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1)
그러니 그 혈령마공과 파장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 역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벽태산은 거기에서 시작해 자신이 존재감을 죽일 때, 무슨 문제가 있을지 세심히 확인했다.
그리고 실제로 혈령마공의 특성이 살짝 묻어 있다는 걸 알아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영력의 파장이 맞아 떨어진다는 건 쉽게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사람은 벽태산 주변에 많이 있었다.
벽태산이 직접 영력을 깨워준 자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조차 벽태산의 영력과 파장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저 비슷한 결을 가질 뿐이었다.
한데 존재감을 죽였을 때, 자신의 영력이 가지는 파장은 그보다 훨씬 비슷해졌다.
아무튼 문제를 알았는데 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벽태산은 평소보다 훨씬 신중하고 세심하게 영력을 조절해 존재감을 지우는 방법을 조금씩 바꿨다.
그리고 아예 새로운 방법으로 존재감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고찰이었다.
한동안 명상이 이어졌고, 벽태산은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영력은, 그러니까 자신이 익힌 새로운 증혼마공은 좀 특별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영력이 가지는 고유한 파장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건 대단한 일이었다.
영력이 가진 고유의 성질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한 마디로 영력에 한해서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영력을 쓰는 다른 자들의 다양한 특성을 그대로 베껴서 쓸 수 있다.
물론 혈령마공 같은 건 줘도 안 갖는다.
하지만 의선이 가진 영력을 쓸 수 있다면 어떨까?
의선의 영력은 그가 가진 별호에 걸맞게 타인의 치료에 큰 효과를 미치는 파장을 갖고 있다.
만일 벽태산이 자신의 영력을 거기에 맞출 수 있다면, 의선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의원들처럼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벽태산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새로 얻은 깨달음을 대충 수습했으니 이제 진짜 여기 온 목적을 이행할 때다.
벽태산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오래 기다렸느냐.”
사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말했다.
“배포가 큰 건지, 멍청한 건지······ 그래도 명색이 적인데, 내 앞에서 깨달음을 수습해?”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뭐든 할 수 있으면 해보지 그랬느냐. 제법 재미있었을 텐데.”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해봤다.
벽태산이 자신의 내공이나 영력, 육체의 자유는 대부분 빼앗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감춰둔 한 수가 있었다.
입에 장치해 둔 암기였다.
아주 특수하게 만든 암기로 그걸 쓰면 이가 부서지면서 내부에 감춰둔 암기가 날아가는데, 호신강기를 뚫는 재질로 만들어진 침이었다.
게다가 거기에는 자신이 특별히 만든 독이 묻어 있었는데, 그 독을 만들 때 영력을 썼기에 만독불침이라도 일단 그 독에 중독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이 자신의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니, 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썼는데, 채 절반도 가지 못하고 암기가 증발해 버렸다.
무방비하게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하고 있으니, 잠깐 혼란스러웠다.
‘모를 리가 있나. 지금 날 놀리고 있는 거야.’
사내는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아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덕분에 좋은 걸 얻었다. 응?”
벽태산은 자신과 사내 중간쯤을 쳐다봤다.
그곳에 묘한 영력이 흩어져 있었다.
“이건 뭐지?”
벽태산은 그 부분을 유심히 살피다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네가 한 것이냐?”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사내가 말할 때 앞니 하나가 사라진 걸 본 것이다.
“이가 빠졌구나.”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본 이상, 그쪽은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벽태산은 중간에 있는 영력의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았더니, 발버둥을 치긴 쳤구나.”
벽태산은 손가락으로 영력의 흔적을 슥 훑었다.
화르륵!
벽태산의 손가락이 지나간 부분에 시퍼런 불꽃이 피어올랐다.
영력의 흔적이 타오르면서 소멸되었다.
벽태산은 그 과정에서 영력의 성질을 정확히 읽어냈다.
“제법 재미있는 걸 만들었구나.”
그 말에 사내가 또 시선을 피했다.
벽태산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아니, 사내의 영력을 다시 한 번 훑었다.
