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2)
사마위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벽태산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고통의 시간은 끝났다.
사마위홍이 그러고 있을 때, 멍하니 있던 의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얼른 벽태산을 뒤쫓아 달려갔다.
“어디 가십니까?”
사마위홍이 다급히 묻자, 의선이 달려가며 소리쳤다.
“배웅 좀 하고 오겠네.”
후다닥 달려가는 의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마위홍이 흐뭇하게 웃었다.
“의선이라니.”
의선의 합류는 무림맹조차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한데 그걸 자신이 해낸 것이다.
물론 벽태산이 한 일이지만, 어쨌든 의선이 머무는 곳은 이곳, 천무련 아닌가.
사마위홍은 기분 좋게 집무실로 돌아갔다.
이제 벽태산이 없는 천무련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 다시 한 번 차근차근 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다.
* * *
의선은 벽태산이 탄 마차에 올랐다.
벽태산이 그런 의선을 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뭐지?”
의선은 벽태산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배웅일세.”
벽태산은 의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무슨 배웅을 같이 마차를 타고 가면서 한단 말인가. 이건 배웅이 아니라 그냥 같이 가겠다는 뜻 아닌가.
의선은 벽태산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얼른 말했다.
“여기 남을 걸세. 그냥 생각해보니 자네와는 싸우기만 했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것 같아서 시간을 좀 낸 것뿐일세.”
“뭐, 그러든지.”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의선이 함께 타는 바람에 원래 벽태산과 함께 마차를 타려던 몇 사람이 마차에 오르지 못했다.
덕분에 의선은 벽태산과 단둘이 마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원하던 상황이었다.
이내 마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마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의선이었다. 의선은 품에서 옥구슬을 꺼냈다.
“이거,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벽태산이 옥을 쳐다보자, 의선이 고개를 저었다.
“옥에 영력을 담을 수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비취보다는 백옥이 더 효과적이지.”
그건 또 몰랐던 정보인지라 벽태산이 눈을 빛냈다.
“아무튼 내가 말하는 건 옥이 아니라 이 옥 안에 담은 영력일세.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그냥 하면 돼.”
의선은 입을 다물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 직접 깨닫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는데.”
영력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이 옥에 담긴 영력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도 침묵을 깬 것은 의선이었다.
“볼수록 신기하군. 대체 그 많은 영력은 어떻게 모았나?”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릴 때부터 영력을 모았어도 최소 예닐곱 살은 되어야 할 테니, 기껏해야 십년이 좀 넘을 텐데, 그 많은 영력을 쌓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편법을 이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영력을 편법으로 모으면 확실히 티가 나기 마련이다. 부작용도 나타나고.
한데 벽태산의 영력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의선인 자신이 쌓은 영력보다 더 순수했다.
“대체 몇 살부터 시작한 건가?”
의선의 물음에 벽태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일 년쯤 된 듯하군.”
“뭐?”
의선은 경악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무슨 천마도 아니고 일 년 만에 그 정도 영력을 어떻게 쌓는단 말인가!”
의선의 외침에 벽태산이 눈을 번득였다.
“천마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야?”
의선은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끝
벽태산의 강렬한 눈빛에 의선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뭐······ 잘 아는 건 아니고 그저 지나가다가 몇 번 본 게 전부일세.”
“지나가다가 봤다고? 언제?”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일 의선 정도 되는 자가 근처에 있었다면 자신이 절대 모를 리 없었다.
지금의 자신이 아니라 죽기 전의 자신, 그러니까 천마이던 시절이라면 감각이 약간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의선을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의선이 가진 영력의 기질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 이질감을 못 느끼는 건 말이 안 된다.
한데 의선이 천마를 본 적이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벽태산이 빨려들 것처럼 깊은 눈빛으로 의선을 쳐다봤다.
의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내 말을 왜 의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거짓을 말한 적이 없네. 진짜로 봤으니까. 뭐······ 먼발치이긴 했지만 천마도 분명히 내 존재를 확인한 것 같았고.”
“천마가 알고 있었다고?”
벽태산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그 부분의 기억이 날아간 건가?
자신이 천마이던 시절 쓰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가끔 천마신교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의 얼굴이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강렬한 기억을 잊었을 것 같지는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의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아무튼 굉장히 오래 전의 일일세.”
벽태산은 가만히 의선의 말을 들었다.
“얼마 전에 천마가 죽었다지? 그 죽은 천마는 아니고, 전대 천마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었지. 그리고 그 전대 천마도.”
벽태산의 표정이 살짝 편안해졌다.
“그렇군.”
그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전대와 전전대 천마를 본 거였다.
“천마들이 네 존재를 확인했는데 그냥 보내줬다고?”
이번엔 의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나도 그 점은 좀 이해가 안 가는군. 내가 있는 쪽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른 데로 가더군.”
“그래? 이상하군.”
확실히 그건 좀 이상했다. 만일 자신이라면 바로 달려가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싸워서 부수고 태웠겠지. 아마 의선은 자신이 가진 영력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의선은 당시의 일이 떠오르는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천마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네. 온 세상을 몽땅 태워버릴 듯한 영력을 가득 품고 있었지. 영력이 어찌나 많은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혼백이 뜨거워질 지경이었어.”
증혼마공으로 무분별하게 혼백을 태워 영력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아마 벽태산도 예전 천마이던 시절 품었던 영력도 딱 그러했을 것이다.
“사실 이상했다네. 아무리 천마라지만 그렇게 많은 영력을 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따라갔군.”
의선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따라갔지. 아주 멀리 떨어져서. 아마 천마도 알고 있었을 걸세.”
