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2)
“어렵더라도 해야 하오. 일단 찾기만 하면······.”
흑련주가 그 말을 받아서 이어 말했다.
“벽 공자가 전부 해결하겠군. 무명과 좋은 사이는 아닌 듯하니.”
흑련주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무림맹주를 바라봤다.
“그래서 이제 맹주는 어찌 할 계획이오? 무림맹으로 돌아가실 거요?”
무림맹주가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여기서 머물기로 했소. 배울 것도 좀 있고.”
“배울 것?”
흑련주가 눈을 번득였다.
“설마······ 의선 어르신과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거요?”
무림맹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의선 어르신은 나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시오. 매일 바쁘시지.”
흑련주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당분간 머물 거요.”
무림맹주가 여기서 뭘 하는지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어조였다.
두 사람은 각각 무림맹과 흑련에 서찰을 보내 무명의 본거지를 찾는 일을 지시하기로 했다.
그냥 대충 찾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지시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과 돈을 풀어서 이용하라고 했다.
두 사람은 시일은 좀 걸리겠지만,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 * *
벽태산의 집무실에 화옥이 들어섰다.
화옥은 공손히 인사한 다음 오늘의 보고를 시작했다.
보고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게 중요한 것들도 아니었고.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요즘 뭐 하고 있느냐?”
그 두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현천장에 눌러앉았다. 무림맹주나 흑련주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무림맹이나 흑련이 대충 아무렇게나 돌아가는 세력도 아니니 두 사람이 현천장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두 세력은 계속 피해를 입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원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현천장에 남았을 것이다.
“그 두 분은 요즘 혼천마 어르신, 검귀 어르신과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혼천마와 검귀? 그 둘이 왜?”
“처음에는 무림맹주, 흑련주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긴 모양입니다. 지금은 순수하게 대련에 빠졌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군.”
아마 그 넷이서 격렬하게 대련을 이어간다면 분명히 다들 무언가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오랜 수련을 통해 영력의 씨앗을 얻어냈다.
영력을 자주 접하면 접할수록 씨앗이 발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마 혼천마, 검귀와 계속 대련을 하다보면, 결국 영력을 깨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영력을 깨운다면 혼천마와 검귀에게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대충 보고가 마무리 되었을 때, 화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공자님, 무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고자 합니다.”
벽태산이 담담히 화옥을 쳐다봤다.
무명에 대한 조사는 이미 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했다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을 동원하겠다는 뜻이리라.
“최근 천뇌를 비롯해 저희가 가진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몇 가지 조사를 했습니다.”
화옥은 그렇게 서두를 열고 차분히 설명을 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무림에 혈겁을 일으키거나, 무림을 집어삼키려는 의도로 일어난 세력들이 혹시 무명과 관계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조사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굉장히 관련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어쩌면 그들 역시 무명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화옥이 하려는 일은 그 과거부터 싹 조사를 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거나, 그들이 그 과정에서 남긴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역시 조사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했고, 더욱 세밀히 조사를 해서 그들과 무명의 관계를 알아내고자 했다.
화옥이 이걸 하려는 이유는, 무명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무명이라는 거대한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과 소통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번다거나 생필품을 구한다거나 하는 일들, 혹은 사람을 구하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걸 막아 버리면 무명은 고사하거나, 아니면 밖으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설명을 모두 들은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거 재미있겠구나.”
다만 그렇게 하려면 현천장이 가진 대부분의 정보력을 거기에 쏟아야 한다.
당분간 양질의 정보를 구하거나, 다른 다양한 활동에 큰 제약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화옥이 굳이 벽태산에게 보고를 하고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벽태산은 흔쾌히 허락을 했다.
이걸 시작하면 조만간 재미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을 조이려는데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분명히 발버둥을 칠 것이다.
벽태산은 그것을 기대하며 눈을 빛냈다.
아마 틀림없이 재미있을 것이다.
끝
혁련가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간을 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게 무슨 간을 보는 건가. 작정하고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지.
혁련가에 있는 높은 전각 꼭대기 층에서 장원 바깥에 펼쳐진 전경을 내려다보던 혁련가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악가와 심가에서 무사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봉우리에서 내려온 어르신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천대를 움직이는 일을 반대했을 터인데.”
고천대는 세 가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무사대 중 하나였다.
당연히 반강시들로 이루어진 무사대였고, 무명이 가진 무사대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했다.
가장 강한 무사대인 흑천대는 무명의 주인인 큰 어르신의 직속부대이기 때문에 아무도 못 건드린다.
그리고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는 무사대는 명령으로 다룰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주의 명령만을 받으며, 대주는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반강시가 아닌 순수한 인간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세 가문이 움직일 수 있는 무사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부대를 이번 일에 쓰기로 한 것이다.
고천대를 구성하는 반강시들은 무려 칠십이 년에 걸쳐 만들어진 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했다.
의선은 천마를 이겼다. 그 사실 하나가 가져오는 파급력과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고천대 역시 보통이 아니니까.
혁련가주가 원하는 것은 고천대, 그리고 그들과 힘을 모아 의선을 압박할 수 있을 만한 고수 십여 명 정도가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가능성이 있었다.
의선만 상대하면 되니까.
하지만 저렇게 인원이 늘어난다면 은밀히 이동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만일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져서 의선이 아닌 다른 자들까지 한꺼번에 상대하게 된다면 성공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질 것이다.
악가와 심가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각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강력한 무사대를 각각 둘이나 내보냈다.
저 둘을 잃는다면 가문의 힘이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자들이었다.
