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2)
그 산속 깊은 곳에 은월곡이 있는데, 오늘부터 그곳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 이백 명의 무사는 무명에서 암검대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암습이나 기습에 특화된 자들이었다.
모습을 감춘 채 기척 없이 이동하거나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빠른 속도와 강한 위력을 얻는 수법 등, 기습과 암습에 쓸 만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암검대에는 한 명의 대주와 두 명의 부대주가 있었고, 그 세 명이 가장 앞에서 이동 속도를 조절했다.
즉, 지금 이렇게 빨리 이동하는 건 전부 그 세 명 때문이었다.
“대주님, 좀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대주의 말에 암검대주가 대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듣기로 아무리 빨라야 내일 출발이라니 오늘 중으로만 도착하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부대주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야 상관없는데, 애들이 지금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동안 수련만 하느라 여자 안을 시간이 없었잖습니까.”
“오늘 마음껏 할 수 있을 테니 시키는 일이나 잘 하라고 해.”
부대주가 씨익 웃었다.
“예. 다들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드디어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치겠습니다.”
“이해한다. 그래도 긴장해야 되는 거 잊지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우리야 기다렸다가 어디로 가라고 하면 가서 죽이고, 또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가서 죽이고. 그게 전부잖습니까.”
“우리가 잘 해야 돼. 그래야 피해가 줄어들 테니까. 우리의 최종 목표는 고작 천무련 따위가 아니라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무명은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그림자처럼 숨어서 지냈다. 세상을 뒤엎기 위한 힘을 모은다는 명분이었지만, 그걸 맨정신으로 버텨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아는데, 그 힘을 마음껏 분출하지도 못한 채 참고 또 참아야 하니, 얼마나 곤욕스러웠겠는가.
물론 세상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으니 좀 덜하긴 했지만, 아무튼 안으로 꾹꾹 눌러 놓기만 해서 제대로 터지면 아마 제법 볼 만할 것이다.
“그나저나 은월곡 애들은 우리가 이렇게 일찍 가는 걸 모를 텐데, 재미있겠습니다.”
암검대주가 피식 웃었다.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들어서 벌벌 떠는 애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너도 그렇고 뒤에서 따라오는 우리 애들도 그렇고.”
부대주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는 거 아닙니까. 어? 저기 있는 산이 그거 아닙니까?”
“그래. 다 왔구나.”
어느새 그들의 눈에 은월곡이 있는 산이 보였다.
은월곡이 어디쯤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을 잘 찾아가는 것 역시 암검대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였으니까.
서안에는 아예 들르지도 않았다. 암검대는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게 좋다.
산에 도착한 암검대는 즉시 산을 타고 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갑자기 암검대주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고는 이동을 멈췄다.
이백 명의 암검대 전원이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멈춰 섰다.
“왜 그러십니까?”
부대주 중 하나가 묻자, 암검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느낌이 이상하다.”
부대주는 긴장한 표정으로 암검대주를 바라봤다.
“함정입니까? 은월곡이 배신한 걸까요?”
암검대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솔직히 함정 같지는 않은데······ 감이 너무 안 좋아.”
여기서 은월곡이 있는 곳까지는 이제 걸어서 반 각 정도 가면 되는 거리에 있다.
경공을 쓰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다.
그 말은, 그쪽에서도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암검대주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조용히 물러난다. 적당히 물러난 뒤, 정찰부터 해야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대주는 즉시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암검대가 일제히 물러났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부대주 중 한 명이 다급히 말했다.
“잠깐! 진법입니다.”
그 말에 다들 표정이 확 굳었다. 암검대주가 부대주에게 물었다.
“진법이라고? 이미 걸려든 건가?”
“예. 제가 좀 방심한 모양입니다. 진법에 들어온 걸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암검대주는 부대주에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방심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진법을 부숴봐. 은월곡에서 쓸 수 있는 진법이라고 해봐야 별 거 아니잖아.”
암검대의 두 부대주 중 한 명은 진법에 대해 정통하고, 다른 한 명은 독에 대해 정통했다.
무명에 있는 모든 조직은 그런 식으로 진법과 독에 정통한 자들을 반드시 한 명씩 포함시켰다.
