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
아무리 그래도 천마신교의 안가에 기녀를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다니.
천마이던 시절에는 하고 싶은 건 바로 했다. 그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천마이되 천마가 아니다.
그나마 안가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있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물론 막상 그런 일이 닥쳐도 큰일이 생길 것 같지 않긴 하지만.
이건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아무튼······ 도전에 성공하니 기분은 좋구나.”
어제 증혼마공에 쓰는 일곱 개의 대맥 중 하나를 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작업했던 주요 세맥의 역할이 아주 컸다.
도전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그저 앞으로는 길 가다가 갑자기 풀썩 쓰러져 죽을 위험이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여전히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벽태산이 침상에 앉아 몸을 차근차근 점검하고 있을 때, 밖에서 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일어나셨나요? 식사 준비 다 됐는데.”
“들어와라.”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소소가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마 묻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은 모양이었다.
“뭐가 궁금하든 아무것도 묻지 마라. 대답 안 해줄 거니까.”
소소의 입술이 삐죽였다.
“물어보려고 한 거 아니거든요?”
“그럼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제 무리했더니 배고프구나.”
그 말에 소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걸 본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겠다. 네 혼백에 점점 더 때가 묻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구나.”
소소가 기겁을 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래, 그래. 알았으니 밥 먹으러 가자.”
벽태산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소는 볼에 바람을 불룩 넣은 채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얼른 벽태산을 따라갔다.
“그리고 제 혼백에 때가 묻는데 왜 기분이 좋아요?”
“그런 게 있다.”
소소의 입술이 또 삐죽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우리 공자님······ 왠지 오늘은 평소보다 힘이 넘치시는 것 같은데?’
묘하게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천추신의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우리 공자님······ 이제 간신히 표정이 좋아지셨는데.’
소소는 계속 이런 표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벽태산은 밥을 먹은 다음 검룡단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천경완과 함께 어제 잡아온 놈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그놈을 끌고 향화루로 갈 생각은 없었다.
향화루주가 한 괘씸한 짓에 대한 대가를 받긴 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검룡단은 금벽상단 내에서 특별했다.
따로 커다란 전각이 주어졌고, 그곳 주변에 세 개의 크고 작은 연무장을 독점해서 쓸 수 있었다.
벽태산은 검룡단의 대연무장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강한 기운이 분출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연무장에서는 검룡단원들이 모여서 한창 수련 중이었다.
단체 수련이 아니라 사방에 흩어져 각자 나름의 수련을 하고 있었다.
벽태산은 묘한 눈으로 그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이것 봐라?’
대맥을 이었기 때문에 감각이 훨씬 좋아졌다. 그 좋아진 감각을 통해 검룡단원의 수준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작 검룡단원 정도의 수준이라면 거의 오차 없이 파악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놈들의 수준이었다.
‘뭐 이리 약해?’
검룡단원의 수준은 벽태산의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벽태산이 검룡단에 대해 세운 기준은 모두 천경완을 토대로 정립되었다.
한데 이 중에는 천경완보다 강한 놈이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천경완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약한 놈들이 태반이었다.
그렇게 잠시 구경하고 있자, 검룡단원 중 한 명이 벽태산에게 다가왔다.
“둘째 공자님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벽태산은 그가 누군지 모르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혹시 천 무사를 보러 오셨습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몸을 돌렸다.
“천 무사는 지금 소연무장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벽태산은 그를 따라갔다.
다른 놈들에 비해서는 제법 수준이 높은 자였다. 아니, 상당했다. 그보다 강한 자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천경완보다는 훨씬 못했다.
‘내가 오해했구나.’
천경완은 결코 평범한 검룡단 무사가 아니었다.
벽태산의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잠깐 걷다보니 검룡단 소연무장에 도착했다.
“보다시피 오늘 새벽부터 계속 저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안 될 듯합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곧 깨어날 것 같았다. 거의 막바지였으니까.
“검룡단에서 천 무사의 정확한 지위가 어떻게 되지?”
“평단원입니다.”
그는 대답하고 나서야 벽태산이 자신에게 하대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그 순간, 천경완이 무아지경에서 벗어났다.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사방을 확 휘저었다.
사내가 깜짝 놀라 천경완을 바라봤다.
천경완은 평소보다 훨씬 깊어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복잡한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천경완이 벽태산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그의 정중한 어조와 태도에 벽태산을 안내한 사내의 눈이 커다래졌다.
천경완은 그를 보며 말했다.
“단주님, 오늘은 지금부터 공자님을 모셔야 할 듯합니다.”
“어······ 그러게. 그게 자네 일이니까.”
벽태산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떨거지들 중에 제일 강한 것 같더라니 그가 검룡단주였다.
