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8)
“의선 어르신을 뵙습니다.”
의선은 살짝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반갑네. 한데······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있었나?”
의선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한데 이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의선이라고 확신을 했다.
“방금 전달을 받았습니다. 의선께서 오시니 잘 모시라고 말입니다. 이쪽으로 드시지요. 원하시는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바로 련주님께 가시겠습니까?”
응당 천무련주부터 만나야 하지만, 의선은 고개를 저었다.
의선이 고개를 젓자마자 무사가 얼른 말했다.
“아, 그럼 별채부터 가시는 거로군요. 제가 바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무사는 의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선은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의선은 그냥 무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가면서 뭔가 묘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선은 앞장서서 열심히 걷는 무사를 유심히 살폈다.
“허어.”
의선은 깜짝 놀랐다. 지금 저 무사는 예전 자신이 기루에서 기녀들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봤던 벽태산의 영력은 이런 식으로 쓰기 굉장히 난해했다.
한데 지금 보니 자신이 하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게 쓰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벽태산이 자신에게 선술을 배운 후, 그것을 더 발전시켜서 쓰고 있는 줄 알 것이다.
의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야 자신의 무의식 속에 왜 벽태산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무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별채에 도착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사의 정중한 안내에 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별 말씀을. 오히려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무사는 정중히 인사하고 정문으로 돌아갔다.
의선은 멀어져가는 무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마 저 무사는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신이 선술을 쓸 때마다 걸려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한동안 무사를 바라보던 의선은 심호흡을 한 다음, 별채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에 들어간 의선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력을 품고 있었다.
한 자리에서 영력을 품은 자들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천하에서 영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도 몰랐다.
다들 품은 영력의 크기는 다를지언정 확고하게 자신만의 영력을 갖고 있었다.
의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벽태산이 어디쯤 있을지 파악해봤다.
한데 아무리 둘러봐도, 또 아무리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도 벽태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둘 중 하나다. 벽태산이 여기 없거나, 아니면 있는데 자신이 벽태산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의선은 대번에 후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또 의문이 들었다.
대체 영력도 많지 않은 자가 어찌 경지는 이리도 높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의선은 더욱 집중해서 벽태산을 찾았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어딘가를 바라봤다.
저쪽에서 느껴지는 영력이 너무나 익숙했다.
의선은 홀린 듯 그쪽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쭉 들어가고 나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천추신의와 일침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소청명이 있었다.
저 세 사람이 품은 영력은 자신이 익힌 선술과 아주 흡사했다. 같은 선술을 다른 사람이 익히면 분명히 이렇게 되리라.
의선은 그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야 세 사람이 의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특히 소청명은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의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의선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부터 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래. 내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했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예. 스승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의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청명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된 게냐.”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네가 품은 영력 말이다. 따로 선술을 익힌 것이냐?”
“아······ 이거 말씀이십니까. 이건 공자님께서 해주신 겁니다.”
의선은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뭔가 속임수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
원래 갖고 있던 영력의 성질을 바꾸다니.
그건 물을 모아서 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걸 대체 어떻게 했단 말인가.
의선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청명은 순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저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선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가르침은 무슨 가르침이란 말이냐. 너 스스로 깨우친 것을. 네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예? 그게 무슨······.”
의선은 대답하지 않고 소청명 뒤쪽에서 눈치를 살피는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바라봤다.
“앞으로 네게 가르침을 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기 있는 두 분이다.”
소청명은 멍하니 의선을 바라봤다.
“네가 너무 순진해서 걱정이다. 속아서 기루에 쫓아갈 정도이니······.”
소청명이 뜨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쪽에 있던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소청명을 바라봤다.
의선이 소청명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잘 하리라 믿는다.”
의선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드디어 벽태산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물론 자신의 능력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벽태산이 스스로 드러낸 것이지.
소청명을 뒤로 하고 벽태산을 향해 걸어가는 의선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끝
의선은 벽태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말하면 영력의 양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벽태산에게는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지난번 봤을 때보다 영력의 양이 너무 많이 늘었다.
영력이라는 것은 꾸준한 수련과 깨달음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짧은 기간에 저렇게 급격히 성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은 사람으로 왔군.”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분신으로 오면 안 될 것 같아서.”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감이 좋아.”
분신으로 오면 분신을 가지고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확인해볼 계획이었다.
의선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영력의 성장이 그렇게 빠른 것인가?”
벽태산이 담담히 의선을 쳐다봤다.
“공짜를 너무 좋아하는군.”
지난번 깨달음도 벽태산의 한 마디가 계기였다. 그러니 그것 역시 벽태산에게 받아간 거나 다름없었다.
의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지난번 일은 고맙네. 내 어떻게든 보답할 방법을 찾아보겠네.”
“뭐, 그러든가.”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의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의선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영력 수련에 도움이 되는 장소를 몇 군데 알고 있는데, 그거라도 알려주면 되겠나?”
벽태산이 슬쩍 턱짓을 했다.
그러자 어딘가에 있던 지도가 휘리릭 날아와 벽태산과 의선 사이에 쫙 펼쳐졌다.
