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58)
아마 누군가 들어오려다가 제지를 받으니 소란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낯익었다.
“보천각주?”
하오문주가 천무련에 합류하면서 받은 직책이 바로 보천각주였다.
한데 그녀가 저런 소란까지 일으킬 정도라면 뭔가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게 분명했다.
“아니, 아무리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어도 사람들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사마위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소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집무실로 쓰는 전각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융통성을 발휘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는 건 보천각주가 집무실을 지키는 세 명의 무사를 물리쳤다는 건데, 사마위홍이 알기로 보천각주, 그러니까 하오문주는 결코 그럴 실력이 아니다.
잠시 후, 보천각주이자 하오문주인 백화루주가 사마위홍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백화루주의 정중한 인사에 사마위홍이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봤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오?”
“어제와 같은 용건입니다.”
사마위홍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 일은 내가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하지 않았소.”
백화루주가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그분께서 공식적으로 만나고 싶으면 오늘 중으로 결정을 내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위홍이 코웃음을 쳤다.
“하! 보천각주는 대체 누구를 모시는 거요? 벽태산이오? 아니면 나요?”
백화루주는 차분히 대답했다.
“누굴 모시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련주님을 위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날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똑똑히 들으시오. 내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공식적으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백화루주가 안타까운 눈으로 사마위홍을 바라봤다.
사마위홍은 백화루주의 그 눈빛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다. 대체 자신을 뭐로 보고 저따위 시선을 보낸단 말인가.
그때 사마위홍의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왔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사마위홍이 사방을 휙휙 둘러봤다.
그리고 언제 들어왔는지 백화루주 옆에 서 있는 벽태산을 발견했다.
벽태산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화루주에게 말했다.
“넌 이제 돌아가 봐라. 별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백화루주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녀가 조용히 물러가는 모습을 사마위홍은 어이없는 표정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감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벽태산이 그런 사마위홍을 보며 피식 웃었다.
“겁쟁이가 출세했구나.”
사마위홍의 표정이 확 굳었다.
끝
사마위홍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방금 벽태산이 한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가 무림맹 군사로 있던 시절에 그를 모욕하던 말이 바로 겁쟁이였으니까.
그를 겁쟁이라고 가장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천마였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많이 알려졌다.
사마위홍은 농담으로라도 그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이 싫었고, 그로인해 무공 수련에 더 열을 올렸다.
군사로 이름을 날려서 그렇지 사실 무공에 대한 재능도 굉장히 뛰어났는데, 그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짜증도 많이 났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시간이 흐르면 다들 알아주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천마의 한 마디가 가져온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그 덕도 좀 봤다.
이번에 천무련주가 된 것도 그런 선입견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렇게 쉽게 되지 못했을 테니까.
하후관천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하도록 뒤에서 은근히 유도한 것이 바로 사마위홍이었다.
무공으로 결정하자는 그 한 마디를 끌어내기 위해 제법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아무튼 그건 그거다. 그런 식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겁쟁이라는 말을 또 듣고 싶지는 않았다.
사마위홍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면서 힘을 한 번 보여줘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불러서 공개적으로 징치를 해야 하는지 잠깐 고민했다.
‘아니지, 다른 사람을 불러봐야 더 짜증이 날 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벽태산이 자신을 겁쟁이라고 불렀다고 떠들 수는 없지 않은가.
겁쟁이라는 별명을 어떻게 지웠는데, 그걸 다시 붙인단 말인가.
“날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걸세. 그러니 좀 조심해줬으면 좋겠군.”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뭐가 기분이 나쁜 건지 모르겠군. 겁쟁이? 아니면 출세한 거?”
사마위홍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허! 이것 참.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는 친구로군.”
사마위홍은 헛웃음을 흘린 후, 벽태산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봤다.
“조막만 한 장원 하나 세워서 이런 저런 사람들 모아놓고 왕 노릇 좀 하니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나?”
사마위홍의 몸에서 묵직한 기운이 뭉클뭉클 흘러나왔다.
“얼른 그 우물 안에서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세상은 생각보다 넓거든. 자네가 생각지도 못할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게 바로 천하란 말일세.”
묵직한 기운이 집무실 전체를 내리눌렀다.
힘으로 벽태산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로 압박하고자 한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벽태산은 그런 경고 따위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벽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아주 좋은 말이로군. 맞아, 상상도 못할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곳이 바로 천하지.”
누구보다 그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벽태산이었다. 그 상상도 못할 일의 산증인이 바로 자신 아닌가.
벽태산은 사마위홍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겁쟁이라고 했던 건, 한 번쯤 꼭 만나고 싶어서였어.”
사마위홍은 순간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건 또 뭐 하자는 수작인가.
“꽁꽁 숨어있기만 하니 내가 만나러 갈 수가 있나. 한 군데 숨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잘도 숨더군. 숨는 재주 하나는 천하제일이야. 그건 내가 인정하지.”
벽태산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마위홍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어. 한데 계속 날 피하는 걸 보니 묘하게 신경이 쓰이더란 말이지.”
사마위홍의 입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숨은 놈을 찾아 나서는 건 묘하게 마음에 안 들고.”
