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29)
다들 묘한 눈으로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왠지 벽태산이 사공예랑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알 거 알았으니 난 이만 가서 자야겠다.”
천추신의가 먼저 빠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뇌음마군만 홀로 남아 바닥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렸다.
벽태산 일행이 빠진 빈자리를 하오문도들이 와서 채웠다.
하오문도들은 뇌음마군을 중심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빙 둘러 포위망을 구성했다.
그들은 밤새 교대로 뇌음마군을 지켰다.
뇌음마군은 날이 밝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날이 밝았을 때는 모든 힘을 잃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힘없이 축 늘어진 진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벽태산은 마지막으로 뇌음마군의 혼백을 뽑아 태웠다.
“끄아아아아악!”
뇌음마군은 혼백이 불타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벽태산은 뇌음마군의 사념을 읽었지만, 역시나 쓰레기 같은 기억만 가득했고, 진짜 중요한 기억은 지워져 있었다.
애초에 별 기대를 안했기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벽태산은 천마신교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이제 환마 차례다.
끝
천은상단은 크진 않지만 내실이 탄탄한 상단이었다.
그들은 욕심 부리지 않고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상단을 운영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천은상단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보유한 자금이 많으니,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위험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불같이 확 일어난 적도 없지만 낭떠러지에 떨어지듯 확 꺾인 적도 없었다.
한데 그런 천은상단에 최근 위기가 닥쳤다.
천은상단주는 총관의 보고를 들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놈들 대체 우리한테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혹시 뭐 아는 거 있나?”
총관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저들도 이런 식이면 소모가 만만치 않을 텐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건지······.”
천은상단은 지금 공격을 받고 있었다.
잘 이어오던 거래 관계가 하나하나 끊어져 나갔다.
그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거래처들이 갑자기 돈을 더 탐하기 시작했다.
천은상단의 자금력이 이 정도로 탄탄하지 않았다면 아마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일이 그냥 벌어졌을 리 없다. 분명히 뒤에서 사주하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좀 알아봤나?”
천은상단주의 물음에 총관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현천상단인 듯합니다.”
“현천상단? 그놈들이 대체 왜?”
솔직히 말하면 짐작 가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천은상단은 무명이 세운 상단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정체를 감추고 무명이 천하를 향해 무슨 일을 저지를 때, 극도로 은밀히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벌써 몇 차례나 반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했다.
마지막으로 무명에 자금을 지원했던 때가 벌써 수십 년 전이었다.
수십 년이나 지난 일을 현천상단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불안하군.’
천은상단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이제 어찌 해야겠나?”
“그냥 버티면서 혹시 추궁이 들어왔을 때 관계를 철저히 부정하셔야 합니다.”
“그런 걸 안 하면? 그냥 계속 이런 식으로 우리가 말라죽을 때까지 압박하면 어쩌나?”
“그럼 핵심만 가지고 잠적하셔야지요.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은상단주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사실 상단에 큰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만일 그가 이 상단을 시작부터 일궜다면 모르겠지만, 그저 이어받아서 정해진 대로 운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단을 버려야 한다니 망설여졌다.
“일단······ 버티면서 따로 준비를 하게. 아무래도 잠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예. 알겠습니다.”
총관이 물러가자, 천은상단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놈들이 과연 알고 이러는 걸까? 아니면 우연일까?’
* * *
천은상단에 벌어진 것과 비슷한 일이 천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천은상단주는 뒤에 현천상단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번 일에는 무림맹과 흑련까지 끼어들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지원해주기 때문에 이 정도로 큰 판을 벌일 수 있었다.
어쨌든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손해는 현천상단이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무림맹이나 흑련 역시 제법 큰 손해를 각오했다.
이것은 그저 상단이나 방파, 표국 등을 압박해서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었다.
이번 작전의 본질은 무명과 세상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무명과 연결된 조직이 그걸 미리 알고 있었다면 상황이 약간이나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천상단, 무림맹, 흑련은 준비만 철저히 하다가 일제히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그들이 방비할 시간이 아예 없었다.
무명의 뒤를 봐주는 조직의 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만일 그들이 전부 연계해서 대항했다면 아무리 무림맹이나 흑련이 함께 한다고 해도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들 제각각 활동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무명을 지원했다.
그래서 조각조각 쪼개진 채 각자 공략 당했다.
무림맹과 흑련이 워낙 열성적으로 움직여 주었기에 그들을 공략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래서 그들은 전부 조급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은 반반이었다.
핵심만 들고 잠적하기로 한 것이 반, 계속 시간을 끌며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버티기로 한 것이 반이었다.
당연히 잠적하려던 자는 전부 잡았다.
이 일을 하오문과 사해방, 그리고 비천단과 월영단이 은밀히 돕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버티던 자들도 결국 하나둘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게 무명이 천하에 뻗어 두었던 잔뿌리들이 대부분 정리되었다.
* * *
최근 무명의 상황이 나빠졌기에 천하 곳곳에 구축해 두었던 정보망이 많이 망가졌다.
무명의 정보망이 망가진 것은 대부분 하오문 때문이었다.
싸움 자체가 하오문에 유리했다.
하오문은 공격하는 쪽이었고, 공격에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도 않았다.
반면 무명은 방어하고 숨는 입장이었다.
사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만큼 무명의 정보망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보다 하오문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정보망이 전부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하지만 그 망가진 정보망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 같은 경우 말이다.
혁련가주는 보고를 듣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큰 어르신 말씀이 딱 맞았구나. 그때 움직이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혁련가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보고한 사내를 바라봤다.