진법에 능통한 부대주가 나서서 진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왜 그러나? 잘 안 되나?”
“이상합니다. 진법의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식의 진법은 처음입니다.”
“진법에 걸려든 건 확실한가?”
부대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왠지 자신이 은월곡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의 그 감각은 분명히 진법에 걸렸을 때 오는 특유의 느낌이었다.
부대주는 진땀을 흘리며 난감한 표정으로 암검대주를 바라봤다.
“이 정도 수준의 진법을 설치하려면 최소한 제갈세가나 아니면 천마신교 정도는 나서야 합니다.”
“제갈세가라······.”
천마신교가 개입했을 리는 없으니 제갈세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외에는 없나?”
“무림맹이나 흑련도 이 정도 수준은 될 겁니다.”
암검대주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제대로 된 진법가를 데리고 왔어야 하는군.”
무명이 보유한 진법가의 수준은 제갈세가를 능가한다.
애초에 무명이라는 조직이 생겼을 때부터 보유한 진법의 수준이 상당했다.
하물며 지금까지 꾸준히 기관과 진법 연구에 투자해 왔으니 그 수준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정확히 비교해보지는 못했지만, 다들 제갈세가는 넘어설 거라고 믿었다.
“그냥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
부대주는 솔직히 대답했다.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로 파악이 어려운 진법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릴 수는 없으니 일단 이동한다.”
암검대주는 일단 산에서 다시 내려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은월곡을 발견했다.
산을 내려간다고 움직였는데, 반대로 올라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제야 그들은 이 근처에 깔린 진법이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이건 걸려든 자들의 길을 은월곡으로 유도하는 진법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군.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준비해라. 달라진 건 없다. 가서 은월곡의 여자들을 마음껏 품으면 된다.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싹 죽여 버리고.”
암검대주가 그렇게 말하고 은월곡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두 명의 부대주가 따랐고, 이백 명의 암검대가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그들의 몸에서 정제된 살기와 투기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은월곡에 들어선 암검대주는 넘치는 활기에 감탄했다.
밖에서는 안쪽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아서 몰랐는데, 일단 곡 안에 들어오고 나니 활발하게 움직이는 여자들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다들 아름답고 건강했다.
암검대의 눈에 살짝 핏발이 섰다. 눈앞에서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먹잇감으로 보였다.
은월곡의 제자들은 암검대가 들어왔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지금 그녀들은 은월곡의 방비를 위해 곡 내부에 진법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걸 지휘하는 사람은 승도흥이었고.
오늘 암검대를 물리친다고 해서 무명이 이곳을 포기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의 방비는 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명에서 여길 건드리면 최대한 오랫동안 시간을 끌며 버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저것들이 우릴 아예 무시하는군요.”
부대주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의 부대주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것들, 지금 진법을 구축하는 중입니다.”
“진법이라고? 나중을 대비하려는 거로군. 아주 작정을 했구나.”
암검대주는 더 이상 지켜봐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일단 싹 잡아라.”
암검대가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다가온 거대한 힘에 충돌했다.
꽈아아앙!
“크으윽!”
암검대주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무슨 무지막지한 힘이란 말인가.
아연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암검대주는 뒤를 돌아봤다.
부대주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금방 일어나 자세를 잡긴 했지만, 가벼운 내상을 입은 자들이 제법 많은 듯했다.
“후우.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암검대주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가다보니 몸을 밀어내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공을 써서 느릿하게 힘을 주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건 다른 암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암검대는 이를 악물고 조금씩 은월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나아가는 걸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승도흥이었다.
“이야, 저걸 저렇게 뚫고 들어오네. 저놈들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요?”
승도흥이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저들이 뚫고 들어오고 있는 것은 승도흥이 설치한 진법 중 하나였다.
쏟은 힘을 고스란히 되돌려 보내는 진법이었는데, 빠르고 강하게 들어오면 아까처럼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지금 암검대주가 쓰는 방법이 들어올 수 있는 해법 중 하나이긴 하지만, 보통 힘으로는 결코 저렇게 할 수 없었다.
“한 놈도 빠짐없이 전부 들어오고 있습니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동안 만났던 무명 놈들이랑은 아예 다른 놈들 같구나. 제법이야.”
