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9)
그리고 일행의 뒤쪽에 착 붙어서 숨을 골랐다.
그걸 본 장일독이 살짝 안쓰러운 눈으로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그냥 쉬시지 그러셨습니까. 어차피 일이 끝나면 다시 이리로 올 터인데.”
천추신의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담해?”
“예?”
“다시 여기 들른다고 장담하느냐고.”
“그야······.”
장일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장담하겠는가. 솔직히 지금 검벽채에 가는 것도 예상치 못했는데.
벽태산이 뭘 할지는 오직 벽태산만 알고 있다.
‘어쩌면 공자님도 모를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장일독에게 천추신의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정신 바짝 차려. 공자님 모시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아차 하는 순간 그냥 골로 가는 거야. 공자님이 한 번 삐지면 죽지도 못한다니까?”
장일독은 솔직히 지금 천추신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지도 못한다는 말은 특히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온몸을 무언가가 꽉 짓누르는 듯한 압박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다들 비슷한지 표정과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은 무릎이 확 굽어질 정도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세 사람이 장일독을 동시에 노려봤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내가 아까 말했지? 정신 바짝 차리라고.”
장일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 * *
검벽채는 난주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산에 있었다.
서안에서 은월곡까지 가는 것보다 네 배 정도 멀었는데, 그 정도 거리는 평소라면 가볍게 달려도 반 시진 남짓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평소처럼 빨리 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웬만한 무인들이 경공을 펼치는 속도로 달리긴 했는데,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무형의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데, 그냥 단순히 육체적인 압박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공 흐름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그래서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내공과 함께 다리가 꼬였다.
지금까지 다들 몇 번이나 바닥을 굴러야 했으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특히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고생했다.
그렇게 절반쯤 갔을 때, 천추신의가 슬그머니 벽태산 옆으로 이동했다.
“저······ 공자님, 이제 슬슬 용서해 주시면 안 됩니까?”
벽태산이 담담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뭘 말이냐.”
“아니, 그러니까······ 기루 때문에 저희한테 이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건 그냥 수련이다.”
천추신의가 헤헤 웃었다.
“에이, 왜 이러십니까. 저랑 형님이랑 저기 승도흥한테만 더 힘들게 하시는 거 다 압니다. 그러니 형평성을······.”
벽태산은 천추신의의 말을 끊었다.
“이미 공평하다.”
“그럴 리가요. 솔직히 저나 저기 형님이 저쪽에 있는 애들보다 더 많이 넘어진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게 지금 그저 무거운 걸 잘 버티는 수련인줄 아느냐.”
“예? 그게 아니었습니까? 그럼 기의 통제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는 수련인 겁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사람들을 봐라. 이 수련에 대해 감을 못 잡고 있는 건 너희들뿐이다.”
천추신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벽태산의 말이 정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천추신의는 그럼 대체 뭐냐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저절로 벽태산에게서 멀어지더니 어느새 일침괴 옆을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세 사람이 동시에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탕!
천추신의와 일침괴, 승도흥은 검벽채에 도착할 때까지도 수련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길에 또 이 수련을 하게 될 것 같았다.
* * *
검벽채는 제법 산속 깊은 곳에 있었다.
아무래도 산적들이 쓰던 산채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토벌되어 산적은 없고, 금월상단이 관리하는 중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던 것은 금월상단 난주지부였는데, 그들은 사실 검벽채를 관리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많았다.
상단 일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이 산채를 맡아 관리해야 하니 당연했다.
그래서 본단과의 연결이 끊어진 뒤부터 조금씩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아직 금월상단이 옥벽문처럼 본격적으로 학사를 파견해 연구하지는 않았는지라, 금월상단 난주지부가 포기하는 순간 검벽채는 그냥 버려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금월상단 난주지부는 검벽채에 상주하며 관리하던 일꾼과 무사들을 야금야금 난주로 불러들였다.
그러다가 최근 현천상단과 하오문을 견제하느라 결국 남은 모든 인력을 회수했다.
