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1)
장일독이 월영단에 들어간 것은 그가 막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애초에 천마신교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혔고, 재능이 출중해서 제법 성과를 얻었다.
월영단주는 장일독의 재능이 싸움 보다는 다른 쪽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걸 파악했다.
그래서 다른 전투 조직에 들어가 재능을 낭비하기 전에 먼저 낚아챘다.
월영단주는 장일독을 데려다 키우면서 그에게는 재능보다 충성심이 더 큰 장점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직속 단원으로 만들어 중요한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월영단주가 직접 지시하는 일이니 당연히 대부분 비밀스러웠고, 위험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장일독은 언제나 월영단주의 기대를 넘어서는 활약을 했다.
장일독은 월영단에서 일하는 동안 천마를 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물론 직접 마주한 것은 아니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천마신교 소속이라고 해서 천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장일독이 천마를 처음 본 것은 임무를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월영단주에게 받은 비밀임무로 새외 세력 중 하나를 추적 했었다.
백혈궁이라는 곳이었는데, 온몸을 새하얀 천으로 둘둘 감고 다니는 희한한 놈들이었다.
백혈궁은 하얀 색에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놈들이었다.
그놈들이 천마신교 소속 아녀자 몇을 납치해 간살했다. 아마 간을 본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그런 일이 있을 때 철저히 쫓아가 짓밟는다. 한 번 손봐줄 때 제대로 해야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백혈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추적하다보니 알 수 있었다. 비록 하얀 천으로 몸을 둘둘 감지는 않았지만, 그놈들은 백혈궁이 분명했다.
천마신교를 간보기 위해 이쪽으로 넘어온 백혈궁 무사의 수는 무려 삼백 명이이었다.
실제로 아녀자들을 간살한 놈들은 그 삼백 명을 이끄는 수뇌부 두 놈이었고.
그건 함정이었다.
흉수의 수가 몇 명 안 된다고 오해하게 만들어 응징을 위해 오는 자들을 몰살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월영단은 처음에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었다.
장일독만 따로 움직여 조금 다른 면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
월영단의 정보에 따라 출동한 천마신교의 무사는 고작 서른 명이었다.
상당한 고수이긴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결코 백혈궁에서 온 삼백 명의 무사와 싸워 이길 수 없었다.
거기까지는 백혈궁의 의도가 완벽히 먹혀 들어갔다.
그들의 불운은 장일독이 따로 조사를 해서 천마신교의 추격조가 백혈궁과 조우하기 전에 천마신교에 신호를 보냈다는 것과,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천마가 직접 나섰다는 것뿐이었다.
장일독의 뇌리로 당시의 광경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천마신교의 추격조가 백혈궁 무사들이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하! 이 멍청한 놈들! 걸려들었구나!”
“천마신교도 솔직히 별 건 없어. 안 그래?”
삼백 명이나 되는 백혈궁 무사들이 넓게 펼쳐지며 천마신교의 추격조를 포위하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 천마가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천마는 백혈궁 무사들과 천마신교 무사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났다.
물론 나타남과 동시에 사방으로 미친 듯이 부는 바람을 보면 위에서 뚝 떨어진 게 분명했지만.
천마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백혈궁 무사들을 향해 걸어갔다.
장일독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삼백 명의 백혈궁 무사 앞으로 걸어가는 천마의 모습을 봤다.
그때가 천마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천마신교에서 보낸 추격조는 천마에게서 뒤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삼백 명 백혈궁 무사들 앞에서 천마가 한 것은 굉장히 간단했다.
발을 들어 바닥을 콱 찍은 것뿐이었으니까.
쿵!
묵직하면서도 위협적인 울림이 퍼졌다.
백혈궁 무사들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이내 비웃음을 마구 쏟아냈다.
“크하하하! 뭐야! 너 혼자서 지금 경극이라도 하려는 거냐?”
“그나저나 넌 또 뭐야?”
장일독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마의 얼굴을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혼자 이렇게 앞으로 나섰다는 건, 뭔가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백혈궁 놈들은 그런 건 할 줄 모르는 머저리들이었다.
그들이 서 있던 땅이 갑자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어마어마한 토사가 백혈궁 무사들을 전부 가둬버릴 정도로 넓고 높게 치솟았다.
“이따위 것!”
백혈궁 무사들 역시 고르고 골라서 온 정예였다. 고작 토사에 파묻혀 죽을 놈들은 아니었다.
그 토사가 평범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높이 치솟은 토사가 그대로 백혈궁 무사들을 덮쳤다.
그리고 그곳은 그대로 피바다가 되었다.
쏟아지는 토사에 맞은 자들은 예외 없이 흙 알갱이에 몸이 퍽퍽 꿰뚫렸다.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핏물이 되어 파묻혔다.
장일독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천마는 백혈궁 놈들이 있던 곳으로 걸어가 중심에 섰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치 죽음을 음미하듯.
장일독은 그 광경이 뇌리에 화인처럼 박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거기 계속 있을 생각이냐.”
장일독은 벽태산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굉장히 묘하고 복잡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한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냥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이 천마냐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만일 천마에게 당신이 천마냐고 물으면 어찌 될까? 죽는다.
그렇다고 돌려서 물어보기도 곤란했다. 천마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빙빙 돌려서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역시 죽는다.
뭘 어떻게 해도 죽는다는 결론이 나오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장일독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곁에서 지켜보며 정체를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돌고 돌아 아까 내렸던 그 결론이 똑같이 나왔다.
장일독은 멀어져가는 벽태산을 향해 얼른 달려갔다.
여기 올 때 느꼈지만, 머뭇거리면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백혈궁은 천마가 나선 그날, 세상에서 지워졌다. 천마 한 명에게.
