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5)
하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그들을 상대할 만한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한의 분위기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무언가가 혈검대주의 뇌리에 콱 꽂혔다.
혈검대주는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은 현천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혈검대주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봉우리에서 내려온 어르신들 역시 전부 그런 상태였다.
혈검대주는 일행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목적지는 현천장이다. 그곳까지 전력으로 돌진해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행동으로 답을 대신했다.
오백 명이 넘는 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현천장을 향해 달려갔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무명의 무사들이 지나가자,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한을 가로지르며 질주한 무명의 무사들은 이내 현천장에 도착했다.
끝
벽태산은 집무실을 나섰다.
방금 그놈들이 무한으로 들어섰다.
그놈들에게는 곧장 이리로 올 수밖에 없도록 기세를 쏘아주었다.
어설픈 것들은 내버려두고 제법 강한 축에 드는 놈들의 뇌리에 기세를 콱 박아 주었으니 아마 이리로 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놈들이 몽땅 이리로 오고 있으니 이쪽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한다.
벽태산이 직접 나서면 나머지는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벽태산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람들이 다양한 수련과 실전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원했다.
이번 싸움은 아주 좋은 기회다. 이런 기회를 자신이 귀찮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날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던 벽태산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현천장 전체가 머릿속에 쫙 펼쳐졌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또 진법의 흐름은 어찌 되는지 전부 머릿속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배치였다.
외부에서 오는 적들이 어디를 통해 현천장에 들어올지에 따라 위치를 유기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배치에 적용한 듯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상황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빈틈이 몇 군데 있었다.
벽태산은 그 빈틈들을 확인하며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갔을 때, 멀리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다급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제위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자님!”
제위룡은 벽태산을 발견하자마자 큰 소리로 부르며 더욱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벽태산 앞에 착 부복하더니 얼른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벽태산은 제위룡이 무슨 말을 하는지 굳이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빈틈은 이미 사라졌다.”
제위룡이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는 이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계속 그러고 있을 생각이냐.”
“아, 아닙니다!”
제위룡이 벌떡 일어났다.
벽태산은 제위룡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갔다.
제위룡은 또 멍하니 그런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 정도면 넘어서신 거 아닌가?”
제위룡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신이 뭐라고 감히 저분을 평가한단 말인가.
지금의 저분이건, 과거의 저분이건 자신의 깜냥으로는 그저 대단하다는 것 말고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위룡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벽태산과는 엮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사람은 화옥이었다.
“어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물론 이런 두려움은 몇 달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흐려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화옥이 나타났고.
아무튼 벽태산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
꼴랑 반나절 만에 작전을 세웠으니 구멍이 숭숭 뚫리는 거야 당연했다.
그나마도 천뇌나 되니까 이 정도 작전을 세웠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어림도 없었다.
아무튼 그 구멍을 화옥이 그냥 넘어가줄 리 없었다.
그래서 다급히 벽태산을 찾았다.
벽태산도 무서웠지만, 솔직히 지금은 화옥이 더 무서웠으니까.
한데 고맙게도 벽태산이 알아서 빈틈을 메워주었다.
물론 뭘 어떻게 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저 벽태산이 했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
“그럼······ 난 이만 몸을 피해보실까?”
천뇌는 이번 작전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
천뇌각에서 꼼짝도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책사들이 무공을 익히면 얼마나 익혔겠는가. 제위룡이 좀 강한 편이긴 했지만, 현천장에 있는 다른 무사들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제위룡 자신이 냉정히 평가하면, 현천장에서 일하는 일꾼들보다 좀 나은 수준이다.
고작 그 정도로 어디에 끼겠는가.
그저 천뇌각 안에서 느긋하게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가끔 진법을 조절해 아군을 도우면서 말이다.
즉, 천뇌각의 진짜 임무는 진법의 조절이었다.
제위룡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뇌각으로 향했다.
물론 가는 내내 주위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화옥에게 들키면 내일 당장 대련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싸움 직전의 긴박한 상황, 화옥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었다.
제위룡의 발걸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 * *
저 멀리 현천장이 보였다.
혈검대주는 현천장을 노려보며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현천장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온몸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본능이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한데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본능은 여기서 멈추라고 하는데, 머릿속에서 그 본능을 억누를 정도의 충동이 일어났다. 어서 현천장의 담을 넘으라고.
혈검대주는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과 비슷한 상태로 보이는 자들이 여럿 보였다.
혈검대 중에도 몇 명 있었고, 봉우리에서 내려온 어르신들은 전부 그랬다.
그 중에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노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 노인만 억지로 이성을 되찾은 듯했다.
노인과 혈검대주의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단숨에 몸을 날려 혈검대주 옆으로 붙었다.
“계속 이렇게 갈 생각이냐.”
“저도······ 저도 그러기 싫습니다.”
혈검대주가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니 약간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노인이 또 말을 걸었다.
“심호흡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라앉혀라. 무슨 말이든 좋으니 해보고.”
“어르신은 처음 뵙는 듯합니다.”
노인이 흥미로운 눈으로 혈검대주를 바라봤다.
“날 모른다고? 너 상당히 재능이 뛰어난 모양이구나.”
혈검대주가 되려면 혁련가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여야 했다.
한데 자신을 모른다는 건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었다.
어린 나이에 혈검대주가 되었다는 건 웬만한 재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염제라고 들어봤느냐?”
혈검대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뇌리에 콱 박혀 있던 충동이 절반 이상 해소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혈검대주는 일단 속도를 늦추라고 명령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뇌리에 아까와 똑같은 충동이 콱 틀어박혔다.
