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
“가서 현월에 물건을 보내야 한다고 전해.”
표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월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만 전하면 됩니까?”
벽태산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표사가 얼른 국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바로 국주로 보이는 중년인이 문을 부술 것처럼 꽝 열고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그는 벽태산을 향해 거의 절을 하다시피 허리를 숙이며 양손을 집무실 쪽으로 쭉 뻗었다.
“귀인을 뵙습니다. 일단 안으로, 안으로 드시지요!”
벽태산은 당연하다는 듯이 느긋하게 국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국주는 그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은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천경완이 입을 쩍 벌린 채 지켜봤다.
표정 관리가 아예 안 될 정도로 놀랐다.
* * *
종리상은 자기 선에서 일을 마무리 하고 싶었다.
비호대는 종리세가가 보유한 세 개의 주력 무사대 중에서 가장 지위가 낮았다.
종리상은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세 무사대의 실력은 전부 비슷했다. 적어도 종리상의 생각에는 그랬다.
그런데도 비호대가 가장 지위가 낮은 이유는 역사와 실적 때문이라고 여겼다.
비호대는 천마 사태 이후에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나머지 주력 무사대는 천마 사태를 겪으면서 종리세가가 멸문하지 않도록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종리상은 비호대와 함께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다.
흑도를 쥐어짜서 자금을 확보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이밖에도 남들의 시선을 피해서 벌여야 할 지저분한 일들을 무수히 처리해왔다.
그러니 고작 흑도 무리가 반기를 드는 걸 알아서 해결하지 못하면 안 된다.
영원히 이 자리에 머무를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가 관리하는 흑도가 총 열세 군데였지?”
“예. 맞습니다.”
그리고 그 열세 군데 흑도 무리가 알아서 나머지 흑도들을 휘하게 두고 관리한다.
결과적으로 이 근방의 모든 흑도를 종리세가가 틀어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데 그 열세 흑도가 반기를 들었다.
이걸 방치하면 손 안에 들어왔던 모든 흑도 무리를 놓치는 셈이다.
“혈부파는 내가 직접 가면 되고······ 나머지는 알아서 나눠. 몇 명 필요해?”
“뭐······ 전 다섯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우리 비호대가 총 예순 명이야. 너 혼자 다섯 데리고 가면 나머지는 어쩌라고?”
“그럼······ 좀 빡빡하게 네 명? 그 이하는 안 됩니다. 대주님이 아까 그놈들 눈빛을 봤으면 다섯도 모자라다고 했을 겁니다.”
“알았다. 그럼 내가 두 명만 데리고 가마. 나머지는 알아서 잘 나눠. 단숨에 처리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제대로 응징하지 않으면 금세 기어오른다는 것도 명심하고.”
“우리가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가끔은 제가 정파인지 흑도인지 헷갈린다니까요? 그러니 염려 턱 붙들어 매십시오. 흑도 방식으로 처리할 테니까.”
종리상은 알았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건방진 놈들을 응징하러 갈 시간이다.
‘감히 반기를 들어? 살려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종리상은 혈부파로 가는 내내 걸음마다 분노를 쌓았다.
그래서 혈부파에 도착할 무렵, 그 분노가 온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강렬한 기세를 마구 분출하며 혈부파 앞에 선 종리상의 모습에 혈부파도 난리가 났다.
종리상은 혈부파의 근거지인 전각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이제 조만간 혈부파의 두목이 나올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혈부파의 두목인 추조광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그의 뒤로 혈부파의 조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는데, 하나같이 손에 도끼를 들고 있었다.
“지금 나온 놈들, 알아서 팔 하나씩 자르고 무릎 꿇어라. 그럼 살려주마.”
종리상이 살기를 담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혈부파는 아무도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종리상 일행을 쫙 포위했다.
그걸 본 종리상이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 건가? 지금 너희 따위가 우릴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솜털만큼이라도 있을 거라 여기는 거야?”
“시발, 닥쳐!”
추조광의 외침에 종리상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였다.
“너 이 새끼, 진짜 미쳤구나?”
“시발, 미치긴 누가 미쳐! 안 미치려고 이러는 건데! 오늘 너희한테 죽는 게 미쳐서 똥 지리고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종리상의 표정이 확 굳었다. 저 말을 들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놈들을 저렇게 만든 배후가 있었다.
