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0)
현천장과 천무련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둘 중에서 현천장은 얼마 전에 이상한 늙은이들이 와서 한바탕 했다.
자연스럽게 하나만 남는다.
그래서 그냥 낙양으로 갔다. 거기 있을 것 같아서.
한데 낙양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느낌이 점점 선명해졌다. 자신이 제대로 찍었다는 확신이 든 순간 속도를 확 높여서 목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마침 그때 의선이 천마의 공격으로부터 무림맹주를 구하고 있었다.
벽태산은 좀 여유를 가지고 둘의 싸움을 지켜봤다.
중간에 몇 번이나 끼어들까 했지만, 의선이 생각 외로 잘 싸워서 계속 지켜봤다.
사실 벽태산이 주변 공간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기에 의선이 잘못될 일은 없었다.
언제든 개입해서 의선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의선은 결국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로 올라섰다.
벽태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의선을 중심으로 보긴 했지만, 벽태산의 관심은 사실 의선보다는 천마 쪽이었다.
무명 놈들이 천마를 되살려 낼 줄은 몰랐다.
벽태산은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여겼다. 하지만 싸움이 진행되면서 의선과 싸우는 천마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걱정을 좀 덜었다.
제대로 된 천마를 불러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차라도 한 잔 하고 돌아가는 건 어떤가?”
의선의 말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주는 의선과 벽태산의 대화를 지켜보며 시종일관 묘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벽태산이 의선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서였다. 말도 편하게 하고 말이다.
한데 그걸 보면서도 눈살을 찌푸릴 수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벽태산이 자신에게 저렇게 대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것 같았다.
무림맹주는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잠깐 생각해봤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대충 추측은 할 수 있었다.
‘기세에 눌린 건가?’
압도적인 기세를 대하면 사람은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대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무림맹주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벽태산을 보면서 대자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건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찌 사람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문득 무림맹주는 예전 천마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가?’
그때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딱히 거기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민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천마라도 그랬을 리가 없다. 방금 싸웠던 천마도 사실 무섭기는 했지만 존재감이 대자연을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건 아니었다.
“자네도 차 한 잔 하고 가게. 시간 되나?”
무림맹주는 의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안 그래도 여기 벽 공자를 만나기 위해 무한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벽태산이 무림맹주를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무림맹주와 흑련주를 같은 날 무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의선이 끼어들어서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무한으로 갈 때 같이 가면 되겠군. 산책 삼아.”
의선의 말에 무림맹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대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든가.”
그러자 의선이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나도 산책 삼아 거기에 가고 싶은데.”
벽태산이 의선을 슬쩍 쳐다봤다.
의선이 움찔 놀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되살아난 천마까지 잡았으니 당분간 천무련은 조용할 것이다.
물론 허를 찔러서 또 무언가 수작을 부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대응하면 된다.
여기에는 사마위홍도 있으니까.
“그럼 그러든가.”
벽태산의 말에 의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인가? 정말 가도 되나? 간 김에 며칠 머무를까 하는데, 정말 괜찮은 건가?”
무림맹주는 의선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왜 의선이 벽태산의 허락을 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왠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닌지라 입을 꾹 다물고 유심히 두 사람을 살폈다.
“싫으면 말고.”
“그럴 리가! 싫긴 누가 싫다고 그랬나. 그저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확인을 한 것뿐이지. 크흠, 크흠.”
의선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면 가볍게 차를 마신 다음 바로 출발하는 건 어떤가? 산책 삼아 나왔다고 했으니 딱히 볼일도 없을 것 아닌가.”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는 무림맹주를 바라봤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그래도 되겠지?”
무림맹주가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르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의선이 다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렇다는군. 그럼 그래도 되겠나?”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텐데.”
의선이 기분 좋게 웃었다.
“오늘 정말 좋은 날이로군. 내가 아끼고 아껴뒀던 차를 내주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걸세. 나도 오십 년에 한 번 마실까 말까하는 귀한 차라네.”
