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04)
밖으로 나가 방문을 닫는 화옥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맴돌았다.
* * *
혼천마는 저 멀리서 벽태산이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최근 며칠 동안 벽태산은 혼천마에게 육체와 혼백의 괴리를 없애주겠다며 굴리고 또 굴렸다.
그저 단순히 수련을 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몸이 녹아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혹사당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수련에 이골이 난 혼천마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니 얼마나 심한 꼴을 당했겠는가.
혼천마는 맹렬히 갈등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참아냈다.
어차피 도망쳐봐야 다시 잡힌다는 걸 아니까.
갈등하는 사이 어느새 벽태산이 다가왔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혼천마는 최대한의 정중함을 담아 인사했다. 조금이라도 봐달라는 간절함이 담긴 인사였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고는 혼천마를 위아래로 찬찬히 살폈다.
“대충 된 것 같구나.”
혼천마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그걸 수련해 봐라.”
혼천마가 환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 안에 있는 영력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천마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무아지경에 빠졌다.
벽태산은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천마의 혼백에 박혀 있던 혈령의 조각들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벽태산이 없애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걸 스스로 없애는 것과 남이 없애주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제부터 혼천마는 아주 빠른 속도로 영력을 받아들이고 강해질 것이다.
혼천마의 혼백에 박혀 있던 혈령의 조각들이 반쯤 녹았을 때, 벽태산은 그의 주변에 펼쳐 놓았던 영력을 거둬들였다.
저쯤 되면 금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벽태산은 혼천마가 현천장에 왔을 때부터 영력을 펼쳐 금제가 발동하지 않도록 막아두었다.
혼천마의 혼백에 있던 혈령의 조각이 녹으면서 미처 맞춰지지 않은 육체와 혼백 사이의 아주 미세한 괴리가 정교하게 맞물리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확인한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나섰다.
영력을 수련하기 시작한 혼천마를 보고 있으니, 문득 의선이 떠올랐다.
‘조만간 한 번 봐야겠어.’
끝
의선은 좋은 기분으로 눈을 떴다.
얼마 전에 벽태산이 시킨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한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야 했다.
신기하게도 불안하니 기루에서 노는 것도 크게 즐겁지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몇날 며칠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벽태산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자, 슬슬 마음이 풀어졌다.
그리고 확실히 안심이 되자, 다시 기루가 즐거워졌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확 풀어진 채 지극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니 그 즐거움이 아침까지 이어져 이리도 기분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의선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어젯밤을 함께 보낸 기녀가 잠에서 깼다.
그녀는 깨자마자 의선에게 더욱 바짝 붙어서 의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일어나셨어요?”
기녀가 고개를 들어 의선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제 처음 의선과 밤을 지냈다. 그동안은 소문으로만 접하던 의선을 겪고 나서, 그녀는 왜 다른 기녀들이 의선에게 매달리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몸이 너무 개운해요.”
“너무 몸을 혹사시키지 마라. 사람 몸이 생각보다 질기긴 하지만, 아차하는 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
기녀가 의선을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렇게 되면 오셔서 고쳐주실 거죠?”
의선이 빙긋 웃었다.
“올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기녀가 기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마음에 안 드실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내가 왜 널 마음에 안 들어하겠느냐.”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좀 많은 편이잖아요. 외모도 솔직히 좀 떨어지고.”
의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겠느냐. 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정말요?”
의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제 하마터면 등선할 뻔했다.”
기녀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까르르 웃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세숫물이랑 아침식사 얼른 준비해 드릴게요.”
기녀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의선은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빙긋 웃었다.
“이제야 좀 사는 것 같구나.”
마음이 홀가분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고스란히 영력의 증가로 이어졌다.
의선은 속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을 통해 성장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고 정갈한 요리를 든 사람들이 들어와 상을 차렸다.
어젯밤을 함께 보낸 기녀가 돌아와 의선에게 정성껏 음식 시중을 들었다.
의선은 밥을 먹고 목욕까지 한 다음에 기루를 나섰다.
오늘 하루도 상쾌하게 보낼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기루를 나와서 천무련으로 느긋하게 돌아가던 의선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즐거움과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흐음.”
의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의선은 걸음을 멈추고 영력을 사방으로 쫙 펼쳤다.
그의 영력이 주변을 훑으며 각종 정보를 의선에게 전달했다.
의선은 거슬린 것이 없는지 영력을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이상하군. 대체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지?”
기루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기분이 어느새 바닥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의선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을 관조했다.
주변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이 없다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역시나 원인은 자기 자신이었다.
기분이 가라앉은 이유는 불길함 때문이었다.
“뭔가 일이 터져도 터질 모양이군.”
의선은 돌아서서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기루를 잠시 눈에 담았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기는 지키고 말리라.
* * *
“이거 너무 많이 가는 거 아냐?”
가장 뒤에서 따라가던 노인이 투덜거렸다.
노인의 앞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 노인들의 시중을 들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여섯 명이었다.
그 여섯 명 중에는 여자도 세 명이나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노인이었는데, 얼굴만 노인이지 다들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노인의 수는 총 여덟 명이었다.
가장 뒤에서 따라가던 노인이 연신 투덜거렸다.
“이렇게 많이 몰려가면 내가 처리할 부분이 줄어들잖아.”
그러자 바로 앞에서 가던 노인이 뒤를 힐끗 돌아보고는 말했다.
“거 애들처럼 떼쓰지 좀 마.”
“뭐? 애? 떼를 써? 무한에 가기 싫으냐?”
