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0)
주먹이든 발이든 모조로 손으로 빗겨냈다. 단 하나도 정타가 나오지 않았다.
의선의 공격에 변초가 섞이기 시작했다.
굉장히 까다로운 공격이 이어졌다.
꽈과과과과광!
하지만 벽태산은 그럼에도 모든 공격을 잘 흘려냈다.
의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벽태산의 손이 자신의 공격을 빗겨낼 때마다 영력의 폭발이 일어나 몸에 계속 고통이 쌓이고 있었다.
그나마 몸을 채운 영력 덕분에 피해가 누적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놀랍구나. 저 어린 나이에 이 정도 무위를 어찌 쌓았단 말인가.’
의선은 초식 대결은 자신이 아래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자신과 벽태산 사이에는 그 정도 차이밖에 없었다.
한데 그 종이 한 장이, 체감하기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한 장의 간격을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메울 수가 없었다.
의선이 내지르는 주먹과 발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벽태산은 그 모든 공격을 적당히 흘려내다가 어느 순간 눈을 빛냈다.
의선조차 모르는 공격과 공격 사이의 빈틈에 벽태산의 주먹이 벼락 같이 파고들었다.
꾸아앙!
이번에도 역시 영력의 충돌로 폭발이 일어났다. 한데 다른 폭발 보다 훨씬 컸다.
의선은 영력의 반발력에 뒤로 쭉 밀려났다.
그리고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오연히 서 있었다.
“제법 싸울 줄 아는구나.”
벽태산의 말에 의선은 기가 찼다.
자신이 저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벽태산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진지했다.
세상에 천마에게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저건 무림맹주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 벽태산 나름대로 큰 칭찬을 해준 것이다.
“날 제법 즐겁게 해줬으니, 나도 그리 해야겠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의선은 이놈이 또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의선은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고 눈을 번득이며 벽태산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벽태산은 의선이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담담히 다가갔다.
그리고 지척에 이르렀을 때 느릿느릿 주먹을 내질렀다.
충분히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있는 주먹질이었다.
의선의 얼굴이 혼란으로 뒤덮였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느린 주먹이라도 벽태산이 내지르는 주먹이었다. 막거나 피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의선의 선택은 피하는 것이었다.
막으려면 필연적으로 또 벽태산의 영력과 충돌을 해야 한다. 그 여파로 밀려드는 고통을 굳이 겪을 생각이 없었다.
피해도 그냥 피해선 안 된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변초가 개입될 여지가 줄어드니까.
벽태산의 주먹은 의선의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
의선은 몸을 살짝 비틀며 무릎을 굽히는 것만으로 벽태산의 주먹을 완벽하게 피해냈다.
한데 그 순간, 벽태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등에 강렬한 충격이 작렬했다.
꽈앙!
“커억!”
영력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컸기에 아예 피해를 안 볼 수는 없었다.
의선은 앞으로 한 바퀴 굴러 거리를 벌리고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의 눈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설마 공격 순간 공간을 뛰어넘을 줄은 몰랐다.
만일 이걸 빠르게 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 뒤로 몇 수의 공방이 더 오갔다.
의선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는 벽태산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벽태산이 온 진심을 다해 공격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큰 낭패를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공격이었다.
“정말 놀랍군.”
의선은 공방을 마무리하고 뒤로 물러나 경이로운 시선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금 그건 그저 가벼운 여흥이었을 뿐, 진짜는 이제부터다.”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것보다 더한 것이 남아있다는데 어찌 긴장을 안 하겠는가.
벽태산이 빠르게 의선에게 다가갔다.
속도 자체가 방금 전과는 많이 달랐기에 의선은 긴장한 채 벽태산의 공격을 막았다.
평소보다 영력도 훨씬 많이 쏟아 부었다.
새끼줄처럼 꼬인 영력의 타래로 넓은 막을 만들어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 막을 수십 겹이나 만들었다.
의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벽태산의 주먹이 그 막을 향해 쭉 뻗었다.
그 주먹은 아무 저항 없이 막을 뚫고 들어가 의선의 가슴에 닿았다.
펑!
가벼운 폭발과 함께 의선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날아가는 내내 의선의 표정은 경악과 불신이 뒤섞여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대체 뭐지? 뭘 어떻게 한 거야?’
마치 영력 따위는 전혀 개입하지 않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쿠당탕탕!
의선이 바닥을 꼴사납게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대자로 누워 멍하니 있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벽태산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의선에게 벽태산이 한 마디 던졌다.
“궁금하면 남든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끝
의선은 침상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등선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여겼다.
마지막 남은 미련 한 조각을 버리고 나면 바로 등선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오늘 거기에 금이 갔다.
의선은 누운 채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봤다.
그의 손에 희미한 영력이 뭉쳤다.
아무리 살펴봐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한데 아까는 왜 그랬을까? 아니, 벽태산은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아까는 정말 놀랐다.
그 순간, 의선은 자신의 영력이 사라진 줄 알았다.
아무리 같은 계열의 영력이라고 해도, 타인의 영력이 부딪혀 오면, 당연히 반발하기 마련이었다.
계열이 같더라도 혼백이 다르기에 영력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만 달라지더라도 영력과 영력은 반발한다.
한데 아까, 벽태산은 전혀 반발 없이 자신이 펼친 영력의 막을 통과했다.
그러니 영력이 사라졌다고 착각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의선은 문득 자신의 제자가 떠올랐다.
잠깐 안 보던 사이, 제자의 영력이 바뀌어 있지 않았던가.
의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설마······!”
방금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한데 말은 안 되는데 이미 현실로 벌어진 일이었다.
‘설마 영력의 성질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의선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늘 있었던 일은 말이 안 된다.
