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36)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구나.”
소소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왜요?”
“글쎄······ 아직까지는 여동생에 더 가깝구나.”
“아직까지는?”
“좀 더 자라거든 와라.”
소소는 벽태산의 말을 잠시 곱씹다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공자님, 너무해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소소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제가 진짜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보여드리죠.”
작은 주먹까지 꼭 쥐는 걸 보고 있으니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연하린과 화옥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특히 연하린은 방금 소소와 벽태산의 대화를 들으며 더욱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섞였군요.”
어쩌면 그런 건 중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의 벽태산을 받아들일 핑계를 찾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연하린이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을 때, 벽태산이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섞였다.”
“예?”
연하린이 깜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뭐, 원인은 나 때문인 것 같지만.”
간신히 답을 찾아 안정되었던 연하린의 마음이 또 술렁였다.
하지만 이번엔 금방 답을 찾을 것이다.
답을 찾고 나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단단해질 테고. 그럼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리라.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소소를 쳐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참으로 신기한 아이였다.
지금 자신의 감정이 천마의 것인지 벽태산의 것인지 모호했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런 것에 심력을 낭비하겠는가.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가봐라. 나도 슬슬 수련을 해야겠으니.”
벽태산의 말에 세 여인은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갔다.
연하린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고, 소소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리고 화옥은 그런 두 사람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갔다.
세 사람이 나가니 집무실이 조용해졌다.
벽태산은 자리에 앉아 감각을 확장했다.
예전에는 천마신교를 제대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설사 돌아봤다고 해도 이렇게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벽태산이 지금 주목하는 것은 후계자들의 숙소와 연무장이었다.
그곳은 영맥이었다.
영맥을 이용해 증혼마공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집무실에 앉아서 그저 감각만으로 살피는 거지만, 내부 구조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예전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저기 많이도 써먹었군.”
그곳에도 벽에 쓰였던 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단순하고 기초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영력에 관여하는 무언가를 만들려면 지속적으로 영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영맥에 위치하는 것이 최선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벽태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무명 놈들이 반강시를 만들거나 혼백을 타인의 몸에 집어넣는 등의 일을 하려면 영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는 건 영맥이 있는 곳에 무명 놈들이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아마 평범한 영맥은 아니리라.
굉장히 깊고 거대한 영맥을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반강시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더라도 말이다.
벽태산은 문득 예전 의선이 주었던 영맥 지도가 떠올랐다.
천하 전도를 바닥에 쫙 펼친 벽태산은 예전 의선이 말했던 자리에 붉은 점을 쿡쿡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마신교가 있는 곳에 점을 찍었다.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벽태산은 영맥의 위치를 보며 뭔가 규칙성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규칙을 발견하기에는 영맥의 수가 너무 적었다.
“몇 개만 더 찍으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의선의 노력이 좀 필요할 듯했다.
끝
혁련대호는 초조한 표정으로 정원을 서성였다.
지금 그는 숙소가 아닌 외부에 나와 있었다.
천마신교는 거의 도시나 다름없는 규모였는데, 당연히 그 안에 기루도 있고 주루도 있었다.
혁련대호가 있는 곳은 기루의 후원이었다.
평소에는 후원에 있는 연못에 배를 띄우거나 해서 노는 곳인데, 현천진이 발동한 이후 후원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조만간 이곳도 사람으로 북적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홀로 후원을 서성여도 사람들 눈에 띌 염려는 없었다.
지금은 깜깜한 밤이었기에 더더욱 인적이 없었다.
후원에서 보이는 기루의 전각은 모든 층이 환했다. 그리고 왁자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혁련대호는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만 빼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 속에서 울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그때, 누군가가 후원에 조용히 들어섰다.
혁련대호는 그가 자신의 옆에 붙을 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옆에 붙어서 살짝 기척을 흘려준 뒤에야 알아차리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놀라더라도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표정과 눈빛은 좀 달라졌지만.
“기척 좀 내고 다니시오. 깜짝 놀랐지 않소.”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잊었나? 기척을 흘리고 다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혁련대호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인지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구는 것이냐. 이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난 이미 들켰소. 내가 무명에서 왔다는 걸 거의 확신하는 눈치던데?”
“그래서 다 같이 죽자 이건가?”
“그 말이 아니잖소. 일단 내가 먼저 증혼마공을 익혀야 돌파구가 생기지 않겠소? 그렇게 했는데도 천마 자리를 내게 주지 않으면 내부에 반드시 분란이 생길 거요.”
“글쎄. 확신이 서질 않아.”
“그 사람을 봤으면 내 말을 이해할 텐데. 자기가 한 말을 뒤집을 사람은 절대 아니었소.”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혁련대호를 바라봤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면 될 일 같은데?”
“시간이 없소. 이상한 여자가 끼어들었단 말이오.”
사내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이상한 여자?”
혁련대호가 급하다고 도와달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을 함께 보낸 건 아니었기에 사내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후계자에 대한 소문은 아직 없었기에 정보를 접할 기회도 없었으니까.
“미친 재능을 가진 여자였소. 여기 오자마자 뭘 해야 할지 알겠다더군. 난 몇 년 동안 감도 못 잡고 있는데.”
혁련대호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흥분한 것이다. 그가 천마신교에 들어온 지 이십 년이 좀 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들어와서 천마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
중간에 세작들은 교대를 했지만 혁련대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자신의 삶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목소리 낮춰라. 애도 아니고 고작 얘기를 하다가 흥분하면 어쩌자는 게냐.”
“후우.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소. 애는 내가 아니라 그 이상한 여자가 애요.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요. 고작 스물 좀 넘었으려나?”