방금 추조광의 말 때문에 화가 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로 화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후우. 차근차근 얘기해 봐라. 어떤 놈이 너희를 사주했는지. 그놈을 우리가 처리해 주마. 종리세가가 책임지고 해결할 테니 일단 무슨 일인지 말해봐.”
“시발, 닥쳐. 진짜 무서운 게 뭔지도 모르는 새끼는 닥치라고! 뭣들 하고 있어! 다 그 꼴 될 거야!”
그 말을 신호로 혈부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독기와 절박함이 가득했다.
종리상은 당황했지만, 이내 분노로 온몸을 태우며 검을 휘둘렀다.
슈가가각!
혈부파 조직원 몇 놈이 피를 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러자 혈부파 놈들이 더욱 기고만장해서 달려들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종리상이 그렇게 잠깐 헤매는 사이 데려온 두 종리세가 무사가 당해 버린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방심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고작 이런 놈들에게 당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종리상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혈부파 놈들이 종리상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아무리 종리세가 무공의 약점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한데 정작 진짜로 종리상을 상대하는 건 혈부파 놈들이 아니었다.
혈부파의 부하로 위장하고 있던 동호표국의 표두가 정확히 종리상의 빈틈을 찔렀다.
푹!
종리상이 휘청거렸다. 그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조져!”
추조광의 외침과 함께 도끼가 종리상의 온몸으로 쏟아졌다.
혈부파 놈들은 도끼날이 아니라 넓적한 면으로 종리상을 두들겨 팼다.
퍼버버버버벅!
옆구리에 당한 부상 때문에 제대로 운신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온몸에 매질이 쏟아지니 아무리 종리상이라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져 버렸다.
그와 비슷한 상황이 열세 군데 흑도 방파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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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네
종리세가가 발칵 뒤집혔다.
비호대가 전원 부상을 당했다. 그냥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온몸에 퍼부어진 구타로 인해 굉장히 오랫동안 정양하지 않으면 다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죽지 않은 것은 오직 그들이 종리세가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흑도 무리가 그동안 당한 분풀이를 제대로 했다면 아마 싹 죽여 버려도 모자랐겠지만, 후환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비호대는 종리세가의 전력에서 이탈했다. 당분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말이다.
종리세가에는 비호대 말고도 두 개의 무사대가 더 있었다.
그것도 주력 무사대가 그 정도였고, 그 외에 다른 무사들까지 하면 수가 제법 많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무사의 수를 늘려온 것은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사의 수가 많아질수록 들어가는 유지비 역시 커진다.
그동안은 흑도를 쥐어짜서 그걸 유지했는데, 흑도에서 정확히 돈을 상납할 시기에 반기를 드는 바람에 자금 회전이 꽉 막혀 버렸다.
종리세가의 가주, 종리천은 황당한 눈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예.”
당장 열흘 후부터는 식자재 조달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하니 정말 큰일이었다.
“서둘러 방법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종리천이 인상을 썼다.
“금벽상단을 좀 더 서둘러서 도모했어야 하는 건데······.”
만일 금벽상단을 집어삼켰다면 이따위 문제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랬다면 우선 흑도 무리부터 싹 쓸어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로부터 상납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선 안 되니까.
가장 확실히 덮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몽땅 죽여 버리는 것이다.
“여유자금이 아예 없는 건가?”
“이번에 금벽상단을 도모하면서 보유했던 여유자금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종리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황이 어찌나 절묘한지 할 말이 없군.”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아니야. 자네한테 무슨 죄가 있겠나. 안 그래도 세가 살림이 녹록치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네.”
종리천은 그렇게 총관을 다독인 다음 대책을 고민했다.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다.
주변에 있는 만만한 곳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것이 한 가지다.
다만 그렇게 하면 종리세가의 위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다른 하나는 천금련에 손을 벌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나중에 발목을 잡히게 될 공산이 컸다.
금벽상단을 분배할 때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말이다.
지금 당장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 잡힐 수는 없지 않은가.
“남은 건 이번에 반기를 든 흑도 무리를 싹 쓸어버리는 거로군.”
“하지만 잘 알아보셔야 합니다. 그놈들 뒤에 무언가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다면 고작 흑도 무리에게 종리세가의 비호대가 어찌 그리 처참하게 당하겠는가.
