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20)
가는 내내 의선의 입가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벽태산이 내준 숙제를 풀었으니 이제 잠깐 쉬다가 오늘 하루 힘들었던 시간의 보상을 받으러 백화루에 갈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운이 뻗쳤다.
의선의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 * *
현천장이 습격 받은 소식은 조용하지만 빠르게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이번에는 굳이 하오문이 개입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뒀는데, 무명 놈들이 무한을 가로질러 현천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봤기에 소문이 사방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하오문이 개입했다면 그 소문조차 막아낼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문은 사람의 입을 탈 때마다 조금씩 과장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한을 가로지르던 무명의 무사들은 정말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다.
무한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갈 때만 길을 비켜주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바로 돌아갔지만, 제법 인상 깊었기에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게다가 현천장에서 갑자기 거대한 불의 장벽이 나타나질 않나, 안개가 끼질 않나,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졌다.
그런 얘기를 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씩 과장이 섞였다.
나중에는 하늘에서 신장이 내려와 싸웠다는 얘기까지 섞여 버렸다.
하지만 그 소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어쨌든 결론은 하나였다.
엄청나게 강력한 자들이 현천장을 공격했지만, 모두 죽거나 잡혔고, 현천장에는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무한에 제대로 된 정보원을 심지 못했던 무명에서는 소문을 통해 그 정보를 확인했다.
사실을 확인한 혁련가주는 이걸 좋아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 이번 일이 실패하는 바람에 현천장을 어떻게 해보겠다던 심가와 악가의 주장이 쏙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잃은 것이 너무나 컸다.
봉우리의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심가와 악가의 핵심 무사들을 잃었다.
게다가 혁련가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체와 혼백까지 전부 잃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이번 일에 나중에 참여한 염제까지 잃었다.
이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이걸 다시 복구하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혁련가주가 그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총관이 다급히 찾아왔다.
“가주님, 저 총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총관이 집무실로 들어오자, 혁련가주가 피곤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신교 쪽에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총관은 공손히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아마 환마가 또 구멍을 열고 서찰을 내보낸 모양이었다.
서찰을 받아 모두 읽은 혁련가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총관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자, 혁련가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환마가······ 현천진에 제법 큼직한 구멍을 뚫었다는군.”
그래서 이제 사람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혁련가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사실, 이제부터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재정비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천마신교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걸 조금 미뤄도 되지 않겠는가.
혁련가주의 눈빛이 더없이 음험하게 빛났다.
끝
환마는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그의 몸 주위로 새하얀 기운이 위태롭게 일렁였다.
새하얀 기운은 끊임없이 환마 주변의 땅으로 스며드는 중이었다.
지금 환마는 이 봉우리 전체에 펼친 진법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약간의 개조도 하고 말이다.
환마는 현천진에 개입할 방법을 찾아내느라 거의 잠도 자지 않고서 애썼다.
그리고 그 결과를 얼마 전 얻어냈다.
지금은 그걸 이곳의 진법에 적용하는 중이기도 했다.
하얀 기운이 더 이상 환마의 몸에서 나오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모든 기운을 쓴 것이다.
하얀 기운은 봉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봉우리 전체에 펼쳐진 진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환마의 머릿속에 진법의 전체적인 모양이 그려졌다. 환마는 자신의 기운을 조절해 진법의 구성을 조정했다.
모든 조절을 마친 환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전이 텅텅 비었다. 그리고 약한 내상도 입었다.
아마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한 명 정도는 내보낼 수 있다.
환마는 그렇게 선 채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봉우리 아래에 누군가 나타나더니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중년의 사내였는데, 온몸에서 살기와 투기가 넘실거렸다.
“왔는가.”
“예. 어르신.”
“그 상태로 밖에 나가면 할 일을 제대로 못할 걸세.”
“아! 주의하겠습니다.”
사내의 몸에 넘실거리던 살기와 투기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환마는 사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주 든든했다.