현재 검벽채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태산 일행은 검벽채에 들어서며 제법 감탄했다.
평범한 산채가 아니라 웬만한 무림문파 같은 분위기였다.
원래는 아니었지만, 금월상단이 맡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금월상단 난주지부의 불만이 큰 것 아니겠는가. 그 모든 일을 난주지부가 책임지고 진행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냥 버려두기에는 좀 아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이런 산속 깊은 곳에서 뭘 하겠는가.
산에서 도를 닦으며 수련하는 문파가 쓰거나, 아니면 산적들이 산채로 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마 금월상단 난주지부도 현재 일이 마무리 되고 나면, 여길 써먹을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벽태산은 안쪽으로 쭉쭉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이동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있거나 짐승이라도 숨어 있으면 정리해야 하니까.
천추신의는 온몸에 기력이 쭉 빠진 표정으로 터벅터벅 걷다가 문득 초서란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야, 넌 안 힘드냐?”
초서란은 뒤에서 들려온 말에 살짝 걸음을 늦춰 천추신의 옆으로 갔다.
“힘든 일은 다 끝났잖아요.”
“난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죽겠는데, 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힘들수록 웃어야죠. 우거지상으로 다니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
“야, 나 의원이야. 의원 앞에서 건강 얘기 하는 거냐, 지금?”
“제가 뭐라고 했나요? 그냥 웃고 살자는 거죠.”
천추신의가 가느다래진 눈으로 의심스럽게 초서란을 바라봤다.
“뭔가 수상해.”
“뭐가요?”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겨. 너, 나 몰래 뭐 좋은 거 먹고 다니는 거 아니지? 같은 의원끼리 좋은 건 나눠먹어야지 혼자 먹고 그러면 천벌 받는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무튼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거 명심해. 안 보는 거 같아도 다 본다.”
“알았다니까요?”
* * *
벽태산은 검벽채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안쪽 깊은 곳에 진한 영력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쉬지 않고 빠르게 걸어 검벽채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검벽채 안쪽 가장 깊은 곳에 검벽이 있었다.
사실 예상키로는 수백 자루의 검을 엮어서 벽을 만들지 않았을까, 했다.
한데 막상 와보니 그냥 투박하고 거대한 돌을 깎아서 검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폭이 성인 보폭으로 열 걸음쯤 되고, 높이는 폭의 네 배쯤 되는 거대한 검이 땅에 푹 박혀 있었다.
그리고 막상 검에 와보니 영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서는 분명히 진한 영력이 느껴졌는데 말이다.
벽태산은 검벽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집중해서 영력의 흔적을 더듬었다.
그동안 금벽과 옥벽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검벽은 비교적 쉽게 영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흔적을 읽는 것과 그것을 분석하는 건 좀 다른 얘기였지만.
벽태산은 영력의 흔적을 세심히 파악했다.
역시 이 검벽 또한 내부에 복잡한 영력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흔적을 파악하고 분석을 시작하니, 왜 밖에서는 그렇게 강하게 영력을 느꼈는데, 막상 안에 오니 그게 안 느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검벽이 영감을 왜곡시킨다.
주변에 특정한 형태의 영력을 희미하게 뿌리고 그 영력들이 감각을 왜곡시켜 강한 영력이 한 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검벽에 기록된 진짜 효능이 아니었다. 그건 부수적인 효능이었다.
벽태산은 검벽의 분석을 마치고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천마란 것들은 나 빼고 다 미친놈들이라니까.”
이 검벽은 증혼마공으로 모은 영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바닥까지 싹 쏟아내는 비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금벽이든 옥벽이든 목적은 증혼마공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검벽에 있는 비법은 증혼마공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아예 영력을 전부 쏟아서 부작용이 생길 일이 없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쏟아낸 영력이 뭘 하겠는가. 게다가 자신을 포함한 과거의 천마들은, 전부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난폭한 영력을 어마어마하게 갖고 있었다.
