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6)
“하긴, 저번에 서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지.”
그때는 은월곡과 엮인 놈들을 잡아냈다.
같은 일이 또 반복되려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엮이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일침괴가 갑자기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시발, 그러니까 왜 골라도 하필 이딴 데를 골라!”
“좋다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형님, 어디 가서 의원이라고 하지 마쇼.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겠소? 의원이 다 형님 같을 거라고 여길 거 아뇨.”
“뭐? 너 이 씨, 진짜 해보자는 거야?”
천추신의가 됐다는 듯 손을 휙 내저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슥 둘러봤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방에 함께 있는 기녀들이 유심히 듣고 있었다.
사실 천추신의와 일침괴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이 기루는 사해방에서 운영하는 기루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곳의 기녀들은 전부 사해방 소속 정보원이었다.
손님들의 대화를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기록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아는 모양이고, 얘가 누구인지는 알아?”
천추신의가 승도흥을 턱짓하며 묻자, 질문을 받은 기녀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고는 승도흥을 바라봤다.
“두 분의 일행이라는 것 정도만 압니다.”
“우리 일행이 누구누구인지는 알고?”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천추신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정을 좀 알아보고 나올 걸 그랬네. 안 그렇소, 형님?”
“사정은 무슨 사정. 그냥 다 때려 부수면 돼.”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하이고, 우리 형님, 과격하신 거 봐라.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뭔가······ 기분이 요상한데?”
“또 뭐? 난 너 그런 말 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다. 좀 적당히 해.”
“아니, 난 기분도 말 못하오? 아무튼 느낌이 안 좋아. 내가 이런 느낌일 때는······.”
“공자님이 나타나셨지.”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문이 천천히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서른 쯤 된 듯한 미모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사화루의 주인이 인사드립니다.”
“알았으니 일단 들어와.”
여인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두 의원을 마주보는 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두 분께서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심스러운 사화루주의 말에 천추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일단 기루 곳곳에 박혀 있는 놈들은 다 치워. 누가 듣고 보는 자리에서 맘 편하게 술이나 제대로 마실 수 있겠어?”
“예.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천추신의가 본격적으로 물었다.
“목적이 뭐야?”
“무슨 말씀이신지······.”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알 만한 사람들끼리 이러지 말자고. 자, 원하는 게 뭐야? 우리 뒤는 왜 캤는데?”
“두 분이야 워낙 이름 높으신 분들 아닙니까. 뒤를 캐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보고 알았습니다.”
“뭐, 내가 좀 유명하긴 하지.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답이 충분치 않은데?”
사화루주는 난감했지만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담담함은 금세 깨졌다.
“사해방이랑은 무슨 관계냐?”
“아무······.”
아무 관계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천추신의가 말을 끊었다.
“다 아니까 잡아떼지 말고. 나랑 하오문이랑 관계있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거잖아. 맞지?”
사화루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천추신의의 말이 핵심을 찔렀으니까.
그녀는 사해방에서 제법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천추신의, 일침괴와 하오문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걸 채 시작하기도 전에 간파당하고 말았다.
천추신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굳이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가 있나? 그냥 좋게좋게 가도 되잖아, 안 그래?”
천추신의의 말은 얼핏 회유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협박이라는 걸 사화루주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설프구나. 협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두 사람이 덜덜 떨기 시작하자, 옆에서 계속 구경만 하던 승도흥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방금 들려온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고서는 두 의원과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정작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화루주를 비롯한 기녀들이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방금 못 들었어?”
“뭘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협박 어쩌고 하는 말, 못 들었냐고. 아니다. 가서 방문 열어봐.”
천추신의의 말에 기녀 하나가 후다닥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데리고 나와라.”
천추신의, 일침괴, 승도흥은 화들짝 놀랐다. 또 들렸다.
그리고 사화루주를 비롯한 기녀들은 여전히 못 들은 게 분명했다.
“시발, 어째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어.”
일침괴는 나직이 투덜거리고는 사화루주에게 말했다.
“나가자.”
“예?”
“나오라신다. 진짜 협박을 보여주실 모양이니 기대해라.”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천추신의와 승도흥도 일어났다.
천추신의는 방에서 나가면서 투덜거렸다.
“아직 술 한 잔 입에 못 댔는데. 젠장.”
사화루주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에게 천추신의가 버럭 소리쳤다.
“아, 뭐해! 안 나올 거야?”
사화루주는 얼른 일어나 세 사람을 따라갔다.
* * *
벽태산은 사화루 앞에 서 있었다.
사화루는 제법 큰 전각이었는데, 그 앞은 굉장히 넓은 공터였다.
벽태산 옆에 하오문도가 한 명 서 있었다.
산책을 나온 벽태산이 가장 먼저 보이는 하오문도 한 명을 데리고 이리로 온 것이다.
그 하오문도는 자신이 아는 내에서 최대한 열심히 벽태산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이 기루도 사해방의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루주가 사해방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습니다.”
“사해방 놈들을 몇이나 파악했느냐.”
“절반 정도로 예상합니다. 이제 인원이 보충되었으니 나머지도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사화루에서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정말 급하게 달려왔는데, 요즘 몸이 워낙 좋아져서 숨도 차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이럴 때는 숨이라도 좀 헐떡여 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런 척할 수는 없었다. 벽태산이 모를 리 없으니까.
세 사람이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사화루에서 루주가 나왔다.
세 사람이 워낙 빨리 달려왔기에 시간 차이가 제법 났다.
사화루주는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이 한껏 쭈그러든 모습으로 서 있을 걸 보고는 눈을 빛냈다.
