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3)
다섯 가주가 데려온 무사들은 별채의 전각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 소란이 일어난다는 건 그 많은 무사들을 보고도 기가 죽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결코 좋은 뜻으로 오지 않았으리라.
다섯 가주는 벌떡 일어나 얼른 밖으로 나갔다.
오대세가의 무사들이 한 사람과 대치하고 있었다.
한데 그 한 사람이 아주 젊은 여자였다.
“무슨 일이냐.”
하후세가주가 나서서 물었다.
그의 격이 가장 높았기에 가벼운 물음에도 힘과 기세가 담겼다.
하후세가주는 단숨에 무사들을 장악했다.
그의 호위무사 한 명이 다가와 정중히 대답했다.
“저 여자가 가주님들을 뵙고 싶다기에 거절하는 중이었습니다.”
한데 그냥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닌 듯했다.
무사들의 분위기가 굉장히 날 서 있었다.
“분위기가 좀 묘하구나.”
“저 여자가 좀······ 이상한 얘기를 했습니다.”
“이상한 얘기?”
“예. 자기가 천마라고······.”
“뭐?”
다섯 가주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나이가 많아봐야 스물을 갓 넘은 정도로 보였다. 저런 핏덩어리 같은 여자가 어딜 봐서 천마란 말인가.
“하면 조용히 돌려보내지 않고 왜 소란을 피웠느냐. 어서 돌려보내도록 해라.”
그 말에 호위무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란이라니. 저 여자와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얘기했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기에 소란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한데 소란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때 여자, 사공예랑이 말했다.
“내가 불렀다.”
호위무사가 고개를 휙 돌려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뭐?”
지금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한단 말인가. 부르긴 언제 불렀단 말인가.
사공예랑은 호위무사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다섯 가주를 똑바로 쳐다봤다.
“헛짓거리 하지 말고 각자의 가문으로 돌아가라.”
다들 멍하니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지금 뭐라 했느냐?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사공예랑은 방금 말한 사람을 슥 쳐다봤다. 하후세가주의 호위무사였다.
사공예랑이 그를 향해 손을 슬쩍 뻗었다.
호위무사가 털썩 쓰러졌다. 즉사였다. 혼백이 불타 소멸했으니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천마라는 걸 안 믿는구나. 상관없다. 이제부터는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사공예랑은 증혼마공의 힘이 담긴 영력을 그냥 풀어냈다.
콰아아아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사공예랑을 막아서고 있던 삼백 명 가까운 무사들이 차례대로 투두둑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들 역시 즉사였다.
다섯 가주는 멍하니 사공예랑을 바라봤다. 그들의 뇌리에 강렬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방금 벌어진 것과 아주 똑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만들어냈던 주체가 바로 천마였다.
“천마······!”
하후세가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사공예랑이 빙긋 웃었다.
“그래. 내가 천마다.”
정확히는 아직 천마가 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장황한 호칭을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공예랑은 다섯 가주를 한 번씩 지그시 쳐다봐준 다음 휙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섯 가주는 한 마디도 못하고 사공예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괜찮을까요?”
화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비검을 바라봤다.
누구를 보낼지, 또 몇 명이나 보내야 할지 상의하러 왔을 때, 비검은 당연하다는 듯이 사공예랑이 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검뿐 아니라 마침 함께 있던 검귀와 혼천마조차 그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보냈는데, 막상 보내고 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비검이 피식 웃었다.
“안 괜찮을 리 없지. 그 아이는 조만간 천마가 될 사람이다.”
“하지만 걱정 됩니다. 저도 영력은 좀 씁니다만,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정예 무사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비검이 화옥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농담하지 마십시오.”
농담이 아니었지만 비검은 굳이 그 얘기를 하지 않고 그저 한 차례 웃기만 했다.
“아무튼 그 아이는 증혼마공을 익혔다. 그럼 걱정할 건 딱 하나다. 부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길 바라도록 해라.”
화옥은 그 말을 듣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 그 아이가 그러겠습니까?”
“모르는 일이지.”
역대 천마들은 증혼마공을 쓰면서 금세 힘에 취했다.
비검은, 부디 사공예랑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빌었다.
끝
벽태산은 천마신교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산에 도착했다.
일단 위치를 파악한 이상, 그놈들이 여기 어디에 있든, 또 아무리 교묘하게 숨어 있어도 찾아낼 수 있다.
벽태산은 황산 전체를 영력으로 한 차례 훑었다.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재미있군.”
영력으로 훑었지만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황산은 지극히 평범한 산 그 자체였다.
심지어 영맥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산 대로라면 분명히 이곳, 황산에 무명 놈들이 있을 것이다.
하긴 그놈들이 그냥 산속에 아무 대비도 없이 무리지어 살고 있지는 않으리라.
본거지는 안전한 곳에 두고 장기말들만 툭툭 내보내 써먹을 만큼 써먹은 다음 꼬리를 싹둑 잘라내는 놈들이다.
그러니 본거지를 감추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겠는가.
진법은 물론이고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보통은 이쯤 되면 발품을 팔아서 무명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멀리서는 감지하지 못해도 가까이 다가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벽태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못 찾으면 가까이 가도 못 찾을 거라 여긴 것이다. 차라리 지금 더 집중해보고 안 되면 벽을 하나 더 넘어서라도 찾아내는 것이 나았다.
벽태산은 일단 황산으로 들어섰다.
황산은 무수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었다.
