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4)
충만하게 힘이 차올랐다.
아마 자신의 몸뚱이에 남아 있던 기운들이 피와 함께 흡수된 모양이었다.
혈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까지 누워 있던 옥판이 갑자기 마음에 안 들었다.
가볍게 발에 힘을 주었다.
쩌저적! 꽝!
옥판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렸다.
혈마는 온몸에서 끓어 넘치는 힘에 전율했다.
이 정도면 천마고 뭐고 다 박살 내버릴 수 있을 듯했다. 아니, 천마가 뭔가. 천마신교 전체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천하와 싸워도 이길 것 같았다.
새 몸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공을 많이 들인 보람이 있었다.
물론 공을 들여서 만든 건 혁련가 놈들이지만.
혈마는 손을 들어 가만히 쳐다봤다.
손가락 끝까지 막대한 힘이 꽉꽉 들어찬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주먹을 꽉 쥐었다.
힘이 폭발할 것처럼 응축되었다.
“최고로군.”
혈마는 오만한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 지긋지긋한 동굴에서 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동굴을 나선 혈마는 봉우리 아래로 보이는 무명의 본거지를 한동안 내려다봤다.
“무기력한 것들.”
사실 평소와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저 혈마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혈마의 심장이 더욱 힘차게 뛰며 온몸에 힘을 쭉쭉 공급했다.
혈마의 몸이 점점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몸의 피가 밖으로 번져 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것들이 과연 쓸모가 있을까?”
혈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봉우리에서 훌쩍 몸을 띄웠다.
아래로 쭉 떨어진 혈마가 바닥에 착지했다.
쿵!
혈마는 힘을 죽이지도 않고 내려섰다. 아니, 오히려 힘을 더 주었다.
바닥이 한 차례 출렁이더니 확 뒤집어졌다.
당연히 큰 소리와 진동이 일어났고, 무명의 본거지 쪽에서 그것을 감지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혈마는 그것을 보며 느긋하게 걸어갔다.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온 자들은 혁련가의 무사들이었다. 그 안에는 혁련가주도 있었다. 수십 명의 호위무사가 혁련가주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혁련가주는 혈마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몸을 준비한 것이 혁련가다. 당연히 혈마가 새로 입은 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혁련가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르신이십니까?”
혈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고민 중이었다.
처음에는 생각만으로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그 고민이 입 밖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아니지, 사람이 많으면 편하긴 하지. 하지만 굳이 편리함을 위해 저런 먹음직스러운 녀석들을 방치하는 건 낭비 아닌가?”
혈마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는데, 내용은 다 비슷했다. 같은 말을 단어만 바꿔서 반복하는 중이었다.
혁련가주는 그런 혈마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뭔가 잘못되었다.’
평소의 큰 어르신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눈빛도 달라졌다. 언뜻언뜻 광기가 흘러나왔다.
혁련가주가 냉정히 전력을 비교했다.
자신들이 힘을 모으면 과연 큰 어르신을 이길 수 있을까?
답이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았다.
그래서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래, 결정했다.”
혈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혁련가주를 비롯한 무명의 무사들은 긴장한 눈으로 혈마를 바라봤다.
“너희들, 내 피가 되어라.”
혁련가주는 공격하라고 외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새 몸이 폭발해 핏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촤르르르륵!
혁련가주가 뭉개져서 만들어진 피가 모조리 혈마에게 흡수되었다.
혈마의 눈동자가 위로 휙 올라갔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까 자신의 찌꺼기를 흡수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이 온몸에 충만하게 차올랐다.
“이거지!”
혈마가 양 팔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앞에 있던 무사들 중 일부가 퍽퍽 터졌다.
피가 허공으로 선이 되어 쭉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에서 회오리쳤다.
퍼버버버버버벅!
남아 있던 자들이 차례대로 터지면서 피가 되어 피의 회오리에 빨려 들어갔다.
피의 회오리는 점점 커졌다.