“몇이나 남을 걸로 예상하느냐?”
“기껏해야 셋이나 넷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도 남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겠구나.”
“예. 아예 잘라내고 처음부터 새로 짜는 것이 낫습니다.”
저렇게 단호히 얘기하는 걸 보니, 그래야 할 듯했다.
혁련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 남아있는 끈이 있으면 곤란하니 싹 찾아서 잘라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해라.”
그렇게 하고 이제 숨어야 한다.
“정보망은 어찌 할까요?”
“다 잘라내는 걸 전제로 움직여라. 그냥 숨어있지 말고 분탕질이나 치라고 해. 마음이라도 풀고 죽는 게 낫지 않겠느냐?”
“지당하십니다.”
그렇게 정보원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혁련가주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내에게 물었다.
“하면 벽태산 일행을 치러 간 자들은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하오문이 하도 난리라서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질문에 사내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전부······ 죽었습니다.”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혁련가주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다 쏟아 부은 다음 문을 잠글 예정이었으니까.
“그래서 벽태산은 해치운 것 같으냐?”
“전부 멀쩡하답니다. 누구에게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습니다.”
그 싸움이 끝난 후부터 벽태산 일행을 감시하는 것이 훨씬 편해졌다.
하오문이 여지를 준 것이다.
마치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듯.
“생채기 하나 못 냈다고? 그 많은 인원이 가서?”
“예. 정확히 어떤 싸움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벼락이 마구 내리쳤다고 합니다.”
“벼락이라, 그건 뇌음마군 어르신이 쓰셨을 테고······.”
사내가 약간 회의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뇌음마군 어르신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수백 개의 벼락이 마치 비처럼 마구 쏟아졌다고 합니다. 과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혁련가주의 표정이 확 굳었다.
안 된다. 저건 아무리 뇌음마군이라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게다가 뇌음마군이 쓰는 벼락은 영력을 반드시 이용해야만 한다.
그러니 수백 발의 벼락을 비처럼 쏟아지게 하려면 대체 얼마나 막대한 영력이 필요하겠는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벽태산 일행 중에 그걸 한 자가 있다는 뜻이다.
과연 누굴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좀처럼 추측할 수 없었다.
“설마 벽태산은 아니겠지?”
“불가능합니다. 지금 저희가 추정하는 벽태산의 수준만 해도 말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또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혁련가주의 표정이 더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만일 내 추측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우린 헛짓거리만 한 셈이로군.”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혁련가주였다.
“아무튼 우린 다시 시간을 가지기로 했으니 상관없지. 오히려 불똥을 맞는 건 환마가 될 테니.”
혁련가주의 입매가 음험하게 비틀렸다.
“궁금하긴 하군. 과연 환마가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벽태산 놈들이 현천진을 어떻게 할지.”
아무리 그래도 현천진을 없애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현천진은 정말 엄청난 진법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뭔가 기대가 되긴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천진을 부수고 천마신교와 시원하게 한 판 붙었으면 좋겠군.”
만일 그렇게 된다면 무명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적 둘이 서로 상잔하게 되는 셈이다.
혁련가주는 그런 기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사내에게 말했다.
“결과가 궁금하긴 하지만 이제 손을 떼야지. 문을 닫아걸게.”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예. 심가와 악가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혁련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무명을 다시 키우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밀렸던 수련도 좀 하고 말이다.
* * *
벽태산 일행은 무명과 한 차례 싸운 이후, 아니, 벽태산이 일방적으로 무명을 두드려 팬 이후, 천마신교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평온하게 이동했다.
그리고 무명과 싸운 이후 일행의 대화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들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걸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드디어 도착한 천마신교, 아니, 현천진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로 거대하고 뿌연 막이 일행을 막아섰다.
정말 신기한 건, 멀리서는 그곳에 현천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평범한 풍경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뿌연 막이 보였다.
다들 하늘 높이 뻗은 뿌연 막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이게······ 현천진이로군요.”
연하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천진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보고는 저마다 자리를 잡고 현천진을 만져봤다.
연하린은 잠시 현천진을 만지다가 강하게 한 방 때렸다.
쩡!
반탄 되어 돌아오는 충격이 엄청났다. 때린 힘의 두 배 정도를 되돌린 듯했다.
연하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런 식이면 이 진법을 힘으로 부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한 힘의 두 배를 되돌리는데, 그걸 누가 버텨내겠는가.
모두의 시선이 승도흥에게로 향했다.
승도흥은 누구보다 먼저 현천진에 달라붙어서 그걸 살펴보고 분석하는 중이었다.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게 현천진이로구나.”
과연 자신의 실력으로 이걸 없앨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오기 전에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왔는데, 막상 이러니 좀 두렵기도 했다.
과연 자신이 실패하면 벽태산이 가만히 있을까?
승도흥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일단 해봐야 한다.
그는 머리를 팽팽 굴리며 하오문도들이 가져온 재료를 이용해 현천진 앞에 새로운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마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하오문도들이 근처에 노숙을 준비했다.
그리고 벽태산 일행은 대부분 승도흥이 진법을 설치하는 걸 구경했다.
홀로 하는 게 아니라 하오문도들이 여럿 달라붙어서 보조를 해주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걸 지켜보던 천추신의가 일침괴를 보며 물었다.
“형님, 저거 언제 끝날 거 같소?”
“글쎄? 그래도 현천진에 대항하는 진법을 만드는 건데······ 하루 이틀에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천추신의가 눈을 빛내며 일침괴에게 귓속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