사마위홍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벽태산이 그런 사마위홍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됐네. 이제 군사도 아니니 숨을 수도 없고 말이야.”
사마위홍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알면서 왜 물어?”
사마위홍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따위 말로 놀릴 생각 말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보통은 이쯤 하면 의심부터 하고 볼 텐데, 벌써 결론을 내린 건가? 머리가 좋긴 좋은가봐? 하긴, 머리 좋은 놈들이 보통 겁이 많긴 하지.”
머리 좋은 놈들이 겁이 많다는 저 말도 예전 천마가 지나가듯 무림맹주에게 했던 말이다.
나중에 무림맹주가 자신에게 와서 저와 똑같은 말을 전해주었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천마의 전언인데 그게 기억에서 사라질 리 있겠는가.
“주,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아니, 제가 아는 거랑은 생김새가 다른데······.”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한 번 마주친 적도 없으면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긴 해?”
사마위홍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벽태산이 소속된 금벽상단이나 현천장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하오문은 대체 어찌 된 건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이러다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사마위홍의 귀에 벽태산의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죽은 거 맞다.”
사마위홍이 눈을 부릅뜨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태어났지.”
“서, 설마······ 금단의 대법으로 몸을 빼앗으신 겁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내가 그럴 놈으로 보이느냐?”
사마위홍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솔직히 멀쩡한 사고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상황이 연상되니 진짜 무서웠다.
“그냥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났다고 보면 된다.”
사마위홍은 문득 한 가지 중요한 가정이 떠올랐다.
“한데······ 새 몸은 잘 맞으십니까?”
“왜? 안 맞으면 한 번 해보게? 무공 기반이 아예 없는 딴 몸으로 갈아탔으니 힘도 예전 같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느냐?”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전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말을 하던 사마위홍은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 저자세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제 당당한 천무련주다. 상대는 과거 천마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벽태산일 뿐이다.
하지만 막상 벽태산을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봄날 눈처럼 사그라졌다.
“예전 몸이든 지금 몸이든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
사마위홍은 속으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어진 벽태산의 말에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강하다.”
사마위홍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게 가능합니까?”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내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는지 아느냐?”
사마위홍이 그걸 어찌 알겠는가. 그는 그저 벽태산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앞으로 협조 기대하겠다.”
사마위홍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숫제 협박 아닌가.
하지만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협박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우, 우리도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거 참 기대되는구나.”
그걸 본 사마위홍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치 당장에라도 무림맹으로 달려가 모조리 박살 낼 것 같은 표정과 분위기 아닌가.
“아무튼 즐겁구나. 내가 사마위홍을 다 보고.”
사마위홍은 억지로 웃었다. 하지만 속이 너무나 쓰렸다.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사마위홍이 복잡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한데 벽태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사마위홍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려 상체를 뒤로 젖혔다.
“왜, 왜 그러십니까?”
벽태산은 창가로 성큼성큼 걸어가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더니 나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마위홍은 벽태산의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이 쓰였다.
자신이 아는 천마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이러다가 마음이 확 바뀌어 천무련 자체를 싹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찌 두렵고 신경이 쓰이지 않겠는가.
창가로 간 벽태산이 턱짓을 했다. 마치 턱짓으로 밖에서 뭔가를 안으로 들이라고 지시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창을 통해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니,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였다.
쿠당탕탕!
사마위홍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바닥에 꼴사납게 나자빠진 자들은 총 세 명이었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의 얼굴은 자신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천추신의와 일침괴, 그리고 소청명이었다.
천추신의가 헤헤 웃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제가 큰 공을 세웠습니다.”
벽태산의 무심한 시선이 천추신의 일당을 내리찍었다.
사마위홍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무래도 오늘 만남은 간단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 * *
천무련주의 집무실을 지키던 세 명의 무사가 정신을 차렸다.
“크으윽.”
몸을 일으키려는데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백화루주에게 목을 잡혔던 자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정신이 멍했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하오문주가 이 정도였나?”
“이거 심상치 않아. 아무래도 얼른 보고를 해야겠어.”
“내가 먼저 가서 보고를 드릴 테니, 자네들은 교대 후에 따로 오게.”
그들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움직였다.
한 사람이 비각주에게 달려갔고, 나머지 두 사람은 집무실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서서 다시 경계를 섰다.
그러면서 안쪽으로 귀를 기울여 혹시 하오문주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기막이라도 친 것처럼 말이다.
기막을 뚫고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천리지청술 정도는 익혀야 한다.
그런 사람은 비각 내에서도 몇 없었다.
그렇게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열린 문을 확인했다.
사마위홍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사마위홍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긴장감이 한껏 올라왔다.
“내 호위를 하는 모든 무사를 부르게.”
“예?”
무사가 놀라 사마위홍을 바라보자, 사마위홍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한 명도 빼놓지 말게.”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사마위홍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두 명의 무사는 영문을 몰라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비각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경공이라도 펼치고 싶었지만, 천무련 내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진짜 비상 상황이 떨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가 지금 가는 곳은 련주의 집무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