벽태산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의선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루가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아.”
무림맹주가 뜨악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 의선을 바라봤다.
“에이, 그건 도가 아니지. 매일 기다리는 것도 다 즐거움에 속한다네. 이런 일에는 그 무엇보다 절제가 중요하지 않겠나?”
무림맹주는 대체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벽태산과 의선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당황스러운 시선은 의선의 거처에 도착해서 귀한 차를 마시고, 다시 나와 무한을 향해 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낙양을 출발한 뒤로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는 의선과 벽태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몽땅 끌어와야만 했다.
당연히 딴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무한에 도착했다.
끝
흑련주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 무한에 도착했다.
무림맹주가 좀 더 일찍 출발했다는 소식도 들었고, 천무련을 누군가 습격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굳이 일정을 서두르지 않았다.
사실 좀 궁금하긴 했다.
무림맹주가 일찍 출발한 이유는 천무련에 들렀다 가기 위함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천무련을 습격한 적을 막은 뒤, 의선과 함께 무한으로 갔다는 소식은 흑련주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직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는 파악했다.
무명에서 천무련을 또 한 차례 도모했고, 그것을 무림맹주와 의선이 나서서 해결했다고 한다.
“무명에서 보낸 고수가 상당한 실력자라지?”
흑련주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지만, 그의 수행원들은 그런 일에 아주 익숙했다.
“무림맹주도 그자를 상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파생된 소문을 종합해 보면, 의선이 없었다면, 천무련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대체 어떤 고수가 나선 건지 궁금하군.”
“무명의 고수들은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그랬지. 그래도 무명 내에서 어떤 직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얼마 전 습격한 자들은 무명에 소속된 가문 중 하나의 후기지수였다.
그자의 실력도 엄청났다고 하니,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뭔가······ 뜨뜻미지근해.”
흑련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무명의 행보는 왠지 그간 무림을 뒤집어엎으려던 세력들과는 좀 달랐다.
어딘가 느리고 소극적이었다.
과거 무림을 손에 넣고자 나선 세력은 무수히 많다.
한데 그들 대부분은 마치 짧은 기간 안에 모든 걸 얻겠다는 듯이 불타오르는 마차를 모는 것처럼 밀어붙였다.
치밀한 음모를 꾸민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음모를 꾸민 기간에 비해 힘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기간은 지극히 짧았다.
한데 이 무명이라는 놈들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아주 긴 계획을 가진 것 같았다. 가진 힘은 굉장하지만, 그걸 함부로 쏟아내는 법이 없었다.
“이거 이러다가 꼬리를 잘라버리고 숨는 건 아니겠지?”
흑련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느새 흑련주 일행은 현천장에 도착했다.
흑련주 일행이 현천장 정문에 도착한 순간, 때를 맞춰 문이 활짝 열렸다.
정문을 통해 현천장 안으로 들어가니 몇몇 사람이 정중히 인사하며 흑련주를 맞이했다.
현천장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흑련주의 표정은 한껏 굳어 있었다.
그걸 본 그의 수행원 중 하나가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련주님,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내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나?”
흑련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일 아닐세. 아마 자네들은 못 느꼈겠지만, 이 장원, 보통 장원이 아니야. 굉장한 힘이 응축되어 있네.”
“예? 힘이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진법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현천장과 싸울 때 이 안으로 들어오면 아마 제대로 힘 쓰기가 만만치 않을 걸세. 이건 나라도 쉽지 않겠군.”
수행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일세. 내가 이런 거 보는 눈과 감각이 제법이라는 건 알지?”
“련주님의 안목이야 정평이 나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게. 여기 현천장, 보통이 아니야.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하나 허투루 보지 말고 머릿속에 잘 담아두게.”
“명심하겠습니다.”
흑련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꾹 다물고 안내하는 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제법 큰 전각이었다.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전각으로 현재 이 전각 안에 무림맹주 일행도 머무르고 있었다.
