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7)
연무장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밖으로 나가는 길이 없었다.
들어온 문으로 나가봤지만, 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다시 연무장 안으로 들어왔다. 담을 넘어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연무장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정말 기묘한 공간이었다.
“여기, 어떻게 빠져나가지?”
“부수면 되지 않을까?”
혈검대원들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그들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일단 힘을 쓰기 시작하면 진법이고 뭐고 전부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혈검대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이 막 힘을 쓰려는 찰나, 연무장 입구로 누군가가 불쑥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들어온 사람은 벽태산이었다.
벽태산은 혈검대원들을 슥 둘러보고는 씨익 웃었다.
“내 영약들이 여기 모여 있었구나.”
그것도 그냥 영약이 아니라 칠십이 년이나 묵은 아주 질 좋은 영약들이 말이다.
끝
벽태산은 연무장에 모인 혈검대를 슥 둘러봤다.
혈검대는 막 힘을 쓰려던 순간이었기에 살기등등한 눈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당장에라도 찢어 죽이고 싶다는 듯이.
“아슬아슬한 놈들이로구나.”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혈검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 다가갔다.
혈검대원들은 그제야 검을 뽑아 벽태산을 향해 휘둘렀다.
후웅! 후웅! 후웅!
그들의 검은 허공만 베었다.
분명히 벽태산을 벤 것 같은데 전혀 맞추질 못했다.
벽태산은 그저 앞으로 짧게 혹은 길게 걸었을 뿐이다.
뒤로 가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만 가는데 혈검대원들 중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어느새 벽태산은 혈검대원들 한가운데 도착했다.
벽태산이 멈추자 혈검대원들은 더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쩌저저저정!
벽태산을 감싼 투명한 강기가 그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쩌저저저정!
혈검대원들은 투명한 막을 부숴버리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투명한 막에는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벽태산은 그곳에 서서 혈검대원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그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혈검대원이 그대로 눈을 까뒤집더니 풀썩 쓰러졌다.
근처에 있던 자들이 흠칫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당연히 눈이 마주쳤다.
벽태산과 눈이 마주친 혈검대원들은 예외 없이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그렇게 십여 명이 쓰러지고 나서야 혈검대원들은 벽태산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빠르게 그들을 둘러봤다. 다들 시선을 피하느라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리고 난리가 났다.
벽태산은 그렇게 시선을 피하는 자들에게 다가가 명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털었다.
쩡!
“쿠웨엑!”
벽태산에게 맞은 혈검대원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쩌저저저저정!
날아가는 경로에 있던 다른 혈검대원들이 그와 부딪히면서 또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걸 지켜본 다른 혈검대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말이 안 되는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혔다고 해서 저렇게 사방으로 날아가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냥 쓰러진다면 모를까.
보고 있으니 꼭 나무토막을 세워 놓고 다른 나무토막에 기운을 실어서 던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게다가 동료에게 맞고 쓰러진 자들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벽태산은 그렇게 한 쪽을 쓸어버린 후, 몸을 돌렸다.
이제 이쪽만 처리하면 끝이다.
남은 혈검대원들은 죽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곧장 벽태산에게 달려들었다.
벽태산은 그들을 향해 크게 손을 휘둘렀다.
콰우우!
거친 바람이 일어나 달려오는 혈검대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혈검대원들은 달려오다가 정신을 잃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쿠당탕탕탕!
이제 연무장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벽태산뿐이었다.
벽태산은 바닥에 쓰러진 혈검대원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벽태산의 몸에서 영력이 뭉클뭉클 흘러나와 연무장 바닥에 연기처럼 촥 깔렸다.
퍽!
쓰러진 혈검대원 한 명이 퍽 터지더니 연기가 되었다.
검붉은 연기가 위로 확 퍼지며 올라가더니 바닥에 깔린 영기 속으로 쭉 빨려 들어갔다.
퍽! 퍽! 퍽!
연이어 혈검대원들이 하나씩 터지며 연기가 되었다.
뿜어져 나온 연기는 전부 벽태산의 영력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바닥에 있던 모든 혈검대원이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연무장에는 그들이 입었던 옷과 장비들만 남아 있었다.
벽태산은 바닥에 깔아뒀던 영력을 다시 회수했다.
영력은 놀라울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지금까지 겪은 반강시 중 최고였다.
벽태산은 문득 이들이 왜 이렇게 좋은 영력을 품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들은 어쨌든 강시다. 한데 영력을 품고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제조 과정에서 영력이 들어가는 것이 분명했다. 한데 그 영력이 혈령마공에서 비롯된 영력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런 양질의 영력을 이들로부터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번 궁금증이 생기고 나니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어갔다.
벽태산은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에서 나간 벽태산은 다시 감각이 쫙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놀랍게도 방금 연무장에 있을 때는 진법의 힘으로 감각이 차단되어 있었다.
물론 벽태산이 원했다면 감각을 차단한 힘을 부수거나 풀어버렸을 것이다. 벽태산의 힘을 원천적으로 막아낼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벽태산의 감각을 차단할 수 있다는 건 현천장의 진법이 정말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벽태산은 다시 펼쳐지는 감각을 통해 다들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확인했다.
“잘 하고 있군.”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슬슬 밥 먹을 시간이다.
* * *
염제는 현천장의 담장을 넘은 뒤, 이 안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 자가 바로 의선일 테니까.
한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진법 때문에 감각이 뒤틀린 것이다.
자신의 뇌리에 무언가를 콱 박은 놈이 아마 의선일 것 같은데, 현천장의 담장을 넘은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확실히 영력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나보다 위야.”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런 식의 세밀한 조절은 죽었다 깨도 못한다.