사내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정말 그 여자가 증혼마공을 익힐 수 있는 것 맞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다들 반신반의 하는 중이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 우리들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오, 분명히 제일 먼저 익힐 거요. 어쩌면 며칠 내에 갑자기 익혔다고 할지도 모르지.”
사내는 그 말을 들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지금 그들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오문 놈들이 갑자기 천마신교에 들어와 어찌나 헤집고 다니는지 섣부른 행동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오늘도 들킬 각오를 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혁련대호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죽여 버리시오.”
“뭐?”
사내가 황당한 눈으로 혁련대호를 바라봤다.
농담할 분위기가 아닌데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뭐라 하려고 했다. 한데 눈빛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죽이라고?”
“그게 확실하지 않겠소?”
“그럼 네가 가장 의심을 받을 텐데?”
“할 테면 하라지. 하지만 증거는 아무데도 없지 않소. 난 그저 평소처럼 수련에만 열중할 테니까.”
혁련대호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분간 숙소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요. 숙소에서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조리 연무장에서 수련에만 힘쓸 생각이오.”
사내는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사실 혁련대호는 그동안 이렇게까지 간절히 수련에 매달린 적이 없었다.
재능은 확실히 뛰어난데, 함께 경쟁하는 자들이 혁련대호에 비해 모자라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의 자극이 훨씬 심한 모양이었다.
그걸 견디지 못할 정도로.
‘그동안 좀 더 열심히 다그쳤어야 했는데······.’
사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방법을 만들어 보마. 넌 그냥 평소처럼 생활해라.”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고 평생 동안 보답하지.”
사내가 피식 웃었다.
“죽을 가능성이 구 할이 훨씬 넘는데 보답은 무슨 얼어 죽을 보답이냐? 열심히 해서 천마나 돼라. 피로 만들어진 자리라는 거 잊지 말고.”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후원을 중간쯤 걸어갈 때, 기척이 차츰 사라지더니, 후원에서 나간 순간부터는 아예 감지할 수가 없었다.
혁련대호는 사내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봤다.
“이제 좀 살겠군.”
비로소 수련에 집중할 수 있을 듯했다. 집중만 하면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혁련대호는 잠깐 기루 쪽에 시선을 담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기루나 주루에는 결코 출입하지 않으리라. 적어도 천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아······ 좋구나.”
의선은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방금 기루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요즘 의선은 현천장 안에서 잠을 자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일 백화루에 가서 충분히 즐긴 후 그곳에서 잠을 잤다.
밤을 함께 보낸 기녀와 아침을 맞이하고 그녀가 대접하는 아침식사를 먹고 느긋하게 나온 후에야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사실 의선이 현천장에서 할 일이 거의 없는지라, 그 이후에도 현천장에 머무르기보다는 무한 곳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돌아다니면서 아픈 사람이 보이면 치료해주고, 가끔 현천장으로 돌아가 영력을 수련하기도 하면서 편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으니, 이제 평소처럼 무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베풀기로 했다.
의선은 최근 영력이 성장하면서 좋지 않은 운명에 처한 자들에 대한 감각이 훨씬 예민해졌다. 그건 감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지에 더 가까웠다.
좋지 않은 운명에 처한 자가 누구겠는가. 병들고 다친 자들이다.
그래서 불길한 예감이 들면 무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베풀었다.
그 예감은 제법 잘 맞아 떨어져서 그런 날 돌아다니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치료하게 된다.
무작정 아무 곳이나 가는 게 아니라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쪽으로 가다보면 어김없이 환자가 나타나곤 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드는 날이었다.
“바쁜 하루가 되겠구나.”
바쁠 것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의선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밤을 보냈는데, 그리고 오늘 밤에도 그럴 수 있는데, 낮에 좀 바쁘고 힘든 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무한에서 활동하는 하오문도 중 한 명이었다. 몇 번 만난 적이 있던 자인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의선은 천천히 돌아섰다.
하오문도가 의선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른 달려가 의선 앞에서 다시 한 번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의선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로구나. 무슨 일로 왔느냐?”
“벽 공자께서 어르신께 서찰을 보내셨습니다.”
벽 공자라는 말이 나온 순간, 의선의 몸이 반사적으로 흠칫 굳었다. 물론 잠시라도 굳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금세 풀리긴 했다.
“크흠, 크흠.”
의선은 목을 가다듬었다. 지금 그냥 말을 했다간 목소리가 엇나갈 것 같아서였다.
하오문도가 공손히 서찰을 내밀었다.
의선은 의연하려 애썼지만 서찰을 받는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고맙구나. 이제 가서 일 보거라.”
“예. 어르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오문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얼른 물러갔다. 왠지 의선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의선은 자리를 옮길 생각도 하지 않고 천천히 서찰을 펼쳤다.
서찰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의선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지금 나보고······ 또 발품을 팔라고?”
서찰의 내용은 정말 별 거 아니었다. 얼른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영맥을 찾으라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걸 하려면 얼마나 고달픈지가 문제였다.
영맥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험준한 산이나 인적이 드문 숲, 호수 등에 있다.
심지어 절벽 한가운데 뚫린 동굴 깊은 곳에 있기도 하다.
의선은 서찰을 읽다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쫙 펼쳐져 있었다. 이대로 보고 있으면 하늘에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 현실을 도피하던 의선이 다시 서찰로 시선을 가져갔다.
나머지 부분을 단숨에 읽은 의선이 묘한 표정으로 서찰을 다시 한 번 읽었다.
그리고 서찰을 위로 휙 던졌다.
화르륵!
서찰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서찰의 말미에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쓰여 있었다.
“이걸로 무명의 본거지를 찾겠다고?”
무명의 본거지를 찾아 그놈들을 싹 쓸어버리자는 내용이 끝에 있었다.
의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은 확실히 없애야 할 놈들이다. 그놈들은 죽었던 천마까지 되살리는 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