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26)
“이제부터 호위무사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벽태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벽태산이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지만 천경완은 결코 굴하지 않고 벽태산을 따라갔다.
벽태산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정문을 향해 이동하는 동안 일행이 속속 따라붙었다.
일단 월영단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현천장의 일을 돕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검과 혼천마, 검귀는 따라왔다.
의선은 남았고 천추신의, 일침괴, 초서란이 붙었다.
천마신교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 동안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들은 벽태산이 말리면 우겨서라도 따라갈 생각이었다.
의선은 천마신교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곳 무한에 있었으니 당연히 남았다.
승도흥이 붙었고, 벽태산의 시비들이 전부 붙었다. 거기에 연하린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사공예랑이 좀 떨어져서 따라왔다.
그녀는 사실 따라가기 싫었는데, 벽태산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최근 현천장에서 정말 즐겁게 지냈기에 더더욱 가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벽태산이 오라는데 가야지.
다들 천마신교에 간다는 생각에 긴장되면서도 기대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벽태산은 승도흥을 보며 물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승도흥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가자.”
끝
벽태산 일행이 무한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무명의 정보원들이 포착했다.
사실 운이 좋았다.
벽태산 일행이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그 주변을 엄청난 수의 하오문도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하오문도들의 능력이 상당했는지라 벽태산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을 관리했다.
그러니 하오문도들이 미처 관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좋은 자리를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렇게 금방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으리라.
그는 최대한 빠르게 무한에서 나온 벽태산 일행의 구성원을 파악해 다른 정보원에게 전달했다.
그 정보는 몇 단계를 거쳐 무명의 본거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 가문에 동시에 전달되었다.
세 가문의 가주는 즉시 모였다.
혁련가주는 다들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꺼냈다.
“소식은 다들 들으셨을 거라 믿겠습니다. 현재 현천장의 주력이 싹 빠져나간 것 같은데,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겠습니까?”
다들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 기회에 현천장에 전력을 집중해 무너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쪽의 소모가 너무 크다.
“현천장에는 의선이 있습니다.”
되살려낸 천마까지 물리친 의선이야말로 가장 주의해야 할 인물이다.
“벽태산 일행에는 혼천마와 검귀가 있고.”
둘 중 누가 더 까다롭고 위험한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당연히 의선이 더 위험하다.
“게다가 현천장이 있는 무한은 적의 영역이니······ 아무래도 공략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은 현천장의 영역이다. 그곳은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그동안 얻은 정보를 종합해 봐도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의견 중에는 무한 전역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있었다.
“허어, 한 지역의 정보망을 장악한다는 것이 이리도 무서울 줄이야.”
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뭐라도 해야지요. 이걸 마지막으로 모든 꼬리를 자르고 다시 숨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심가주와 악가주가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혁련가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한을 치는 것보다 벽태산 일행을 직접 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한에는 의선이 있고 전력이 집중되어 있다.
성공 확률을 생각하면 벽태산 일행을 치는 쪽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동안의 정보를 분석해보면 벽태산이 상당한 고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리 높아도 의선보다는 못하리라.
사실 생각보다 벽태산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벽태산을 상대한 자들은 전부 돌아오지 못했고, 그 싸움에서 벽태산이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니까.
그러니 벽태산을 의선 아래에 두는 것은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심지어 세 가주는 벽태산이 혼천마보다도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나저나 혼천마는 대체 왜 벽태산 쪽에 붙은 겁니까?”
심가주의 물음에 혁련가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속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문제는 금제가 안 먹힌다는 겁니다.”
“의선이 개입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의선이 걸린다. 그러니 사실 기회가 되면 의선부터 처리해야 한다.
“언제 기회가 날지 모르지만 길게 보든 짧게 보든 반드시 의선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 말에 나머지 가주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의선의 가장 큰 문제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향후 또 수백 년을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세월이 길어질수록 의선의 힘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벽태산 일행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나면, 그쪽에도 분명히 균열이 생길 겁니다.”
“맞습니다. 한 번 균열이 생기고 나면 빈틈을 파고들어 내부를 흔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고 말입니다.”
세 사람의 눈이 번득였다.
“하면 벽태산 일행을 치는 걸로 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전력을 투입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로군요.”
그때부터 세 가주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과한 전력을 투입했다가 다른 가문과 격차가 벌어지면 그걸 메우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번 계획을 실패하지 않는 선에서 전력을 최대한 아껴야만 한다.
게다가 심가와 악가는 지난 번 무한을 공략할 때 좀 과한 전력을 투입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혁련가에게 주도권을 몽땅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혁련가주께서 먼저 말씀해 보십시오.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혁련가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의 상황과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과연 어느 정도를 질러야 할까?
