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98)
“실패?”
“암습도 실패하고 그들의 주변을 살피는 것도 실패했습니다. 조력자가 너무 많습니다.”
천독검은 어이가 없었다.
“조력자가 그렇게 많은데 지금까지 눈치도 못 채고 뭐 했느냐?”
“실력이 저희보다 위입니다. 손도 못 써보고 전부 당했습니다.”
천독검의 가슴에 불안감이 슬며시 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애들 싹 모아. 당장 치러 간다. 그놈들 지금 어디 있어?”
“해독약을 잔뜩 뿌린 다음 주루에 갔습니다.”
“그 짓을 하고서 술을 마시러 갔다 이거지?”
천독검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검은 가루가 들어 있었다.
“일단 가서 이거 술에다 풀어. 할 수 있지?”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애들 모으는 것도 잊지 말고. 그놈들이 그걸 먹은 다음 곧장 칠 테니까.”
“예.”
수하가 밖으로 나가자, 천독검 원구악은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진짜 제대로 된 위기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도 위기는 많이 겪었다. 그 모든 위기를 박살 내고 십대고수가 되었다.
원구악은 이를 악물고 방에서 나갔다.
이제 그놈들을 징치할 시간이다.
끝
혼천마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사방으로 흩어졌던 혼백이 다시 돌아와 짜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에서 깼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리고 감각이 온전한지 확인했다.
감각이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마치 깊이 잤다가 일어난 것처럼 나른하면서도 개운했다.
내공을 확인해봤다. 반도 안 남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활력이 넘쳤다.
기감을 주위로 쫙 펼쳤다.
근처에 사람이 있었다.
다섯 명이었고, 무공을 익힌 사내들이었다.
더 넓게 펼쳐도 그들 외에는 없었다. 숲의 싱그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은 숲 속 어딘가였다.
혼천마는 자신의 상태와 주변에 있는 사내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밝았기에 눈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혼천마는 내공을 이용해 그걸 줄였다.
“깨어나셨군요. 몸은 좀 어떠신지요.”
사내의 말투와 태도가 워낙 공손했는지라 혼천마는 이들을 전부 제압하려는 계획을 잠시 뒤로 미뤘다.
일단 어떻게 된 상황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혼천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느냐.”
“혼천마 어르신이라 들었습니다.”
“그래. 알고 있구나. 하면 너희는 누구냐?”
“저희는 무명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들이 어르신을 여기까지 모시고 왔습니다.”
혼천마는 다섯 사내를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다.
“무명이라······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기분 좋은 곳은 아니로구나.”
그렇게 말하는데도 사내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저희 가주님께서 어르신을 되살리셨습니다.”
혼천마는 그 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옷을 걸치지 않고 있었기에 몸을 확실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한데 이건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손발의 크기나 모양, 팔다리의 길이, 그리고 피부까지 전부 달랐다.
“거울.”
사내들은 그 말을 할 거라고 예상하기라도 한 듯 바로 거울을 대령했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 혼천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 이게 나라고?”
거울 안에는 젊고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너무 젊은 몸이었는지라 내공이 부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섯 개의 단약이 담긴 목함을 공손히 내밀었다.
“비전의 기술로 만든 영약입니다. 생전의 내공을 모두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보충은 될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단약은 혁련가에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든 영단이었다.
보통은 하나만 먹어도 다 소화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응축되어 있었다.
혁련가주는 그런 것을 다섯 개나 준 것이다.
혼천마라면 전부 온전히 힘으로 흡수할 수 있을 거라 믿고서.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혼천마는 망설이지 않고 그 다섯 개의 영단을 삼켰다.
그의 주위로 막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콰아아아아!
다섯 사내는 기겁하며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주변의 기운이 혼천마에게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사내들의 내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제어할 수 없게 된 내공 일부가 흩어져 혼천마에게로 갔다.
그렇게 흩어진 내공은 다시 차오르지 않았다.
사내들은 더 뒤로 물러났다.
이내 기의 폭풍이 사그라졌다.
사내들은 얼른 혼천마에게 다가갔다.
혼천마는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있었다. 내공이 늘어나서 그런지 제법 쓸 만해졌다.
몸 자체는 예전 자신의 몸보다 나았다. 골격이나 근육의 질도 뛰어났다. 게다가 훨씬 젊다.
이 육체의 주인도 생전에 열심히 단련을 했는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몸에 남아 있었다.
혼천마는 사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더 설명할 말 있느냐?”
“가주님께서 전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혼천마는 코웃음을 쳤다. 분명히 살려준 대가를 치르라느니 하는 개소리일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무한 근처입니다.”
“무한? 멀리도 왔구나.”
“예. 멀리 왔습니다. 무한에는 현천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혼천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했느냐, 현천장? 감히 그 이름을 쓴다고?”
“예. 확실히 있습니다. 가주님께서는 어르신께서 현천장을 응징해 달라 하셨습니다.”
혼천마가 콧김을 훅 내뿜었다.
“좋아. 받아주마. 현천장, 내가 확실히 응징해 주지. 그 다음에는? 설마 그걸로 끝이냐?”
사내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가주님께서 몇 가지 부탁을 더 드리실 거라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편의는 저희가 전적으로 봐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모든 것을 그냥 하시면 됩니다. 필요하신 건 말씀만 하시면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혼천마가 그런 사내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싫다고 해도 소용없는 거겠지?”
“가주님께서는 어르신께서 결코 거절하지 않으실 거라 하셨습니다.”
혼천마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금제를 박아놨잖아. 그러니 언제든 날 제어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이 정도 안전장치야 인정할 수밖에. 하지만 나중에 내가 이걸 제거하고 나면 너희도 긴장 좀 해야 할 거다.”
