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21)
“정확히 얘기해라.”
승도흥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확한 기간을 떠올렸다.
“보름입니다.”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보름 후에 오마.”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승도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십 년 감수했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수명이 십 년 정도 줄어든 것 같았다.
아마 벽태산 덕분에 영력을 깨우지 못했으면 진짜 수명이 줄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벽태산과 대화하는 건 심력 소모가 굉장히 큰 일이었다.
잠시 그렇게 앉아 있던 승도흥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돼!”
보름 안에 무조건 해내야 한다.
이 진법서를 전부 독파하고 자신만의 진법 세상을 열어야 한다.
승도흥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목숨을 걸기로 했다.
* * *
비검은 현천진을 빠져나오자마자 만난 사내를 따라 이동했다.
목적지는 호북에 있는 무한 근처의 작은 현이었다.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신교로부터 올 동료들을 기다리는 것이 비검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비검은 그저 기다리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비천단과 월영단부터 찾아봐야겠어.’
비천단보다는 월영단에 더 비중을 뒀다. 솔직히 비천단은 코앞을 지나간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한으로 가서 현천장이라는 곳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비검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를 안내한 무명의 정보원이 말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정보가 필요하다.”
“예?”
“현천장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있나?”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준비해 보겠습니다.”
무명의 정보원은 그렇게 대답하고 물러났다. 한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검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비검의 모습을 보니 왠지 불안감이 더 커졌다.
‘설마 현천장으로 직접 달려가거나 하진 않겠지?’
그럼 낭패다.
이쪽에는 천마신교를 차츰차츰 구축할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비검이 함부로 자리를 뜨면 안 된다.
비검은 여기서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야만 한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니 보고부터 해둬야겠어.’
무명의 정보원이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끝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슬슬 현천장에 더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맹과 련을 너무 오랫동안 비웠다.
아무리 수하들이 오가며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이제 이 생활을 정리할 때가 왔다.
두 사람은 조촐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솔직히 현천장에 머문 시간이 그렇게까지 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중요치 않았다.
함께 여러 일을 겪으면서 관계가 점차 깊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정이 생기기에는 아주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언제 돌아가기로 했나?”
“자네랑 같네.”
“모레?”
흑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아주 많은 것을 얻어가는군.”
“그러게 말일세.”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처음 여기로 오게 된 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의 일이 머릿속으로 차례차례 지나갔다.
특히 무림맹주는 천무련을 거쳐서 왔기에 더 많은 일을 겪었다.
“그 무명이라는 놈들······ 설마 또 천마를 되살려 내거나 하지는 않겠지?”
당시 의선이 간신히 물리치긴 했지만, 천마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의선 어르신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아마 걱정 안 해도 될 걸세.”
그 말에 무림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의선의 말이 틀린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도 없었다.
“그나저나 의선 어르신을 뵙기가 하늘의 별 따기로군. 오늘도 나가셨나?”
두 사람은 살짝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현천장에 와서 가장 놀랐던 일은 의선이 매일 기루에 출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두 사람이 알던 의선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루를 출입하고 마치 쾌락을 탐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가 있으신 것 같더군.”
“그러시겠지. 함부로 그러실 분은 아니니까.”
“예전보다 뭔가 훨씬 대단해지신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선의 분위기가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다.
게다가 자신들 역시 예전과 비교해 훨씬 강해졌기에 의선이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더 명확히 보였다.
한데 그 답이 기루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의선만이 가능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흑련주였다.
“우리도 가볼까?”
“응? 어딜 말인가? 설마 기루?”
“그냥 기루가 아닐세. 의선 어르신이 다니는 기루이지. 백화루에 가신다지?”
“백화루가 하오문의 본단인 건 알고 있나?”
“당연히.”
“그런 곳에 가겠다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마음먹으면 하오문이 우리 정보를 못 얻겠나? 더구나 우리 지금 현천장에 있네. 하오문이 현천장 소속인 건 알고 있지?”
“천무련 소속이기도 하지.”
“우리 정보를 천무련에 쉽게 넘기지는 않을 걸세. 어디까지나 천무련은 무명을 상대하기 위해 세운 곳이니까.”
하오문쯤 되면 그 정도 구분은 명확히 할 것이다.
“뭐······ 좀 궁금하긴 하군.”
솔직히 두 사람은 정말 궁금했다. 대체 의선이 거기서 뭘 얻었고,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그렇게 성장했는지 말이다.
“그런데 기루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 맞긴 한가?”
“그게 아니면? 의선 어르신이 낮에 따로 수련하는 거 본 적 있나?”
“낮에는······ 대부분 주무시지.”
밤에 탕진한 기력을 채워야 하니 낮에는 정말 잘 먹고 푹 쉰다.
가끔 명상을 좀 하는데, 고작 그것만으로 성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결론은 기루다.
무림맹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세.”
“지금?”
흑련주는 그렇게 물으며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장원 밖으로 나가 백화루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백화루가 시야에 들어오자, 무림맹주가 흑련주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하오문에서야 알겠지만, 굳이 정체를 밝힐 필요는 없지 않겠나?”
“당연한 얘기를. 우린 지금부터 무림맹주도 흑련주도 아닐세. 그냥 나이 좀 먹은 사내일 뿐이지.”
여기는 하오문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루를 이용하는 일반 손님들도 있다.
