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
그 말에도 백화루주는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아니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통을 기대하고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 없었다.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그럼 다음 질문.”
백화루주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오늘 덤빈 놈들한테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줘서 그러는데, 너희 뒤에 있는 놈들 누구야?”
“천금련입니다.”
백화루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알지. 내가 말하는 건 천금련 뒤에 있는 놈들이야.”
벽태산의 눈이 번득였다.
“왠지 너라면 알 것 같은데?”
“저도 정확한 이름은 모릅니다. 다만 천금련에 자주 오가던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다.”
벽태산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봉무옥입니다.”
“봉무옥?”
벽태산은 처음 듣는 이름인지라 고개를 돌려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으니 유명한 이름이라면 알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천추신의의 입에서 즉시 봉무옥이라는 자의 별호가 튀어나왔다.
“흑월검?”
“맞습니다.”
벽태산이 물었다.
“유명한 놈이야?”
천추신의가 황당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당연히 유명합니다. 홀로 혈염채를 괴멸시키고 혈염마군을 죽였으니까요.”
솔직히 혈염채도 모르겠고 혈염마군도 누군지 모르겠다.
“혈염채면 산적 같은 거 아냐? 혈염마군은 산적두목이겠고. 고작 산적 좀 때려잡았다고 유명해진 거야?”
“고작 산적두목이라니요. 혈염마군은 당시 백대고수에 드네 마네 하던 강자였습니다. 당연히 혈염채도 그저 그런 산적이 아니었고요.”
“그래?”
벽태산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그래봐야 산적은 산적이다. 백대고수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드네 마네 한다는 건 백대고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이었고.
고작 그런 놈이니 천마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리 없다. 마찬가지로 그런 놈을 죽였다고 관심을 가질 리 있겠는가.
하지만 천추신의의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흑월검은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말에 벽태산이 드디어 흥미를 보였다.
“죽었다고? 확실해?”
“제가 두 눈으로 본 게 아니라서······. 하지만 죽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워낙 많습니다.”
“죽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백화루주를 쳐다봤다.
“죽었다는데?”
“아닙니다. 그 사람은 흑월검 봉무옥이 확실합니다.”
“혼백을 걸 수 있어?”
“걸 수 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확신한다면 그놈이 맞을 것이다.
“죽은 놈이 되살아난 건가?”
벽태산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뭐······ 죽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흑월검을 죽인 자가 혈염마군의 형인 적뢰도 만추였습니다.”
“그럼 적뢰도 만추라는 놈도 그 정체불명의 조직에 속했다고 보면 되겠군.”
천추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찜찜한 구석이 있긴 했죠. 솔직히 적뢰도가 혈염마군보다는 고수지만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진 않습니다.”
“다른 가능성은?”
“다른 가능성이라 하심은······.”
“강시.”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에이, 강시 만들기가 어디 쉬운 줄 아십니까? 게다가 천금련에 자주 오가려면 강시 티가 안 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생강시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그건 아직······.”
천추신의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은 아무나 들어선 안 되는 얘기였으니까.
“일이 점점 귀찮아지는구나.”
처음에는 종리세가와 천금련만 정리하면 끝날 줄 알았다.
한데 그놈들은 전부 장기판 위의 졸에 불과했다.
졸을 움직이는 놈들까지 싹 정리하면 되지만, 그놈들의 정체를 아직 모른다.
이런 식이면 아무리 천금련까지 정리한다고 해도 끝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벌이던 일을 방해했는데 그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까.
“아니지. 일 진행하는 거 보니까 아주 조심스러운 놈들인데······ 그냥 숨어버릴지도 모르겠군.”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백화루주를 쳐다봤다.
“이제 슬슬 죗값을 치러야지?”
아무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백화루주의 눈빛에 살짝 긴장감이 맴돌았다.
“넌 오늘부터 첩자다.”
“예?”
“앞으로 천금련과 그 뒤에 있는 조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열심히 모아서 전달하면 돼.”
백화루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벽태산은 그녀가 대답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필요 없다. 그건 내 부하들이 다 알아서 하니까. 넌 내부 정보를 가져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백화루주를 가만히 쳐다봤다.
백화루주는 차분히 대답했다.
“제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핵심적인 정보는 알아낼 수 없을 거예요. 저들이 절대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요.”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왜 이래? 선수끼리. 너 원래부터 한편 아니잖아. 천금련에 고용된 거 아냐?”
“무슨 말씀이신지······.”
“천금련 뒤에 흑월검 있다는 거, 네가 알아낸 거지? 천금련에서는 네가 안다는 거 모르지?”
백화루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천금련에 고용된 뒤로 꾸준히 모은 정보도 제법 있을 텐데? 맞지?”
“전 공자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 잘하네. 확실히 하오문다워.”
하오문이라는 말에 천추신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여자, 하오문이었습니까?”
벽태산은 대답하지 않고 압박하듯 백화루주를 쳐다봤다.
그 확신에 찬 눈에 백화루주는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좀 더 아니라고 우겨볼까 하다가 벽태산의 눈빛 깊은 곳에 있는 난폭한 빛을 보고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발뺌하면 좋은 꼴 보기 힘들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아신 거죠?”
“면구.”
