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7)
사마위홍은 결국 벽태산이 사라진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끝
천무련의 군사인 우장번은 천무련주인 사마위홍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련주님, 오늘따라 혈색이 아주 좋으십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사마위홍은 그렇게 말하는 우장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 비각주 일이 마무리 되어서 그런 거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뭐? 혈색이 좋아? 이게 어디가!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매일 얻어터지는데, 어떻게 혈색이 좋아질 수 있겠느냐고! 하여튼 아부도 눈치 없으면 못 한다니까. 하여간 군사라는 것이······ 쯧쯧.’
사마위홍이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우장번은 기분 좋게 말했다.
“하긴, 그동안 비각주 일 때문에 얼마나 상심이 깊으셨습니까. 그래도 전화위복이라고, 보천각이 이렇게나 뛰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비각주가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 계속 능력이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뭐······ 그건 그렇지.”
천무련에 소속된 군사들은 전부 사마위홍이 직접 뽑았다.
다들 안면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사마위홍의 도움을 몇 번씩 받았기에 천무련의 모든 군사는 사마위홍의 말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들어갈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사마위홍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사마위홍에게 우장번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제가 보기에 련주님의 안색이 좋은 건······ 경지가 상승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련주님, 감축 드립니다.”
사마위홍이 놀란 눈으로 우장번을 바라봤다.
하지만 우장번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심이 나만큼이나 큰 놈이었지.’
그래서 무공 수련도 열심이었다. 또한 안목도 보통이 아니었다.
아직 무공 수준이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안목 하나만으로 상대의 속내나 수준을 꿰뚫어보는 건 자신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도 놀라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경지를 단숨에 꿰뚫어 보다니 말이다.
“혹여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다른 뜻 없이 그저 진심으로 감축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련주님께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감추고 싶지 않기도 했고 말입니다.”
사마위홍은 그 말에 우장번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확실히 자신이 가려 뽑은 인재다웠다.
“뭐······ 작은 기연이 있었네.”
“역시!”
우장번은 크게 기뻐하며 그 뒤로도 미사여구 가득한 축하의 말을 쏟아냈다.
사마위홍은 대충 맞춰주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은 솔직히 좀 복잡했다.
벽태산에게 밤마다 끌려가 처 맞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경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조건 편안한 쪽이었다.
“대체 언제 가려는 거지?”
개파대전이 끝났다고 해서 일제히 모든 손님이 돌아간 건 아니었다.
다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느긋하더라도 열흘을 넘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한데 벌써 개파대전이 끝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돌아가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벽태산 일행이 딱 그랬다.
사실 개파대전이 끝나자마자 돌아가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한데 보름이 넘도록 머물면서 밤마다 자신을 두들겨 팰 줄은 진짜 예상치 못했다.
사마위홍은 집무실에서 서류 몇 장을 처리한 다음, 아직 남은 손님 목록을 확인했다.
“아직 남은 자들이 제법 있군.”
그 중 몇몇은 대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무련과 어떻게든 좋은 인연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얘기는 천무련에서는 딱히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지금 펼친 서류에 있는 자가 바로 그러했다.
“유백산? 이 자도 아직 안 갔다고? 흐음.”
사마위홍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백산이 아직도 남은 이유는 아마 연하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유가 뭐든 좋았다. 이런 인재는 오히려 남아주면 감사할 일이다.
차근차근 접근해 천무련으로 포섭하거나, 아니면 향후 무명과의 싸움에 한 손 거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마위홍은 유백산이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따로 빼서 몇 가지를 기록했다.
사마위홍의 곁에 그런 식의 서류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 * *
유백산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봤다.
그의 눈은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안 보고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 중이었다.
지금 유백산의 뇌리를 장악한 것은 연하린이었다.
그가 아직도 천무련을 떠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눈만 감으면 연하린과 비무대회 결승을 치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연하린은 쏟아지는 벼락을 유려한 몸놀림으로 피하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검격은 매서웠고, 무서웠다.
귀신 같이 빈틈을 찾아 찔렀으며, 그것을 막다가 흔들린 틈을 또 찔렀다.
그러니 시종일관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밀리다보니 어느새 비무가 끝나 있었다.
솔직히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진 셈이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지고 나면, 분해서 잠도 못 잤을 것이다.
한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졌는데도 뭔가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기분이 고스란히 연하린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무수한 미녀들을 봐 왔다. 유명해지면서는 더더욱 많은 미녀들과 얽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정확히 왜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알 수 없었다.
미모 때문인지, 아니면 고강한 무공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뭔가 추측하지도 못할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아무튼 자신은 연하린에게 반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연하린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만나서 대화라도 해봐야 뭔가 관계에 진전이 있지 않겠는가.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연하린을 만날 수가 없었다.
유백산은 연하린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봤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정혼자가 있었다니······.”
연하린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 게다가 정혼자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부자인 데다가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휘하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천약방까지 그의 휘하에 있다고 하니 그저 돈만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렇게 천무련의 개파대전에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하염없이 연하린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대협, 저 성무흔입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유백산은 얼른 달려가 문을 열고 성무흔을 맞이했다.
성무흔은 천무련 소속 무인으로 발이 넓고 성격이 좋아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가 유백산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고, 두 사람은 금세 죽이 맞아 친해졌다.
