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4)
군데군데 막사도 세웠는데, 원하면 막사에서 잘 수도 있었다.
다만 이번 여정 내내 벽태산은 항상 마차에서 밤을 보냈다.
하오문도들이 바쁘게 움직여 불을 피웠다.
그리고 벽태산의 시비들이 나서서 요리를 시작했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그녀들만으로 모든 요리를 다 할 수 없어서 하오문도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준비가 다 끝날 무렵 벽태산이 마차에서 내렸다.
벽태산 앞으로 시비들이 요리를 열심히 갖다 날랐다.
금세 상이 차려졌고, 벽태산이 천천히 음미하듯 요리를 먹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벽태산의 시비들은 벽태산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식사 시중을 들었다.
가장 열심히 시중을 든 사람은 소소였다.
소소는 벽태산이 먹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식사가 끝나자, 시비들끼리 모여서 따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소소가 슬쩍 말했다.
“공자님 기분이 굉장히 좋으신 거 같아요.”
시비들이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다른 건 몰라도 소소가 벽태산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말 정확히 판단하기에 다들 소소의 말을 그냥 믿었다.
“굉장히라고?”
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기분이 좋으신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아, 예전에 한 번 있었다. 그때 있잖아요.”
그때가 언제인지는 다들 안다. 당시 벽태산은 주변에 각종 무공을 아낌없이 풀었다.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벽태산에게로 향했다.
사실 벽태산이 또 뭘 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벽태산에게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쳤다.
그녀들이 궁금한 건, 대체 벽태산의 기분이 좋아진 이유가 무엇일까였다.
만일 자신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거라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벽태산이 못 느낄 리 없었다.
벽태산은 시비들 쪽을 슬쩍 쳐다봤다.
저렇게 눈을 반짝이고 있는 걸 보니 갑자기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벽태산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시비들과 비슷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연하린과 초서란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쪽 한참 떨어진 곳에서 작당모의라도 하듯 둘이서 쑥덕거리고 있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보였고.
벽태산은 두 의원을 보고는 고개를 슬쩍 저은 다음 근처에 있던 하오문도 한 명에게 이리 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하오문도가 득달같이 달려와 벽태산 앞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금과 옥을 준비해라.”
“얼마나 준비할까요?”
벽태산은 대답 대신 열 명의 시비와 연하린, 초서란을 천천히 둘러봤다.
하오문도는 눈을 빛내며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남은 하오문도 중에서 절반이 움직였다.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근방에는 도시나 현이 없기에 아마 금과 옥을 구하려면 상당히 멀리까지 다녀와야 할 것이다.
벽태산은 하오문도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마차에 올랐다.
마차에 탄 벽태산은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온몸에서 영력이 들끓었다. 이걸 정리하고 수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벽태산이 굳이 서두르지 않고 낮에만 이동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들끓는 영력을 수습하려면 충분한 휴식과 명상이 필요했다.
벽태산이 이렇게 막대한 영력을 얻은 건 암검대 덕분이었다.
암검대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암검대는 굉장히 특별한 놈들이었다.
암검대는 반강시의 일종이었다.
그것도 그동안 상대하던 반강시와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었다.
처음에는 벽태산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교묘하고 강시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벽태산이 그들이 반강시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그들의 혼백을 뽑아내기 위해 증혼마공을 썼을 때였다.
그 전까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증혼마공을 통해 그들의 혼백을 뽑는 순간, 그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왜 반강시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확인했다.
마치 인간처럼 혼백이 육체에 안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안정이었다. 평범한 인간처럼 혼백이 안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 엉켜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벽태산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교묘했다.
반강시는 증혼마공으로 혼백을 태워도 사념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이들을 통해 적의 정보를 뽑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벽태산은 좀 더 좋은 영약을 얻었다는 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증혼마공으로 반강시의 혼백을 태웠다.
한데 혼백이 육체에 엉켜 있어서 그런지 혼백뿐 아니라 육체까지 한꺼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육체 전체에 붙은 영력의 불꽃이 모든 걸 태워 버렸다.