벽태산의 말에 백화루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 면구를 쓰지 않았는데요? 정확히 면구가 무슨 의미죠?”
쓰지도 않은 면구 때문에 정체를 알아냈다니, 이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벽태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 내가 왜 얘기해야 하는데? 넌 그냥 죗값만 치르면 돼. 그동안 모은 정보 싹 가져오고, 앞으로도 계속 정보를 모아서 바치기만 하면 돼.”
백화루주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다시 상기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정체가 발각되는 바람에 약간 흥분했다.
그녀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자신이 하오문이라는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한데 어떻게 알아낸 걸까?
‘원래부터 날 알지 않고서야······.’
하지만 그랬다면 벽태산이 백화루에 온 첫 날은 왜 몰랐을까? 모른 척 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게 연기라면 자신을 능가한다는 뜻이니까.
백화루주는 벽태산의 눈빛이 점점 달라지는 걸 보고는 얼른 상념을 접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뽑아낼 수 있을 만큼 뽑아내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해줄 거라 믿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백화루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그냥 나가려 하자, 천추신의가 당황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금제라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치라고 해.”
“예? 그러다가 정말로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제 복은 거기까지인 거지.”
“예?”
천추신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내가 암영보의 비급이 어디 있는지 알거든.”
그 말에 백화루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암영보가 어디 있는지 아신다고요? 설마 공자님이 그걸 갖고 계신 건가요?”
벽태산이 백화루주를 힐끗 돌아봤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걸 내가 왜 얘기해야 돼?”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백화루주가 다급히 외쳤다.
“공자님의 명, 성심성의껏 이행하겠습니다! 이번에 천금련이 이름을 감추고 새로 연 모든 사업체에 저희 애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기대하마. 아, 오늘 내가 때려잡은 놈들 좀 정리해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휘휘 흔들어 주고 방에서 나갔다.
백화루주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암영보라니······. 이걸 위에 보고해야 하나?”
그녀의 표정이 혼란으로 일그러졌다.
암영보는 하오문에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보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전되었다.
전대 하오문주와 하오문의 장로들이 암영보를 전수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암영보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진짜 암영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열화판은 보유하고 있었다.
그 열화판 암영보는 예전 하급 하오문도들이 익히던 것이다.
암영보는 단순한 보법이 아니었다.
하오문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가 있는 보법이었다.
암영보는 하오문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어떤 수준의 암영보를 익혔느냐에 따라 하오문 내에서의 지위가 결정된다.
그리고 상위의 암영보를 익힌 사람이 없다면 하위의 암영보를 익히는 건 불가능했다.
그 최상위 암영보가 사라진 셈이니 하오문의 위상이 유지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오문은 지금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었다.
그러니 저런 단순한 말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고.
백화루주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보류하자. 확실히 확인한 다음에 보고해도 늦지 않아.”
* * *
백화루주의 방에서 나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간 벽태산은 정리가 끝난 복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치웠네.”
벽태산이 머물던 방 앞에 천경완과 유서연이 서 있었다.
“거기 멍하니 있지 말고 가자.”
두 사람이 얼른 벽태산에게 따라붙었다.
천경완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한데 그게 독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대로 돌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딱 한 명뿐이었다.
“독기는 이제 다 내려간 모양이네. 하긴, 그렇게 격렬히 움직였으니. 소변은 안 마렵고?”
천추신의의 말에 천경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됐고.”
천추신의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천경완이 잠시 망설이는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열심히 쫓아가 물었다.
“부작용이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알면서 왜 물어?”
“모르겠습니다. 제가 갑자기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 부작용이 계속되는 건지도.”
부작용 얘기가 나오자 유서연도 관심 있는 표정으로 얼른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오직 벽태산뿐이었다.
벽태산은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표정과 속도로 집을 향해 여유롭게 걸어가기만 했다.
“별 거 아니야. 속에 감춰뒀던 것들이 겉으로 마구 드러나는 거지.”
“감춰뒀던······ 것이라고요?”
“그래. 욕망을 자극한다고 할까? 평소에는 감히 드러낼 수 없었던 것들이 확 튀어나오는 거지. 득도한 고승이라도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천경완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아까 싸울 때 얼마나 많은 살기와 투기, 광기가 쏟아져 나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감춰두고 있던 욕망이라고?
“원래 인간은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모두 가진 존재야. 그걸 적절히 풀어주지 않고 꽉꽉 눌러두기만 하면 안에서 점점 커지는 법이지. 그게 튀어 나온 거야. 아마 다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닐걸?”
한 번 대차게 소모했으니 다음에는 훨씬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그 독을 쓸 일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천추신의는 오늘 좀 감탄했다. 그 독을 썼는데도 천경완은 그 어떤 선도 넘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욕망을 제어한 것이다.
천경완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복잡해진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천추신의는 그런 천경완을 내버려두고 벽태산에게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천추신의를 유서연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천추신의는 갑자기 옆으로 붙은 유서연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왜?”
유서연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갖다 댔다.
천추신의가 눈동자를 굴리며 앞에 가는 벽태산과 뒤에 있는 천경완을 힐끗힐끗 살펴봤다.
유서연이 귓속말을 했다.
“아까 그 독, 조금만 주세요.”
천추신의가 기겁한 눈으로 유서연을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천추신의는 좀 무서워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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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