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2)
그곳이 바로 천마의 거처였다.
벽태산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거대한 전각, 자신의 옛 거처를 바라봤다.
그런 벽태산의 모습을 천마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벽태산이 천마신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목이 집중되었다.
환마가 뒤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데다가, 벽태산의 일행도 면면이 굉장히 눈에 띄었으니까.
그 중, 검귀나 비검은 알아보는 자들도 제법 많았다.
사실상 그 두 사람 덕분에 별다른 충돌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물론 벽태산이 뿌리고 있는 낯익으면서도 특이한 분위기도 한몫 했지만.
그리고 그건 이곳 천마성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다가오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충돌을 원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곳 천마성은 아무나 들락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벽태산이 가만히 전각만 보고 있자, 화옥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앞으로의 계획을 알 수 있겠습니까?”
벽태산은 화옥의 목소리가 왠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아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화옥의 눈빛 깊은 곳에 불안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여기서 계속 머무르실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화옥은 벽태산이 아예 이곳 천마신교에 눌러앉을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벽태산이 그 질문에 피식 웃었다.
“집 놔두고 왜 여기 있겠느냐. 볼일만 보고 돌아갈 것이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일행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걸렸다.
화옥이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살짝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면 이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벽태산은 시선을 돌려 비검과 검귀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저 둘을 데리고 현재 천마신교를 관리하는 놈들을 싹 데려와라.”
화옥이 고개를 숙였다.
“예. 바로 이행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천마성 내에 있던 모든 시선이 벽태산에게 모였다.
그리고 벽태산이 전각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시선이 타는 듯이 뜨거워졌다.
벽태산의 뒤로 여전히 환마가 엎드린 자세 그대로 둥둥 떠서 따라가고 있었다.
환마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네놈이 부린 수작질에는 관심 없다. 그러니 용서니 뭐니, 귀찮은 얘기는 꺼낼 생각도 하지 마라.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 말을 들은 환마의 표정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벽태산이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벽태산은 오직 환마의 고통만을 원하고 있었다.
이내 벽태산이 과거 자신의 거처에 들어섰다.
벽태산은 담담한 눈으로 내부를 슥 둘러봤다.
그러자 안쪽에서 무사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사실 진작 나왔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벽태산은 그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구나.”
물론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리둥절했다.
나타난 무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여긴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난 아무나가 아니다.”
당연히 아무나가 아니다. 벽태산은 이곳의 주인이었으니까.
무사가 환마 쪽에 시선을 슬쩍 주며 말했다.
“그리고 저분은 이만 내려주시지요.”
벽태산과 무사들 사이에 싸한 긴장감이 드리워졌다.
끝
벽태산은 자신을 가로막은 무사들을 다시 한 번 슥 둘러봤다.
역시나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은 천마가 거주하는 천마성이다.
천마를 중심으로 하는 천마신교의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실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곳을 지키는 무사의 수준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들은 뭔가 좀 모자랐다.
당시 천마가 천마성에 있던 자들을 대부분 죽여 버렸으니 진짜 대단한 무사들은 없다는 걸 감안해도 이들의 수준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바닥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애매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환마가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올라가더니 무사들 앞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쿠당탕탕!
“커어어억!”
환마는 어떤 대응도 못하고 그저 바닥을 꼴사납게 구르고는 처절한 신음을 쏟아내야만 했다.
무사들이 다급히 환마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형의 힘이 자신을 옭아맨 것은 아니었다. 그냥 움직일 수 없었다.
당황해서 내공을 움직여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공은 원활히 흐르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벽태산은 환마를 보며 말했다.
“네가 한 짓이냐.”
환마는 그제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몸을 일으켜 다시 벽태산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
자신이 살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는 쪽은 이렇게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예. 제가 들인 아이들입니다. 모두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벽태산은 환마 뒤쪽에 있는 무사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이것들 애초에 우리 애들이 아니로구나.”
벽태산의 말에 환마의 몸이 한 차례 흠칫 떨렸다.
설마 그것까지 이렇게 단번에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환마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 있던 기척들이 스르륵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환마는 밀려오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벽태산 앞을 가로막던 무사들이 전부 소멸했다.
이건 증혼마공도 아니었다. 그냥 힘으로 소멸시킨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성을 지키는 무사들을 말이다.
물론 원래보다 수준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그것은 환마의 공포를 더욱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각 안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환마가 자신이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에 자신의 거처도 만들고 다양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문사들을 잔뜩 데려다 놓은 것이다.
그 문사들이 방문을 살짝 열고 고개만 밖으로 빼고서 열심히 구경 중이었다.
다들 벽태산이 무사들을 단숨에 소멸시킨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덜덜 떨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무공이 약한 문사라고 해도 이들은 천마신교 소속이다. 이보다 훨씬 잔인한 광경을 여러 번 경험한 자들이었다.
벽태산은 문사들이 자신을 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환마에게 성큼 다가갔다.
“무명에서 받은 무사들인가?”
환마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외부에서 데려온 무사가 더 있느냐?”
“이, 이제 없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은 사실이다. 환마는 지금 거짓을 말할 여유가 없었다.
