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3)
“이름으로 통과한 것 같으냐? 어설픈 것.”
“기세로 짓누르는 것도 이름값이 있으니까 통한 거요. 그러니 이름으로 한 거지. 이름 없었으면 칼부림 몇 번은 했을 거요.”
“그럴 일 없다. 칼을 뽑기 전에 내 침이 정수리에 꽂힐 테니까.”
“공자님이 사람 죽일까봐 와 놓고선 자기가 죽이려고 그러는 거요? 우리 앞뒤는 좀 맞춥시다.”
일침괴가 걸음을 멈추고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너 왜 이러냐고 물으려는데 천추신의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더니 일침괴를 슥 지나가 버렸다.
일침괴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꿰매야 하나? 그 정도는 공자님도 허락해 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었는지 천추신의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어? 공자님!”
천추신의가 벽태산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일침괴는 피식 웃고는 얼른 천추신의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공자님,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벽태산이 서 있고, 아까 투닥대던 세 사람이 바닥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천추신의가 기겁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서, 설마!”
“한 마디만 더 하면 너도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마.”
천추신의가 입을 합 다물었다.
“그런데 쟤들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혈도 좀 잡았어. 살짝 뽑았더니 거품을 좀 물긴 했는데, 몸은 멀쩡해.”
뭘 뽑은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가서 좀 봐도 되겠습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서둘러 서문제학 일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진맥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벽태산의 말 대로였다. 뭔가에 좀 놀랐는지 몸이 살짝 경직되어 있긴 한데, 사는 데 별 지장은 없었다.
“이제 어쩔까요?”
“어쩌긴, 깨워야지. 아직 대화를 제대로 못해서 말이야.”
천추신의가 뜨악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대화도 없이 애들을 이 지경으로 만드신 겁니까?”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봤다.
천추신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는 서문제학의 혈도 몇 군데를 자극했다.
“끄으응.”
서문제학이 서서히 깨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도 차례로 정신을 차렸다.
“헉!”
세 사람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벽태산을 발견하고는 몸을 덜덜 떨었다.
“똥 지릴 것 같다. 막아라.”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추신의가 몸을 날렸다.
투두두두둑!
그는 빛살 같은 속도로 세 사람의 혈도를 짚었다.
장 활동을 막아 변비를 강제로 일으키는 혈도였다. 의원이었기에 누구보다 정확히 그 혈도를 짚을 수 있었다.
일침괴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대체 이놈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천추신의는 이미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구린 냄새를 맡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벽태산이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세 사람은 벽태산이 다가올수록 눈에 띄게 얼굴이 창백해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저러다가 탈수에 걸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까 너희도 말했지?”
“예? 무, 무슨 말을 말입니까?”
“뒤에서 내 얘기 하는 거 정말 싫어한다고.”
갑자기 아까 금월객잔에서 했던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우르르 떠올랐다.
“해, 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누가 뒤에서 내 얘기하는 거 정말 싫어하지. 그러니까 앞으로 좀 조용히 있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무, 물론입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일단 믿기 힘들지만 믿어보지. 뭐······ 하고 싶으면 해도 좋아. 감당할 수 있으면 말이야.”
벽태산이 세 사람을 슥 훑어봤다.
“만에 하나 천만분에 하나라도 뒤에서 내 얘기하다가 걸리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섰다.
“가자.”
벽태산이 앞장서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얼른 뒤를 따랐다.
천추신의가 좀 걸어가다가 생각났다는 듯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방금 막은 혈도 나중에 자연스럽게 풀릴 거야.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천추신의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세 사람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뭐, 뭐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나도······ 나도 모르겠소.”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소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벽태산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자신들이 겪은 일은 대체 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그들이 정말 지독한 고통을 겪었다는 건 확실했다.
아직도 그 고통이 뇌리에 남아 몸이 이렇게 덜덜 떨리고 있었으니까.
분노라도 일어나야 하는데, 그조차 없었다. 그저 무섭고 두려웠다.
아마 이걸 이겨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그래도 이겨내겠지. 그때가 되면······.’
서문제학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혹시 이러는 게 들킬까봐 조심하면서.
자신의 그런 모습을 자각한 서문제학은 헛웃음을 흘렸다.
허탈했다.
“후우. 일단 갑시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쉬어야겠소.”
그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숲을 나섰다.
힘든 일을 겪은 그들이 숲에서 나가 마주한 소식은 그들을 더 힘들게 했다.
“그 노인이 일침괴였다고? 그게 정말이냐?”
서문제학이 기함을 하며 물었다.
“일단······ 정확히 확인한 건 아닙니다. 당사자가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건 확실합니다.”
“심상치 않은 실력이었다고? 내가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했는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봤습니다. 한데 한순간 기운이 폭발하듯······.”
서문제학이 멍하니 무사를 바라봤다.
“그래도 일단 서문세가에 대한 감정은 좀 정리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서문제학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말했느냐?”
“예.”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서문제학과 함께 있던 두 사람, 구양수와 추영학은 그럴 수 없었다.
서문세가에 대한 감정을 정리했다는 건, 자신들의 가문에 대한 감정은 그대로라는 뜻이니까.
벌써부터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일침괴는 적대 관계가 되면 굉장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최선인 자였다.
한데 이렇게 악연으로 얽혀버렸으니 나중에 가문에 돌아가서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연하린의 정혼자를 뭉개주려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말은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대로 손 놓고 당하기만 해선 안 되는 거 아닌가?’
