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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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태산은 느긋하게 걸어 천무련의 중심부로 갔다.
그리고 감각을 확 퍼트려 진법을 파악했다.
“많이도 깔았구나.”
천무련 전체에 열 개나 되는 진법이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었다.
각 진법이 서로에게 간섭해 효능을 증폭시키는 방식인 듯했다. 물론 정확한 건 승도흥이 분석해야 알 수 있겠지만.
벽태산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주먹을 꽉 쥐었다.
꽈드드드드득!
열 개의 진법이 동시에 뭉개지며 땅이 가볍게 흔들렸다.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걸로 착각한 것이다.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속이 시원하구나.”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벽태산이 이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벽태산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을 뛰어넘어 낙양의 번화가에 발을 들인 것이다.
잠시 그곳에 서서 거리 곳곳을 밝히는 불빛들을 둘러보던 벽태산은 갑자기 묘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쳐다봤다.
벽태산의 시선이 닿는 곳에 높다란 기루 하나가 서 있었다.
벽태산은 잠시 그 기루를 쳐다보다가 이내 그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끝
벽태산은 기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굉장히 화려한 기루였다. 아마 이곳 낙양에서도 제법 유명한 기루임이 분명했다.
이 기루에 눈이 간 이유는 여기서 강력한 영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엄청난 수준의 영력이 폭발하듯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제대로 집중하니 영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들 듯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영력을 감춘다거나 가라앉힌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벽태산의 영력이 워낙 정적이라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자신의 영력을 감지할 만한 상대를 만나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방금 그걸 경험하고 나니,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이 확 높아졌다.
사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벽태산은 기루로 걸어가면서 영력을 감추는 연습을 했다.
영력을 통해 존재감을 지우는 수련을 했던 것이 제법 도움이 되었다.
기루에 도착할 무렵, 벽태산은 완벽하게 영력의 존재감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기루에 들어서니, 기녀들이 우르르 나와 벽태산을 맞이했다.
벽태산의 외모가 상당하기에 기녀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기녀들 사이로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기녀 한 명이 나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벽태산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상황을 봐서 영력을 가진 자를 만나면 되니까.
다시 태어난 이후 워낙 기루에 자주 다녔더니, 이제는 웬만한 기루는 마치 집처럼 편안했다.
기녀들을 보면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시비 같기도 해서 더더욱 편안했고.
물론 외모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벽태산은 기녀의 안내를 받아 기루 안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가면서도 영력이 있는 곳을 계속 확인했다.
한데 그렇게 가다 보니, 처음 감지한 영력 근처에 아주 익숙한 영력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원래라면 처음부터 알았어야 하는데, 함께 있는 영력이 워낙 크고 강렬해서 주변에 있는 작은 영력의 기척을 그것이 덮어버린 것이다.
그것 하나에 집중했기에 주변에 대한 감지가 좀 소홀해졌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이고.
벽태산은 그렇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약간 앞에서 벽태산을 안내하던 기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한 층 더 올라가셔야 합니다.”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여기 아는 사람이 있구나.”
“예?”
기녀가 살짝 당황했다.
기루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서로 모른 척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같이 놀 일행이 아니라면, 자칫 서로 민망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일이 꼬이다보면, 기녀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말이다.
“걱정할 거 없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을 뿐이니까.”
기녀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곤란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여기는 기루다. 기루에서 확인하긴 뭘 확인한단 말인가.
벽태산은 기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복도 쪽으로 방향을 바꿔 걸음을 내디뎠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자님!”
당연히 벽태산이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벽태산은 성큼성큼 걸어 목표로 한 방 앞에 섰다.
기녀가 다급히 벽태산을 따라 달려왔지만, 채 말리기도 전에 벽태산이 방문을 확 열어 버렸다.
방 안에는 역시나 익숙한 영력을 품은 세 사람이 있었다.
천추신의, 일침괴, 소청명이었다.
그들은 영력을 얻을 때, 벽태산이 가상의 죽음을 안겨줬는데, 그때 벽태산의 영력을 썼기에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이 마음만 먹으면 다시 죽음을 안겨줄 때, 영력을 종속시킬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었다.
물론 벽태산은 그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딴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모두를 지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설사 지배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천마일 때도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딱히 문제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벽태산은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노인 한 명이 보였고.
방안의 분위기를 보아하건데, 결코 천추신의 일당과 저 노인은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다.
노인이 중간에 난입한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벽태산을 따라온 기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구시죠? 이 방에는 세 분의 손님만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방에 기녀가 한 명도 없었다.
분명히 여섯 명의 기녀가 세 명의 손님을 모시기 위해 이 방으로 들어왔다.
한데 지금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방에서 나간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기에 기녀는 상당히 당황했다.
“그 처자들은 내가 잠깐 내보냈네.”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을 따라온 기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안 되는군.”
노인의 시선이 이번엔 벽태산에게로 향했다.
“자네 때문이로군. 그냥 조용히 돌려보내려고 하니 허락해 주겠나?”
노인의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인자했다.
벽태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벽태산을 따라왔던 기녀가 휙 돌아서서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
곁에 앉아 있던 기녀들이 저 노인의 눈빛 한 방에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그렇게 한 다음 자신들에게도 같은 눈빛을 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않았고, 특별한 기세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압박감 역시 마찬가지로 없었다.
