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7)
벽태산의 말에 사화루주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벽태산은 씨익 웃으며 사화루를 올려다봤다.
“그럼 올 때까지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할까?”
그 말에 천추신의가 반색했다.
“공자님,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제가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확실히 모시겠습니다.”
일침괴와 승도흥이 슬금슬금 천추신의 옆에 붙었다. 마치 자신들을 버리고 가면 안 된다는 듯이.
벽태산이 그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
“너희 수련은 언제 하느냐.”
천추신의가 능글능글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밤에 잠을 줄여서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그렇게 게으른 놈 아닙니다. 놀 거 다 놀면서도 수련은 수련대로 열심히 하는 놈이라, 이겁니다.”
벽태산이 웬일로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긴, 수련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더 중요하긴 하지.”
“으헤헤헤! 역시 공자님께서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으하하하!”
벽태산이 먼저 사화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어디 어찌하나 보자.”
“아이고, 그냥 턱 맡겨만 두시라니까요?”
“됐다. 난 혼자가 좋으니, 넌 알아서 놀아라.”
“예? 방금 어찌하나 보신다고······.”
천추신의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렸다.
그제야 벽태산이 그 말을 한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아니, 공자님. 그게 아니라······.”
벽태산이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을 슥 둘러보고는 씨익 웃었다.
“기대하마.”
그 말을 남기고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린 벽태산의 뒷모습을 세 사람이 멍하니 바라봤다.
“시발, 이거 우리 똥 밟은 거 같은데?”
일침괴가 인상을 쓰며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천추신의는 뻔뻔한 표정으로 일침괴를 바라봤다.
“그럼 형님은 수련 안 하려고 했소? 공자님한테 말씀드려도 되나? 형님은 수련에서 빠진다고?”
“야이! 아오! 이걸 그냥 확 죽이지도 못하겠고, 아오!”
일침괴가 답답한지 가슴을 팡팡 두드리자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체했소? 속이 확 뚫리는 약 하나 줄까?”
“나도 약 많아, 이놈아!”
천추신의가 일침괴의 어깨를 감싸듯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자, 나중 일은 나중에. 지금은 우리, 꽃에 술 주는 일에 집중합시다. 아! 안 놀 거요?”
일침괴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놀아야지.”
낄낄거리며 사화루로 들어가는 두 의원의 뒷모습을 승도흥이 멍하니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벽태산은 앞에 다소곳이 앉은 네 여인을 슥 둘러봤다.
저들이 이곳 사화루의 네 송이 꽃이었다.
외모가 아름답긴 하지만 다른 기녀들에 비해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화라 불리며 기루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뜻이리라.
일단 네 명 모두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깊이 있는 수준은 아니고 일종의 색공 계열 무공과 은신이나 경공을 위주로 하는 무공을 익힌 듯했다.
“너희도 사해방이로구나.”
“예. 맞습니다.”
네 명의 기녀가 동시에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벽태산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저 넷은 방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순간에 맞춰서 말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저 대충 맞춘 것이 아니었다. 벽태산이 보기에도 오차가 없을 정도로 딱 맞아 떨어졌다.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너희 넷은 항상 같이 다니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벽태산은 네 사람을 좀 더 유심히 살폈다.
아까 대답할 때를 제외하고는 똑같이 말과 행동을 맞추는 일이 더는 없었다.
그렇게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다보니, 네 사람이 정확히 일치되는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아마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벽태산은 이 네 사람의 혼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확인했다.
이건 좀 신기한 일이었다.
‘혼백 하나를 넷으로 나눠서 각자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이와 비슷해지려나?’
그거 말고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더 자세히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예 혼백을 뽑아 좀 더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다.
네 기녀는 살짝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사화루주가 오늘 확실히 모시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그녀들은 혹여 벽태산의 기분이 상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사화루에서 이렇게 사화가 한 사람을 모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긴장됐다.
“술을 따라드려도 될까요?”
사화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잔을 내밀었다.
어차피 오늘밤 잠자리를 함께 할 테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제 곧 도착할 사해방주를 만나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나면,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각이 될 것이다.
벽태산은 술을 몇 잔 마시면서 네 기녀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들은 사해방 소속 조직원답게 난주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라거나 쉽게 듣기 어려운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걸 하나씩 재미있게 풀어서 벽태산이 지루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차츰 풀어질 무렵 사해방주가 도착했다.
사해방주는 마흔쯤 되어 보이는 둥글둥글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벽태산을 보자마자 정중히 인사했다.
“하오문의 주인께 사해방주가 인사드립니다.”
“알고 있었군.”
“예. 이쪽 바닥에서는 제법 유명한 얘기니까요. 뭐 대부분은 아직 긴가민가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벽태산은 사해방주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해방주는 기이한 압박감을 느끼며 벽태산을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 다음,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네 명의 기녀에게 말했다.
“너희는 잠시 나가 있어라. 나중에 다시 부르마.”
기녀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사해방주는 차분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가벼운 협박일 뿐이다.”
사해방주가 식은땀을 흘렸다. 협박이라는 말을 저렇게 대놓고 하니 황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황된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 협박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문제였다.