천경완이 빠르게 걸어 벽태산 앞에 섰다.
벽태산이 그런 천경완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놈부터 보러 가자.”
“뇌옥에 있습니다.”
천경완이 공손히 대답하고 앞장서서 벽태산을 안내했다.
검룡단주는 그런 천경완과 벽태산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게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그는 두 사람이 연무장을 벗어날 때까지 멍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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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겠습니다
“독한 놈입니다.”
천경완은 뇌옥으로 앞장서면서 그렇게 말했다.
처음 뇌옥에 가뒀을 때, 잠깐 심문을 했는데, 웬만한 고통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천경완은 벽태산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한데 벽태산은 왠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저······.”
천경완이 선뜻 말을 잇지 못하자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해. 오늘은 내가 아주 관대한 날이거든.”
아마 누군가 옆에서 이 대화를 들었다면 괴상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경완은 그럴 수 없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벽태산이 저러면 뭔가 어울렸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좀 혼란스럽긴 했다. 과연 벽태산이 알고서 그런 말을 했을까?
아닐 것이다. 소 뒷다리에 쥐를 잡은 격이리라. 우연히 맞아 떨어진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벽태산의 말을 계기로 자신이 벽을 부술 수 있었으니 감사는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경완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고작 그런 걸로 도움은 무슨.”
“아닙니다. 제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벽태산이 걸음을 멈추고 천경완을 위아래로 슥 훑었다. 좀 더 자세히 살핀 것이다.
“난 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네.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거야?”
벽태산은 다시 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천경완의 표정에 혼란이 깃들었다.
하지만 벽태산의 손짓을 무시하지 못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뇌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천경완이었다.
“공자님께서 뭘 잘못 보신 겁니까?”
“응?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예. 아까 분명히······.”
“난 잘못 본줄 알았다고 했지. 잘못 본 적 없는데?”
천경완이 벽태산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디 길을 알려주십시오.”
그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벽태산의 분위기가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 그래서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자신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벽태산은 그런 천경완을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건 또 예상 못 했네. 너 의외로 감이 아주 좋구나?”
천경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벽태산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까지 항상 봐오던 바로 그 금벽상단의 둘째 공자가 거기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은 표정이나 눈빛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이제부터······ 숨기지 않기로 하신 겁니까?”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벽태산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하,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벽태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일신의 능력이나 감정을 감추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걸 해본 적도 없었고.
천하에서 천마 위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세상 제일 꼭대기에 있던 사람이니 눈치를 볼 필요도 무언가를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천마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아직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비리비리한 상태다.
그리고 천마라는 걸 주위에서 알아봐야 귀찮기밖에 더 하겠는가.
이미 죽을 때 결심하지 않았던가. 다시 태어나면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겠다고.
천마라는 걸 밝히는 순간 그건 물 건너간다.
저놈이 자신이 천마라는 사실을 알아낸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 벽태산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저놈을 죽여 입을 막는 것이 가장 최선이었다.
“역시 절맥을 타고나면 천재가 되는군요.”
“응?”
“솔직히······ 그동안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공자님께서 보여주신 모습들이······ 그랬으니까요.”
천경완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평소 표정이 전혀 없던 얼굴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전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저 자신을 죽이고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 그렇구나. 그럼 계속 그렇게 해.”
벽태산은 천경완이 어떤 오해를 한 건지 알고는 마음속에 세우던 칼날을 다시 녹였다.
생각해보면 벽태산의 몸을 다른 사람이 차지했다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괜히 앞서나가다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뻔했네.’
벽태산은 천경완에게 다시 손짓했다.
“알았으니까 이제 가자. 그놈 봐야지.”
하지만 천경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도와주십시오, 공자님!”
“응?”
벽태산은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천경완을 내려다봤다.
* * *
향화루주는 단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얘가 이렇게 예뻤었나?’
단영의 외모가 뛰어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단영을 기녀로 끌어들일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나니, 열 배는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별 일은 없었지?”
“예.”
“너도 기억은 잘 안 나고?”
“예. 혼백이 뽑히는 것 같았습니다.”
벽태산과 잤던 기녀들은 한결같이 저 얘기를 했다. 그 때마다 향화루주도 벽태산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좋으면 저런 얘기를 할까?
“그리고······ 절 다시 태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저 얘기도 다들 한다.
“그래. 별 일 없었다니 됐다. 혹시······ 그 둘째 공자가 우리 향화루에 대해서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느냐?”
단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장원 밖에 서 있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이 정도로 기억이 확 날아가 버릴 줄이야.
그저 너무 행복했다는 감정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죽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됐다. 가서 좀 쉬어라. 이따 또 일하려면 피곤할 텐데.”
향화루주의 말에도 단영은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