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23)
“공자님께서 오셨네요.”
장일독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 그러니까 계단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 벽태산이 언제나와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벽태산은 월영단원들을 슥 둘러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데 월영단원들은 전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기세에 짓눌린 것도 아니고, 그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 첫 번째 경험을 안겨준 사람이 바로 천마였다.
월영단원들의 눈에 불신의 빛이 깃들었다.
그 중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미친 건가? 왜 여기가 꼭······.”
그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서였다.
그가 하려던 말을 장일독이 받았다.
“왜? 여기가 꼭 신교 같아?”
월영단원들이 흠칫 놀랐다. 정확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가 꼭 천마신교 같았다.
그것도 지금의 천마신교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천마가 살아 있을 때의 천마신교 말이다.
오히려 현천진에 갇힌 천마신교보다 이곳이 더 천마신교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적어도 월영단원들의 느낌은 그랬다.
월영단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벽태산이 그들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너희 말고 또 누가 있느냐?”
월영단원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비, 비검 어르신이······.”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비검? 비검이 살아있었느냐?”
월영단원들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의 입가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안내해라.”
월영단원들이 벽태산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이대로 비검을 만나러 간다면 굉장히 상황이 복잡해진다.
아직도 현천진을 뚫고 나와야 할 동료들이 많이 있었다. 한데 무명이 이 사실을 알면 모든 상황이 백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화옥이 나섰다.
“공자님, 그분을 이쪽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월영단원들이 그 말에 화들짝 놀라 화옥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천마에게 감히 월영단주가 저런 제안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들은 이곳이 천마신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분위기에 취해 정말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월영단원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그들에게 명령했다.
“데려와라. 옛 주인이 기다린다고 전하고.”
“예?”
월영단원들이 다들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존명!”
분위기에 또 너무 취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월영단원들의 표정이 살짝 무너졌다.
그리고 그런 월영단원들을 장일독이 아주 즐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마 비검도 여기 오면 저와 똑같아지리라.
끝
다섯 월영단원은 어느새 비검이 머무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여전히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은 채 터벅터벅 걸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무명에서 온 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다들 바삐 오가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건물 내부를 정리하고 집기를 배치하는 등의 일이었다.
월영단원들은 그제야 표정을 수습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결코 무명이 알아선 안 된다.
무명 놈들의 목표가 현천장을 무너뜨리는 것 아닌가. 한데 그 현천장에 아주 중요한 분들이 있었다.
‘아직······ 모자라. 더 확인이 필요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랬다. 한데 감성과 본능이 계속 결론을 강요했다.
잠깐 멈칫하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을 여기로 데려왔던 사내가 다가왔다.
“출타하셨었군요. 혹시 어디에 다녀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월영단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우리보고 당신한테 보고를 하라는 거요?”
사내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서로 적극적인 협력을 위해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혹시 제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일을 처리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별 중요한 일이 아니니 말해줄 필요도 없겠군.”
월영단원은 그 말을 남기고 기분 나쁜 티를 풀풀 풍기면서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사내가 그런 월영단원을 바라보며 스산한 표정을 지었다.
“저것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긴 해야 하는데······.”
이대로는 쓸모가 줄어든다.
잘 구슬리면 써먹을 수야 있겠지만 저렇게 각을 세우고 있으면 앞으로도 불편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한 일들이 결국 계획을 그르치게 만들 테고 말이다.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방법이야 많다. 예를 들면 독을 먹인다거나 인질을 잡고 협박한다거나.
사내는 머릿속으로 어떤 방법이 좋을지 궁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 정리할 것이 많다. 그리고 슬슬 새로운 인물들을 데리러 천마신교로 가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비검은 우르르 들어오는 월영단원들을 바라봤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온 걸로 봐서 일이 금방 끝났거나, 아니면 뭔가 틀어졌거나 둘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한데 표정들이 왜 그런가?”
월영단원들의 표정은 아까 나갈 때와는 많이 달랐다.
아까는 결연함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왠지 혼란스러워 보였다.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비검의 물음에 월영단원들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지금 하려는 말은 절대 외부로 흘러나가선 안 된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기막을 펼쳤다.
비검은 의아했지만,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힘도 추가로 썼다.
비검까지 나서니 몇 겹이나 되는 기막이 형성되었다.
이제 이곳에서 하는 말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월영단원들은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비검은 그들이 일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오늘 현천장에 다녀왔습니다.”
월영단원의 말에 비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경솔한 짓을 했군. 무한에 다녀오는 정도는 뭐라고 할 생각이 없지만, 현천장이라니.”
월영단원이 얼른 말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무한에 가서 천하전장 지부에만 잠깐 들렀다 오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비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무한에 들어서자마자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장일독이라고 예전 월영단주님 직속으로 일하던 단원입니다.”
“월영단을 만났군.”
월영단이 현천장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현천장에는 월영단 말고 비천단까지 있다고 했다.
비검이 뭘 궁금해 하는지 알기에 월영단원은 얼른 입을 열었다.