사내는 혼천마의 말을 들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날 살린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난 분명히 신교의 뇌옥에서 죽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혼천마가 갑자기 인상을 쓰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환마, 그 씹어 먹을 놈. 내가 절대 가만 안 둔다.”
혼천마는 한동안 분노를 삭이다가 사내를 쳐다봤다.
“안내해라. 현천장의 이름을 함부로 쓰는 겁 없는 놈들한테로.”
사내가 고개를 숙인 후, 얼른 움직였다.
다섯 사내는 거기서 일단 흩어졌다. 그리고 한 명이 혼천마를 무한으로 안내했다.
혼천마는 속으로 분노를 차곡차곡 쌓으며 그 뒤를 따랐다.
* * *
번천혈응은 천경완의 검을 막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꽝! 꽝! 꽝! 꽝!
어찌나 절묘하게 빈틈만 노리고 찔러대는지 그 때마다 기겁해서 막아야 했다.
문제는 내공이었다.
번천혈응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내공은 자신이 훨씬 더 많았다. 한데 한창 싸우다보니 어느새 내공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천경완은 여전히 쌩쌩했다. 느껴지는 기운의 크기도 상당했다.
‘왜 내 내공이 더 빨리 줄어드는 거지?’
딱히 원인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내공을 쓰는 효율은 자신이 더 높으면 높았지 떨어지지 않는다.
번천혈응은 천경완의 검을 막아낼 때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을 천경완이 쳐낼 때마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천경완이 내공을 쓰는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을.
물론 동년배들 중에서는 저 정도 효율을 끌어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주 독보적이다.
하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번천혈응이 보기에 자신이 최소 삼 할 이상 더 효율적으로 내공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으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번천혈응은 위기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러다간 실력 때문이 아닌 내공이 모자라서 당한다.
천경완은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표정도 눈빛도 그대로였다. 지극히 담담한 상태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천경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실력은 위인데 내공이 모자라서 질 것 같지?”
번천혈응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닥쳐라. 어차피 네놈은 뭘 하든 죽는다. 그게 운명이야.”
천경완이 피식 웃었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제대로 할 테니까 어디 잘 버텨봐.”
천경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가닥 검기가 번천혈응의 빈틈 세 곳을 동시에 파고들었다.
한데 지금까지와 달리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번천혈응은 기겁하며 어지럽게 손을 휘저었다.
꽈과광!
간신히 막아냈다. 한데 받아칠 때의 충격이 지금까지와 차원이 달랐다.
“쿠웨엑!”
번천혈응의 입에서 시커멓게 죽은피가 튀어나왔다.
천경완은 가볍게 원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콰우우!
검풍이 일어나 쏟아지는 피를 모조리 번천혈응 쪽으로 날려 버렸다.
번천혈응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피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다.
기막을 이용해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천경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노림수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눈치는 빠르군.”
천경완은 그렇게 말했지만,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곧장 몸을 날린 천경완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번천혈응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번천혈응은 갑자기 눈앞에서 천경완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사방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콰콰콰콰콰!
주먹질 마다 강력한 기운이 담겨 있어 주변이 말 그대로 초토화 되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주먹질을 언제까지고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주먹질이 살짝 느슨해진 순간, 그 미세한 틈으로 검이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번천혈응이 암담한 눈빛으로 그 검을 바라봤다.
콰직!
간신히 몸을 뒤틀어 급소를 피했다. 하지만 어깨를 깊이 베이고 말았다.
푸화학!
상처에서 피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평범한 상처가 결코 아니었다.
번천혈응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천경완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번천혈응 앞에 도착한 천경완이 다시 한 번 검을 찔렀다.
콰직!
이번엔 옆구리였다. 또 피가 팍 튀었다.
번천혈응의 두 군데 상처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혈을 하려고 혈도를 짚었는데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았다.
“뭐 하고 있어! 나 죽은 다음에 나올 생각이냐!”
번천혈응의 외침과 동시에 공터 밖 숲에서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튀어나왔다.
열 명이나 되는 무사가 곧장 천경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럴 줄 알았지.”
천경완은 그런 상황임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는 천경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쩌저저저저정!
어느새 열 명의 무사들 앞을 막아선 유서연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열 명의 무사는 더 이상 돌진하지 못하고 유서연의 검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번천혈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열 명의 무사는 정말 강한 자들이다. 저들의 협공은 번천혈응도 확실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걸 유서연 혼자서 막아내다니. 그것도 저렇게 수월하게 말이다.
“아까 내가 말했지? 그러다 죽을 거라고.”
천경완은 그렇게 말하며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정!
번천혈응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검격을 막아냈다.
한데 검격을 막을 때마다 손에 혈선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번천혈응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자신의 손은 아주 특별한 과정을 통해 단련했다. 그 어떤 명검보도를 상대하더라도 잔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손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손에 공력을 가득 담았다. 이 정도면 검기가 아니라 검강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한데 천경완의 평범한 검격에 상처가 나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번천혈응이 괴성을 내지르며 남은 모든 내공을 손에 쏟아 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힘을 불어넣어도 검격을 막을 때마다 상처가 하나씩 생겨났다.
이내 번천혈응의 손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슈각! 슈각!
천경완의 검이 아주 깔끔하게 번천혈웅의 양 손목을 잘라냈다.
번천혈응이 암담한 눈으로 자신의 손목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 깊은 곳에서 절망이 일렁였다.
천경완은 지극히 무심하게 검을 좌에서 우로 슥 그었다.
툭.
번천혈응의 목이 떨어졌다.
천경완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유서연이 여전히 열 명의 무사와 싸우고 있었다.
천경완은 그들을 향해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