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5)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아무튼 오늘 네가 무공수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애꿎은 사람 하나 잡겠다고.”
소소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꼭 그렇게 말씀하실 건 없잖아요. 그리고 저도 재능이 아예 없지는 않거든요? 아까 그 두 언니들이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소소가 입술을 삐죽였다.
단영과 채월은 확실히 대단했다. 아니, 벽태산을 모시겠다고 찾아온 모든 여인들이 전부 대단했다.
재능도 미모도 소소가 보기엔 그저 아득히 높기만 했다.
‘어쩌면 그게 평범한 거고 난 재능이 바닥인 건가?’
숫자만 놓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다. 하지만 그녀들의 재능이 특별하다는 건 그저 옆에서 잠깐만 지켜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은 정말 특별했다.
갑자기 서운함과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그만.”
“예?”
“울 거면 나가서 혼자 울어라. 이따 밤에 찾아오는 거 잊지 말고.”
갑자기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우와······!”
너무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그걸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벽태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벽태산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제 나가보라는 뜻이다.
벽태산의 방에서 나가는 소소의 머릿속에 온갖 망상이 떠올랐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연 소저 얼굴을 앞으로 어떻게 보지?’
* * *
오후가 되자, 호무련에서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서문제학과 중간에 연락을 몇 번 주고받았는지 형주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금월객잔으로 왔다.
스무 명이나 되는 호무련의 무사와 그들을 이끄는 호무련의 순찰당주, 서문덕이었다.
금월객잔에서도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그들을 능숙하게 안내했다.
서문덕은 무사들과 따로 움직였다.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러니 무사들에게 미리 푸짐하게 먹고 충분히 쉬라고 해 두었다.
서문덕은 일단 서문제학부터 찾아갔다.
서문제학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양수, 추영학과 함께 있었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서문제학이 먼저 인사하자, 구양수와 추영학도 정중히 인사했다.
서문덕을 본 그들의 눈에 기대감이 일렁였다.
과연 호무련의 순찰당주다웠다. 존재감이 엄청났다.
이런 사람이 도와준다면 벽태산 정도야 가볍게 짓눌러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서문덕이 먼저 자리에 앉은 다음,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일단 앉도록 해라. 그나저나······ 얼굴들이 많이 상했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혼백의 때를 제거했으니 원래는 모든 것이 좋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효과가 적용되지 않았다.
아니, 정 반대로 적용되었다.
그건 아직 벽태산도 모르는 영역이었다.
“숙부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아니,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서문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 부탁이라는 것이 이들의 얼굴이 상하게 된 이유와 관계된 것 같았다.
“어디 얘기나 해보거라.”
반드시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가문의 아이라지만 부당한 청탁이나 몹쓸 짓의 마무리를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서문제학은 서문덕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 서문덕도 분명히 움직여 줄 거라 믿었다.
아직 자신들이 딱히 이상한 짓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벽태산에게 시비를 걸다가 얻어맞은 것뿐이다. 아니,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서문제학이 머릿속으로 할 얘기를 정리한 다음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그때부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마치 아혈이라도 막힌 것처럼 혀가 굳어버렸다.
“왜 말을 하다 마느냐?”
서문덕의 물음에 서문제학이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구양수과 추영학을 바라봤다.
하지만 두 사람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내 서문덕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그걸 본 서문제학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입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몸인데 내 말을 안 듣는 거지같은 상황이었다.
서문덕이 내력을 끌어올린 후, 차분히 내뿜었다. 주변으로 차분한 기운이 쫙 깔렸다.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공으로 중심을 잡아라.”
서문덕은 서문제학이 지금 왜 저러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저와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었으니까.
저건 기세에 심하게 짓눌렸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더 실망스러웠다.
지금 기세에 짓눌리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기세에 짓눌렸던 건 한참 전의 일일 것이다.
한데 그것조차 이겨내지 못했다는 건, 재능이 아닌 의지력의 문제였다.
심지가 굳은 사람은 저런 것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럴 때의 해법은 간단하다. 짓눌린 심신을 풀어주면 된다. 그리고 내공으로 중심을 잡으면 된다. 억지로 심신을 세우는 효과가 있으니까.
서문제학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후우. 나중에 준비가 되거든 얘기를 하도록 해라. 그조차 준비가 안 된다면 굳이 내가 그 얘기를 들을 필요도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서문제학이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예.”
서문덕은 그대로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방에 남은 세 사람이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호무련까지 배를 타고 천천히 이동하면 사흘 정도 걸린다.
그 정도 시간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충분하지. 암.”
서문제학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가 충분한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방 한구석에 벽태산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은 그걸 발견하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말을 무시했던 걸 보면 감당할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야?”
세 사람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게 아니란 말이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진짜 아니야?”
“진짜요! 믿어주시오! 정말 형장에 대해 얘기하려던 게 아니오! 그저 인사를 드리려고 했을 뿐이란 말이오!”
벽태산이 세 사람을 슥 둘러봤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거, 명심해.”
세 사람이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멈췄을 때, 벽태산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세 사람의 긴장이 동시에 확 풀렸다.
그리고 괄약근도 같이 풀렸다.
* * *
소소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금월객잔 별채의 후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휘영청 달이 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었다.