각 봉우리는 수백 장의 높이를 자랑한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산이기도 했다.
심지어 안쪽에 호수가 두 개나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누군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벽태산은 일단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잠깐 있다가 갈 거면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금세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먹고 자는 거야 몇 달 쯤 거른다고 해도 솔직히 별 문제 없지만, 영력으로 감각을 퍼트려 집중할 때 방해될 만한 것들이 최소이길 원했다.
그렇게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휙휙 날아서 이동하던 벽태산은 적당한 자리를 발견했다.
봉우리 세 개의 중심이었는데, 평평하면서도 주변에서 함부로 드나들기 어려운 장소였다.
또한 황산에서 제법 깊숙한 곳이었기에 감각을 확장하기도 편했다.
벽태산은 그곳에 내려선 뒤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오간 흔적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짐승이 오간 흔적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곳은 고립된 장소였다.
벽태산은 그곳의 중심에 앉았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벽태산을 중심으로 은은한 영력의 파동이 일어나 사방으로 쫙 퍼졌다.
그 파동은 황산 전체를 한 차례 훑고 흩어졌다.
황산의 둘레는 육백 리가 넘는다. 그 거대한 공간을 영력으로 훑은 것이다.
이것은 보유한 영력의 양이 많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영력이 너무 적으면 할 수 없지만, 일정 이상의 영력을 보유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영력의 세밀한 조절이었다.
정확히 황산을 훑고 지나가는 파동을 만들어내야 하며, 그걸 토대로 영력과 영력의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지, 영력과 진법의 기운이 만나지 않는지, 또한 영력과 사람이 가진 기운이 만나지 않는지 모두 확인해야 한다.
예전 천마 시절의 벽태산이라면 결코 이런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라면 차라리 황산을 전부 부숴버리는 것이 더 편했으리라.
벽태산이 잠깐 눈을 떴다.
“그냥 다 부숴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겠군.”
어렵지도 않다. 지금 벽태산이 가진 힘은 봉우리 몇 개 박살 내는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물론 한 방에 말이다.
하지만 벽태산은 다시 눈을 감았다.
고작 무명 놈들 찾겠다고 황산을 전부 무너뜨려 버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런 점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만일 다시 태어나기 전에 같은 일이 생겼다면 망설임 없이 황산을 부숴 버렸을 것이다.
혼백이 섞여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벽태산으로 살면서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벽태산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무게추가 좀 더 기울었다.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벽태산은 다시 한 번 영력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후웅.
아무 성과 없이 파동이 황산을 훑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이것이 의미 없는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방금 던진 영력의 파동은 처음 것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파동의 성질을 약간 바꿔서 던진 것이다.
벽태산은 또 성질을 약간 바꿨다.
후웅.
파동이 다시 한 번 성과 없이 황산을 훑었다.
후웅. 후웅. 후웅.
연이어 영력의 파동이 황산을 훑었다. 매번 성질이 다 달랐다.
아마 의선이 이 광경을 봤으면 입을 쩍 벌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벽태산은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듯 여상하게 그걸 해냈다.
수십 번이나 반복해도 성과가 없자, 벽태산은 그때부터 방식을 조금씩 바꿨다.
영력의 파동을 하나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 혹은 세 개를 섞어서 내보냈다.
영력의 파동이 서로 비비 꼬여서 전혀 새로운 영력의 파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그건 아무리 벽태산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한 번에 끝내지 못하면 어떤가. 아직 시간은 얼마든지 남아 있는데.
지금 하는 일은 상당한 수련 효과가 있었다.
벽태산은 즐거운 마음으로 연이어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벽태산이 눈을 번쩍 떴다.
“드디어 찾았다.”
다섯 개의 영력을 교묘한 법칙으로 꼬아서 내보낸 영력의 파동에 이질적인 영력이 걸려들었다.
그것이 아마 무명의 본거지를 지키고 있는 무언가이리라.
벽태산은 확인 차 다시 한 번 파동을 뿜어냈다.
후웅.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똑같은 반응이 다시 왔다.
찾았으면 더 이상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벽태산은 곧장 몸을 날렸다.
봉우리 몇 개를 툭툭 발로 찍으며 허공을 훌훌 날아 반응이 있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한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태산은 앞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손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손을 다시 되돌린 벽태산이 이번에는 손바닥 위에 영력으로 만든 구슬을 올렸다.
아까 보냈던 파동과 똑같은 성질의 영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을 올린 손바닥을 다시 앞으로 뻗었다.
파직!
뭔가가 걸렸다.
벽태산은 거기에 영력을 더 퍼부었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결계의 표면을 타고 뇌기가 사방으로 내달렸다.
뇌기의 움직임 덕분에 결계의 모양과 크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진법으로만 만든 결계가 아니었다.
영력이 섞인 결계였다.
그걸 보며 벽태산이 중얼거렸다.
“여기로구나.”
* * *
혈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옆머리가 찡 울렸다. 지독한 두통이었다.
혈마는 인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누워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거대한 옥판 위였다.
혈마가 씨익 웃었다.
“성공했군.”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래서 성공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슬쩍 옆을 보니 기존에 쓰던 몸뚱이가 보였다. 정말 꼴사납게 쓰러져 있었다.
그것을 향해 손가락을 슬쩍 튕겼다.
쓸모없는 몸뚱이가 그대로 녹아 핏물이 되어 버렸다.
촤르륵!
핏물이 모조리 혈마에게 날아와 그대로 흡수되었다.
혈마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