벽태산은 무명의 무사들을 상당히 많이 겪어봤다.
심지어 무명에서 포섭한 늙은 고수들까지 다양하게 겪어봤다.
한데 지금 오고 있는 저들은 수준이 기존에 겪었던 무명의 무사들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무명에서 포섭한 고수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고작 일개 대원이 그들과 비교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아마 무림맹이나 흑련이 예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저들만 나서도 제대로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강하다는 건 아는 것도 많다는 뜻이지.”
벽태산의 말에 승도흥이 살짝 눈치를 살폈다.
“저······ 공자님, 바로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진법 하나 더 시험해 봐야 하는데······.”
승도흥이 은월곡 내부에 설치한 진법은 현재 두 개였다.
밖에 설치한 진법은 임시로 깔아둔 것이기에 나중에 조정이 필요했다.
지금은 은월곡으로 유인하도록 해 뒀지만, 저들을 잡고 나면 방향을 바꿔서 은월곡을 교묘하게 빗겨 지나가도록 조정할 것이다.
아무튼 은월곡 내부에 설치한 건 지금 암검대가 온몸으로 겪는 중인, 힘을 빼앗아 되돌리는 진법과 그 다음에 만나게 될 짓누르는 진법이었다.
사실 지금 암검대가 통과하고 있는 진법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진법이었다.
저들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을 주지만, 진법이 그 힘을 되돌려 저들을 밀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법은 저들의 힘을 빼앗는다.
강하게 힘을 주느라 자신들이 힘을 빼앗기는 걸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게 눈을 가린 셈이었다.
승도흥이 최근 개발한 진법이었다. 그래서 두근두근 하면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빼앗은 힘은 다음 진법이 짓누르는 힘을 발휘할 때 쓰일 것이다.
이건 적에게밖에 시험할 수 없는 진법이었다.
내공이고 진원진기고 모조리 뽑아내서 써먹는 위험한 진법이었으니까.
암검대는 밀어내는 힘을 이겨내고 기어코 진법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 후에 펼쳐진 것은 더 심한 지옥이었다.
어마어마한 힘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들에게서 뽑아낸 힘으로 짓누르는 것이기에 훨씬 더 강력했다.
“크으윽!”
암검대주는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건 암검대주뿐 아니라 나머지 암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엄청난 압박을 견뎌내고 앞으로 이동했다.
그걸 본 승도흥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진법을 더 강화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놈들도 못 막으면 얘기가 안 된다. 무명에 남은 것들은 저놈들보다 훨씬 강할 테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승도흥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자존심이 좀 상했다. 어떻게든 그걸 만회하고 싶었다.
“그럼 슬슬 잡으러 가볼까.”
벽태산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암검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 암검대주가 진법을 모두 돌파하고 나왔다.
암검대주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벽태산을 노려봤다.
“너로구나. 은월곡을 먹은 놈이.”
진법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일단 벗어난 이상,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암검대주가 벽태산을 노려보고 있는 사이, 나머지 암검대가 모두 진법에서 벗어났다.
“죽을 각오는 했나?”
암검대주의 물음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을 한단 말인가. 예전 무명 놈들에 비해 제법이지만, 그래봐야 도토리 키 재기다.
벽태산은 암검대를 슥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꿇어라.”
벽태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암검대가 진법 안에서 겪었던 압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힘이 그들을 단숨에 짓눌렀다.
꽈득!
이백 명이 넘는 암검대 전원이 일제히 무릎을 땅에 내리 찍듯이 꿇었다.
그들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멍하니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의 얼굴에 떠오른 은은한 미소가 공포로 변해 그들의 심장을 찔렀다.
끝
은월곡에서의 일이 마무리 되었다.
암검대는 벽태산에게 무릎 꿇은 뒤 허무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사로잡혔다.
사실 그들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벽태산의 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옴짝달싹 할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저 다가온 은월곡의 제자들에게 한 명씩 잡혀 혈도를 제압당하고 그들이 입에 넣는 산공독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암검대가 대단해도 혈도를 제압당한데다가 산공독까지 먹고 온몸이 꽁꽁 묶이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