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4)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천경완이 먼저 나서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천경완은 안으로 들어갔다가 거의 바로 다시 나왔다.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가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응?”
“지금······ 냄새를 빼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벽태산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벽태산은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한 바퀴만 더 돌고 오자.”
굳이 남이 싸지른 똥냄새를 맡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별채까지 가는 동안 잠깐만 참으면 되겠지만, 천경완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지독한 게 틀림없다.
그러니 지금은 산책이나 하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편이 나았다.
* * *
서문제학과 구양수, 추영학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았는데, 다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암담했다.
“시발, 내가······.”
말이 안 나왔다. 내가 바지에 똥을 싸다니.
그냥 지린 정도가 아니라 정말 쌌다. 그것도 잠자는 동안.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아무리 씻어도 몸에 밴 냄새가 잘 가시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명문세가의 자제가 아니었다면, 객잔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쫓겨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도망칠걸 그랬어.”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나머지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다가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세 사람은 오늘 이 방에서 함께 자야 한다. 일종의 격리조치였다.
그들은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월객잔에서 그래도 최대한 소문을 막아보겠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버티고, 내일 당장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소?”
구양수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서문제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아. 내일······ 오후에 호무련에서 마중을 나오신 분이 도착하기로 되어 있소.”
서문세가 출신으로 호무련에서 순찰당주를 맡고 있는 사람이 서문제학을 위해 굳이 형주까지 오겠다고 하는데, 그걸 어찌 거절하겠는가.
나중을 위해서라도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서문제학은 가문에서 입지를 다지기보다는 이렇게 외부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셋째라서 가문에 자리를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향후 호무련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니 호무련의 순찰당주인 가문의 어른에게 아주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양수와 추영학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수모를 내일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자기들끼리만 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내일 그분이 오시면, 벽태산에 대한 얘기를 좀 드릴까 하오.”
벽태산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몸이 확 굳었다.
심지어 그 이름을 먼저 말한 서문제학도 그랬다.
순간 침묵이 맴돌았다.
깊은 자괴감이 세 사람을 짓눌렀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어떤 수든 써야 한다. 그리고 호무련의 순찰당주라면 거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세 사람의 눈에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기묘한 빛이 아른거렸다.
* * *
밤이 되었다.
금월객잔의 별채는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작은 시냇물과 연못, 그걸 둘러싼 나무와 바위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정자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커다랗고 아름다운 전각이 세워져 있었다.
벽태산은 전각의 가장 꼭대기 층에 머물렀는데, 창가에 서 있으면 별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법 괜찮군.”
천마이던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이 정도로 잘 꾸며진 객잔은 손에 꼽았다.
“금월객잔이라, 금월객잔······.”
아무리 이름을 되뇌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금월상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천마이던 시절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천마신교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금월상단은 천하제일을 다투는 상단이다.
그 정도면 천마의 귀에도 자주 그 이름이 오르내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문 앞을 지키겠다고 방 밖에 서 있던 천경완이 말했다.
“공자님, 일침괴 어르신을 모셔올까요?”
여기까지 오면서 밤마다 일침괴를 방으로 들였다.
그래서 그런지 근처 가까운 곳에 일침괴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거겠지.
“오늘은 됐고, 가서 천추신의 데려와.”
“예?”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방문을 쳐다봤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마 이 기세를 천경완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흠칫 놀라는 것일 테고.
“알겠습니다.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잠시 후, 어리둥절한 표정의 천추신의가 방으로 들어왔다.
“공자님, 이 야심한 밤에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천추신의의 눈동자 깊은 곳에 두려움이 일렁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마 하는 생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내가 오늘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어.”
“예?”
“나한테는 의원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야.”
“예?”
벽태산이 가까이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천추신의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주춤주춤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벽태산이 씨익 웃으며 천추신의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조금만 뽑을게.”
* * *
“끄으으으아아아아!”
어딘가에서 처절한 비명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간신히 잠들었던 서문제학이 눈을 번쩍 떴다.
잊고 싶었던 공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자신은 엎드려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고, 옆에서 저와 똑같은 비명이 들려오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상태로 비명이 끝날 때까지 덜덜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 비명이 다 끝난 후에도 잠들지 못하고 두려움과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그 시간 구양수와 추영학도 서문제학과 아주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사이좋게 밤을 꼴딱 지새웠다.
* * *
“으흐흐흐흐.”
천추신의는 옆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일침괴를 노려봤다.
“웃지 마쇼.”
“큭큭큭큭. 내가 웃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으하하하!”
일침괴가 아주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만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기분이었다.
“그래, 우리 공자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기분이 어떻더냐? 아주 좋아 죽겠지?”
