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3)
하오문이 이렇게나 강력한 조직인 줄 그동안 몰랐다는 것이 말이다.
“하오문 놈들이 낙양과 무한의 세작들을 싹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두면 다른 지역에 심어둔 세작들도 전부 사라질 겁니다.”
“확실히······ 뭔가 조치를 하긴 해야 할 듯합니다.”
사실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다.
“방법이 문제입니다.”
하오문을 모조리 처리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뇌부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전 백화루주가 하오문주가 되었을 때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했다.
일단 수뇌부를 장악하고 나면 끝이다. 아래의 잔뿌리들이야 아무리 많아봐야 위에서 내리는 명령을 수행할 뿐이니까.
“하오문 수뇌부에 대해서 파악한 바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군요.”
“일단 하오문주의 위치는 확보했습니다. 현재 천무련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더군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본단은 무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 있는 백화루라는 기루가 가장 의심스럽고, 현천상단, 현천장도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 뒤로도 하오문에 대한 논의가 계속 되었다.
하지만 논의하면 할수록 하오문이 결코 만만치 않은 조직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아무래도 하오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무한과 낙양에서 사라진 세작들도 다시 심어야 합니다.”
“목표는 수뇌부를 찾아내는 겁니다. 하오문주 하나 제거한다고 끝나지 않으니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오늘부터 하오문의 수뇌부를 찾아내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럼 의선 문제는······ 일단 어르신들께 부탁을 드려보고, 그도 안 되면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혁련가주의 말에 나머지 두 가주가 눈을 번득이며 그를 바라봤다.
“방법이 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뭐가 되어도 될 듯하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자 합니다.”
혁련가주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머지 두 가주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뭔가 해내긴 해냈구나.’
두 가주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마음이 초조해졌다.
끝
사공예랑은 무한으로 온 이후 굉장히 무료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벽태산은 그녀를 이리로 데려온 다음,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아니, 생활 자체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윤택해졌다.
덕분에 몸은 편해졌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벽태산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의선과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사라진 날이었다.
그때 자신을 의선이 탐냈고, 벽태산이 막으면서 둘이 나갔다. 아마 싸웠으리라.
그러니 얼마나 기대 되겠는가. 무려 자신의 앞날이 달린 일이었다.
한데 황당하게도 그 뒤로 벽태산을 볼 수가 없었다. 의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꼭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으려는 순간, 그걸 더 맛있게 요리해주겠다고 가져간 다음, 다시 가져오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여전히 그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것 같은데, 정작 음식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과장 좀 보태서 심장이 짓뭉개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사공예랑은 방에서 나갔다. 그녀에게 배정된 방은 상당히 괜찮았다.
아니, 이곳 현천장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고 편안한 장원이었다.
이 장원 안에 평범한 방은 없었다.
아무튼 사공예랑은 방에서 나와 벽태산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안다. 처음 현천장에 도착하자마자 간 곳이 거기였으니까. 또 벽태산에게 버림받은 장소도 거기였기에 뇌리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벽태산의 집무실로 가는 도중 상당히 많은 사람과 마주쳤다.
다들 사공예랑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공예랑도 그들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인사를 나눴다.
처음 현천장에 왔을 때는, 상대가 그렇게 하니까 예의 차원에서 가식적으로 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제법 진심이 섞여 있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왠지 자신과 벽태산이 깊은 관계라고 오해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묘했다.
사공예랑은 벽태산이 자신을 볼 때의 눈빛을 확인했기에 자신을 여자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비교 대상은 언제나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던 심중곽의 눈빛이었다.
그 음흉하고 욕망이 가득한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사공예랑은 그렇게 담담한 눈빛은 처음이었다. 누구든 자신을 보면 눈빛에 감정이 담기기 마련이었다.
그게 좋은 감정이든 악감정이든.
한데 벽태산의 눈빛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원래 감정 따위는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당시 의선과 마주치면서 보여준 눈빛에 담긴 감정을 분명히 확인했으니까.
아무튼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해졌다.
사공예랑은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벽태산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집무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벽태산도 거기에 있었다.
사공예랑은 문 앞으로 다가가 집무실 안쪽을 기웃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들어가도 되나요?”
벽태산은 집무실 서탁에 앉아 오늘 화옥이 가져왔던 서류 몇 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새외 쪽 진행 상황을 정리한 서류였다.
차질 없이 잘 진행 중이고, 사해방의 도움을 받은 파천회가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서류를 확인하다가 사공예랑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는 그동안 자신이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맞아. 네가 있었지.”
사공예랑은 벽태산의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자신을 까맣게 잊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죽여주신다고 했잖아요!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데 그렇게 말을 하고 보니 뭔가 어감이 묘했다.
엉뚱한 곳으로 생각이 튄 사공예랑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벽태산이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공예랑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랬었지. 자아, 그럼 어떻게 죽여줄까?”
벽태산이 훅 다가오자, 사공예랑이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붉어진 얼굴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 오지 마세요!”
벽태산이 빙긋 웃었다.
“어차피 갈 생각도 없었다.”
그 말과 동시에 사공예랑은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이게 죽는 거로구나!’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정신이 훅 날아가 버렸다.