이자는 천마의 호위무사였던 비검이었다.
물론 천마에게 호위무사가 필요할 리 없으니 그저 따라다니는 시종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명색이 천마의 호위무사이니 얼마나 대단한 고수이겠는가.
천마의 호위무사는 모두 다섯이 있었고, 항상 그 중 두 명이 천마의 곁을 지켰다.
나머지는 그 사이 충분한 휴식을 취해 천마의 곁을 지킬 때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를 했다.
비검이 살아남은 이유도 교대 임무를 하느라 천마가 주변을 싹 날려 버릴 때,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번이었던 나머지 두 명은 천마의 힘에 휩쓸려서 죽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호위인 것이다.
사실 비검은 원래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언젠가는 새로운 천마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새로운 천마의 호위무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신은 이미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새로운 천마의 호위무사는 새로운 무사로 정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흔쾌히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현재 천마신교애서 쓸 수 있는 칼 중, 자신이 가장 강했으니까.
‘한데 왜 그러셨을까?’
비검은 현천진을 보고 있으니 죽은 천마가 떠올랐다.
천마는 신교의 최고수들과 수뇌부들을 전부 죽였다. 심지어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한 호천대까지 싹 죽였다.
‘내가 아는 주군은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니야.’
그래서 답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분명히 무언가 일이 있긴 있었다.
비검은 환마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자칫하면 환마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수도 있었다.
수뇌부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 환마였다.
그래서 지금은 신교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도 했다.
새로운 천마를 세우는 일을 진행하는 것 역시 환마였다.
아마 새로운 천마는 환마와 굉장히 친밀한 관계가 되거나, 아니면 천마가 되자마자 환마를 죽일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천마가 그러했듯이.
그걸 하지 않은 천마가 바로 비검이 모시던 그분이었다.
그런 분이 자신의 수하를 전부 죽였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진실이었다. 그러니 그 이면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아닐까?
적어도 비검은 그렇게 생각했다.
비검이 그렇게 딴 생각을 잠시 하고 있을 때, 환마가 말했다.
“열리는 순간은 지극히 짧네. 그러니 빨리 지나가야 하네.”
“예. 위치만 알면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검의 말에 환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주 잘 알기에 괜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당부하지 않아도 비검은 아주 잘 해낼 것이다.
“나가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걸세. 그를 따라가면 되네.”
“정확히 나가서 뭘 하면 됩니까?”
“무한에 현천장이라는 곳이 있네.”
“현천장?”
비검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누가 현천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쓴단 말인가.
물론 그들은 모르고 쓴 것이겠지만, 결코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놈들이 현판을 바꾸게 하면 됩니까?”
환마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닐세. 거기에 비천단과 월영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네.”
비검의 눈이 커다래졌다.
비천단과 월영단이라니. 그들이 왜 거기에 있단 말인가. 하면 설마 그들이 현천이라는 이름을 갖다 썼단 말인가?
“배신한 겁니까? 우리를?”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네. 그러니······ 일단 나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게. 기회가 되면 비천단이나 월영단을 만나 설득해보고. 그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야 하지 않겠나?”
“배신자를 다시 받아들이겠단 말입니까?”
“그들이 배신했는지 아닌지 아직 확실치 않네. 속고 있을 수도 있고.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하는 게 좋지 않겠나?”
비검은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겠습니다. 일단 자리를 잡고 기다리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아직 내 힘이 미약해서 닷새에 한 명 정도 내보낼 수 있을 것 같군. 그들을 전부 자네에게 보낼 테니 잘 데리고 있게.”
닷새에 한 명이면 한 달에 여섯 명이다. 일 년 모아봐야 일흔두 명이 고작이다.
“지금이야 닷새에 한 명이지만, 조만간 더 많은 사람을 내보낼 수 있게 될 걸세.”
“외부에 신교를 세우시려 하십니까?”