그곳에 모였던 자들이 사라지는 건 금방이었다.
피의 회오리에서 한 줄기 핏물이 쭉 뽑혀 나와 혈마와 이어졌다.
혈마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힘을 느끼며 크게 웃었다.
사방에서 무사들이 몰려왔다.
결계 때문에 당장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싸워야만 했다.
결계를 해제하려면 세 가문의 가주들이 필요하다. 한데 혁련가주가 죽었으니 그의 역할을 이어받을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결계를 열 수 없다.
무사들이 온 힘을 다해 혈마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혈마의 몸을 건드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혈마에게 달려가던 중간에 몸이 폭발하면서 피의 회오리에 먹혀 버렸으니까.
마치 불나방이 불에 날아드는 것처럼 무명의 무사들이 혈마에게 달려가 피가 되어 사라져갔다.
나중에는 다들 두려움에 먹혀서 사방으로 도망쳤다.
혈마는 크게 웃으며 양 팔을 마구 휘저었다.
피의 회오리에서 엄지 한 마디만 한 피의 구슬이 툭툭 튀어나오더니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피의 구슬이 도망치던 자들을 꿰뚫었다.
피의 구슬에 당해 죽은 자들은 어김없이 폭발했고, 피가 되었다.
피의 구슬이 그 피를 흡수해 크기가 더 커졌다.
그렇게 커진 피의 구슬이 혈마에게 날아가 그의 몸에 쑥쑥 들어갔다.
그렇게 무명이 혈마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혈마는 본거지 한가운데 서서 기분 좋게 차오르는 힘을 만끽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피의 회오리가 여전히 있었고, 계속해서 혈마에게 피를 공급했다.
피의 회오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때 본거지를 감싸고 있던 결계 위를 뇌전이 훑고 지나갔다.
혈마가 고개를 들어 결계의 표면을 타고 달리는 뇌기를 바라봤다.
누군가 온 모양이었다.
결계를 따라 흐르는 뇌기의 세기가 점점 강해졌다.
그러자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혈마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저 정도면 정말 큰 힘을 줄 것이다.
그의 입가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먹음직스러운 놈이 찾아왔구나.”
끝
벽태산은 결계를 힘으로 부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결계의 구조를 파악해 최소한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역시 수련의 일환이었다.
강력한 뇌기가 결계의 표면을 타고 흘러갔다. 뇌기가 결계를 모두 덮었다.
그냥 뇌기가 아니라 영력이 섞인 뇌기였다.
벽태산은 그걸 통해 결계의 구조를 파악함과 동시에 약점을 끊었다.
쩌어어어어엉!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결계가 사라졌다.
벽태산은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무명의 본거지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높은 봉우리들이 보였다.
사실 결계가 깨진 시점에 이 근방을 한 차례 싹 훑어서 무명의 본거지가 어디인지는 바로 알아차렸다.
저 봉우리들을 넘어가면 된다.
무명의 본거지는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데 인기척이 없었다.
정확히는 딱 한 명의 인기척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한 놈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굉장했다.
벽태산이 살짝 감탄했을 정도였다.
그놈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차피 그놈이 이쪽으로 오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명의 본거지에 직접 가서 다 박살 내버릴 생각이었다.
벽태산은 훌쩍 몸을 띄워 봉우리로 올라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발로 몇 번 툭툭 짚으면서 지나갔다.
그러자 무명의 본거지가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무수한 전각이 보였고, 거대한 장원도 세 개나 있었다.
저 정도 규모라면 수백 명이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적이 없다는 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벽태산의 시선이 무명의 본거지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는 혈마에게 닿았다.
위험한 기운을 휘감고 있었다.
벽태산은 저자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데 시체조차 없었다.
혈령마공에 대해 대충 알기에 저자가 사람을 아예 핏물로 만들어 빨아 들였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피 냄새 하나 나지 않았다.
벽태산은 그 부분에도 감탄했다.
웬만한 경지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완벽하게 모든 걸 빨아들일 수는 없었다.