“현천장에 월영단과 비천단 전부 있는 것 맞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검귀 어르신과 혼천마 어르신도 계신다고 합니다. 물론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만······.”
비검이 눈살을 찌푸렸다.
“혼천마는 뇌옥에서 죽은 걸로 알고 있는데?”
월영단원은 현천장에서 들은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 주었다.
비검은 그 얘기를 모두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야. 하면 환마 그 씹어 먹을 놈이 무명과 손잡고 신교를 팔아넘기려 하고 있는 거로군.”
“더 정확한 건 알아봐야 하지만······ 환마의 속셈이 지저분한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마를 응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현재 천마신교에서 나올 수는 있지만 다시 들어가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일단······ 현 상황을 유지하게. 아직 신교에서 나와야 할 사람들이 많아. 좀 더 사람을 모은 다음······ 그 다음에 일을 벌이도록 하세.”
월영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다.
“저······ 어르신.”
월영단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한다.
“어르신께서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설마 현천장을 말하는 건가?”
“예. 현천장의 주인이······ 어르신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비검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날 보고 오라고 했다고? 자기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오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여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간신히 말렸습니다.”
“하긴, 그렇군. 한데 내가 굳이 그자를 만나야 하나?”
비검은 솔직히 별 필요성을 못 느꼈다. 현천장은 나중에 결국 무너뜨려야 할 곳이다.
감히 현천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갖다 쓴 놈들을 어찌 내버려둔단 말인가.
“그분이······.”
비검은 월영단원들의 말이 계속 거슬렸다. 지칭할 때 그분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왠지 현천장의 주인을 자신들의 상관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지금도 그렇다. 모양새가 꼭 현천장의 명령을 받아 자신을 데려가는 것 같았다.
그 부분을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얘기를 다 듣고 나중에 지적을 해도 될 테니까.
“그분이 옛 주인을 만나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뭐라? 지금 뭐라고 했나?”
비검의 몸에서 살기가 넘실넘실 일어났다. 주변에 펼쳐둔 기막이 마구 흔들렸다.
“어르신, 진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나? 자네들은 그따위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나? 그딴 말을 내게 가져오다니 제정신인가?”
비검의 옛 주인이 누구겠는가. 천마다.
한데 그런 말을 하다니. 이걸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월영단원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직접 만나 뵈면 아마 어르신도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뭐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비검의 몸에서 살기와 투기, 분노가 폭발했다.
콰아아아아!
기막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건물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르신!”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이곳의 책임자이기도 한 사내가 다급히 비검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를 본 비검이 순식간에 기세를 갈무리했다.
“후우. 별 거 아니오. 화가 나는 일이 좀 있어서.”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무섭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됐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당신 할 일을 하시오.”
사내는 그 말에도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비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봐야 먹힐 것 같지가 않은 고집스러운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제가 거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 어떤 일보다 우선해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비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소.”
사내가 물러가자 비검이 월영단원들을 쳐다봤다.
방금 너무 흥분했다. 이래선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
“후우.”
비검은 숨을 훅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것이다.
“저놈들의 눈을 피해서 가야 하는데, 과연 가능하겠나?”
비검은 그런 말을 전하라고 시킨 자의 얼굴을 꼭 보고 싶었다.
“방법을 만들겠습니다. 현천장에서도 도와주기로 했으니 아마 금방 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천장에서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월영단원들을 보며 비검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 하는 자들이기에······.’
비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월영단은 그쪽에 홀딱 넘어간 듯했다.
‘다음에 올 자들도 월영단인데······.’
비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어서 자리를 만들어 보게.”
월영단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비검은 과연 현천장이 어떤 식으로 도와서 자신을 그리로 데려갈지 궁금하고 기대도 됐다.
‘현천장이라······.’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 * *
비검은 월영단에게 자신이 현천장으로 갈 방법을 만들어 보라고 했지만, 그게 금방 될 거라고는 예상치 않았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비검 일행이 머물고 있는 건물에는 무명에서 온 무사들이 수두룩하다.
당연히 이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 건물들에도 잔뜩 포진해 있었다.
무명의 무사들은 상당한 실력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비검이 마음먹고 나서면 그들만으로는 결코 당해낼 수 없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들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명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천마신교에서 사람을 빼내는 일 또한 중단될 테니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현천장의 역량을 파악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향후 계획을 조금씩 다듬고 있을 때,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비검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곳곳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자욱한 살기가 주변을 꽉 메우고 있었다.
살기의 원천은 무명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싸우는 자들을 무조건 죽여 버리겠다는 각오가 바짝 서 있었다.
반면 무명을 상대하는 자들은 살기가 거의 없었다.
굳이 죽이지 않고 다들 생포하려는 듯했다.
“허어. 하필이면 이럴 때······.”
대체 누가 공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명의 행적이 노출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기습을 당하는 것 아니겠는가.
“후우. 이걸 어쩐다······.”
비검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무명의 편을 들어 상대와 싸워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할지 말이다.
‘그나저나 월영단은?’
월영단이 저 싸움에 휘말렸을까봐 좀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월영단원들이 다급히 비검의 방으로 몰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