“그럼 궁금한 걸 묻지. 나한테 줬던 영약, 어디서 났느냐.”
환마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일말의 가능성, 그러니까 벽태산이 천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단숨에 증발해 버렸다.
“무, 무명입니다.”
“그래? 또 구할 수 있느냐?”
“이, 이제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 백 년에 한 번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성공 확률이 떨어져서 이제 무명에도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효능이 뭔지는 알고 받았느냐?”
환마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입을 열었다.
“지존을 해할 수 있는 유일한 독이라고 했습니다.”
벽태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긴 했지.”
하지만 이젠 그 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 독은 증혼마공이나 혈령마공처럼 순수하지 못한 영력을 무작정 받아들인 자들에게나 통하는 독이니까.
즉, 그 독을 만일 의선에게 썼다면 아무 효과도 못 봤을 것이다.
지금 벽태산 일행들 역시 순수한 영력을 품고 있으니 그 독이 통하지 않을 테고.
“무명 놈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지?”
“모, 모릅니다.”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환마는 맹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전 굉장히 쓸모 있습니다. 진법 실력은 천하제일 아닙니까. 앞으로는 결코 한눈팔지 않고 충성하겠습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환마는 이마를 바닥에 콱 찍었다.
바닥에 피가 팍 튀었다.
“싫다.”
벽태산은 그 말만 툭 던지고 환마를 슥 지나쳐갔다.
환마는 벽태산이 지나가고도 한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저 문을 살짝 열고 이쪽을 지켜보는 문사들만 남아 있었다.
환마는 안도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러다가 이 자세 그대로 죽을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 *
벽태산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전각은 다른 전각들에 비해 굉장히 높지만, 다섯 층밖에 없었다. 대신 각 층의 높이가 상당했다.
벽태산은 꼭대기 층인 오 층까지 올라갔다.
오 층은 넓은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의 끝에 굳게 닫힌 철문이 있었다.
저 철문이 바로 천마의 거처이자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한 번 닫히면 아무나 열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벽태산은 천천히 걸어 철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벽태산 일행은 벽태산의 좌우로 쭉 늘어섰다. 사실 그들은 대부분 지금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천마신교에 온다고 해서 오긴 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현천진을 부술 때까지만 해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환마를 중간에 만나 응징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정작 천마신교 안에 들어와 이렇게 천마성으로 오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돌아가는 모든 정황을 따지면 벽태산이 마치 천마 같았다.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천마라고 하면, 그동안 벽태산이 했던 모든 일들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며 기다리고 있자, 화옥과 비검, 검귀가 돌아왔다.
세 사람의 뒤로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이 따라왔다.
그들을 본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이제야 아는 얼굴이 좀 보이는구나.”
그들은 천마신교의 새 수뇌부였다.
당연히 기존 수뇌부에 비해서는 다들 무공이나 경험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천마신교를 어찌어찌 이끌어 나갈 정도의 역량은 갖추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빈틈은 환마가 다 메웠고 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현천진에 갇혀 있었으니 사실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이제 현천진이 사라졌으니 천마신교는 천마도 없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마신교를 이끌어 가기에는 저들만으로는 좀 부족할 듯했다.
비검과 검귀, 화옥이 벽태산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가 합류했다.
그러자 벽태산과 새 수뇌부가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새로운 군사가 되어 마뇌 역할을 이어받은, 당대 마뇌였다.
벽태산은 그의 얼굴을 알아봤다.
마뇌 휘하에 있던 군사 중 한 명이었다. 제법 실력이 뛰어났었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아래에 환마 어르신이 엎드려 있는 걸 봤습니다.”
마뇌가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말했다.
다른 자들이 나섰다면 저렇게 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들 입장에서 벽태산은 외부에서 온 불청객이니까.
그렇기에 마뇌가 서둘러 앞으로 나선 것이다. 괜히 관계가 틀어져서 일이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이들도 지금 현천진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검귀는 몰라도 비검은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비검이 모시는 분이라고 하니 허투루 대할 수가 없었다.
벽태산은 마뇌의 질문에 간단히 답했다.
“벌을 받는 중이다.”
마뇌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부터 뒤쪽에서 살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환마 어르신을 벌할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그 한 명이 바로 나다.”
마뇌는 왠지 말이 잘 안 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저리 말하는 걸까?
“환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걸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모양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좌중이 살짝 술렁였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벽태산은 굳이 길게 실랑이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그 한 명이라는 걸 증명하마.”
그렇게 말하고 돌아선 벽태산은 철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들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속으로 설마라는 말을 무수히 외쳤다.
저 철문은 오직 천마만이 열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부숴야 한다.
저 문의 열쇠는 증혼마공이니까.
천마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저 철문을 여는 것이었다.
전대 천마가 문을 닫고, 다음 대 천마가 문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이 이양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천마가 수뇌부를 몽땅 죽이고 사라졌기에 다른 사람들이 닫았다. 여는 건 몰라도 닫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었으니까.
벽태산은 철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본의 아니게 역대 천마 중 유일하게 이 철문을 두 번 여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