게다가 저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이곳은 무명의 본단이고, 외부에서 지내는 다른 무사대들까지 합류하면 인원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리라.
혁련가주가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마침 아래에 있던 심가주와 눈이 마주쳤다.
심가주는 근처에 있던 악가주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혁련가주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훌쩍 뛰어오르더니 마치 허공을 거닐듯이 날아 혁련 가주가 있는 전각에 들어섰다.
“여기서 구경만 하시면 어쩝니까. 내려오셔서 응원이라도 한 마디 해주셔야지요.”
혁련가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전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서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 이 상황, 굉장히 위험하다는 사실, 두 분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심가주와 악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의선이 무한으로 가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무한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혁련가주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혁련가주가 두 가주의 말을 들으며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무한까지 해결하겠다, 이겁니까?”
“되면 정말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혁련가주께서도 한 손 거들에 주시지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렇기에 혁련가주는 더더욱 이번 일에 끼기 싫었다.
마지막이 될 일에 가문의 전력을 갖다 버리는 셈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매몰차게 돌아설 수도 없었다.
앞으로도 세 가문이 손을 잡고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면서 무명을 지탱하려면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선 안 된다.
“후우. 정말······ 어쩔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저들이 시체들을 들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두 가주의 눈이 번쩍 빛났다.
“당연히 되지요.”
“큰 결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혁련가가 내주는 시체가 어디 보통 시체이겠는가. 아마 시체와 함께 호리병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강력한 병기로 되살아날 테고.
“싸우기 직전에 깨워야 합니다. 힘은 강력하지만 지속력이 약해 오랫동안 싸우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수는 많은 편이니 아마 제법 힘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악가주와 심가주가 한참 동안이나 감사와 칭찬을 섞은 인사를 남발했다.
잠시 후, 혁련가 안쪽 깊은 곳에서 시체를 담은 관이 연이어 밖으로 나왔다.
관의 수는 무려 일흔두 개나 되었다.
일꾼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관을 마차에 차곡차곡 실었다.
세 가주는 그렇게 관을 실은 마차를 호위하듯 심가와 악가의 무사들이 둘러싸고 떠나는 모습을 전각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봤다.
간보기를 빙자한 싸움이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혁련가주는 그걸 보면서 가문의 핵심을 이곳에서 빼돌려 딴 살림을 차릴 궁리를 시작했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 * *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온몸이 땀에 푹 젖었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하니 굉장히 재미있군.”
“나도 마찬가지야.”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수련을 함께 하다 보니, 묘한 동료애가 생겨 버렸다.
역대 무림맹주와 흑련주의 사이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왔다.
무림맹과 흑련은 서로 경쟁하긴 하지만, 무림에 일이 생겼을 때는 협력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동안은 절묘한 선을 유지해왔다.
누군가 섣부른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관계가 깨지는 일이 없도록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한데 이번 대에 와서 그 관계가 확 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벽태산 때문이었다.
아무튼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이곳 현천장에서 두 사람 사이에 강제로 형성되었던 거리감을 부숴버렸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쉬는 건가? 이거 약골들이로군.”
혼천마가 비아냥거리자,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벌떡 일어났다.
약골이라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쉴 수는 없었다.
한데 두 사람이 일어나는 순간, 혼천마가 살짝 인상을 썼다.
“뭐야?”
방금 그 말이 계기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가진 영력의 씨앗이 발아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영력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미했지만, 제대로 영력을 쓰는 방법을 깨우치고 나면 점점 강해질 것이다.
두 사람이 영력을 깨우기 전에는 혼천마나 검귀가 혼자서 상대가 가능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혼천마나 검귀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압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상대가 벽태산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벽태산은 그냥 벽이었다. 절대 넘거나 부술 수 없는 벽.
그걸 인정했기에 지더라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혼천마나 검귀는 아니었다.
고수이긴 해도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같이 힘을 모아 싸운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혼천마는 고사하고 검귀를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검귀와는 싸움이 좀 됐다. 시종일관 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혼천마와는 그조차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왠지 혼천마 하고도 한 번 해볼 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혼천마도 그걸 느꼈기에 인상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혼천마가 아니었다. 아무리 영력을 깨웠다지만, 아직은 자신이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덤벼라, 애송이들.”
혼천마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무림맹주와 흑련주를 도발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기꺼이 도발에 넘어가 주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혼천마에게 달려든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그야 말로 원 없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쏟아냈다.
싸우는 세 사람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검귀는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표정으로 손에 든 검을 만지작거렸다.
결국 그날의 대련은 네 사람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네 사람 모두 오늘의 대련에 크게 만족했다.
영력이 급격히 성장한 것이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영력이라는 힘이 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희열을 만끽했다.
* * *
거대한 동굴, 그 끝에 있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뜨거운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그 절벽에는 노인 한 명이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는 용암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동굴 천장에 숭숭 뚫린 구멍 중 하나에서 누군가 뚝 떨어져 내렸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노인은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청년도 노인이 자신을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심가와 악가에서 움직였습니다. 목표는 무한입니다.”
청년은 잠시 뜸을 들이다 한 마디 덧붙였다.
“정확히는 의선입니다.”
의선이라는 말에 노인이 반응했다.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청년을 향해 돌아섰다.
“역시 관심 있으실 줄 알았습니다.”
청년이 히죽 웃었다. 들은 정보가 있기에 의선 얘기를 꺼냈다.
이 노인이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용암과 함께 살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의선이었다.
“의선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더군요. 자그마치 천마를 이겼다고 합니다.”
청년의 말에 노인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