머리통을 태워서 증발시켜 버리는 거라면 모를까.
아무튼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든 만날 테고, 그놈을 잡아 의선의 위치를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해 일단 걸음을 옮겼다.
염제는 현천장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이 미친놈들 진법에 영력을 섞었어!”
그 영력이 계속 염제를 자극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기운을 빼앗아가려 했다.
물론 염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현천장의 진법은 대단히 뛰어나지만, 염제의 힘을 뚫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염제는 새삼 큰 어르신의 판단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큰 어르신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 정확한 판단으로 무명을 이끌어왔다.
이번에 자신을 여기 보낸 것도 그렇다.
직접 와서 보니 현천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방치하면 훗날 무명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걸림돌이 되었나?’
염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부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의선을 없애야 하고.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하면 당장 잡아서 의선의 위치를 물어볼 텐데, 아무리 걸어도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빈 장원이기라도 한 것처럼.
장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 이동했으면 최소한 한두 명은 만났어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염제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설마 진법에 휘말렸나?”
현천장 전체에 깔린 기분 나쁜 진법 말고, 다른 진법이 또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내가 걸려든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진법이 과연 존재할까?’
염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세 개의 전각이 저 멀리 보이는 장소로, 제법 넓은 공터였다.
그렇게 서 있는데, 세 개의 전각이 있는 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그림자만 보이며 다가오는 사람 같았다.
당연히 안개 같은 건 없었다. 사방이 선명했다. 한데 저 사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장원에 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 건지 모르겠군. 굳이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나?”
염제는 다가오는 사람이 들으라는 듯 제법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사람에게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저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기만 했다.
염제는 당장 달려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왠지 자신이 여기서 움직이면 저놈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진법 때문에 말이다.
그동안 진법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데 오늘 이렇게 겪어보니 정말 짜증이 났다.
다른 평범한 자들이 진법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다가오는 사람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그를 본 염제의 입가가 한껏 올라갔다.
다가온 사람은 그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던 의선이었다.
“의선!”
염제가 기쁨과 살기, 투기를 담아 외쳤다.
의선은 염제를 향해 걸어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아나?”
염제는 그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널 아느냐고? 그럼 넌 날 모른단 말이냐?”
“미안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네. 이해하게. 나이를 많이 먹었더니 중요하지 않은 기억들부터 툭툭 떨어져 나가더군.”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라고? 내가?”
의선은 난감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염제가 외쳤다.
“내가 바로 염제다!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
“염제?”
의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았다. 염제라는 별호를 쓴다면 굉장히 거창한 자일 텐데, 그런 기억이 떨어져 나갔을 리 없었다.
“네놈에게 패배한 이후 다시 싸우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절치부심해왔는데, 내 존재조차 잊고 있다니.”
염제는 헛웃음을 흘리고는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의선을 노려봤다.
“어차피 상관없다. 넌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까.”
의선이 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네. 오늘 밤에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약속이 있든 말든 관심 없었다. 누구와 무슨 약속을 했든 그걸 지키지 못할 테니까.
한데 의선은 굳이 그 얘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시간 나거든 백화루에 꼭 가보게. 극락이 따로 없는 곳일세. 거기 능설이한테 오늘 밤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지.”
그 말을 하는 의선의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지 염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기루에 간다고? 천하의 그 의선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진짜 의선이 맞나?”
의선이 혀를 찼다.
“보아하니 나처럼 재미없게 살아온 모양이로군. 그러지 말게.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법일세.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로 후회한다니까?”
“닥쳐라!”
염제는 그렇게 외치고는 의선에게 달려들었다.
화르륵!
그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의선은 그걸 보며 눈을 번득였다. 저 불은 그냥 불이 아니라 영력으로 만들어낸 불이었다.
“대단하군.”
의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염제는 막대한 영력을 가진데다가, 영력을 다루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영력을 그 정도로 다루는 사람은 처음이로군. 아, 한 명은 예외로 빼고.”
벽태산은 이런 얘기를 할 때 제외해야 한다. 천외천은 원래 빼는 것이다.
“닥치라고 했다!”
염제는 그렇게 외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화르르륵!
염제의 주먹에서 맹렬한 불길이 뿜어져나갔다.
그 불길은 엄청나게 빨라서 순식간에 의선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천하의 의선이 고작 이런 수에 당할 리 없다. 염제는 불길에 휩싸인 의선에게 더욱 바짝 다가가 손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정!
화르르르르륵!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의선은 멀쩡했다. 이렇게 자신의 공격을 철저하게 막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염제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의선이 손바닥을 내밀어 그 주먹을 받아냈다.
꽝!
거친 폭음과 함께 의선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불꽃이 확 날아가 버렸다.
의선의 몸은 그을림 하나 없이 깔끔했다.
염제는 인상을 쓰며 뒤로 툭툭 물러났다.
방금 충돌로 확실히 알았다. 의선의 영력이 역시나 자신보다는 한 수 위라는 것을.
“그래도 내가 이긴다.”
염제는 몸을 휘감은 불꽃을 다시 흡수했다.
불의 영력이 안으로 한껏 응축되었다. 그리고 염제의 손바닥 위로 툭 튀어나왔다.
응축된 영력의 불꽃이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으며 회전했다.
의선은 그걸 보며 말했다.
“무리하지 말게. 영력은 그렇게 막 쓰는 게 아닐세. 그 불구슬이 자네 몸을 축내고 있지 않나.”
“네깟 놈이 뭘 안다고!”
염제는 불구슬을 든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불구슬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의선을 향해 날아갔다.
아무리 의선이라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의선은 두 손을 들어 불구슬을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