“왜, 한 판 붙자고? 나쁠 거 없지. 너 하나 정도 없다고 일이 잘못될 리도 없고.”
“내가 없긴 왜 없어? 없어지는 건 너지. 너 하나 없다고 일이 잘못될 리 없고.”
그때 가장 앞에서 가던, 새하얀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빽 소리쳤다.
“시끄러!”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노인들 사이에도 나름대로의 서열이 있었다.
가장 앞장선 노인이 제일 위였고, 나머지 일곱은 비슷비슷했다.
“다들 정신 안 차려? 지금 피부 저릿저릿한 거 못 느끼겠어?”
흰수염 노인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감각을 집중했다.
“응? 정말이네?”
“무한에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아직 무한에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것도 대단한 강자가 말이다.
이곳에 있는 노인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인가. 무명에서 강해질 만큼 강해진 다음, 혈령에 정신을 잡아먹히기 전에 은거한 노인들이다.
한데 그런 노인들의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들려면 보통으로는 안 된다.
마중 나온 자들이 굉장한 고수들이란 뜻이었다.
흰수염 노인은 안내하던 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피해 있어라. 괜히 휘말리지 말고. 살아남아야 안내를 계속 할 거 아니냐.”
그 말에 안내하고 수발들던 자들이 얼른 고개를 숙인 다음 흩어졌다.
일단 각자 살아남은 다음, 나중에 다시 여기로 오면 된다. 그러니 흩어져서 잘 숨어 있는 편이 나았다.
여덟 명의 노인만 남자, 그들을 휘감는 살기와 투기가 더욱 짙어졌다.
흰수염 노인이 갑자기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허.”
다들 왜 그러느냐는 듯 바라보자 흰수염 노인이 말했다.
“다 잡혔다.”
“잡혔단 말입니까? 방금 우리 수발들던 애들?”
“그래.”
노인 중 하나가 입맛을 다셨다.
“살결이 야들야들해서 밤에 안고 자는 맛이 있었는데, 아쉽게 됐군,”
“그러게. 아주 제법이었는데 말이야.”
“혁련 가주가 엄선해서 보낸 아이들인데, 당연히 제법이어야지.”
노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자, 흰수염 노인이 인상을 팍 썼다.
“다들 정신 차리지 못해!”
노인들이 입을 꾹 다물고 흰수염 노인을 바라봤다.
“아직 무한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릴 정확히 찾아온 놈들이다. 우리에 대해 확실히 파악했다는 뜻이야. 그런 놈들이 만만할 것 같아?”
흰수염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사납게 둘러봤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여기까지 와서 뒈지고 싶지 않으면. 괜히 싸우다 혈령에 먹혀서 주위 사람들 피해줄 거 같으면 알아서 목 긋고.”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문 채 흰수염 노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흰수염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알아들었냐고!”
노인들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저 노인네 성질은 젊었을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뭣들 해! 얼른 가지 않고!”
흰수염 노인이 역정을 확 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머지 노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넓은 평지가 확 펼쳐졌다.
그리고 백 장쯤 떨어진 곳에 몇 사람이 서 있었다.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기파가 주변을 꽉 메우고 있었다.
“저놈들이로군.”
흰수염 노인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나머지 노인들은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놈들이었다.
“이러니 무한에만 보내면 사라져 버리지.”
저런 놈들이 있으니 웬만해서는 무한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왔으니 다 끝났다.
저놈들을 처 죽이고, 무한에 있는 현천장인가 뭔가를 박살 낸 다음, 그곳의 우두머리인 벽태산을 끌고 가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된다.
흰수염 노인은 이곳의 일보다는 천무련이 있는 낙양 쪽의 일에 사실 더 관심이 갔다.
혁련가에서 천무련을 맡겠다고 나섰는데, 천무련에는 의선이 있다.
흰수염 노인은 의선이 얼마나 위험한 자인지 알고 있다.
더구나 혈령마공은 의선과는 상극이었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자가 우위에 선다. 그리고 흰수염 노인이 알기로 의선보다 많은 영력을 보유한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대체 의선을 어떻게 잡으려는 거지?’
그 점이 못내 궁금했다.
그렇게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흰수염 노인은 길을 막고 서 있는 자들 앞에 도착했다.
“고작 둘이서 우릴 막겠다고?”
흰수염 노인의 말에 그 앞에 선 두 사람 중 한 명인 검귀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일단은?”
검귀는 대꾸하지 않고 흰수염 노인을 비롯해 그 뒤쪽에 있는 일곱 명의 노인까지 차분히 둘러 봤다.
“보아하니 거기 하얀 수염이랑 나머지로 나누면 되겠군.”
검귀는 그렇게 말하고 옆에 서 있는 혼천마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듯이.
혼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긴 한데, 저 하얀 수염이 좀 더 빡세다. 보통 노인네가 아니야.”
“그럼 제가 수염 노인네를······.”
“농담이 심하구나. 더 강한 쪽을 내가 맡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솔직히 결과는 똑같지 않습니까. 좀 더 수련이나 경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일리가 있긴 한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흰수염 노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미친 것들이 천지분간도 못하고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구나.”
혈령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건 이성을 제어하는 능력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흰수염 노인은 더 참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꽈득!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뒤로 흙무더기가 촥 퍼졌다.
흰수염 노인의 양 팔이 온통 시뻘건 강기로 뒤덮였다. 아니, 정확히는 강기가 아니라 강기를 닮은 무언가였다.
혼천마가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놈이 먼저 나한테 온 거다. 난 너 주려고 했어.”
혼천마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