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3)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구나.”
“정말입니다.”
청년은 혁련가가 의선을 제거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노인이 피식 웃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제대로 된 천마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 건 나도 이길 수 있다.”
청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노인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의선이 거기 있단 말이지?”
노인의 말에 청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그뿐 아니라, 무림맹주와 흑련주도 그곳에 있습니다.”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대비는 하고 움직이는 거냐?”
“별로 상관없을 겁니다. 이번에 움직이는 인원이 워낙 많아서.”
노인이 흥미로운 눈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이러다가 전쟁이 나도 이상할 게 없겠어.”
“치고 빠지면서 버릴 건 버리고 살릴 건 살릴 계획입니다.”
노인이 청년을 빤히 쳐다봤다.
“그래서 여기에는 그거 보고하러 왔어?”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에 잘 오지도 않는 놈이 이렇게 와서 열심히 떠들고 있으니 속이 빤히 보였다.
“어르신께서 나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큰 어르신께서 원하십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큰 어르신이라도 내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큰 어르신이 따로 지시를 내리시진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지레짐작으로 그분의 의중을 파악한 것뿐입니다.”
“웃기고 있네.”
노인이 피식 웃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휘하에 데리고 있으면서 이리저리 써먹던 놈들을 대부분 잃는 바람에 쓸 수 있는 패가 별로 없었다.
이번에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으리라.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무엇보다 의선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의선과는 언젠가 결판을 내야 할 사이니까.
그리고 이제 슬슬 의선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큰 어르신께서 흑천대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흑천대를?”
노인이 놀란 눈으로 청년을 바라봤다.
흑천대는 무명이 가진 가장 강한 무사대였다. 무명주 직속의 무사대 말이다.
노인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청년을 바라봤다. 무명주가 아무 이유 없이 흑천대를 내줄 리가 없었다.
“그 양반은 왜 아직도 봉우리에서 안 내려오시는 거냐?”
청년이 쓴웃음을 지었다.
“큰 어르신의 의중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노인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갈 테니, 흑천대나 똑바로 보내라고 전해라.”
청년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청년이 들어왔던 구멍으로 나가자, 노인은 다시 절벽으로 가서 끝에 걸터앉았다.
용암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확 때렸다.
끝
무림맹과 흑련이 모든 인원과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무명의 본거지를 찾기 시작했다.
무림맹, 흑련 소속 무인과 정보원들이 나서는 건 당연했고, 거기에 거미줄처럼 얽힌 인맥까지 이용했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이니 천하가 조용히 들썩였다.
하지만 대놓고 들쑤신 건 아니었기에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아무튼 무림맹과 흑련이 갑자기 움직이니 하오문은 일단 한 발 물러나서 다른 일에 집중했다.
최근 하오문은 물론이고 비천단과 월영단, 심지어 사해방에까지 화옥의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림에 혈겁을 일으켰거나 무림을 전복시키려던 세력에 대해 조사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냥 세력에 대해 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력에 호의적이었거나 협력 관계였던 자들을 모조리 조사해야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알아낼 수는 없어도 작은 단서들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 단서를 토대로 차근차근 추적하다보면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디에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건 하오문쯤 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하오문만으로는 안 된다. 나머지 모든 정보조직이 더해지고 거기에 천뇌까지 더해져서 간신히 해낼 수 있는 난이도 높은 작업이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기에 현재 천하무림에는 무림맹과 흑련의 눈과 귀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눈과 귀가 그렇게까지 대단치는 않기에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긴 하지만 말이다.
무림맹과 흑련의 눈과 귀가 빨아들인 정보는 일차적으로 무림맹과 흑련의 군사부로 들어가고, 거기서 제대로 추려내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무한에 있는 무림맹주와 흑련주에게 전달된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하루의 수련을 마무리하고 목욕까지 한 다음 작은 탁자를 중심에 두고 마주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현천장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무림맹과 흑련에서 두 사람의 수행원들을 다시 보내주었다.
이번에는 그저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임무가 가능하도록 적절히 인원을 구성했다.
그 안에는 정보원도 있었고, 무력을 담당하는 무사도 있었으며,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군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슬슬 돌아가긴 해야 할 텐데······ 솔직히 가고 싶지가 않군.”
무림맹주의 말에 흑련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충만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군.”
두 사람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굳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몸과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킨다.
이런 것이 진정한 휴식이리라.
이렇게 마주앉아 반 시진정도 밤과 차를 즐기는 것이 최근 두 사람의 낙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름 침묵을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멀리서 느껴진 기척이지만, 그 기척의 주인이 이리로 올 거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주 익숙한 기척이었으니까.
“우리가 쉬는 꼴을 못 보는군.”
“그러게 말이야.”
익숙한 기척이 하나 더 늘어나더니 중간에 서로 만났다. 그리고 나란히 이쪽을 향해 달렸다.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걸 보면 둘이서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이젠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방문 앞에 도착했다.
“맹주님!”
“련주님!”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동시에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문을 바라보자, 문이 덜컥 열렸다.
“들어와라.”
여기까지 달려온 두 사내가 얼른 안으로 들어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두 사람이 보고할 내용도 대동소이할 듯했다.
최근 무림맹과 흑련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구역을 나눠서 조사를 진행 중이었기에 관련된 정보는 철저히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보고할 내용이 같을 수밖에 없었다.
입을 연 것은 흑련에 소속된 자였다.
이런 일이 있으면 번갈아 보고하기로 이미 얘기가 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무림맹 측에서 했으니 이번에는 흑련 차례였다.
무림맹주와 흑련주의 관계가 좋아지니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이상한 움직임?”
“예.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했는데, 대규모의 인원이 쪼개져서 이동 중인 듯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대규모의 인원이라······.”
