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2)
승도흥은 문득 평온함이 지속되는 삶이 지금보다 나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튼 그 일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화옥의 말에 승도흥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불안함이 사라지니, 의욕이 생겨났다.
화옥은 눈을 반짝이며 승도흥을 바라봤다.
승도흥은 진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당연히 머리도 좋고 계산도 빠르다.
“왜 없겠어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황인데.”
승도흥은 화옥의 눈빛을 보며 왠지 잘못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저런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어찌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 말도 자신이 먼저 꺼냈는데.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마침 할 일도 별로 없으니······.”
화옥이 환하게 웃었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서탁 아래에 쌓여 있던 서류더미를 들어서 승도흥에게 내밀었다.
쌓인 서류의 높이 때문에 화옥의 얼굴이 가려서 안 보일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승도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받았다.
“한 시진 안에 다 처리하실 수 있죠?”
승도흥은 서류와 화옥을 번갈아 바라봤다. 마치 이걸 한 시진 안에 어떻게 하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화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쌓인 서류 뭉치에 손을 턱 올렸다.
승도흥이 받은 것 보다 최소 오 할은 더 많은 양이었다.
“전 그동안 이걸 끝내 놓을 게요.”
승도흥은 그걸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묘한 호승심이 들어서 한 말이었다.
물론 말을 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지만.
“그럼 부탁드려요.”
화옥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승도흥과 대화하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승도흥은 그런 화옥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일을 잔뜩 받았음에도 어찌나 홀가분한지 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 * *
벽태산은 천마신교를 떠난 지 닷새 만에 목표로 했던 곳을 싹 돌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기간이 너무 짧아졌다.
이는 그동안 벽태산이 꾸준히 했던 감각 영역 확장 수련 덕분이었다.
천마신교에 있을 때는 가만히 앉아서 영역을 확장했는데, 막상 이렇게 이동하면서 그걸 하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성과를 얻었다.
처음에는 이동하면서 확장하려니 오히려 효율이 확 떨어졌는데, 그걸 원래 수준으로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수련이 되어 벽 하나를 확 넘어 버렸다.
감각 영역이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당연히 영맥을 찾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벽태산이 새로 찾은 영맥은 모두 일곱 개였다.
그리고 그 정도면 굳이 의선이 영맥을 새로 찾지 않아도 무명이 어디쯤 있을지 예측이 가능했다.
내친 김에 더 돌아다녀서 아예 무명이 쓸 법한 큰 영맥을 찾을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영맥을 일곱 개나 찾긴 했지만,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진 것은 아니었다.
만일 제대로 모든 영맥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이렇게 대충 해서는 어림도 없었다.
아마 아무리 벽태산이라도 몇 년은 돌아다녀야 해낼 수 있으리라.
벽태산은 곧장 천마신교로 돌아갔다.
의선이 두어 달 고생하겠지만,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영맥을 더 찾으면 수련장소로 쓰면 된다.
지금 영력을 수련해야 할 사람이 제법 많으니 그들에게 하나씩 배정해 줄 생각이었다.
영맥 탐색을 하며 닷새 동안 이동했는데, 다시 돌아갈 때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벽태산은 천마신교에 도착할 무렵 자신의 존재감을 지웠다. 문득 아무도 모르게 천마신교를 한 번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천마신교에 들어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이곳은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이들의 삶 자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어보니, 다들 새로운 천마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천마가 여자라는 사실도 제법 소문이 퍼져 대부분 알고 있는 듯했다.
거기에 대한 논쟁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이내 천마성에 도착했다.
천마성에 들어선 벽태산은 그곳의 분위기가 자신이 떠날 때와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활기가 많이 죽었다.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이 퀭했다.
원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다들 미친 듯이 일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 보였다.
벽태산은 화옥을 찾아갔다.
화옥 역시 서류의 산에 파묻혀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화옥이 지금 확인하는 서류를 본 벽태산은 깜짝 놀랐다.
천마신교와 현천장에 관계된 일을 전부 끝낸 듯해서였다.
방금 밖에서 봤던 사람들의 퀭한 눈이 떠올랐다.
벽태산은 굳이 화옥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기에 조용히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가서 지도부터 펼쳤다.
이제 무명 놈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지도에 붉은 점을 쿡쿡 찍던 벽태산은 영맥이 이어진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거대한 영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를 찾아내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곳은 황산이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왕 시작한 거, 혼자서 무명까지 싹 정리해 버리고 올 생각이었다.
아마 그렇게 해도 의선보다 빨리 올 것이다.
벽태산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끝
“오대세가가 움직였습니다.”
화옥은 하오문도의 보고에 눈을 반짝였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은밀히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목적지는 허창으로 추측됩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중요해요.”
“목적은 천마신교인 듯합니다.”
“역시 그렇겠죠?”
화옥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무림맹이나 흑련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호무련이나 천무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부 현천장과 관계가 있으니까.
천마신교를 둘러싼 현천진을 현천장이 부쉈다는 건 현천장이 천마신교와 관계되어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거나 다름없다.
아마 예전부터 현천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의심하는 자들이 제법 많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무림맹이나 흑련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두 세력의 수장이 현천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천무련은 말할 것도 없다.
천무련주인 사마위홍은 벽태산이 천마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호무련 역시 현천장과 깊은 관계이고.
하지만 오대세가는 그렇지 않다.
오대세가 쪽과는 좋은 인연보다 좋지 않은 인연이 더 많았다.
그러니 그들이 현천장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직 천마가 공석이라는 정보 역시 다들 입수했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천마신교에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천뇌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나요?”
“아닙니다. 곧 천뇌의 답이 도착합니다. 아마 거의 다 왔을 겁니다.”