그걸 싹 풀어내면 주변에 남아나는 것이 없으리라.
주기적으로 주변을 박살 내고 다니겠다는 뜻인데, 그게 미친놈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래도 뭐든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
벽태산은 이걸 자신에게 맞춰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끝
“공자님, 볼일은 다 끝나신 건가요?”
벽태산이 나타나자, 연하린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 물었다.
다들 벽태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 끝났다.”
“그럼 이제 다시 난주로 가야겠네요.”
“그냥 무한으로 돌아간다.”
“예?”
다들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특히 장일독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벽태산과 천추신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천추신의는 어떠냐는 듯한 눈빛으로 장일독과 눈을 마주쳤고.
벽태산은 일행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원래는 난주로 돌아가 사화를 다시 만나려 했다. 아직 알아봐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한데 여기서 검벽을 분석하다보니, 영력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그걸 해결해 버렸다.
그녀들은 얼굴이 다르지만, 사실은 네쌍둥이였다. 태어나기 전에 죽을 뻔한 경험을 통해 혼백이 뒤섞이면서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이것 역시 나중에 좀 더 궁리를 하면 뭔가 재미난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벽태산이 밖으로 나가자, 다들 우르르 따라갔다.
연하린이 벽태산 옆에 바짝 붙었다.
그러자 벽태산이 연하린을 슬쩍 보더니 말했다.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구나.”
연하린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더 열심히 해야죠. 아직 멀었어요.”
“그건 그렇지.”
연하린은 그 말에 갑자기 울컥했다. 아니, 이 순간에 굳이 저런 말을 왜 한단 말인가. 저 말이 사실이라서 더더욱 속이 끓었다.
“네. 그래야죠.”
억눌린 듯한 소리로 그렇게 말한 연하린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걷기만 했다.
그런 두 사람 곁으로 초서란이 슬그머니 다가갔다.
“공자님, 제가 영단을 몇 개 새로 만들었어요.”
영단이라는 말에 벽태산이 반응했다.
“영단?”
“예. 최근에 연구하던 게 있었거든요. 좋은 성과를 얻어서 몇 개 만들었어요.”
초서란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뚜껑을 여니 청량한 향기가 주변을 확 휘감았다. 그저 향기에 불과한데도 굉장한 기운이 느껴졌다.
향을 맡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어때요?”
초서란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어서 칭찬을 해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벽태산이 영단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좋은 영단이다.”
벽태산에게 이 정도 평가를 받았다는 건, 정말 굉장한 영단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영단을 만들다니, 역시 천약방의 주인인 약왕다웠다.
초서란은 다시 목함의 뚜껑을 닫은 후, 그것을 벽태산에게 내밀었다.
“받아주세요. 공자님을 위해 만들었어요.”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는 주위를 슥 둘러봤다.
증혼마공을 익힌 사람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는다. 몸에 들어온 독이 증혼마공의 힘을 이기지 못해 모조리 타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영약도 효능이 거의 없었다. 전부 타서 증발해 버리니까.
그러니 이걸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게 맞지 않겠는가.
벽태산은 목함의 뚜껑을 열고 옆에 있던 연하린에게 한 알 넘겼다.
“이건 네가 먹어라.”
그리고 다시 한 알을 집은 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단영에게 오라는 듯 눈짓을 했다.
단영이 얼른 다가오자, 영단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네가 먹고.”
마지막으로 벽태산의 시선이 향한 사람은 소소였다.
소소는 벽태산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벽태산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얼른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저 부르셨어요?”
벽태산은 소소에게 마지막 남은 영단을 줬다.
영단을 받은 세 사람은 안절부절 못하고 벽태산과 초서란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분위기에서 이걸 어떻게 넙죽 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벽태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 영단은 걸어가면서 먹어도 약효를 모두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지금 먹어라.”
벽태산이 먹으라고 했지만 다들 초서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초서란이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그녀는 그저 굉장히 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