천추신의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일침괴를 노려봤다.
“어이구 눈빛으로 사람도 죽이겠다. 아주 눈빛 고수야. 으하하하.”
“원래 그렇게 경박한 사람이었소?”
일침괴가 씨익 웃었다.
“마음대로 말해라. 내가 원래 어땠는지는 나도 모르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구나. 비명이 제법 찰지던데, 어땠느냐? 제법 아팠지?”
“끄응. 말 안 할 거요.”
천추신의가 고개를 팩 돌렸다.
그걸 본 일침괴가 또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계단을 내려오는 벽태산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천추신의가 쪼르르 벽태산에게 달려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공자님, 일어나셨습니까? 식사 준비하라고 할까요?”
벽태산은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눈으로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멀찍이 앉은 일침괴를 쳐다봤다.
일침괴의 얼굴에 떠오른 당황을 읽은 벽태산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너희들 뭐 사고 친 거 아니지?”
“어이구,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얼마나 조용한 사람인데.”
벽태산이 손을 휙 내저었다.
“아님 됐고. 밥이나 차리라고 해라.”
“예, 공자님.”
천추신의가 그렇게 대답한 다음 물러가려고 할 때, 벽태산이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을 들었다.
“잠깐.”
“예?”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똑같은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싸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디 아는 의원 좀 없나?”
“예?”
두 사람이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끝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별채에서 머무는 비용이 비싸긴 했지만, 어차피 벽태산은 돈 걱정 따윈 해본 적이 없었다.
천마이던 시절에도 지금도.
형인 벽태수가 돈을 얼마나 많이 챙겨줬는지, 일행의 얼굴에서도 걱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배로 이동해야 하니, 적당한 배를 찾아보겠습니다.”
천경완의 말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천추신의가 눈빛만 보고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천추신의를 함께 보낸 이유는 그가 하오문도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 형주에서 활동하는 하오문을 충분히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잠깐 소화도 시킬 겸, 무공이나 좀 봐줄까?”
벽태산이 단영과 채월, 소소를 보며 묻자, 세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 그래도 수련이 막혀서 답답하던 차였다.
“어디 한 번 보자.”
벽태산의 말에 세 여인은 별채의 후원으로 향했다.
이곳 별채의 후원에는 적당히 수련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두세 명 정도는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연무장이었다.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곳이었다.
셋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차분히 자신이 아는 무공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기묘하게 생긴 바위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대충 지켜봤고.
어차피 수준이 다르니 대충 봐도 뭐가 문제인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벽태산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벽태산은 턱을 쓰다듬으며 세 여인의 무공 시연을 차분히 지켜봤다.
그의 시선은 주로 소소에게 머물러 있었다.
시연이 모두 끝나자, 벽태산이 간단히 평가를 해줬다.
“총체적인 난국이로군.”
세 여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내가 말한 건 소소 얘기다. 나머지 둘은 제법 애쓴 티가 나네.”
단영과 채월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소소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소소도 자신이 제대로 못했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자신에게는 저 두 사람과 같은 재능이 없었다.
미모도 떨어졌고.
그걸 생각하니 정말 속상했다. 공자님을 모신 세월은 자신이 훨씬 긴데 이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소소는 옆으로 잠깐 빠져있어.”
“예?”
소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는 잠시 벽태산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예······.”
소소가 한쪽으로 비켜서자, 벽태산이 단영과 채월에게 다가가 몇 가지 고쳐야 할 점을 얘기해줬다.
그걸 위해 앞으로 어떤 수련을 추가해야 하고, 뭘 해야 할지도 간단히 말해줬다.
두 여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벽태산의 말을 한 글자도 안 놓치려는 듯 집중했다.
이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런 가르침은 거의 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세상에서 천마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천마의 제자들도 이 정도로 친절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벽태산의 가르침이 끝나자, 두 여인이 더 할 나위 없이 공손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소소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둘은 알아서 수련하고 소소는 잠깐 나 좀 보자.”
벽태산이 연무장을 떠나자, 소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뒤를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따라갔다.
* * *
“예?”
소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의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제대로 된 사고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벽태산의 말은 그 정도 파괴력이 있었으니까.
“꼭 내가 두 번 말하게 하는구나.”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소소가 당황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공자님. 지금 이 별채에 연 소저도 함께 있다는 거 아시죠?”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전 잊으셨을까봐······ 그렇잖아요. 그걸 안 잊고 계신데 어떻게 저한테 오늘밤 방으로 찾아오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으세요.”
소소가 벽태산의 방으로 굳이 밤에 찾아가면 뭘 할지는 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