그걸 하려면 자신의 영력과 아주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영력의 성질을 자유자재로 바꾼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의선은 다시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또 끝이 나지 않을 생각에 잠겨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결국 한 잠도 자지 못하고 날이 새고 말았다.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앞으로 이걸 해결하기 전까지 자신은 벽태산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적어도 등선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 * *
이번에 무명의 혁련가에서 무한으로 파견한 사람은 혁련국이라는 자였다.
혁련가의 방계 중 한 명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그를 무한으로 보냈다는 것은 이번 일을 혁련가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면 심가나 악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좀 떨어지는 자들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떨어질 뿐, 그들 역시 뛰어난 인재임은 분명했다.
혁련국은 무한으로 들어와 굉장히 조용히 활동했다.
그리고 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로 정보수집 보다는 무한에 자리를 잡는 것을 더 중점에 두고 활동했다.
나대지 않고 조용히 무한에 스며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혁련국은 그렇게 하면서 나머지 두 가문에서 나온 자들과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관심을 두었다.
왠지 그들이 주는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에 집중해도 어려울 판에, 같은 편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니.’
절로 한숨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혁련국의 눈에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어떤 임무든 전부 성공해왔다. 한데 고작 이 정도 임무에 흔들릴 리 있겠는가.
좀 까다롭고 짜증은 나겠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웃고 있으리라.
오늘부터는 슬슬 목표로 한 곳들을 조금씩 살펴보기로 했다.
그가 가주로부터 받은 명령은 몇 군데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현천장이었다.
일단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현천이라는 이름은 천마신교가 아니라면 쓰는 곳이 없었다.
우연이라고 해도 반드시 한 번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곳이었다.
무명에서는 현천장을 천마신교가 세운 지부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걸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두 번째는 금벽상단이었다.
그곳 역시 중요했다. 무명에서 파악하기로 최근 벌어지는 일들의 중심에 금벽상단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 다음은 백화루였다.
백화루는 하오문의 본단이었다. 최근 무명과 가장 많이 얽힌 조직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또한 하오문은 천무련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해체하듯 확인해야 할 곳이었다.
상부에서도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혁련국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곳은 바로 무한의 흑도 세력들이었다.
무한에 들어와서 살펴보니, 더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들의 배후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천하 곳곳에 그렇게 많은 눈과 귀를 심었는데도 이런 것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다니.’
당연히 무명의 눈과 귀는 무한에도 있었다.
한데 무한에 있는 자들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하오문 때문이었다.
아니, 비단 하오문만이 아니었다. 무한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의심스러웠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무한은 벽태산이 나선 이후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중요한 정보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졌다.
무명의 정보원들은 그 정보를 빠르게 모아 평소처럼 무명으로 전달했다.
한데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의 정보원이 노출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노출된 줄도 모르고 활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결국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다.
제거된 것이다.
그들을 잡아간 자들은 소속이 다양했다. 하오문도 있었고, 흑도들도 있었고, 낭인도 있었다. 심지어 상단 소속 무사들까지 있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벽태산 휘하에 있는 자들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무명에서는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정보원들이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 무한에 있는 무명의 정보원들은 쥐죽은 듯 몸을 움츠렸다.
그 뒤로도 정보를 모아 무명 쪽에 전달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한 자들 전부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
그렇게 추가로 날아간 정보원이 열 명도 넘었다.
혁련국은 무한에 있는 정보원들과 은밀히 접촉해 그들이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전달 받고, 향후 어떤 식으로 정보망을 유지할지 의논하기로 했다.
지금 혁련국은 무한에 있는 주루에서 가볍게 술과 안주를 즐기고 있었다.
총 오 층짜리 주루였는데,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주문할 수 있는 술과 요리의 종류가 달랐다.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비쌌고, 혁련국은 적당히 삼 층 창가에 앉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수하 한 명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수하가 무한에서 활동하는 정보원 한 명을 대동하기로 했고.
그냥 다짜고짜 만나자고 통보하면 안 된다.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미리 잘 짜둬야 한다.
어떤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혁련국의 수하가 할 일이었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일을 수없이 처리해왔으니 이번에도 별 문제는 없으리라.
‘그나저나 심가와 악가에서 온 자들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그들과의 교류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
나중에는 수를 써서 그들을 감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일단 무한에 자리를 잡는 것이 급하니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었다.
혁련국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창밖으로 수하의 모습이 보였다.
정보원을 찾았는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걸 보던 혁련국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왜 이리 느낌이 안 좋지?’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원인을 찾으려고 수하와 함께 오는 정보원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봤을까, 그들이 막 주루로 들어온 순간, 혁련국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혁련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여기 들어오면서 미리 봐뒀던 탈출구로 향했다.
이 주루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두 군데 마련되어 있었다.
혁련국은 입구에서 더 멀기에 들어온 자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쪽 계단으로 향했다.
안타깝지만 수하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수하가 데려오는 자는 무명의 정보원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정보원의 모든 얼굴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몇 가지 확인절차를 통해 정보원을 구분할 뿐이었다.
하지만 혁련국은 더 확실히 정보원을 구분할 방법이 있었다.
혁련국은 정보원 중에서 몇 안 되는 혈령마공의 소유자였다. 그는 혈령마공의 파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무명에 소속된 자라면 무조건 갖고 있어야 한다.
바로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영력을 활성화 한 다음, 집중하면 파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보다 경지가 지나칠 정도로 높아서 아예 들여다보지 못할 때뿐이었다.
한데 지금 수하가 데려오는 정보원에게는 파편이 없었다. 저자는 절대 무명 소속이 아니다.
‘확인절차가 새 나갔어. 대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