방금 남은 영력의 흔적은 사내의 것과는 좀 달랐다.
결은 비슷한데, 무언가 변형이 가해졌다.
자신도 방금 깨달음을 얻어서 이제야 감을 잡은 걸 사내가 이미 쓰고 있었다니 좀 신기했다.
물론 벽태산이 깨달은 것과는 아예 수준이 달랐다. 벽태산이 깨달은 것이 바다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거라면, 사내가 한 것은 웅덩이에 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만들어내는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제법이구나. 여기 만들었던 거, 다시 만들어 봐라.”
“그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고는 사내에게 성큼 다가갔다.
어차피 이건 혼백을 태워보면 명확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벽태산에게는 그 대충의 지식만 있으면 충분했다.
사념을 풀어내서 분석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어쨌든 할 수는 있다.
“자, 잠깐! 보여주겠다. 하지만 완벽하게는 안 된다.”
“필요 없다.”
벽태산은 사내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사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벽태산이 사내의 혼백을 쑥 뽑았다.
화르르륵!
“끄으아아아아아악!”
벽태산은 사내의 비명 속에 혼백을 열심히 구웠다.
그냥 확 태워버리면 안 된다. 살살 돌려 구워야 한다.
막대한 양의 사념이 쏟아졌다.
벽태산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동안 태웠던 모든 혼백 중에서 가장 많은 사념을 쏟아내는 놈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 태웠던 비각주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한데 그 사념들 중에 쓸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하, 이것 봐라?”
쓰레기 같은 사념 무더기가 쏟아졌다.
아무 의미도 내용도 없는 말 그대로 쓰레기더미였다.
그 사이사이에 그나마 의미가 있는 사념이 묻혀 있었는데, 그걸 뽑아내야만 했다.
한데 막상 그렇게 뽑아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 관한 사념들이 대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사념이기에 쓰레기더미만 따로 날려버릴 수도 없었다.
그저 모조리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면서 필요한 것들만 뽑아내야 했다.
나중에 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일이리라.
“하, 이 미친놈들.”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쓰레기더미를 흘려보내며 벽태산은 집중해서 쓰레기가 아닌 것들을 뽑아냈다.
만일 예전의 천마 시절에 같은 일을 경험했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혼백을 단숨에 태웠기에 쏟아지는 사념의 양과 속도가 지금보다 수십 배 빨랐다.
심지어 그 와중에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혼백을 살살 돌려 굽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없었다.
벽태산은 혼백을 태우는 속도를 좀 더 느리게 했다.
“끄아아아아악!”
사내의 비명이 더욱 처절해졌다. 아마 더 오랫동안 비명을 질러야 하리라.
벽태산은 집중해서 정보를 뽑아냈다.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다.
아무튼 그렇게 한 덕분에 정보를 뽑으면서 찬찬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 화옥에게 정보를 줄 때는 생각보다 정리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혼백을 모두 태운 벽태산은 묘한 눈으로 사내를 내려다봤다.
사내의 혼백을 태우면서 쏟아진 사념들은 명백히 증혼마공을 대비한 것이었다.
일부러 평소에 쓰레기 같은 기억을 받아들여 혼백에 쌓고, 틈 날 때마다 평범한 기억을 새겨 중요한 정보를 그 안에 감췄다.
아마 보통의 천마에게는 굉장히 효율적인 대응법이 될 것이다.
그 얘기인 즉슨,
“이놈들 천마와 싸울 것을 대비했구나.”
벽태산의 입가가 올라갔다. 좀 더 즐거워졌다.
* * *
화옥은 살짝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오늘 벽태산이 쏟아내는 정보는 평소와 좀 달랐다.
평소보다 훨씬 중요한 정보가 많았고, 그만큼 양도 줄었다.
“아마 앞으로는 계속 이럴 것이다.”
사념을 잘 선별해서 받아들일 방법을 찾았으니까.
아니, 방법을 찾았다고 하기에도 뭐했다. 그저 태우는 속도를 줄였을 뿐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속도를 줄인 덕분에 좀 더 정리된 채로 사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단어나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정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 분석하는 화옥의 수고도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더 정확한 것은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 이들이 쓰는 정보 체계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벽태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사회의 곳곳에 세작을 심어서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했다.