시간이 좀 지났다고 슬그머니 그런 생각이 올라왔다.
서문제학은 구양수와 추영학을 바라봤다. 두 사람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세 사람 사이에 뭔가 교감이 오갔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오늘은······ 이만 쉬고 싶군. 숙소는 어쩔 거요?”
“글쎄올시다······.”
다른 숙소로 갈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꼭 도망치는 것 같지 않은가.
“금월객잔으로 가는 게 어떻겠소? 그리고 굳이 별채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좋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세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해서 금월객잔으로 향했다.
물론 객잔으로 들어갈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벽태산이나 일침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객실을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천추신의가 막아뒀던 혈도가 풀리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끝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벽태산은 시선을 살짝 들어 앞에 앉아 있는 연하린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까 나갔다 오자마자 연하린이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유서연은 연하린과 합류한 이후 연하린을 호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다.
지금도 연하린 뒤쪽 좀 떨어진 곳에서 호위 중이었는데, 굉장히 흐뭇한 표정으로 연하린과 벽태산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벽태산은 연하린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밥은 벌써 다 먹었고, 잠시 아까의 일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오늘 서문제학을 비롯한 세 사람의 혼백을 살짝 뽑아서 태웠다.
최근 일침괴를 통해 알아내고 수련한 방법을 이용했다.
최대한 혼백의 바깥쪽을 살살 태워서 기존 혼백과 섞이지 않은 것들만 뽑아냈다.
일침괴의 혼백과는 좀 달랐지만, 그동안 자주 해봐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살 태우고 뽑아낸 영력을 증혼마공을 통해 받아들였다.
한데 그렇게 받아들인 힘이 기존의 것과 많이 달랐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일침괴의 혼백에서 뽑아낸 것과 성질이 달랐다.
일침괴의 혼백에서 뽑아낸 영력은 정말 뛰어났다. 특히 기맥을 치료하는 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게 증혼마공을 쓰는 방식의 차이라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서문제학 일당으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뽑아낸 영력이 이렇게 형편없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일침괴의 것이 비해 치료 효과가 형편없다는 것이지 영력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걸 다른 방식으로 쓴다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기녀들로부터 뽑아낸 영력이 자신의 몸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걸 다른 여자들은 묘한 색기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 뒤로 여자들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지기도 했었고.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혼백에 때가 쌓이는 방식에 따라 그 혼백이 품은 영력의 성질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기본적인 영력의 위력 자체는 어떤 놈의 혼백에서 뽑아내든 강력하다.
게다가 이건 내공이라고 할 수도 없기에 자신이 이런 힘을 쌓았는지 알아보지도 못한다.
아마 비슷한 힘을 쌓지 않으면 결코 알아낼 수 없으리라.
일침괴가 진맥을 했는데도 몰랐을 정도니까.
“그럼 역시 의원인가.”
절맥을 더 빨리 치료할 방법을 찾았다. 답은 의원이다.
일침괴만 붙들고 늘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혼백을 태울 때가 가장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차츰 효과가 떨어진다. 혼백에 묻은 때를 다 태워서 빨아들이면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테고 말이다.
물론 내버려두면 다시 때가 묻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 새 의원을 찾아야 한다. 때도 적당히 많이 묻었고, 의원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나면 더 좋고.
마침 주변에 딱 좋은 의원이 하나 있었다.
벽태산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상념에서 벗어났다.
“공자님, 무슨 걱정거리 있으신 거 아니죠? 혹시 저랑 함께 왔던 사람들이 공자님께 무슨 이상한 얘기라도 한 건가요?”
연하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밥을 다 먹고도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만 잠겨 있어서 그런 것이다.
“걱정은 무슨. 오히려 그 반대지.”
“예?”
“좋은 일이 하나 생길 것 같다고.”
“아······ 그렇군요. 그 일이······ 저랑 관계된 거면 좋겠네요.”
연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쑥스럽게 웃었다.
‘예쁘긴 진짜 예쁘구나.’
벽태산은 연하린이 웃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정도 미모면 그동안 자신이 봐 왔던 모든 미녀를 통틀어 거의 최고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도 걔보다는 좀 못하나? 아니, 비슷한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털어버렸다. 어차피 만날 일도 없는 사람 아닌가.
그 여자는 지금쯤 천마신교에 있을 테니까.
현월진을 없애지 않는 한, 다시 볼 일은 없다.
천마신교에서 나온다고 해도 자신과 접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지금 금벽상단의 둘째 공자니까.
“밥도 다 먹었는데 가볍게 산책이나 좀 할까?”
벽태산의 말에 연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벽태산이 먼저 다가와 주는 것이 대체 얼마만이던가.
“좋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유서연과 천경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두 사람은 호위의 임무에 충실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 * *
산책이 좀 길어졌다.
벽태산과 연하린은 해가 진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강가를 배회했다.
사실 벽태산에게 지금 이 순간은 오늘 얻은 새로운 영력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중 하나였다.
오늘 얻은 영력은 평소와 달리 가만히 앉아서 흡수하기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아무래도 이것 역시 혼백의 특성을 따라가는 듯했다.
그동안은 거의 생각해 보지도, 시도해 보지도 않은 영역이었다.
새로 깨달은 증혼마공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동안은 몸을 치료하느라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릴 여력 자체가 없었다.
어쨌든 덕분에 산책이 길어졌는데, 연하린은 그것을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돌아올 때쯤, 그녀의 얼굴이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게 금월객잔에 다시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왠지 안쪽이 굉장히 분주했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