아무리 머릿수가 많다고 해도 강아지 무리가 호랑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 하나씩 정리하는 걸로 하지. 설마 그놈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와 대적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제가 사전작업을 좀 해두겠습니다. 서로 뭉치지 않게 말입니다.”
“그렇게 하게. 뭐든 확실한 게 좋으니.”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종리천은 홀로 남아 이를 갈며 분을 삭였다.
“이······ 지저분한 흑도 놈들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지금까지 뒤통수를 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러니 이 아픔을 몇 배로 되돌려 줘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흑도 무리를 싹 잡아서 그놈들이 가진 돈을 다 털어내면, 더 이상 뒤가 없다.
종리세가가 흑도처럼 나서서 뒷골목 돈을 갈취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돈이 남은 상태에서 금벽상단 쪽 일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일단 싹 불러야 돼.”
모든 인원을 동원해 확 몰아치듯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절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 * *
“공자님, 대체 언제 이런 표국과 인연을 만들어 두신 겁니까?”
벽태산과 천경완은 지금 동호표국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전각에 머물고 있었다.
동호표국은 두 사람을 더 할 나위없을 정도로 극진히 대접했다.
이 작지만 화려한 전각 하나를 통째로 비우고 수발을 들어줄 시비를 잔뜩 붙여 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벽태산이 지시한 일을 차질 없이 진행했다.
동호표국의 국주는 벽태산의 지시에 일말의 불만이나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지시대로 이행하기만 했다.
뿐인가. 그동안 동호표국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꾸준히 모아 두었던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덕분에 벽태산과 천경완은 종리세가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아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걸 토대로 종리세가의 현재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서 적절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일단 첫 번째 단추는 성공적으로 꿰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도 되겠군.”
“예? 벌써 돌아가십니까?”
천경완의 말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왜? 너무 편해서 돌아가기가 싫어?”
“그게 아니라 이제 일을 벌이신 것 같은데 마무리를 안 하고 돌아가신다고 하셔서 그렇습니다.”
“마무리는 얘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상대는 종리세가입니다. 나중에 여차하면 저라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습니까?”
벽태산이 그 말에 씨익 웃었다.
“너 여기 국주랑 싸워서 이길 수 있어?”
“예? 그, 글쎄요? 정확한 건 싸워봐야 알겠지만······ 저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 표두들은?”
“제가 약간 위입니다.”
“틀렸어.”
“예?”
“여기 표사들보다야 낫겠지만, 표두랑 싸우려면 아직 멀었다. 국주는 훨씬 더 위고.”
천경완의 눈이 커다래졌다. 수긍할 수 없었다. 표두들을 만났을 때 분명히 실력을 가늠해봤다. 지금 벽태산에게 한 말은 겸손이 섞인 것이고 솔직히 압도적으로 이길 자신이 있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이곳에 있는 국주와 표두들은 전부 천마신교 사람들이다.
다만 표사 중에는 천마신교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 흑도 무리와 섞여서 종리세가와 싸운 자들은 전부 천마신교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모든 계획에서 배재했다. 뿐만 아니라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앞으로 종리세가와 싸움을 이어갈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천경완이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그들이 힘을 갈무리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고수가 와서 살핀다 하더라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공을 감추는 데 능했다.
표국으로 위장을 하는데 무공이 지나치게 높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또한 무공이 약하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우니 무공이 약한 자들을 이곳에 파견할 수도 없었다.
벽태산의 머릿속에서 동호표국이 떠오른 건 종리세가를 좀 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이었다.
종리세가와 관련된 기억을 더듬다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고 선명하게 동호표국이 종리세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한에 있던 천마신교의 안가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놈들이 기억났고 이렇게 만났으니 앞으로 잘 이용해주면 된다.
아직까지 자신의 정확한 정체를 모르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의심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저 상급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복종해야만 한다.
일견 잘못하면 엉뚱한 놈들에게 조직이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천마신교의 사람이 이곳에 오면, 몇 단계에 걸쳐 검증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그냥 돌아가면 돼.”
나머지는 이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딱 주어진 임무까지만 하고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겠지만.
* * *
“공자님, 꼭 이쪽 길로 가야 합니까?”
“지름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