이번 일에 대해 천뇌에 질문을 넣었다.
과연 오대세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해 달라고.
“알았어요. 그럼 계속 오대세가를 주시하세요.”
“예.”
하오문도가 물러갔다.
그리고 두어 시진쯤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인 하오문도가 도착했다.
“천뇌의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푹 쉬도록 해요.”
하오문도가 인사하고 물러가자, 화옥은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오대세가가 무력으로 천마신교를 도발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긴, 아무리 이빨이 빠졌어도 천마신교는 천마신교니까.”
오대세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견제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견제가 제대로 먹히면 천마신교는 굉장히 답답한 처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정마대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오대세가가 거기까지 원하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이 중요했다.
화옥은 천뇌의 보고서를 읽은 후, 잠시 고민했다.
벽태산이 있었다면 그냥 보고만 하면 끝이다.
하지만 지금은 벽태산이 없고, 이 일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벽태산이 당분간 천마신교의 모든 운영을 화옥에게 맡겼으니까.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은밀히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홀로 다니는 건 아니었다.
각각 오십 명으로 구성된 무사대 하나와 여차할 때 써먹기 위한 호위무사 다섯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섯 가문이니 거의 삼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었다.
화옥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 * *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은밀히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허창에 있는 커다란 객잔의 별채였다.
하후세가주는 사마위홍에게 지는 바람에 천무련주가 되지 못하게 된 이후, 절치부심해서 수련에 힘썼다.
오늘 모임이 결정되기 직전까지 폐관수련을 했고, 폐관에서 나온 하후세가주는 큰 성취를 얻었다는 것이 겉으로 보일 정도로 달라졌다.
나머지 네 세가의 가주들이 은연중 불편해할 정도로 격이 높아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모임도 하후세가주가 이끌고 있었다.
모인 이유는 천마신교 때문이었다.
다섯 가주들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최근 정세를 지나가듯 툭툭 던지며 향후 논의 될 사안들에 대한 밑밥을 깔았다.
“우리 오대세가는 좀 더 끈끈하게 뭉쳐야 합니다. 사실 천무련을 만들 때 우리는 빠졌어야 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천무련에서 사람을 빼서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도 됩니다. 정검회 정도면 괜찮겠군요.”
“서로 연계해서 사업을 하거나 임무를 함께 하는 식으로 세가 간의 유대를 높여야 합니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하후세가주가 말했다.
“굳이 천무련에서 사람을 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들도 결국 우리 사람인데, 거기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 언젠가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조직에 오래 머물다보면 변질되는 자들이 반드시 나오는 법입니다.”
“그거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다.
아예 내부적으로 차등을 둬서 관리하면 솔직히 문제 생길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차등을 둔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되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 꾸준히 의견을 나누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하고······ 이제 천마신교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천마신교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눈을 번득였다.
“현천진이 사라졌고, 아직 천마가 나오지 않았다는 두 가지 정보, 믿을 만합니까?”
“확실합니다.”
천마신교가 무서운 건 천마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기록에 따르면, 현천진에 갇혔던 천마신교는 평소보다 약해진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갇힌 생활이 힘들고 열악해서 그러겠지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절호의 기회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말고는 다들 시큰둥하다는 겁니다.”
그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살짝 침울해졌다.
“무림맹도 그렇고 흑련도 그렇고 요지부동입니다. 천무련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천무련이 누구 때문에 만들어졌는데, 괘씸하군요.”
“그럼 결국 우리끼리만 하는 겁니까? 아무리 천마신교가 약해졌다고 해도 이 정도로는 모자랄 것 같은데······.”
“언제까지 천마신교에 끌려 다녀야 합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마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겁니다.”
“한데 무림맹이고 흑련이고 그런 기본적인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아마 현천장 때문일 겁니다.”
그 말에 다들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렇다고 현천장을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천장은 무림맹, 흑련, 천무련과 긴밀한 관계였다. 게다가 호무련도 현천장에 굉장히 호의적이다.
그러니 아무리 오대세가라도 현천장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하후세가주가 그쯤에서 한 번 흐름을 끊었다.
“자자, 얘기가 과열되고 있으니 잠시 머리를 식힙시다. 우리가 천마신교와 전쟁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쳐들어가서 싸울 수는 없었다.
상대는 천마신교니까.
게다가 그렇게 싸우다 정마대전으로 번지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건 간접적으로 천마신교의 손발을 끊어내는 정도였다.
그리고 사소한 시비를 이용한 자잘한 싸움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마신교의 전력을 깎아내고 잘 하면 고립시키는 것 정도가 목적이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짓이었다.
그랬다간 당장 천마가 달려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아무리 상황이 낙관적이라도 우리끼리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싸움뿐만이 아니라 정보도 중요하고 돈도 많이 들어갈 테니까요.”
“다른 가문이나 문파를 끌어들여야지요.”
다들 동의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걸 염두에 두었다.
만일 오대세가의 힘으로 천마신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면, 향후 무림에서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동안 천마신교에, 아니, 천마에게 무수히 당하고도 힘이 없어서 찍소리 못하고 참아야 했다.
그걸 어느 정도 갚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문제는 후환입니다.”
후환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상대는 천마신교,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들 아닌가.
“천마가 안 나오면 참 좋겠는데······.”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한 사람도 씁쓸하게 웃었다.
천마신교에서 천마가 안 나올 리 있겠는가.
“자자, 그래도 머리를 맞대다 보면 좋은 방법이 나올 겁니다. 솔직히 이번 계획이 잘 먹혀들어가서 천마신교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만 된다면, 무림의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지요.”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밖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다섯 가주의 표정이 확 굳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