이런 시국에 대규모의 인원을 이동시킬 자들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당연히 무명이리라.
“몇 명이나 되느냐?”
“아직 모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파악한 인원은 총 이백칠십육 명입니다.”
“많기도 하구나.”
“그 중 몇몇은 대단한 고수입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당한 자들이 여럿입니다.”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파악이 되었느냐?”
“동선을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 이곳 무한일 가능성이 칠 할 이상입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동시에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보고를 위해 온 두 사람은 그 자세 그대로 맹주와 련주의 지시를 기다렸다.
이내 무림맹주가 흑련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무한으로 온다면 여기서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 생각도 같네. 하지만 그들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네.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귀찮게 해야 할 것 같군.”
무림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천장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무림맹에도 제법 인재들이 있지.”
“우리 흑련 또한 마찬가지.”
무림맹주가 기다리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서찰을 써줄 테니, 전하도록 해라.”
“예!”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서탁으로 가서 거의 동시에 서찰을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최정예 무사들을 보내서, 무명의 무사들이라고 파악 된 자들을 최대한 귀찮게 하라는 지시였다.
직접적인 싸움은 피하고 절묘한 선을 지켜서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중간에 헛수작을 못 부리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두 번째는 조금이라도 힘을 소모하게 만들고자 함이었다. 효과는 미미하겠지만.
두 장의 서찰이 순식간에 완성되었고, 각각 서찰을 하나씩 든 두 사람이 무림맹주와 흑련주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물러갔다.
“이거······ 귀환을 미룰 좋은 핑계 하나가 생겼군.”
흑련주의 말에 무림맹주가 빙긋 웃었다.
“싸움을 앞두고 이렇게 두근거리는 건, 무림초출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로군.”
“나도 마찬가지일세.”
두 사람은 웃으며 다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다시 침묵이 시작되었다.
* * *
아무리 대부분의 인력을 다른 곳으로 뺐다고 해도 하오문은 하오문이었다.
무림맹과 흑련이 파악한 것을 하오문이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물론 무림맹이나 흑련처럼 세부적인 정보까지 파악한 건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큰 흐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면 아무래도 빈틈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하오문은 원래 하던 일의 연장으로 그 빈틈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그렇게 드러난 빈틈을 통해 무명이 세상에 드리운 끈을 찾아내고자 함이었다.
현천장이 가진 모든 정보력에 천뇌까지 더해진 힘은 굉장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기어코 빈틈을 찾아냈고, 그걸 토대로 더욱 많은 정보를 뽑아냈다.
화옥이 시작한 계획은 순조롭게 착착 진행 중이었다.
그녀는 진행 상황도 보고할 겸, 무한으로 오는 불순한 무리들에 대해서도 보고할 겸, 벽태산을 찾아갔다.
벽태산은 개인 연무장에서 한창 수련 중이었다.
화옥은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벽태산의 수련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마 영력을 깨우기 전에는 몰랐을 것이다. 지금 벽태산이 하는 수련이 얼마나 대단한지.
벽태산을 중심으로 영력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한데 그 회오리치는 영력의 상태가 아주 특이했다.
영력을 모으고 모아 압축해서 구슬처럼 만들었다. 그런 영력의 구슬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는 되는 듯했다.
하나 만드는 것도 화옥 입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데, 그런 것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가, 그걸 저렇게 정교하게 다루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영력을 깨우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아마 저 구슬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화옥은 그런 생각을 하다 또 멈칫했다.
‘정말로 안 보일까?’
지금 화옥의 눈에는 영력의 구슬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한데 과연 저게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일까?
뭔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화옥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 잡념을 털어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연무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벽태산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기다렸다.
벽태산을 둘러싼 영력의 구슬들이 점점 더 빨리 회전했다.
화옥은 마치 귓가에 휙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착각이라고? 이게?’
화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감각을 집중했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진짜 소리가 난다. 그리고 아마 저 영력의 구슬은 보통 사람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력을 유형화하다니······ 검강이랑 비슷하다고 봐야 하나?’
화옥은 감탄하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빠르게 회전하던 구슬들이 갑자기 폭발하듯 사방으로 확 터져 나갔다.
화옥은 깜짝 놀라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영력의 구슬들을 막아내려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영력의 구슬은 화옥 근처에 가자마자 그대로 폭발해 주변에 진한 영력의 안개를 만들었을 뿐이니까.
화옥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감싼 영력의 안개가 벽태산의 하사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선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영력에 집중하자, 주변을 휘감은 영력의 안개가 몸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옥은 하마터면 입을 벌리고 탄성을 흘릴 뻔했다.
압축되었던 영력이라서 그런지 영력의 밀도가 굉장했다.
그 높은 밀도의 영력이 몸으로 밀려들어오니 마치 온몸이 꽉 차는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영력의 질은 또 왜 이리도 순수하기 그지없단 말인가.
순식간에 영력이 몇 배나 뻥튀기되었다. 물론 이걸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화옥은 그렇게 선 채 영력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녀는 서서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 * *
현천장 내원에 있는 제법 큰 연무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진 채 서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연무장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안개가 쫙 퍼져 있었다.
벽태산이 만든 영력의 안개였다.
화옥이 성과를 얻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력을 하사하기로 한 것이다.
벽태산의 사람들 중, 영력을 깨운 사람은 모두 참여했다.
심지어 의선까지 여기 있었다.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화옥이었다.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영력을 받아들이면서 상당히 놀랐다. 영력이 이렇게 빠르게 쌓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의선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력을 깨운 지 얼마 안 되는 초보들인지라 아직 영력에 대해 그렇게까지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의선은 수백 년 동안이나 영력을 쌓아온 사람이었다. 당연히 영력에 대해 굉장히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