“크윽!”
혈검대주는 인상을 쓰며 반사적으로 옆의 노인을 바라봤다.
한데 노인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저항을 하는 듯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어느새 그들은 현천장에 도착했고, 다들 담장을 훌쩍훌쩍 넘어 현천장 안으로 들어갔다.
혈검대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정문으로 가는 것이었다.
“크아아악!”
혈검대주는 있는 힘을 다해 정문에 검을 내질렀다.
덜컥!
그 순간 정문이 활짝 열렸다. 어찌나 시점이 절묘한지 혈검대주는 아슬아슬하게 정문을 지나쳐 검을 내지르며 현천장 안으로 들어갔다.
쩡!
혈검대주의 검을 누군가가 쳐냈다.
혈검대주는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품으로 파고들었다.
쩌저정!
다급한 혈검대주의 검격이 급소를 노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손아귀와 손목이 저릿저릿했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혈검대주는 뒤로 후다닥 물러나며 자신을 공격한 자를 확인했다.
“여자?”
혈검대주를 막아선 사람은 검을 든 여자, 철란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선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혈검대원 십여 명 정도였다.
그들은 혈검대주와 철란을 지나쳐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혈검대주가 빠르게 철란을 처리하고 합류할 거라 믿은 것이다.
철란은 앞에 있는 혈검대주를 지그시 응시했다.
얼마 전에 십대고수와 싸웠을 때보다 훨씬 더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솔직히 십대고수와의 싸움은 좀 싱거웠다.
영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격차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물론 영력을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긴 하지만 말이다.
혈검대주는 영력을 쓰는 자였다.
무명의 모든 무사가 혈령마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혈검대에서도 특별한 몇몇만 혈령마공을 익혔다.
혈검대주는 그 중에서도 상당한 경지였다.
하지만 철란은 혈검대주와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영력의 양은 자신이 오히려 더 많다고 말이다. 게다가 질도 자신이 위였다.
철란이 혈검대주에 비해 모자란 것은 내공과 경험뿐이었다.
하지만 경험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철란은, 아니, 현천장의 모든 사람들은 수련할 때 진심으로 목숨을 건다.
목숨을 건 한 번의 경험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비교적 안전한 백 번의 경험보다 낫다.
이내 정문 앞에는 철란과 혈검대주만 남았다.
혈검대주는 서늘한 눈으로 철란을 노려봤다. 왠지 자신이 무시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철란을 위아래로 몇 차례 훑어본 혈검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겨눴다.
척 보니 알겠다.
상당한 고수이긴 하지만 자신보다는 분명히 한 수 아래였다. 풍기는 기세가 그랬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뭐 있겠는가.
혈검대주는 곧장 철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쩌어어엉!
혈검대주의 검격을 철란이 간단히 막아냈다. 아니, 흘려냈다.
힘을 대부분 흘려냈을 뿐인데도 여력이 남아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다.
철란은 가볍게 검을 쥔 손과 손목, 그리고 팔뚝과 어깨를 순차적으로 진동시켜 여력을 털어냈다.
그걸 본 혈검대주의 눈이 번득였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과연 저걸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기예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예일 뿐이었다. 그런 걸 박살 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혈검대주는 검에 침투경을 심었다.
그냥 충격은 저렇게 털어낼 수 있겠지만, 침투경은, 그것도 혈검대주가 만들어내는 침투경은 그렇지 않다.
경력이 몸속으로 파고드니 그걸 막으려면 그보다 더 큰 내공으로 밀어내거나 없애야 한다.
하지만 없애는 과정에서 내부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혈검대주가 하수를 상대로 자주 써먹는 방법이었다.
혈검대주의 검이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며 쏟아진 검격을 철란이 간단히 막아냈다.
쩌저저저저정!
혈검대주의 눈이 또 커다래졌다.
철란은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그대로 베낀 것처럼 움직였다. 정확히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검을 휘두르니 모조리 막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더 대단한 것은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흘러 들어가는 침투경을 흘려낸다는 점이었다.
아까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이용한 진동으로 충격을 해소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을, 내공으로 해낸 것이다.
내공에 실린 침투경이 철란의 팔뚝을 통해 모조리 밖으로 배출되었다.
혈검대주는 기가 막혔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저 더욱 많은 힘을 검에 담고, 더 빨리 검을 휘둘렀다.
꽝! 꽝! 꽝! 꽝!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이젠 제법 큰 폭음이 일어났다.
검에 담긴 힘이 점점 커졌다. 철란은 어느 순간부터 힘과 침투경을 모두 흘려낼 수 없게 되었다.
철란은 몸에 충격이 쌓이는데도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처음 싸움을 시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저 담담했다.
또한 처음 싸움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일정했다.
혈검대주는 질린 표정으로 그런 철란을 바라봤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싸움이 계속 이어질수록 혈검대주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가 쓰는 모든 초식들이 철란에 의해 낱낱이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어떤 변초를 써도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
혈검대주는 이대로라면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쓰기로 했다.
혈령마공이 혈검대주의 몸에서 거칠게 일어났다.
그 순간, 무수한 영력의 검이 철란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이걸 한 번 쓰면 잠깐 동안 온몸의 힘이 쭉 빠져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가 되기에 끝까지 아껴두려고 했던 수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걸 안 쓰면 진짜 죽을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걸 쓴 순간, 승리를 확신했다.
혈령의 검들이 쏟아진 순간, 철란 역시 영력을 움직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일정한 속도와 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