의선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천마는 적의 혼백을 태워 그걸 모조리 빨아들였네. 그게 천마가 가진 영력의 비밀이었어. 정말······ 무서웠다네. 아마 나도 더 다가갔다간 같은 꼴이 되었겠지.”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그리고 아마 천마도 큰 타격을 입었을 테고.”
그 말에 의선이 의아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왜 가만히 뒀을지 이상해서 좀 생각을 해봤는데,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차린 거였어.”
의선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마의 영력이랑 안 맞는다고. 네가 가진 영력이 너무 순수하고 많아.”
아마 의선을 태워 흡수했다면 영력이 반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천마의 운명은 딱 거기까지였을 테고.
벽태산이 서늘한 눈으로 의선을 쳐다봤다.
“그래서 이젠 한 번 해볼 만한가?”
의선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영력의 양이 상대가 안 되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아직도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남의 혼백을 태워 얻은 영력보다 네가 차곡차곡 수련으로 쌓은 영력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그건······.”
의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영력의 양과 무관하게 강한 자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벽태산의 영력은 자신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도 벽태산은 자신을 압도한다.
어쩌면, 어쩌면 그때의 천마와 자신과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의선이 또 한 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걸 보는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이번엔 좀 더 재미있게 한 판 붙어볼 수 있겠어.”
무아지경에 빠져 그 말을 들을 수 없음에도, 의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혁련국은 식은땀을 흘리며 침상에 누웠다.
오늘은 정말 위험했다. 하마터면 하오문 놈들에게 걸릴 뻔했다.
설마 자신의 수하들을 파악한 다음, 그들을 감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그보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더 소름끼쳤다.
자신의 수하들은 무명에서도 손꼽히는 정보원들이다. 혈령마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무공도 상당히 고강했다.
한데 그런 수하들을 파악한 것도 모자라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다니.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피하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도 꼼짝없이 걸려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 그가 데려온 수하들 중 열 명이 날아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수하들과 하오문의 싸움을 지켜봤는데, 하오문 놈들은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했다.
저런 고수가 왜 정보원이나 하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작 자신의 수하들을 제압한 건 하오문도들이 아니었다.
그놈들은 분명히 무한에서 활동하는 흑도 놈들이었다.
“역시 흑도 놈들한테 뭔가 있어.”
안 그래도 수상해서 지켜보려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지만.
혁련국은 문득 다른 두 가문에서 온 자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자신의 수하들은 이제 서른 명이 남았다. 그들에게는 꼼짝 말고 숨어 있으라고 지시해뒀다.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선택해야 한다. 몰래 무한을 빠져나가 다시 돌아갈지, 아니면 완벽한 기회를 포착해 뭐 하나라도 건져낼지.
직감은 계속 그냥 돌아가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냥 돌아갔다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혁련국은 일단 눈을 감았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좀 풀고, 머리가 맑아지고 나면 그나마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 * *
의선은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마차 안이어야 하는데, 마차가 아니라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객잔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의선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소청명이 깜짝 놀라 휙 돌아봤다.
“스승님!”
의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청명아. 이게 어찌 된 게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둘러보니 이곳은 제법 큰 객잔의 별채 같았다.
“스승님의 깨달음을 방해하지 않으려 제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을 이리로 모신 것은 공자님입니다.”
“벽 공자가? 어떻게?”
만일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면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공을 이용한 허공섭물을 통해 데려왔어도 바로 무아지경에서 벗어났으리라.
그랬다면 깨달음도 날아갔겠지.
하지만 자신은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깨달음도 온전히 수습했고.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못 봤습니다. 스승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공자님께서 마음먹으시면 볼 수도 기척을 느낄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아마 영력을 이용해 존재감을 감췄던 모양이다. 의선도 비슷한 걸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벽태산은 대체 어떻게 자신이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이리로 옮길 수 있었단 말인가.
“벽 공자는 어디 있느냐?”
그러자 소청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공자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선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소청명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일까? 왠지 소청명이 자신의 제자라는 것보다 벽태산의 사람이라는 쪽에 훨씬 더 무게감을 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추신의와 일침괴였다.
“안 그래도 묘한 느낌이 들어서 와 봤더니, 역시나.”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의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감축 드립니다. 이제 등선이 얼마 안 남으신 것 아닙니까?”
“고맙네. 하지만 등선은······ 아마 당분간 어려울 듯하네.”
“예? 오늘내일 하신다고 들었는데?”
왠지 어감이 묘해서 의선의 또 멈칫했다.
그걸 본 일침괴가 천추신의를 타박했다.
“야이! 말을 그따위로 하면 어떻게 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꼭 죽을 날 받아놓은 것 같잖아!”
의선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왠지 천추신의가 한 말보다 일침괴가 한 말이 더 거슬렸다.
소청명은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의선은 최대한 담담하려 애썼다.
“벽 공자와의 약속이 있어서 그게 끝나기 전까지는 등선할 수 없네.”
의선의 담담한 말에 천추신의가 감탄했다.
“캬. 역시 우리 공자님. 이제 등선하시는 분도 끌어내리시네. 하여간 남 잘되는 꼴······.”
천추신의는 말을 하다 말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일침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말을 끝내면 네놈 삶도 끝날 것 같았다고 할까.”
“형님, 거 불길한 말 하지 마쇼. 내가 가면 혼자 갈 거 같소? 난 문어발처럼 다 끌어안고 갈 거요. 형님만 편안할 거라는 착각은 곤란하지.”
일침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내가 저런 걸 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