밑바닥부터 고위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직위와 직업에 세작을 심어두었다.
벽태산이 태운 사내는 그 세작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이용하는 방법 몇 가지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무려 수백 년에 걸쳐서 구축한 정보망이었다.
그걸 만든 건 둘째 치고, 지금까지 세작들을 심어서 유지한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정보망부터 제대로 파악해야겠구나.”
화옥이 고개를 숙였다.
“예. 일단 시작해 보겠습니다.”
화옥도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해보지 않고는 성공할지 실패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그걸 이용하는 방법 몇 가지를 확보했으니 시작할 단초는 잡은 셈이었다.
“그나저나······ 제법 높은 놈인 줄 알았는데, 아는 게 별로 없구나.”
“정보 중에 혁련휘, 혁련균, 혁련비광에 대한 내용이 많이 섞인 걸로 봐서는 그 셋과 관계된 자인 듯합니다.”
벽태산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턱을 쓰다듬더니 불쑥 말했다.
“이놈들 뭔가 물 흐르듯 이어지지 않고 딱딱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넌 어찌 생각하느냐.”
화옥이 즉시 대답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듯합니다.”
화옥은 한 호흡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정보만 공유하고 다들 각자 따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무명 내에 계파가 나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벽태산은 화옥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쩌면 내부에서도 경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천마신교를 상대하고자 하는 놈들이 그렇게 내부가 갈려도 될까?
대단히 강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천마신교를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설사 천마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명의 수작인지 몰라도 천마신교의 수뇌부가 몰살당하긴 했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천마신교가 약해졌다고 판단한다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한데 과연 무명이 그걸 모를까?
무려 수백 년에 걸쳐 준비한 놈들인데?
보아하니 이놈들의 목표 중에는 천마신교도 있었다.
그러니 증혼마공에 대한 대비책을 세운 것 아니겠는가.
“새로 태어날 천마 정도는 우습다 이건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건 겪어봐야 안다.
천마는 증혼마공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니다.
물론 증혼마공을 쓰는 천마와 그렇지 않은 천마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벽태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화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데 공자님. 이번에 온 자들은 천무련이 아니라 공자님을 노리고 왔습니다. 한데 만일 무명에 계파가 나뉘어 있는 거라면 다른 놈들이 또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벽태산이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원래 오려고 했던 놈들이 오겠구나. 언제쯤 올 것 같으냐?”
“그들에게 천무련의 진법이 파괴되었다는 정보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진법으로 인해 천무련 내부에 뭔가 문제가 생긴 시점이 되지 않을까요?”
“네 생각은? 그놈들이 그 정보를 입수했을 것 같으냐?”
화옥이 고개를 저었다.
“비각이 사라졌다는 정보는 확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법에 대한 건 모를 공산이 큽니다.”
딱히 천무련이 진법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기도 했거니와, 아직도 하오문도들은 진법을 발동하는 열쇠로 알려진 나무를 중심으로 조사 중이었다.
그 열쇠는 진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시작점이지, 그것이 진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그곳을 아무리 뒤져봐야 진법에 대한 건 알아낼 수 없었다.
하오문에서는 일부러 자신들이 엉뚱한 짓을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 요란하게 조사를 하고 있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럼 조만간 오겠구나.”
과연 어떤 놈들이 올지 기대가 컸다.
“이번에 온 놈보다 더 강한 놈이 왔으면 좋겠구나. 아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저들은 천무련을 이용해서 이목을 이쪽으로 모으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옥의 말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적당히 치고 빠지고자 할 가능성이 높았다.
벽태산의 미소가 살짝 짙어졌다.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 이쪽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면 상황을 오랫동안 고착화 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주 강력한 자가 나서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그놈들이 천무련을 어느 수준으로 판단하느냐가 관건이로군.”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즐거운 기대를 했다. 부디 천무련을 과대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끝
사마위홍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느릿느릿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