아니, 솔직히 처음에는 좀 못마땅했다. 자신이 십대고수의 제자라는 걸 알고 노골적으로 접근한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연하린에게 마음을 빼앗긴 순간, 그를 연하린과 만나게 해줄 능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사실 유백산은 성무흔의 도움 없이 연하린을 만나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바로 성무흔에게 도움을 청했다.
성무흔은 답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했고, 그 뒤 한동안 안 보이다가 지금에서야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어찌 되었습니까?”
유백산은 다급히 물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너무 속을 드러낸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며칠 만에 보는 건데 다짜고짜 원하는 걸 물었으니 얼굴이 달아오를 만했다.
성무흔은 그런 유백산의 태도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유백산의 얼굴이 환해졌다.
“연 소저는 강함에 대한 열망이 아주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전 감각을 키워줄 만한 상황을 준비해 봤습니다.”
“상황을 준비했단 말입니까?”
유백산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낙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산채가 하나 있습니다.”
“산채? 산적을 토벌하자는 겁니까?”
유백산이 대번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작 산적을 치면서 무슨 실전 감각을 운운한단 말인가.
“보통 산적들이 아닙니다. 그곳에 갔던 천무련의 수색조가 한 명도 복귀를 못했습니다.”
그제야 유백산의 눈이 번득였다.
“더구나 그 수색조 안에는 이번 비무대회에서 팔강에 들었던 무인이 섞여 있었습니다.”
유백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번 비무대회에는 자신도 참석했기에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더구나 팔강이라면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섞인 수색조가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천무련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기 합류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저야 좋지만, 과연 연 소저가 함께 하려고 하겠습니까?”
성무흔이 씨익 웃었다.
“제가 미리 연락을 넣어 뒀습니다. 별채를 관리하는 일꾼 몇 명을 알고 있는데, 그들에게 부탁해 연 소저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유백산이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일어났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성무흔의 눈이 가늘어지며 입가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따라오시죠.”
* * *
연하린은 검 하나 달랑 들고 별채를 나섰다.
아까 별채를 관리하는 일꾼이 전해준 서찰을 보고서 움직이는 것이다.
서찰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연하린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화옥에에 미리 말을 해두었다.
뒤는 화옥이 알아서 조치할 것이다.
화옥에게 서찰을 보여줬는데, 화옥은 서찰에 적힌 산채에 관한 일을 벌써 알고 있었다.
천무련에서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큰 일이 생기지는 않을 듯했다.
별채를 나선 연하린은 천무련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으로 가는 길에 유백산과 성무흔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연하린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 유백산의 얼굴이 환해졌다.
“연 소저, 어서 오십시오.”
유백산이 미리 준비했던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연하린이 말을 끊어 버렸다.
“시간 없으니 얼른 가죠.”
연하린이 먼저 움직이자, 유백산과 성무흔도 다급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앞장서셔야죠.”
연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유백산과 성무흔을 번갈아 쳐다보자, 성무흔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제가 길을 압니다. 앞장설 테니 두 분은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서둘러주세요.”
연하린의 재촉에 성무흔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무흔은 경공을 써서 빠르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연하린이 보내는 압박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도저히 딴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유백산은 연하린 옆에서 나란히 달리며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했다.
“저기, 연 소저.”
연하린이 유백산을 힐끗 쳐다봤다. 유백산이 얼른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제게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가는 동안 얼른 하세요.”
“아니, 그게······.”
그런 얘기를 어찌 싸우러 가면서 할 수 있단 말인가. 괜찮은 풍광을 보면서 분위기도 좀 잡고 말을 해야 그나마 씨알이 먹힐 것 아닌가.
유백산이 머뭇거리는 사이, 벌써 산채가 있다는 산에 도착했다.
산으로 들어가니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은밀함을 유지해야 한다.
“저곳입니다.”
성무흔의 말에 연하린이 그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미리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연하린의 말에 유백산이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하지만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성무흔이 귀신처럼 접근해 그의 아랫배를 비수로 찌르고 있었으니까.
쩡!
연하린이 그 비수를 날려 버렸다.
성무흔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렇게나 강했다고?”
성무흔을 향해 검을 겨눈 연하린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함정이었군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함정에 빠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했다.
그리고 중간에 낀 유백산의 얼굴이 분노로 타올랐다.
그는 성무흔을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감히······!”
성무흔이 그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피식 웃었다.
“어디서 덤 주제에 끼어들려고 해?”
성무흔이 섬뜩한 눈빛으로 유백산을 노려봤다.
유백산은 그 눈빛에 기가 질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성무흔을 노려봤다.
싸한 긴장감이 주변을 쫙 훑고 지나갔다.
끝
연하린은 성무흔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지만,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방금 성무흔에게 공격을 당한 유백산도 믿지 않았다.
방금 그 일 하나만으로 유백산에게 등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연하린은 일단 혼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성무흔은 상당한 고수였다. 하지만 마음먹고 힘을 쏟아내면 금방 죽일 수 있었다.
유백산도 만만한 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둘이 함께 덤비는 건데, 가만히 가늠해보니 어찌어찌 상대가 가능할 듯했다.
문제는 저쪽 산채에 있는 놈들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굉장히 음습하고 어두운 느낌을 물씬 풍겼는데,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