소소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와 살짝 옆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높은 전각이 서 있었다. 소소의 시선은 전각의 꼭대기 층에 닿았다.
거기가 바로 벽태산의 방이었다.
이제 저기로 가야 한다.
“하아아.”
소소는 아주 어릴 때부터 벽태산을 모셨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사심이 아예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때는 벽태산과 함께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물론 그 꿈은 정말 짧게 끝났다. 벽태산이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연하린이 나타났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그 꿈을 오래 유지하진 못했을 것이다. 자신과 벽태산이 함께할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그 뒤로는 다른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벽태산은 그저 모셔야 할 공자님일 뿐이었다.
한데 오늘 그 굳었던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소소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래선 안 된다. 하지만 그래도 명령을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소소가 천천히 전각 쪽으로 돌아섰다.
“꺅!”
소소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약간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일단 비명부터 지르고 확인했더니 연하린이었다.
“어? 아가씨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소소의 심장이 아까보다 더 세차게 두근거렸다. 설마 알고서 찾아온 건 아니겠지?
연하린이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소란스러웠던 일 때문에 잠이 잘 안와서 잠깐 산책삼아 나왔어.”
아까의 소란스러운 일이라 함은, 서문제학 일당이 또 똥을 지린 사건이었다.
그놈들은 대체 장이 어떻게 생긴 건지 한 객잔에서 두 번이나 똥을 지리는 희귀한 업적을 세웠다.
한동안 냄새를 빼네, 방을 치우네, 난리도 아니었다.
그 소란 때문에 벽태산 일행은 별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아마 그래서 피곤할 일이 없으니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연하린이 소소에게 한 발 다가갔다. 소소는 흠칫 놀랐지만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혹시······ 지금 나랑 같이 있어줄 수 있어?”
“예?”
소소의 눈이 동그래졌다.
“듣고 싶은 얘기가 좀 있어서.”
소소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꼭 눌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장이 밖으로 툭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무, 무슨 얘기요?”
“공자님에 대한 얘기.”
“고, 고, 공자님에 대한 얘기요? 어, 어떤······?”
“그냥 전부 다. 내가 공자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구나 싶어서. 우리 공자님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을 생각해보니 딱 소소가 떠오르더라고.”
연하린이 소소를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소소는 그 미소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왠지 무서웠다.
“얘기······ 해줄 거지?”
소소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끝
다음 날, 서문제학과 구양수, 추영학은 가문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다.
여기까지 함께 온 관계를 생각해 연하린이 그들이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연하린 옆에는 벽태산이 서 있었다. 아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세 사람은 갑판에 서서 연하린 쪽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두려움 처연함이 뒤엉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문득 벽태산에게 향했다.
그 순간 벽태산이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더니 손가락 방향을 돌려 그들을 가리켰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뜻의 수신호였다.
세 사람이 그걸 보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척 보기에도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두 번이나 당했기에 나오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정말 안 됐어요.”
연하린의 말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저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으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알았다면 연하린이 먼저 나서서 난리를 쳤을 것이다.
“소문이 퍼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자신이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천추신의가 알아서 소문을 퍼트릴 것이다.
그것은 그의 취미 중 하나였다.
“우리도 슬슬 가야지.”
벽태산의 말에 연하린이 기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올 때는 정말 지옥 같았는데, 이제 남은 길은 극락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선착장에 있는 상당히 큰 배로 올랐다.
천추신의와 천경완이 열심히 발품을 팔아 마련한 배였다.
빌린 배이긴 하지만, 작은 배를 사는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겉은 소박하고, 내부는 화려한 배였다.
또한 크기에 비해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움직임이나 균형이 안정적인 건 당연했고.
한 마디로 돈값 하는 배였다.
그 배에 벽태산 일행과 이제 다시 호무련으로 돌아가야 하는 서문덕 일행이 함께 탔다.
사전에 서문덕이 부탁을 했고, 벽태산이 그것을 흔쾌히 들어준 것이다.
이내 배가 출발했다.
* * *
호무련이 있는 의창에 도착할 때까지는 딱히 큰 사건이 없었다.
배가 워낙 빠르기에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이 일어나봐야 얼마나 일어나겠는가. 특별히 수적을 만나거나 하지 않는 한.
하지만 호무련의 깃발을 단 배를 건드리는 간 큰 수적은 없었다.
서문덕을 비롯한 호무련 측 사람들은 이동하는 내내 선실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배를 빌리면서 선원과 일꾼도 함께 고용했는데, 그들이 모든 잡무를 책임졌다.
배를 모는 일, 식사를 준비하는 일, 청소, 심지어 자잘한 심부름까지.
그러니 다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딱 한 명, 마음이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소였다.
벽태산이 밤에 찾아오라고 한 날, 소소는 결국 가지 못했다.
그날 소소는 연하린의 방에서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연하린은 벽태산에 대해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벽태산을 가장 오랫동안 모신 사람이 소소이니 당연히 벽태산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소는 요즘, 자신이 벽태산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아무튼 연하린에게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얘기해 준 그 다음 날부터, 왠지 벽태산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한데 함께 배를 타고 가니 계속 벽태산을 마주치게 된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말하러 가는 도중 갑판에서 벽태산과 딱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