또한 백화루의 모든 기녀와 일꾼들이 하오문 소속은 아닐 것이다.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을 테니 그들에게 굳이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기루에 왔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조용히 가서 의선이 과연 무엇을 통해 발전을 이뤘는지, 딱 그것만 확인해 보면 된다.
두 사람은 이내 백화루 앞에 도착했다.
그 순간, 좀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라? 이게 누구야! 이거 무림맹주님이랑 흑련주께서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신 거요!”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무림맹주과 흑련주가 흠칫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반응을 보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준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두 사람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천추신의였다.
천추신의 역시 일침괴와 소청명을 데리고 백화루에 놀러온 참이었다.
참고로 의선은 이들과 따로 훨씬 먼저 와서 이미 백화루 안에서 기분 좋게 즐기는 중이었다.
“이야, 백화루가 물이 좋긴 좋은가봐. 이렇게 명망 높으신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놀러 올 정도니 말이야. 어이! 거기 뭣들 해? 여기 귀한 손님 오셨는데, 계속 여기 세워둘 참이야?”
천추신의가 백화루 안쪽을 향해 지금까지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백화루 안에서 기녀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기녀들은 무림맹주와 흑련주의 양 옆에 찰싹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떨며 두 사람을 기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당연히 천추신의 일행에게도 기녀들이 붙어서 데려갔다.
“거기 두 분 잘 모셔야 한다! 무림맹과 흑련의 수장이시다! 각별히 모셔!”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눈치도 없이 왜 이렇게 계속 자신들을 언급하면서 떠든단 말인가.
‘진짜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
두 사람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 * *
비검은 무명 측에서 제공한 정보들을 쭉 살펴봤다.
무한의 현 상황과 현천장에 대한 정보였다.
이 정보대로라면 현천장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현천장이 무한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긴, 비천단과 월영단이 손을 잡은 데다, 하오문까지 합류했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정보를 장악하고 있으니 다른 세력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정보가 정말 너무 없군.’
정보의 양과 질이 빈약했다. 이 정도 정보는 자신이 나서더라도 보름쯤 돌아다니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듯했다.
비검이 그렇게 정보를 확인하고 앞으로 현천장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가 머무는 거처로 들어섰다.
비검은 그들을 확인하고는 눈을 빛냈다.
그들은 월영단 소속 무인들이었다.
현천장이 천마신교를 가둘 때, 외부에 나가 있지 않고 내부에 머물고 있던 자들 말이다.
사실 월영단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가 천마에 의해 죽었다.
오늘 온 자들은 그 남은 월영단 중 다섯이었다.
“어서들 오게.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 잘 됐군.”
월영단원 한 명이 비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좀 무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한 명이 죽을 뻔했다.
월영단원이 비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들 나름대로 확인할 사안들이 있는데, 따로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게. 아, 현천장에 자네들 동료가 있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한 번 살펴보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월영단원들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 무명 소속 무인에게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그 중 가장 강조하던 것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과, 현천장에 섣불리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무한에는 웬만하면 가지 말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한데 지금 비검을 보니 그런 무명의 당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하지 않은가.
비검은 월영단의 반응에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가 무명인가? 우린 천마신교일세. 우린 우리만의 방식이 있고, 우리만의 신념이 있네.”
“맞습니다.”
월영단원들은 천마신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천진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천마신교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
사실 그보다는 워낙 큰일을 겪어서 아직 그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비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가 수뇌부와 측근을 모조리 갈아 버리고 승천했으니,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더구나 월영단은 거기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움츠러든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래선 안 된다. 자신들은 천마신교다.
“월영단이 몇이나 남았나?”
“신교 내에서는 열세 명이 더 남았습니다.”
“밖에서 활동하던 자들이 몇 명인지 혹시 알고 있나?”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열 명이 넘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월영단원이라고 소속된 단원들을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그걸 전부 아는 사람은 월영단주를 비롯한 몇 명뿐이었다.
워낙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자들이 많아서 동료들에게도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
비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나머지 월영단은 언제쯤 보내준다고 하던가?”
“닷새 후에 나올 겁니다. 몇 명이 나올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도 제법 무리를 했는지라······.”
아마 다음에도 또 무리를 하면 분명히 한 명은 죽을 것이다.
오늘 온 월영단원들은 실력 순으로 잘랐을 때, 상위 다섯 명이었다.
“알았네. 그만 가서 하고자 하는 일부터 하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따로 내게 전해주고. 무명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월영단원들이 비검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건물에서 나가는 순간, 월영단원들이 마치 세상에 녹아들기라도 한 듯 기척이 사라져 버렸다.
비검은 월영단원들의 실력에 새삼 감탄하며 다시 정보가 빼곡히 적힌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걸 머릿속에 욱여넣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비검의 거처를 나선 월영단원들이 가장 먼저 하려는 것은 외부에서 활동하던 월영단원들이 서로 주고받은 연락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월영단끼리 연락하는 방법은 천룡표국을 이용해 천하전장에 암호로 작성한 내용을 맡기는 방식이었다.
천하전장의 모든 지부에 동시에 전달되기에 가까운 천하전장의 지부에 찾아가면 된다.
천하전장의 지부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현이나 도시에 대부분 세워져 있었다.
한데 지금 비검이 머물고 있는 현은 규모가 작아서 천하전장의 지부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다른 지부로 가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