누가 실세인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화루주는 얼른 벽태산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막 인사를 하려는데, 벽태산이 천추신의 쪽을 보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해방 놈들 마흔세 명이 숨어 있다. 다 잡아와라.”
“예?”
천추신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잡아오겠습니다. 한데······ 제가 그놈들을 구분할 방법이 없어서······.”
“보면 안다.”
천추신의는 저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키면 해야지.
천추신의, 일침괴, 승도흥이 주위로 흩어졌다.
그러자 벽태산이 사화루를 가만히 쳐다봤다.
콰직! 콰직! 콰직!
사화루 곳곳이 터져 나가며 안에서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허공에 붕 떴다가 벽태산 앞에 후두둑 떨어졌다.
사화루주는 그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이들은 전부 사해방에서 사화루에 파견 보낸 조직원들이었다.
그걸 전부 잡아낸 것이다. 손도 대지 않고.
사화루주는 너무 놀라 조직원들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벽태산은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정말 무서웠다.
“이제 어쩌겠느냐.”
벽태산의 말에 사화루주는 그제야 아까 일침괴가 나오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보여주겠다던 진짜 협박이 바로 이거였다.
끝
천추신의는 연신 투덜거리면서 성큼성큼 걸었다.
“아니, 보면 알긴 뭘 안다는 거야? 아무리 공자님이라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렇게 투덜거린 천추신의는 갑자기 흠칫 하더니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생각해보니 벽태산은 사화루 밖에서 무려 육 층에 있던 자신들의 대화를 확인하고 말까지 건넸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투덜거린 말도 혹시 듣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몇 번이나 주위를 확인한 천추신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구, 그래도 역시 우리 공자님이 대단하신 분이긴 하지. 이번 일도 분명히 뭔가 복안이 있으실 거야. 암, 그렇고말고.”
천추신의는 일부러 큰 소리고 그렇게 말한 다음, 사화루에서 좀 떨어진 곳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건물들을 쭉 둘러봤다.
“몇 명이라고 했지? 마흔세 명이었나? 근처라고 하면 대체 어디까지가 근처야?”
뭐 하나 명확하게 말해준 것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한데 그런 천추신의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응?”
천추신의는 눈을 한 번 비비고는 다시 확인했다.
뭔가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선이 허공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문득 천추신의는 벽태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보면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저건가?”
천추신의는 붉은 선을 따라서 걸어갔다. 허공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는 붉은 선은 어느 건물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일 층 널찍한 공간 구석에 붉은 선을 몸에 몇 바퀴 감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천추신의는 그 사내에게 바로 다가갔다.
사내가 고개를 들어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천추신의는 사내의 눈부터 확인했다. 자신을 보는 순간 눈동자의 흔들림이나 눈빛, 그리고 눈 주위 근육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천추신의도 엄연히 비천단의 일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잘한 정보들을 모으는 임무를 띠고 있었고.
“너, 나 알지?”
천추신의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뉘쇼?”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사해방 떨거지 잡으러 온 의원님이시다.”
사내는 천추신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 옆으로 몸을 날려 도망치려고 한 것이다.
물론 그 시도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무력화되었다.
천추신의가 어느새 사내의 혈도를 제압한 것이다.
쓰러진 사내를 덥석 집어든 천추신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곳을 나섰다.
밖에 어느새 하오문도 한 명이 대기 중이었다.
천추신의는 하오문도에게 사해방의 정보원을 휙 넘기고는 다시 붉은 선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 저기에는 무려 세 개가!”
신이 난 천추신의가 거의 뛰다 시피 붉은 선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장면이 사화루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해방의 정보원들 역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사해방 정보원들이 서둘러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아무도 도망치지 못했다. 자신들의 몸에 영력으로 만들어진 붉은 선이 둘둘 감겨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흔세 명의 정보원이 추가로 사화루 앞에 모였다.
* * *
사화루주는 두려운 눈으로 공터에 쌓이다시피 늘어져 있는 사해방의 정보원들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연신 벽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사해방이 보유한 조직원의 정확한 숫자는 사화루주도 모른다.
하지만 난주에서 활동하는 조직원의 수가 백여 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해방 역시 조직원 한 명당 각자가 부리는 개인 정보원들을 십여 명씩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해방에 소속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사해방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하오문과 비슷한 방식이었고, 사실 대부분의 정보조직이 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다.
아무튼 고작 백여 명밖에 안 되는 조직원 중에서 오십 명이 넘게 잡힌 것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난주에 들어섰고, 그들이 이곳 사화루 근처에 자리를 잡아서 사해방의 전력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컸다.
설마 이 근처에 있던 모든 조직원을 전부 잡아올 줄이야.
사해방은 이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선 안 된다. 제대로 된 조직원 한 명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들을 쉽게 버린단 말인가.
두려움과 걱정을 비롯한 온갖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사화루주의 귓가에 천추신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말씀하신 마흔세 명, 전부 잡았습니다. 헤헤헤. 이제 가도 될까요?”
사화루주는 천추신의의 저 경박한 모습에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까 자신이 본 천추신의는 결코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지금 하는 모습을 보니 아까와 아예 다른 사람 같지 않은가.
사화루주는 변화무쌍한 천추신의의 모습보다는 천추신의가 저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벽태산이라는 사람이 더 놀라웠다.
그녀는 일단 심호흡을 했다. 최대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애쓴 다음, 벽태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게······ 뭘 원하십니까?”
벽태산이 담담히 물었다.
“원하는 걸 해줄 수는 있느냐?”
사화루주는 입을 다물었다. 장담할 수 없어서였다.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주를 데려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