한데 그와 똑같은 일이 방금 또 벌어진 것이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자신들이 왜 저 노인에게 당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벽태산 덕분이었다.
추측하기로, 벽태산 덕분에 쓸 수 있게 된 영력 때문이리라.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소청명의 뒷덜미를 잡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보아하니 벽태산과 저 정체불명의 노인 사이에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럴 때는 그냥 닥치고 조용히 구경하는 것이 답이다.
괜히 나대다가는 인간 같아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싸움에 휘말려 피를 볼 수도 있으니까.
“저······.”
갑자기 소청명이 입을 열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기겁해서 그를 바라봤다.
“야, 할 말 있어도 참아. 지금 상황 안 보이냐?”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게 뭔 소리야?”
소청명이 난감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스승님이십니다.”
“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멍한 표정으로 소청명과 노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소청명은 의선의 제자다.
“그렇다는 건······ 저 노인장이 의선이라고?”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노인, 의선을 바라봤다.
의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가 신선 같은 풍모가 느껴졌다.
그리고 일침괴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의선과 소청명을 번갈아 바라봤다.
“내가 아는 의선이 아닌데?”
자신은 의선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데 자신이 만났던 의선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뭔가 닮은 구석은 있었지만.
그래도 소청명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의선의 제자니까.
소청명의 말에 관심을 가진 건 벽태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이 노인을 보고서 제법 놀랐는데, 의선이라고 하니 더더욱 놀라웠다.
“진짜 등선이라도 한 건가?”
그 물음에 의선이 묘한 시선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자네와는 따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군.”
벽태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필요가 있어 보였다.
벽태산은 천추신의와 일침괴, 소청명을 차례로 응시했다.
“나가 있어라.”
세 사람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예? 여기는······.”
천추신의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 통할 사람이었으면 지금까지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언제 다시 옵니까?”
벽태산은 대답 대신 나가라는 듯 턱짓을 했다.
세 사람이 휙 날았고, 문이 저절로 열렸으며, 그들이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다시 문이 탁 닫혔다.
그 순간, 이 방은 바깥과 완벽하게 분리되었다.
이제 이 방에는 벽태산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들어오지 못하리라.
의선은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로군.”
벽태산은 그 말에 관심도 없다는 듯 자기가 할 말부터 했다.
“너, 사람이 아니지?”
벽태산의 물음에 의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 상황에 따라서는 굉장히 실례된다는 거 알고는 있나?”
의선은 벽태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나이도 아주 어린 듯한데, 최소한 노인 공경은 좀 해줘야 하지 않겠나?”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내가 몇 살로 보이는데?”
의선은 벽태산의 표정과 눈빛을 보고는 지금 저 질문이 일종의 시험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자신이 어떻게 대답하느냐를 듣고서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판단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의선은 벽태산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봤다.
처음 봤을 때는 분명히 스무 살 언저리로 보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뭔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것 참······ 분명히 스무 살 언저리인데······ 뭔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니······.”
의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으로 드문 경우였지만, 육체적 나이는 다시 확인해도 자신의 감이 정확했다.
“몸은 스무 살 언저리인데 혼백만 노인인 것도 아니고, 공자는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로군.”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호오. 제법인데? 진짜 몸도 아닐 텐데, 안목이 아주 정확해.”
벽태산의 말에 의선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그리고 이내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건 또 어찌 아셨나?”
“그렇게 티를 풀풀 내고 다니는데, 눈이 삐지 않고서야 모를 리가 있나.”
벽태산이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의선의 몸이 오로지 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 사람이 모든 육체를 영력으로 구성할 수 있겠는가. 저건 자신의 영력을 뽑아서 만든 가상의 육체, 일종의 분신이었다.
“공자의 안목이 아주 뛰어나군. 한데······ 내가 그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공자에게 그럴 능력이 보이지 않아.”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안목을 더 키우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어쨌든 여기 있는 건 의선의 분신이다. 본체가 오면 아마 지금처럼 간단히 영력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재미있는 방식이야. 분신이라니.”
영력으로 분신을 만들어 부리다니.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 해봤다.
의선이 분신에 쓴 영력의 양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벽태산이 지금 가진 영력만으로는 저 정도 분신을 만드는 건 아직 불가능했다.
“보아하니 거의 등선한 거나 다름없는 것 같군.”
“비슷하네.”
벽태산이 의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의선은 마치 자신의 속을 꿰뚫는 듯한 시선에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 때문에 왔나?”
“맞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찌꺼기 없애려고 온 거였군.”
의선이 고개를 저었다.
“청명이는 찌꺼기가 아닐세.”
벽태산은 의선이 소청명을 찌꺼기라고 여기든 말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소청명을 어떻게 하려는지였다.
“그래서 어쩌려고? 의술을 가르쳐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의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의선이 익힌 것은 엄밀히 따지면 의술이라기보다는 선술에 가까웠다.
소청명은 선술에 재능이 없었고.
그래서 의선이 가르칠 수 있는 건 아주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소청명은 자신의 재능을 한껏 살려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되었다.
의선은 거기까지만 하고 소청명을 방치하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