가 보였으니까.
은월곡에서 가장 큰 전각이었고, 그곳에는 은월곡주의 집무실, 연공실, 숙소, 그리고 은월곡주를 보필하는 곡의 수뇌부가 쓰는 집무실들이 모여 있었다.
* * *
은월곡주는 전각 밖으로 나와 초조하게 벽태산을 기다렸다.
입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미 전달 받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가 찾아와서 도망치려던 태음마군을 잡았다고 했다.
태음마군을 잡는 과정까지 설명을 들었지만, 직접 목격한 자에게 들었는데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은월곡 끝에 있는 절벽을 통해 도망치려던 것을 은월곡 입구에서 잡았다니,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또한 방문자들 중 한 명이 목연연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연연에게 사람을 보냈다.
어쨌든 은월곡이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 되었으니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심해야 한다.
무명에게 은월곡이 먹히는 과정에서 피해가 너무 컸다.
다시 그런 피해가 오면 은월곡은 더 버티지 못하리라.
그렇게 전각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벽태산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은월곡주는 긴장하며 벽태산의 모습을 살폈다.
‘젊어도······ 너무 젊은데?’
솔직히 은월곡주 입장에서 보기에는 젊다기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될 듯했다.
고작해야 스무 살이나 좀 넘었을까?
생기기도 워낙 잘 생겨서 어떻게 보면 스무 살도 안 된 듯하기도 하다.
아무튼 은월곡주는 상대가 어려 보인다고 해서 얕잡아보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벽태산 뒤에서 둥둥 뜬 채 함께 오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찌 얕볼 수 있겠는가.
벽태산 뒤에 둥실둥실 떠서 함께 오는 자들은 전부 무명에서 파견한 자들이었다.
저들로부터 은월곡의 제자들을 지켜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물론 전부 지켜낼 수는 없었다.
이곳 은월곡은 무명에 먹혔을 때부터 그런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어느새 벽태산이 은월곡주 앞에 섰다.
은월곡주는 벽태산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제가 은월곡주입니다.”
“벽태산이다.”
은월곡주는 벽태산이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최근 무명에서 나온 자들과 대화할 때 가장 자주 듣던 이름이 바로 벽태산이었으니까.
‘이 사람이 바로 그······.’
은월곡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소문의 벽태산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함께 오신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잡을 놈들이 좀 있어서.”
어차피 도망치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잡을 놈은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벽태산의 일행들은 지금 사방으로 흩어져서 무명에서 온 자들을 잡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단 은월곡에 있어선 안 되는 자들, 그러니까 남자들만 싹 잡으라고 했다.
지금 벽태산 뒤에 둥둥 떠 있는 자들은 벽태산이 오는 도중, 근처에 보이기에 잡은 놈들이었다.
그 중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섞여 있었다.
벽태산이 무명에서 나온 놈들을 구분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무명에서 나온 놈들은 혼백에 흔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태우기 전에는 발견하기 어려운 흔적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냥 보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미세한 흔적이었는데, 벽태산의 감각에는 그것이 아주 선명하게 느껴졌다.
누가 일부러 새긴 흔적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위험한 영력을 쓰는 놈 근처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흔적이었다.
은월곡주는 그걸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무명에서 나온 여자들까지 이렇게 다 잡아냈을 줄은 몰랐다.
‘저걸 어떻게 파악한 거지? 그 정도로 정보력이 대단한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긴장했다.
상대는 은월곡 내부까지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섣부른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설픈 시도를 하면 대번에 걸릴 것이다.
은월곡주는 거기까지 머릿속에 정리하고는 벽태산을 안으로 모셨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뒀습니다. 아니면······ 아예 식사를 준비할까요?”
“차로 하지.”
밥은 나중에 시비들이 해주는 걸 먹을 생각이었다.
역시 아무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먹어봐도 시비들이 해주는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
아마 벽태산의 입맛을 정확히 꿰고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튼 벽태산은 은월곡주의 집무실로 들어가 미리 마련해 놓은 상석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은월곡주는 벽태산 앞에 조용히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주군과 수하 같은 모양새였다.
“목연연은?”
“지금 옆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불러올까요?”
“됐다. 내가 만나서 뭐하겠느냐.”
목연연을 만나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고복양이다.
고복양도 지금 다른 일행들과 함께 무명에서 나온 놈들을 잡는 중이라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무명이랑 손은 왜 잡았느냐.”
그저 이유를 묻는 것뿐인데, 은월곡주가 듣기에는 마치 책망하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붉혔다.
“힘에 짓눌렸습니다.”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실패했다. 그게 전부였다.
은월곡의 힘이 대단하긴 했지만, 홀로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만일 다른 문파들과 연계라도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면 무명이 은월곡을 아예 건드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용해먹기 좋고 힘으로 짓누르기도 좋으니 일을 벌인 것 아니겠는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은월곡주는 문득 이 상황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굉장한 고수이긴 하지만, 자신이 너무 심하게 몸을 낮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솔직히 자신과 저 앞에 앉은 벽태산과의 나이 차가 얼마인가.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마흔이 넘는 자신과 비교하면 절반이나 되겠느냐 말이다.