천마의 기분을 거스른다는 건 그렇게 무서운 일이다.
* * *
태원에서 서안까지는 직선거리로 천오백 리쯤 된다.
장일독은 벽태산이 서안으로 간다는 말에 잠시 거리와 걸리는 시간을 가늠해봤다.
“오늘 시간이 그리 이르지 않은데, 하루 자고 내일 출발하심이 어떠신지요.”
장일독의 물음에 벽태산이 그를 담담히 쳐다봤다.
“지금 출발해서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예?”
장일독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저녁을 아무리 늦게 먹는다고 해도 지금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는 세 시진 정도 남았다.
그것도 아주 후하게 잡은 시간이었다.
한데 세 시진 만에 천오백 리를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 시진에 오백 리를 달려야 한다. 그것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쥐어 짜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걸 쉬지도 않고 연속해서 두 번 더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벽태산은 당연하다는 듯 장일독에게 말했다.
“넌 따로 와라.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도착 못하면 못 볼 수도 있다.”
“예?”
이건 더 어이가 없었다.
내일 아침까지 오라는 건, 밤새 달려오라는 뜻이다. 무려 천오백 리를.
그리고 자신은 오늘 중으로 천오백 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데, 왠지 농담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해내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일독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벽태산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려다가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장일독을 쳐다봤다.
“아, 다른 월영단을 모으는 건 어찌 되었느냐.”
“아직 신호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신호를 보내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으로 오라고 해라.”
장일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아무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이제 진짜로 가야 할 시간이다.
벽태산의 모습이 그대로 사라졌다.
장일독은 멍하니 벽태산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이건 또······ 뭐야?”
또 놀랄 일이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장일독의 눈에 까마득하게 먼 곳, 그러니까 태원 밖 멀리 있는 산 아래에 벽태산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인정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 느려서 같이 못 간다는 거였구나.”
장일독은 굉장히 묘한 감정에 빠져, 방금 벽태산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을 한동안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득달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못 본다고 했다.
그 얘기는 아침에 서안을 떠난다는 얘기가 분명하다.
월영단을 무한으로 모으라고 했으니 혹시라도 못 만나면 무한으로 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자신은 월영단 최고의 인재였다. 그것도 책상물림이 아니라 실전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그러니 할 수 있다. 무조건 해낼 것이다.
장일독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해내고야 말 것이다.
* * *
벽태산은 서안에 도착해 일행이 있는 은월곡으로 향했다.
태원에서 서안으로 돌아오는 건 갈 때보다 더 빨랐다.
공간을 뛰어넘는 길이가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양질의 영력을 많이 얻기도 했고, 여러 번 써서 익숙해져서이기도 했다.
은월곡에 펼쳐둔 영력의 그물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거기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셋이나 있었다.
전부 여자였고, 은월곡의 제자들이 그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은월곡에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무명의 세작들이었다.
은월곡이 제자를 모집할 때 교묘하게 들어와 지금까지 세작 활동을 했다.
그녀들의 눈에 영력이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잡힐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벽태산이 나타나자, 다들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들은 벽태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은월곡 안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벽태산이 돌아왔다고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벽태산은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걷다 보니, 화옥이 빠르게 달려왔다.
“공자님, 다녀오셨습니까.”
화옥은 이미 벽태산이 태원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하오문이 전서구를 통해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벽태산이 혁련비광에게서 뽑아낸 정보를 전달 받기도 했다.
아직 정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좋은 소식을 알려줄 수 있을 듯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화옥은 벽태산과 나란히 걸으면서 벽태산이 태원에 있던 동안의 일을 보고했다.
벽태산은 태원에서 밤을 두 번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이 화옥은 은월곡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부터 은월곡은 벽태산의 것이 되었다.
“아직 무명에서는 은월곡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그렇겠지.”
은월곡은 워낙 폐쇄적이다. 그러니 무명에서도 파견한 인원들을 통해 감시하고 이용만 할 뿐, 지속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철수 명령까지 내려온 상황이니 당장은 무명에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들키는 건 시간문제이기도 했다.
무명에서 이곳, 은월곡을 쓰기로 했으니까.
“아마 조만간 무명에서 이곳에 찾아올 것이 분명합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기로 했으니까.
화옥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보다 무명 깊은 곳에서 온 자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무명이 이곳을 쓰려는 이유는 천무련 때문일 확률이 높으니, 혁련비광처럼 밖에다 내 굴리는 놈들이 아니라 진짜 중심부에 있던 놈들이 올 것이다.
“그놈들이 낌새를 눈치채지만 않으면 재미난 일이 벌어지겠구나.”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비광을 자신이 처리한 사실이 무명에 먼저 들어갈지, 아니면 이곳에 오기로 한 자들이 먼저 도착할지의 싸움이다.
벽태산은 왠지 무명 놈들이 여기 도착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자신의 예감은 보통 잘 맞는 편이다.
“아, 그리고 태원에서 월영단에 있던 놈을 만났다.”
화옥의 눈이 커다래졌다.
월영단이 무엇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 바로 월영마공, 월영단주가 익히는 무공이었다.
“월영단을 모아 무한으로 보내라 했다.”
“미리 무한에 연락을 해서 잘 대접하라 지시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걸음을 조금 빨리하며 물었다.
“무명 놈들이 온다면 언제쯤일 것 같으냐.”
“제 예상은 오늘이나 내일입니다.”
그 정도로 빨리 오지 않으면 아마 무명에서 지금 벌어진 일들을 알아차렸다고 봐야할 것이다.
“오늘이나 내일이라······.”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것 참 기대되는구나.”
끝
이백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서안 근처에 있는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