환마가 고개를 저었다.
“십 년이면 현천진이 사라지는데 굳이 왜 그렇게 하겠나. 그저 기반을 좀 닦아놓을 생각이네. 무림을 좀 흔들어 둬야 나중에 현천진이 없어졌을 때, 우리 신교의 위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무림을 흔드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뜻이었다.
비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신을 비롯해 신교의 고수들이 백 명만 모여도 감히 누구도 함부로 자신들과 싸우겠다고 나서지 못할 것이다.
“밖에서 기다리는 자가 물심양면으로 도울 테니 자네도 그들을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네가 간다니 마음이 놓이는군. 자, 그럼 시작하겠네.”
환마는 그렇게 말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하얀 기운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환마가 노려보고 있는 부분이 확 열렸다.
비검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열린 틈은 곧장 닫혔다.
환마는 그걸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잘 하면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이 한꺼번에 나갈 수도 있겠는데?”
물론 자칫하면 몸이 동강 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각오야 다들 하고 살아가니 상관없었다. 여기는 천마신교니까.
환마는 잠시 현천진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봉우리에서 내려갔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승도흥은 무명이 쳐들어왔을 때도 거처에 틀어박혀서 한 발짝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나서 봐야 싸움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진법을 다룬다든가 하는 식으로 도울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도 거처에 틀어박힌 것은 벽태산이 준 진법서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진법을 바라보는 관점이 기존과 전혀 달랐기에 굉장히 새로웠다.
그 새로움이 승도흥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다.
승도흥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건 승도흥이 진법서를 세 권 읽을 때까지의 일이었다.
그 이후의 진법서부터는 좀처럼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너무 어려웠다.
앞의 세 권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아예 이해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승도흥에게 있어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진법에 한해서 자신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이 진법서를 읽은 이후, 믿음에 금이 갔다.
솔직히 승도흥은 자신에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환마도 넘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어느 정도 스스로 증명했다고 여겼다.
한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진법서를 보고 나니,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이다.
그래도 승도흥은 포기하지 않았다.
밖에서 싸움이 일어나건 말건, 누가 불을 지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진법서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이해하고 또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닫다보니 어느새 또 한 권의 진법서를 완독할 수 있었다.
승도흥은 진법에 대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뒤로 나머지 진법서들까지 열심히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공부와 연구를 거듭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찾아왔다.
승도흥은 벽태산이 온 줄도 모르고 진법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하는 중이었다.
벽태산은 그런 승도흥을 가만히 쳐다봤다.
승도흥은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공포였다. 자신에게 이런 공포를 줄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승도흥을 벌떡 일어나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그리고 벽태산을 발견했다.
그는 얼른 달려가 벽태산에게 꾸벅 인사부터 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벽태산은 인사를 받는 대신 다짜고짜 물었다.
“준비 되었느냐.”
“예? 무슨 준비 말씀이십니까?”
벽태산은 승도흥을 가만히 쳐다봤다.
승도흥은 그제야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설마 현천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전 벽태산이 현천진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사실 지금 자신이 보는 진법서는 그러라고 벽태산이 준 것이다.
“아,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승도흥은 마지막 진법서를 읽고 있었다.
이 진법서들이 새롭고 대단한 이유는 진법을 통해 영력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도흥은 현천진에도 영력이 들어갔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환마 정도 되는 진법의 천재가 현천진을 분석하지 못했을 리 없다.
무언가 분석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에 못 한 것 아니겠는가. 승도흥은 그것을 영력이라고 봤다.
그러니 현천진을 해체하려면 이 진법서들을 완벽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또한 실전도 경험을 해봐야 한다.
한데 벽태산 앞에서 시간을 더 달라는 말을 좀처럼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준비가 안 된 모양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승도흥이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쯤 될 것 같으냐.”
승도흥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되도록 짧은 기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랬다가 기간 안에 못하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아마 감당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