예전 천마이던 시절의 벽태산도 증혼마공으로 혼백을 태워 만들어진 영력을 흡수할 때, 완벽하게 모든 영력을 흡수하지는 못했다.
완벽에 근접할 정도는 되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혈마가 천마이던 시절의 벽태산을 넘어섰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거 하나 잘한다고 해서 더 강한 것은 아니니까.
벽태산은 혈마를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영력의 파동으로 주위를 확인했다.
“싹 다 죽였구나. 사람뿐 아니라 짐승이나 벌레까지도.”
벽태산의 말에 혈마가 씨익 웃었다.
“짐승이나 벌레도 몸에 좋거든.”
벽태산은 혈마와 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섰다. 그리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왜 전부 죽였느냐?”
혈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민을 좀 했는데, 그냥 내가 더 강해지는 게 낫겠더구나. 쓸모없는 것들을 데리고 다니느니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
벽태산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벽태산이 천마이던 시절, 호천대를 데리고 다녔기에 나쁜 상황에 빠진 적이 많았으니까.
만일 혼자였다면 그 누구도 천마를 막아서지 못했을 것이다. 싹 죽었을 테니까.
호천대가 천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천마가 호천대의 사정을 봐줬다.
그리고 그건 벽태산뿐 아니라 역대 천마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혈마가 한 짓이 옳다는 뜻은 아니었다.
뭐, 어차피 죽일 놈, 그리고 어차피 다 죽여 버리기로 한 놈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긴 하지만.
혈마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위아래로 천천히 살펴봤다.
“우리 결계를 깬 걸 보면 보통 놈은 아닌데······ 너 누구냐?”
“그러는 넌 누구지?”
“내가 먼저 묻긴 했다만, 뭐 대답하지 못할 건 없지. 내가 혈마다. 여기 무명의 주인이기도 하지.”
벽태산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벽태산이다.”
혈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바로 벽태산이었구나!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들을 때마다 보통 놈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실제로 보니 듣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구나!”
벽태산은 피식 웃었다. 지금 누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혈마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뭐라고 한 마디 해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벽태산이 아무 말 하지 않자, 인상을 팍 썼다.
“네놈은 날 보고서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이냐? 그 정도 실력이면 내가 얼마나 강한지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벽태산은 좀 묘한 시선으로 혈마를 쳐다봤다. 머릿속 어딘가가 망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긴, 그러니 여기 있는 자들을 전부 죽였겠지. 어린애 같은 구석도 보이고.
“뭐······ 그럭저럭 힘 좀 쓰겠구나.”
“뭐? 그럭저럭?”
혈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 같은 건 순식간에 박살 내겠구나?”
벽태산은 잠시 혈마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견적이 나왔다.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마음먹고 제대로 싸우면, 해치우는 데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그냥 죽인다고 끝이 아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해서 영력을 뽑아내야 한다.
그저 단순히 혼백을 뽑아 태워서는 안 된다. 확실히 제압한 다음 특별한 방법을 써야 영력을 뽑아 수정구슬에 담을 수 있다.
“계속 입으로 싸워야 하느냐?”
벽태산이 담담히 물었다.
혈마는 안 그래도 붉어진 피부가 더욱 새빨개졌다.
“일단 팔다리부터 박살을 내주마. 아주 벌레처럼 굴려주마.”
혈마가 이를 갈며 아래에서 위로 손을 휙 쳐올렸다.
벽태산은 그 순간 고개를 옆으로 까딱 움직였다.
쉬악!
벽태산의 얼굴이 있던 곳을 무언가가 훑고 지나갔다.
혈마가 혈령을 쓴 것이다.
보통 사람이 거기에 맞으면 단숨에 핏물로 변한다.
그러니 아무리 벽태산이라고 해도 거기 맞았다면 단순히 생채기 하나 생기고 끝나지는 않았으리라.
“감이 좋구나.”
혈마는 씨익 웃으며 연이어 손을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