그리고 벽태산은 그 어느 때보다 순도 높은 영력을 잔뜩 얻을 수 있었다.
증혼마공에 의해 말끔히 구워진 암검대는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못하고 싹 영력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흡수한 이백 명이 넘는 암검대의 영력은 어마어마했다.
자신이 수련을 통해 쌓은 영력이 아니라 반강시 등, 외부에서 흡수한 영력은 바로 쓸 수 없었다.
정제의 과정을 거쳐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
그렇게 한동안 영력을 소화하던 벽태산은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마차 문을 열고 나가니 하오문도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손에 금과 옥을 들고 있었다.
해가 진 지 제법 된 밤중이었는데 용케 저걸 구해온 모양이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했다. 마차에 넣어두어라.”
하오문도들이 환한 표정으로 크게 대답했다.
“예!”
그들은 벽태산에게 칭찬을 들어 진심으로 기쁜 모양이었다.
하오문도들이 마차에 금과 옥을 넣어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벽태산은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벽태산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슥 둘러보고는 다시 마차에 탔다.
그리고 마차에 쌓인 금과 옥을 들고 이걸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가진 것과 비슷한 황금토시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과했다.
아마 그런 걸 만들어 주면 저들은 오히려 그것에 휘둘릴 것이다.
사람이 도구를 휘둘러야지 도구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굉장히 위험한 법이다.
그러니 더 작고 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로 만들어야 한다.
벽태산의 손에서 금과 옥이 부스러지고 녹아 일그러지면서 모양이 빠르게 바뀌어갔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반지였다.
금으로 만든 반지에 옥으로 장식을 넣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장식이지만, 실제로는 영력의 통로였다.
금도 그냥 뭉쳐서 반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내부에 아주 복잡한 길을 이리저리 꼬아 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제법 쓸 만한 수준이었다.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영력을 수련하거나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벽태산의 황금토시처럼 영력을 증폭할 수는 없지만, 조절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꾸준히 반지를 끼고 있으면 반지가 스스로 영력을 모아서 위급할 때 강한 한 방을 쓸 수도 있었다.
벽태산은 순식간에 열두 개의 반지를 만들었다.
처음 하나 만들 때는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하나 완성된 이후 똑같은 걸 만드는 건 벽태산에게 있어서 그저 손 몇 번 휘저으면 될 정도로 간단했다.
반지를 모두 만든 벽태산은 다시 마차 밖으로 나갔다.
반지를 만드는 동안 시간이 제법 지났는지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가서 자고 있었고, 하오문도들이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한데 벽태산의 시비들과 연하린, 초서란은 마차 근처에서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벽태산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벽태산은 씨익 웃으며 그녀들에게 반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다들 감격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반지와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 예뻐요!”
다들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반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한참동안 반지를 감상하다가 그것을 손가락에 끼웠다.
“아!”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지를 끼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거······ 굉장히 특별한 반지인 거 같은데요?”
연하린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고서는 벽태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연하린과 똑같은 표정과 눈빛이었다.
벽태산은 피식 웃으며 툭 말했다.
“별 거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마차로 오르는 벽태산의 입가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열두 명의 여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 * *
벽태산은 아침이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마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영력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가끔 여유가 생길 때,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오늘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반강시였다.
암검대를 겪고 나니 진짜 반강시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혁련비광이 쓰던 반강시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대단한 것을 두고 왜 그렇게 어설픈 반강시를 굳이 만들어 쓰고 따로 연구를 했을까?
과연 무명에서 혁련비광, 혁련휘, 혁련균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할수록 이상한 놈들이었다.
그 세 놈은 자기들 나름대로 무림에 뭔가를 해보려고 발버둥 쳤다.
음모도 꾸미고, 금월상단 같은 놈들의 욕망도 자극하면서 손을 잡아 마음대로 휘두르고, 뭔가 사건도 일으켰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 전부 사라졌다. 벽태산이 몽땅 박살 냈으니까.
그들이 한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벽태산 휘하에 있는 하오문 등을 더 키워주는 꼴이 되었다.