* * *
사공예랑은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일어났느냐.”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확인했다. 벽태산이 바로 곁에 앉아 있었다.
사공예랑은 흠칫 놀랐다. 벽태산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였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두려웠다.
그녀가 채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벽태산이 말을 이었다.
“달라진 게 있느냐.”
사공예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달라져? 뭐가?’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다가 표정이 확 굳었다.
‘설마,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아니지.’
그녀는 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벽태산이 그럴 사람이었으면 이미 잡아온 날 어떻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정신을 잃게 만든 다음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벽태산이 요구하면 언제든 들어줄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내면을 들여다봐라. 잡생각 하지 말고.”
잡생각이라는 말에 사공예랑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왠지 속마음을 읽힌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녀는 얼른 눈을 감고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눈을 크게 뜨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사공예랑의 눈은 경악으로 일렁였다.
“뭐, 뭐죠, 이게? 대체 제 몸에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관조한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힘의 양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격이 달랐다.
그녀가 원래 가진 힘은 순수한 근력과 내공이었다.
한데 거기에 새로운 힘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 힘은 근력이나 내공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훨씬 고차원적인 상위의 힘이 분명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이 굉장히 복잡하게 수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혈령마공을 익히면 전부 이런 힘을 얻는 걸까? 하지만 심중곽은······.”
심중곽에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혈령마공을 익혔는데도 말이다.
벽태산이 그걸 보고 말했다.
“그런 저급한 것과 비교하려거든 도로 내놓고 가라.”
도로 내놓으라는 말에 사공예랑이 후다닥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몸을 가렸다.
“차라리 다른 걸 가져가세요. 이건 절대 못 줍니다.”
그 반응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저렇게 집착하는 걸 보니 앞으로의 성과도 제법 괜찮을 듯했다.
벽태산은 사공예랑을 유심히 살폈다.
그 눈빛을 오해한 사공예랑이 또 딴 생각을 했다.
‘뭐야, 다른 걸 가져가랬더니, 벌써 내 몸을 원하는 건가? 각오야 했지만······.’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거 뭐지? 좀 이상한데?’
자신은 원래 이렇게 밝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히 선을 그어놓고 지키는 쪽이었다.
한데 갑자기 벽태산과의 거리감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설마 이 힘 때문에?’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제부터 계속 함께 해야 할 사이 아닌가.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는 건 이제 틀렸으니까.
사공예랑이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벽태산은 여전히 그녀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공예랑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예상을 훌쩍 넘어섰다.
그녀의 몸속에서 영력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고작 한 번 죽었을 뿐인데, 바로 영력을 깨운 것도 모자라 스스로 영력을 키우다니, 이 정도면 독보적인 재능이었다.
게다가 잠시 관조한 것만으로 영력을 정확히 파악했다. 이것 역시 재능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도 사공예랑의 몸속에서 영력이 들끓으며 조금씩 성장 중이었다.
“이제 감이 좀 잡히느냐?”
사공예랑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혈령마공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힘이 아니었다.
한데 그걸 이리도 간단히 얻었다. 게다가 지금 얻은 이 힘은 혈령마공보다 훨씬 대단한 힘이다.
그동안 혈령마공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봤기에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까 벽태산이 한 말이 정확하다. 혈령마공은 이 힘에 비하면 저급하다.
자신도 이걸 누군가가 혈령마공과 비교하면 화를 낼 것이다. 내놓고 돌아가라는 말은 아마 농담이 아니었으리라.
사공예랑은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벽태산에게 말했다.
“이거, 안 돌려드릴 거예요. 이제 이건 제 거예요.”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영력이다.”
“영력······.”
“네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발전이 가능한 힘이지.”
사공예랑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네 안을 잘 들여다봐라. 스스로 길을 찾아보아라.”
사공예랑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반드시 해낼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일렁이는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죠? 제가 막 도망쳐 나온 몸이라서 드릴 것이 하나밖에 없네요.”
그 하나가 뭔지는 뻔하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하나면 충분하다.”
사공예랑이 흠칫 놀랐다. 설마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쪽으로는 굉장히 담백한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봤나?’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보아하니 자신의 사람을 함부로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니 은혜도 갚고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일석이조 아닌가.
사공예랑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드리겠어요.”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기대하겠다. 과연 제대로 충성을 바치는지 제대로 지켜보마.”
“아······ 충성. 그렇죠. 충성해야죠. 암요. 제가 드릴 건 충성밖에 없는 거죠.”
사공예랑은 그렇게 횡설수설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가시려고요?”
사공예랑이 다급히 물었다.
“그럼 여기서 뭘 하겠느냐.”
“그건······ 그렇죠. 예. 살펴가세요. 저도 수련을 해야 하니까요.”
그녀는 밖으로 나가는 벽태산의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를 확실히 봤다.
왠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끝까지 답을 찾지는 못했다.
사공예랑은 침상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다시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집중했고, 곧바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 * *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화옥의 물음에 벽태산이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아까부터 계속 웃고 계셔서······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불편할 일이 뭐 있겠느냐. 좋은 일이라······ 글쎄다, 아직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구나.”
화옥은 의아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동안 벽태산은 이렇게 모호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