“짚어봐.”
의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에 있는 산 몇 군데를 짚었다.
“여기와 여기, 여기. 영기가 넘쳐흐르는 장소라네. 무공 수련에도 좋지만, 영력 수련에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지.”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 벽태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몇 군데가 더 있는데, 거긴 내가 이미 써먹어서 영기가 말라붙었네. 하지만 영맥이 제대로 지나는 장소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걸세.”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 몇 군데를 더 짚었다.
“여기, 여기, 여기, 여기일세.”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의선을 쳐다봤다.
“고작 네 군데에서 수련한 걸로 그만한 영력을 얻었다고?”
“크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의선은 잠시 고민하다가 몇 군데를 더 짚었다.
벽태산은 의선이 짚어준 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많이도 찾았군.”
“자네도 알다시피 영력 수련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천하를 내 집처럼 돌아다니면서 찾은 걸세. 뭐, 하다보면 요령도 좀 생기고.”
영맥을 찾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풍수지리다. 하지만 그걸로 찾는 건 한계가 있었다.
진짜 제대로 된 영맥은 그런 걸로 알 수 없다. 그저 발품을 팔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의선은 하도 많은 영맥을 찾아다닌 덕분에 영맥 근처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들을 몇 가지 알아냈다.
또한, 지도나 지형만 보고도 영맥이 있을 법한 자리를 짐작하는 요령도 찾았다.
풍수지리와는 달리 의선만 아는 요령이었다.
“그 요령이라는 걸 말해주면 대충 계산이 맞겠군.”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입을 쩍 벌리고 바라봤다.
하지만 벽태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대충 짚어주면 거길 어떻게 찾지? 좀 더 세밀한 지도가 필요해. 그러니 그려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필묵이 있는 서탁 쪽으로 턱짓을 했다.
의선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그런 벽태산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의선은 서탁에 앉아 지필묵을 들고 자신이 짚었던 곳의 간략한 지형과 영맥의 위치를 알기 쉽게 그렸다.
그러는 동안 벽태산은 옆에서 지도를 유심히 살펴봤다.
의선이 짚은 부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뭔가 머릿속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떠오를 듯하면서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벽태산은 서두르거나 조급해 하지 않았다.
이런 건 억지로 한다고 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다 보면, 결국은 자신에게 다 오는 법이다.
의선이 그림을 다 그려갈 무렵, 누군가 벽태산의 방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의선은 그림을 마무리하며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저, 들어가도 되나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공예랑이었다.
당연히 된다는 듯 문이 활짝 열렸다.
사공예랑은 이렇게 갑자기 문이 열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라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안에 벽태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들어서 안으로 옮겨야 하느냐.”
벽태산의 말에 사공예랑은 흠칫 놀라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연신 의선을 힐끗거렸다.
벽태산에게 죽여 달라는 말을 하러 왔는데, 외부인이 있으니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의선은 일단 그림을 마무리 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붓을 서탁에 탁 내려놓았다.
“끝났네.”
의선이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의선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서탁 위에 있던 그림들이 허공에 파르륵 떠올라 한쪽 구석으로 가서 차곡차곡 쌓였다.
저건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볼 것이다.
벽태산이 저걸 받은 건, 꼭 저곳에 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영맥에서 수련하지 않아도 벽태산은 얼마든지 영력을 모을 수 있었다.
영맥에서 몇 달 수련하는 것보다 스무 살쯤 되는 기녀 두어 명의 혼백을 터는 것이 훨씬 나았다.
반강시는 말할 것도 없다.
의선이 몇 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작 백여 년 수련한 걸로 저 정도 영력을 쌓을 수 있을까?
평범한 수련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기에 다들 사도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부작용에 시달리고.
그런 의선을 이렇게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데, 굳이 영맥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벽태산이 이걸 받은 이유는 좀 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쓸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기회가 왔을 때 만들어 두는 것이 나았다.
지금이야 의선이 함께 있지만, 언제 우화등선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의선은 그림을 마무리 한 다음에야 방에 들어온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응?”
의선은 사공예랑을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뻐서 그런 건 아니었다.
사공예랑의 외모가 상당히 뛰어난 건 사실이었지만, 의선에게 외모는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시선이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보고 있으니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단한 재능이로구나.’
의선이 보기에 사공예랑은 선술을 익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자질이 보였다.
굳이 자세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마 이번 깨달음을 얻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자세히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의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공예랑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사공예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선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특히 벽태산을 볼 때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의선은 사공예랑 앞으로 다가간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의선이라는 별호를 들어본 적 있나?”
의선의 물음에 사공예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천하에서 제일 유명한 의원 아닌가요?”
무명에서 지내긴 했지만, 세상과 담을 쌓은 건 아니었다.
특히 사공예랑처럼 지휘관에 앉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 일부러라도 세상의 소식을 듣게 한다.
자칫 시야가 좁아져 실수라도 하면 손해 아닌가.
“다행이군. 내가 바로 그 의선일세.”
“예? 정말요?”
사공예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가 알기로 의선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의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