벽태산은 차분히 다시 생각해봤다.
만일 자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랬어도 저들이 벌인 일들이 전부 처참히 실패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굉장히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테고. 아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혁련비광 같은 놈들이 나서서 일을 벌인 것이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혁련비광이 만든 반강시도 나름 의미가 있는 건가?’
그들이 무명에서 튕겨져 나와 괜한 짓을 하고 돌아다닌 게 아니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벽태산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머릿속과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차분히 영력을 다스렸다.
최소한 난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 들끓는 영력을 모두 소화할 작정이었다.
거기에 가면 또 이런 영약을 먹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언제든 영약을 섭취할 수 있는 만반의 상태로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는가.
‘검벽채라······.’
과연 거기에는 뭐가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꽉 차올랐다.
끝
벽태산 일행을 태운 마차가 난주에 들어섰다.
상당히 많은 하오문도들이 벽태산과 함께 왔는데, 그들은 난주에 도착하자마자 벽태산 일행을 객잔으로 안내했다.
다른 곳에서와 달리 하오문이 운영하는 객잔이 아니었다.
아직 난주에는 하오문이 제대로 활동할 만한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소유한 객잔도 없었고, 근거지도 아직 변변치 않았다.
벽태산 일행이 숙소로 잡은 객잔은 난주에서 가장 큰 객잔이었다. 당연히 별채도 있었고,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객잔의 별채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곳을 골랐다.
그 정도 되는 곳을 골라야 일행이 각자 쉬기도 편하고 수련하기도 편하다.
그렇게 벽태산 일행이 객잔에 짐을 풀고 쉬기 시작하자, 벽태산을 따라온 하오문도들이 난주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번 기회에 난주를 완벽히 하오문의 영역으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난주는 아직까지 하오문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몇 안 되는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난주 정도 되는 큰 규모의 도시는 대부분 하오문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데 난주는 유독 자리 잡기가 어려웠다.
난주에서 활동하는 하오문도의 수가 좀 모자라기도 했지만, 활동을 방해할 만한 세력이 있어서였다.
일단 금월상단 난주지부가 있었다.
금월상단이 비록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지부가 전부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난주지부의 경우,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
본단의 간섭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풀기라도 한 것처럼 훌쩍 성장해 버린 것이다.
현재 금월상단 난주지부는 금월상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독립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반쯤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금월상단에는 아직도 세 개 방파, 상천문, 청무방, 구룡문이 남아 있었다.
예전처럼 건재하지는 못해도 제대로 마음먹고 날뛰면 금월상단 난주지부 정도는 대응이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금월상단 난주지부는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 있는 금월상단이 하오문을 견제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하오문을 뒤에 두고 있는 현천상단이었다.
현천상단은 아직 난주에서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상황인지라, 금월상단의 견제가 상당히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갔다.
금월상단 난주지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사실 혼자서 하오문을 견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오문은 예전의 하오문이 아니었다.
완벽한 암영보를 되찾은 것도 그렇지만, 최근 벽태산이 보급한 무공 덕분에 하오문도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확 높아졌다.
거기에 제위룡이 이끄는 천뇌의 보조까지 받아 급격히 성장 중이었다.
그러니 하오문이 제대로 집중해서 대응하면 금월상단을 흔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난주에서 하오문을 견제하는 세력이 금월상단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난주에는 난주를 중심으로 감숙성 전체에서 활동하는 정보조직이 있었다.
사해방이라는 곳이었는데, 감숙 지역에 안정적인 정보망을 구축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슬슬 천하로 눈을 돌리는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하오문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지금이야 난주에서 툭탁거리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천하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상대였다.
그러니 사해방으로서도 하오문이 쉽게 난주에 자리를 잡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사해방은 하오문의 활동을 꾸준히 방해했다.
하지만 굉장히 교묘하게 했기에 무력충돌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힘으로 붙었다면 하오문도 훨씬 편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해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오문을 난주에서 몰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 상황이기에 벽태산과 함께 난주에 온 하오문도들의 합류는 하오문 난주지부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벽태산이 이동할 때마다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하오문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