웃기지 말라고 하면 정말로 사해방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솔직히 저희 아이들을 데리고 협박을 하신다면 저로서는 들어드릴 수밖에 없긴 합니다.”
사해방주는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저희가 난주를 떠나면 되겠습니까?”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예? 이렇게 난데없이 말입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될 게 있느냐?”
안 그래도 사해방을 흡수해서 하오문과 합치려고 했었다.
한데 사해방주를 보고 나니, 더 욕심이 생겼다.
굳이 하오문과 합치지 않고 사해방을 따로 운영해도 괜찮을 듯했다.
제법 능력이 있는 사내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하오문에 비천단과 월영단, 사해방까지 해서 굉장히 거대한 정보망이 완성된다.
아마 향후 정보 문제로 곤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자신이 천마이던 시절의 천마신교보다 더 정보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벽태산이 적절히 도움을 줘서 여러모로 성장시키긴 해야 하지만 말이다.
사해방주는 황당하면서도 아주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는 다시 한 번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속으로는 그 말을 열두 번도 더 했다. 한데 실제로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 말이 뭐라고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낸 순간, 사해방이고 뭐고 싹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사해방주는 자신이 사람 하나는 정말 잘 본다고 여겼다. 한데 눈앞에 있는 이 젊은 미공자는 제대로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볼 때마다 무저갱에 빠진 것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사해방을 여기까지 키우느라 자신이 얼마나 애썼는데, 그걸 통째로 들어 저 사람의 입에 넣어줘야 한다니.
이제 천하로 발을 내디딜 일만 남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주저앉아야 한다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해방을 빼앗기는 것보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
“제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제 천하로 나갈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사해방을 더 확실히 키워서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기서 멈추려고 했느냐?”
그럴 거면 그냥 깔끔히 끝내 버리고 조직원들만 하오문으로 흡수하는 편이 나았다.
사해방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럼······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머무는 객잔으로 가서 화옥을 만나라. 뭘 할지 알려줄 것이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손을 휙휙 내저었다.
“이제 넌 가고 아까 그 애들이나 들어오라고 해라.”
사해방주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물러갔다.
그리고 잠시 후, 네 명의 기녀가 돌아왔다.
그녀들을 본 벽태산의 입가가 기대감으로 살짝 올라갔다.
제법 재미있을 듯했다.
끝
벽태산은 네 명의 기녀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네 기녀는 벽태산의 시선에 몸을 움찔 떨었다.
여기 온 손님들이 자신들에게 보내는 시선은 한 가지뿐이었다.
손님들의 눈에서 그동안 본 것은 욕정뿐이었다. 가끔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금세 욕정이 뒤섞인다.
한데 벽태산의 눈빛에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마치 온몸을 샅샅이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니, 머릿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생소하면서도 두려웠다.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으니까.
필시 평범하게 안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에게 고통을 주면서 좋아하는 부류일지도 모른다. 아직 운 좋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손님이었다.
한데 그 운이 딱 오늘까지였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좀 이상했다.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 해도 기본적인 음욕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상하게도 벽태산에게서는 그런 음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눈, 어디서 봤는지 기억났어.’
넷 중 한 명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저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교적 닮은 눈빛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건 소를 도축하던 자의 눈빛이었다.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어디를 때리면 소가 죽을지, 약점을 파악하는 듯한 눈빛, 죽음을 일로 여기는 듯한 눈빛이었다.
‘서, 설마 우릴 죽이려는 건가?’
갑자기 오한이라도 든 듯 몸이 덜덜 떨렸다.
아까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자신들에게 이제 들어가 봐도 좋다고 말하고 떠나던 사해방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딘가 기세가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 힘이 없어보였다.
그 말은 사해방주가 벽태산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니 벽태산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해도 이제 그녀들이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하면 하는 대로 당해야 한다.
네 기녀는 자신들의 처지를 파악하고는 처연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녀들의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뜸 들이지 않고 얼른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슬슬 시작하자.”
그 말에 네 기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벽태산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네 기녀에게 다가가 거의 동시에 혼백을 쑥 뽑았다.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 * *
사해방주는 사화루에서 나와 곧장 벽태산 일행이 머무는 객잔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갈등하고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도 되지 않을까? 자신이 난주를 떠나 작정하고 숨으면 과연 누가 찾아낼 수 있겠는가.
도망갈 때 남은 수하들도 전부 숨어 있으라고 지시하면, 일단 닥쳐오는 폭풍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그냥 객잔으로 향했다.
잡힌 조직원들을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또, 도망친다고 해서 벽태산이 자신을 못 찾을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왠지 그렇게 했다간 정말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번 일이 자신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 벽태산이 자신에게 해준 말은 어딘가 좀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사해방을 더 키울 수 있게 해준다는 건지, 아니면 시키는 일이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후자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답을 확실히 알려면 화옥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해방주는 어느새 객잔에 도착했다.
객잔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별채로 향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하오문도로 보이는 놈들을 몇 놈이나 봤다. 그 중 한 놈이 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놈 옆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사해방주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화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천천히 화옥에게 다가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공자님께서 보내셔서 왔소.”
화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환영해요. 저도 방금 얘기를 전해 들었는지라 아직 제대로 정리가 안 되네요.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