보통은 무림맹과 흑련에서 왔으면 따로 건물을 나눠서 배정하기 마련인데, 현천장은 그러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벽태산이 알면 눈살을 찌푸릴 것 같아서였다.
현천장에 있는 사람들은 무림맹이나 흑련의 눈치보다 벽태산의 눈치를 훨씬 더 많이 봤다.
무림맹주가 뭐 어떻고 흑련주는 뭐 어떻단 말인가.
그들이 가장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은 벽태산이다.
또한 그들이 보기에 천하 그 누구보다 대단한 인물이 바로 벽태산이었다.
현천장 사람들은 벽태산이 무림맹주나 흑련주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아무튼 흑련주 일행은 전각 안으로 들어가 자신들에게 배정된 방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고 있으니 무림맹주가 나타났다.
“오셨소?”
무림맹주의 말에 흑련주가 피식 웃었다.
“난 정확히 약속한 날에 도착했소. 내가 늦은 게 아니니 표정 좀 푸시는 게 어떻소?”
무림맹주가 흠칫 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내 표정이 좀 그랬소? 아무래도 요즘 익숙지 않은 일을 자주 겪어서 그런가보오.”
“익숙지 않은 일? 무슨 일이 있었소?”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다. 천무련을 습격한 적의 정체라거나 의선이 왜 여기에 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없는 동안 현천장에 대해 뭔가 알아낸 건 없는지, 등등 말이다.
무림맹주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의선 어르신께서는······ 좀 변하셨소.”
“변하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요?”
흑련주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재촉했다.
무림맹주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의선에 대해 말을 하면 할수록 뒤에서 그의 흉을 보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직접 뵙고 련주가 판단하시는 게 나을 듯하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니.”
흑련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무림맹주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무림맹주가 저렇게 말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주는 분위기를 바꾸려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의선 어르신보다는 벽 공자를 보고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 나을 듯하오.”
“벽 공자? 벽태산을 말하는 것이오? 안 그래도 그자를 보러 여기까지 왔지 않소. 나나 맹주나 마찬가지로.”
무림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리고 난 여기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오. 그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결코 판단할 수 없는 인물이오.”
흑련주는 호기심이 물씬 들었다.
벽태산이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무림맹주가 저런 평가를 내린단 말인가.
보아하니 그저 호감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무림맹주가 벽태산에 대해 얘기할 때, 뭔가 묘한 느낌이 있었다.
“일단 쉬고 계시오. 내일쯤 함께 벽 공자를 만나봅시다.”
“그럽시다.”
무림맹주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흑련주는 무림맹주가 돌아가는 내내 묘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천무련을 습격한 자가 누구인지 물어보지 못했구나. 뭐, 시간이야 많으니까.”
* * *
제법 넓은 방, 세 사람이 큰 탁자를 중심에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각각 혁련가, 악가, 심가의 가주들이었다.
오늘의 모임을 제안한 사람은 혁련가주였다.
혁련가주의 표정은 이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심가주와 악가주는 그런 혁련가주의 모습에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제 슬슬 왜 우리를 불렀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 역시 최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혁련가주가 단독으로 진행한 일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실패했고, 봉우리의 어르신들을 동원한 일도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이번 모임은 그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자리라고 추측했다.
한데 왠지 혁련가주의 분위기를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이쯤에서 손절하고자 해서 두 분을 모셨습니다.”
그 말에 악가주와 심가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만두자니!”
“저도 반대입니다. 아직 우리는 충분한 여력이 있습니다. 잃은 것이 별로 많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혁련가주는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두 가주를 번갈아 바라봤다.
심가주와 악가주는 왠지 혁련가주의 눈빛이 살짝 죽어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러십니까? 설마 두려우신 겁니까?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린 모든 상황에 대비하지 않았습니까.”
심가주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악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번득이는 눈으로 혁련가주를 바라봤다.
하지만 혁련가주의 표정과 눈빛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천무련에 보낸 것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