혁련가주가 잠시 고민하자, 배 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정신없이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침묵을 찢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구나. 어리석은 것들.”
세 가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소리가 너무나 낯익었다.
“크, 큰 어르신!”
세 가주가 두리번거렸다. 무명의 진짜 주인인 큰 어르신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작은 호수에 가까운 물 위에 띄운 배 에 있었기에 여기서 눈에 띄지 않게 숨으려면 배 아래쪽, 그러니까 물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큰 어르신이 물속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엿들었을 리가 없었다.
“어딜 보느냐.”
세 사람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 선수 끝에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일제히 일어나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됐다. 인사 받자고 온 것 아니다.”
세 가주는 긴장한 눈으로 큰 어르신을 바라봤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모르겠느냐?”
세 가주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꾹 다문 채 노인을 바라봤다.
“현천장의 시작과 끝이 벽태산이다. 의선도 무섭지만 벽태산이 진짜란 말이다.”
세 가주는 그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할 말은 많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어르신의 심기만 거스를 뿐일 테니까.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번은 끝났다. 다 포기하고 정리해.”
세 가주의 눈이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예? 안 됩니다!”
“어르신!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걸 이번 계획에 쏟았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그걸 전부 버려야 합니다!”
노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버려라.”
세 가주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어찌 버리란 말을 저리도 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이걸 모으고 이루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그 모든 노력을 한 방에 날려버리려 한단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세 가주는 갑자기 오한이 들어 덜덜 떨어야 했다.
그들은 두려운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어차피 내가 이기면 다 이기는 거다. 그냥 버려라. 괜히 꼬리 잡혀서 진짜로 몽땅 털리지 말고.”
노인의 말에 세 가주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버리겠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공포에 뇌를 절였다가 꺼낸 기분이었다.
“이참에 정리 한 번 하고 가자.”
“저, 정리 말입니까?”
세 가주는 노인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봉우리에 있는 것들 싹 털어라. 내가 보내주마.”
세 가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외부와의 모든 연계를 끊어라. 그리고 그렇게 끊은 것들을 전부 투입하고.”
“그, 그것은······!”
“싫으냐?”
노인의 물음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도 가문에 쓸데없는 것 남길 생각하지 말고 싹 털어라.”
“어, 어디까지 털어야 하, 합니까?”
“내가 미리 너희들 가문에 사람을 보내뒀다. 그놈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해라.”
세 가주는 불안한 마음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하고 산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저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제부터 세 가문의 영향력을 확 죽이고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의미 아닐까?
“시선이 불순하구나.”
세 가주가 얼른 눈을 아래로 깔았다.
“너희 마음이야 이해한다. 내가 불쑥 나타나 싹 빼앗아 갈까봐 걱정되느냐?”
“아, 아닙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럼? 싹 털어서 빈털터리가 될까봐 걱정되느냐?”
세 가주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적당히 남겼으니 걱정 마라. 뭐, 앞으로 다시 모으려면 제법 힘도 들 것이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안 죽고 살아남는 게 어디냐.”
세 가주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노인이 갑자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전부 쏟아서 벽태산이라는 놈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그때부터 계획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건 맞는 말인지라 세 가주의 마음이 개미 눈물만큼 풀렸다.
“그리고 그렇게 했는데도 실패한다면, 우린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깊숙이 숨어야 한다.”
세 가주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많은 전력을 투입해서 벽태산 하나를 못 처리한다면, 남은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여기는 그놈들이 못 찾을 것 아니냐. 혹시라도 이곳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건 철저하게 끊어라.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돌아섰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더 이상 우리가 숨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훌쩍 몸을 띄웠다.
선수를 밟고 뛰었는데도 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노인의 신형은 허공에 뜬 채 마치 녹아들듯 사라졌다.
세 가주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노인이 마지막에 한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의미는 노인이 천마를 이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니까.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 * *
벽태산 일행의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보통 벽태산과 함께 이동한다는 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심장과 폐가 터질 때까지 미친 듯이 달린다는 뜻이다.
한데 이렇게 적당한 속도로 이동을 하니 오히려 뭔가 이게 아닌 것 같고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게 며칠 이동하고 나니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편안해졌다.
일행은 마차도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했다.
당연히 이동 중에 근처에 있는 하오문, 사해방과 쉴 새 없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물론 벽태산 일행이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따라온 하오문도들이 알아서 했다.
중간에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들을 그렇게 조달했기에 일행은 짐이 하나도 없음에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벽태산의 말에 다들 이동을 멈추고 노숙 준비를 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하오문도들이 분주히 움직여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식자재와 조리 도구들을 가져왔다.
벽태산의 시비들이 나서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잔뜩 완성되었고,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 화옥이 벽태산에게 말했다.
“무명에서 따로 빼돌린 월영단원들을 찾았습니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