은월곡주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벽태산을 보고는 바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보자마자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벽태산은 그저 나이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힘에 짓눌려서 다른 희생양을 찾아다녔구나.”
은월곡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은월곡을 살리기 위해 멀쩡한 여자들을 갖다 바쳤다.
사실 일을 주도하는 것은 무명이었고, 은월곡은 무명의 무사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고 있을 때, 화옥이 들어왔다.
화옥은 분위기가 왠지 심각하게 가라앉은 것 같아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도망치려는 놈이 열다섯 있으니 애들 시켜서 잡아 놓으라고 해라. 찾는 여자는 옆방에 있으니 가서 만나라고 하고.”
“예.”
화옥은 대답과 동시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화옥이 놀란 눈으로 벽태산에게 보고했다.
“은월곡의 경계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던 여인 열다섯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무명이다.”
화옥의 눈이 살짝 더 커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뒤로도 보고가 몇 가지 더 이어졌다.
고복양이 목연연을 만났다는 것과 은월곡의 전체적인 상황 같은 것들이었다.
목연연은 은월곡 소속으로, 서안에서 활동하면서 은월곡으로 보낼 여인들을 선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데 고복양과 만나 좋은 감정을 나누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자신은 고복양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죄책감과 이대로 인연이 더 이어지면, 무명이 고복양을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다시 은월곡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까지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여기서 더 감정이 깊어지면 서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녀는 고복양이 은월곡을 절대 찾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고복양은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둘이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은월곡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벽태산의 말에 화옥이 고개를 숙였다.
“난 무명 놈들을 보러 가야겠다.”
그렇게 말한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이곳은 무명에 여자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했다.
보아하니 그렇게 해서 여자를 받은 것은 혁련비광인 듯했다.
어쩌면 여기서 혁련비광의 꼬리를 잡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 쥐새끼를 드디어 잡을 수 있겠구나.”
집무실에서 나가는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화옥과 은월곡주는 왠지 으스스해서 한동안 벽태산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끝
화옥은 은월곡주와 마주앉았다.
방금 벽태산이 나가면서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지만, 그런 분위기나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죠?”
화옥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은월곡주는 그 순간 감정이 움직였는지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걸 꾹 참아냈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감정을 드러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빠르게 감추는 건 익숙했다.
“저보다는 아이들이 고생했죠. 언제 덮칠지 모를 짐승 같은 놈들 사이에서 버텨내야 했으니까요.”
화옥은 은월곡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마 은월곡주가 그걸 막아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치욕적이었을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명 놈들이 굉장히 지독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아무튼 여기서 태원까지 사람들을 보내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어요.”
화옥의 질문에 은월곡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태원이 아니라 의창이었어요. 태원보다는 가까운 곳이죠. 여기서 천 리쯤 되니까요.”
“의창이요? 호무련이 있는?”
“예. 맞아요. 거기 호무련도 있죠.”
화옥은 살짝 당황했다. 의창은 그녀가 하오문 지부장으로 있던 곳이기도 했다.
한데 그곳에 무명이 있었다니.
물론 수상한 점이 많긴 했다. 이상한 사건도 일어났고. 하지만 무명의 근거지가 그곳에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제가 알기로 근거지를 몇 차례 옮겼어요. 마지막이 태원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이곳을 정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죠.”
화옥이 눈을 빛냈다. 이건 새로운 정보다.
“여길 정리해서 태원으로 오라고 했다는 건가요?”
은월곡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니 기루 하나를 통째로 뽑아 먹으려고 한 거죠. 그리고 좀 흔적이 드러나더라도 최대한 많은 여자를 모집했고요.”
화옥은 그제야 좀 이해가 갔다.
사실 여기에 오기 전에 은월곡과 서안에 대해서 사전 조사를 좀 했다.
한데 은월곡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여 제자를 모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원래는 이렇게 흔적이 드러날 정도로 서두르지도 않았다.
아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누구도 은월곡이 움직이는지 모르게 했다.
한데 이번에는 여러모로 너무 소란스러웠다.
평소의 은월곡답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이유가 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그런데 정말 태원으로 오라고 했나요? 다른 곳이 아니라?”
“예. 확실히 태원이었습니다. 아직 은월곡은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의 분위기로는 은월곡도 태원으로 전부 데려가기로 결정할 것 같았어요.”
아예 이쪽을 날려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이 전각들을 다 버리고요?”
은월곡주가 차분히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기들이 여기를 쓰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천무련을 견제하기 위한 준비인 모양이군요.”
서안에서 천무련이 있는 낙양까지는 팔백 리쯤 되는 거리였다.
결코 가깝지 않지만, 고수들이 작정하고 달리면 생각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