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0)
“무공도······ 재능도 대단합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것밖에 못 봤으면 딱 그 자리에서 머무는 거지.”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는 세 시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몇 가지 손볼 부분을 조금씩 알려주었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벽태산이 방금 한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대체 뭘 봤어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더불어 머릿속도 눈빛과 비슷하게 헝클어졌다.
* * *
호무련주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조용히 차를 한 잔 즐겼다.
이때를 위해 하루를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차분히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잘 했던 것이 떠오르면 웃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 호무련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단연 벽태산이었다.
아니, 벽태산을 지키던 두 명의 호위무사였다.
“천경완과 유서연이라고 했던가?”
천경완은 벽태산의 호위무사이고, 유서연은 연하린의 호위무사라고 했다.
둘 다 수준이 상당했다.
특히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실전을 제법 많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눈빛과 분위기였다.
아마 적의 피도 자신의 피도 많이 봤을 것이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특유의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
아마 본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둘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 호무련주는 굉장한 각오를 읽었다.
반쯤은 목숨도 걸었으리라.
그래서 의지를 내렸다. 그리고 따로 데리고 나가 대화도 나누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줬는데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이 풀어진 상황에서 당해본 경험이라도 있는 건지 오히려 더 조심했다.
“하여간 제법이란 말이지.”
그래서 벽태산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다.
호위무사가 그 정도로 각오를 하게 만들 수 있는 자라는 뜻 아닌가.
천경완이나 유서연이 어떤 주인을 모시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걸 주인이 온전히 이끌어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호무련주가 보기에 벽태산은 그 둘의 충성을 제대로 이끌어냈다.
“그나저나······ 오늘 방에서 나왔다는 보고를 분명히 받았는데······.”
호무련주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경완이나 유서연이 자신의 말을 전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하면 벽태산이 그 말을 듣고도 안 왔다는 건데, 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뭐······ 내일은 찾아오겠지.”
호무련주는 벽태산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지 생각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금벽상단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졌다.
이내 찻잔이 비었다.
호무련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뒤에 마련된 련주 전용 연공실로 향했다.
이제 진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 * *
연하린은 하늘에 붕 떠서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드디어 벽태산과 함께 후기지수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연하린은 자신과 나란히 걸어가는 벽태산의 옆모습을 수시로 힐끔힐끔 훔쳐봤다.
유서연과 천경완을 비롯해 세 명의 시비도 없다. 오늘은 벽태산을 온전히 자기 혼자서만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후기지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후기지수 외의 외부인은 참여가 불가능했다.
호무련 소속이거나, 호무련에 가입한 무가의 후기지수만 참여가 가능했다.
엄밀히 따지면 벽태산은 참여가 안 되지만, 호무련주와 서문덕이 적절히 조치를 해두었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연하린이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벽태산은 참석이 불가능할까봐 말이다.
아무튼 일이 좋게 풀려서 다행이었다.
연하린과 달리 벽태산은 좀 시큰둥했다.
사실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한데 함께 가자고 말을 꺼내는 연하린의 표정을 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혹시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과 벽태산을 위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파르르 떨며 바라보니 결국 벽태산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벽태산은 이것도 속으로 굉장히 신기하게 여기는 중이었다.
예전이 자신이라면 절대 넘어가지 않을 일이었다.
일단 안 가겠다고 결정을 내렸으면 천하제일미가 와서 울어도 안 갔을 테니까.
실제로 비슷한 경험도 있었고.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거절하려던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이건 넘어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벽태산의 마음 자체가 바뀐 것이 문제였다.
벽태산은 연하린과 이동하는 내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말이다.
감은 나쁘지 않았다.
이 변화가 긍정적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느낌이 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확신에 가까운 감이 섰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창 걷고 있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벽태산은 상념을 접고 고개를 돌려 연하린을 쳐다봤다.
뜨거운 시선의 주인이 바로 연하린이었다.
벽태산과 시선이 마주치자 연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화나셨어요?”
벽태산은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연하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셔서······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원래는 안 오고 싶으셨는데, 제가 너무 제멋대로 공자님을 졸라서 기분이 나쁘신 줄 알았어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원래 안 오고 싶었던 건 맞다.”
“아······!”
“한데 오고 싶도록 네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연하린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걸······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되는 거겠지?’
듣다 보니, 말이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를 생각해서 함께 왔다는 뜻이니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 뒤로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는 말이 없었다.
벽태산은 다시 원래 하던 생각을 끄집어냈고, 연하린은 더 말을 하기가 왠지 무서워져서 입을 꾹 다물고 걷기만 했다.
이내 두 사람이 후기지수가 모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 * *
한창 후기지수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호무련주는 서문덕과 마주앉아 있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결과가 나온 건가?”
“결과가 나온 건 아닌데, 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서 제대로 파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심스러운 정황?”
“무한에서 금벽상단을 끊임없이 견제하던 자들이 있습니다. 천금련이라는 상단 몇 개가 모여서 만든 단체인데, 이들의 배후가 좀 수상합니다.”
“천금련이라······.”
금벽상단을 조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천금련도 함께 조사하게 되었고, 최근 두 상단 간에 얽인 사건들까지 쭉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천금련이 금벽상단을 집어삼키려다가 실패했는데, 거기에 종리세가와 하오문까지 얽혀 있었습니다.”
종리세가는 호북에 있으면서도 호무련에 가입하지 않은 세가였다.
“종리세가까지 얽혔다니 의외로군. 음흉한 짓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데 말이야.”
“그 종리세가가 천금련에 거의 흡수되다시피 했습니다.”
“그 얘긴 나도 들었지.”
호무련주도 그에 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아직 기억도 생생했다.
“아무튼 여러 이해관계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빈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배후가 드러난 모양이군. 정체는 아직 모르겠고.”
“그렇습니다. 전 그 배후가 금월상단이 아닌가, 의심 중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제가 무한에 가보겠습니다.”
“자네가 직접? 그냥 밑에 애들을 넉넉하게 보내는 게 낫지 않겠나?”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밑에 애들도 충분히 데려가겠습니다.”
호무련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네가 원한다면 그리 해야지. 애들은 얼마나 데려갈 생각인가?”
“일단 다섯 개 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무련의 모든 조직은 조로 편성되어 있는데, 조장 한 명과 조원 열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즉, 쉰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을 빼간다는 뜻이었다.
“제법 많군.”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꼬리를 잡아야 합니다.”
호무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해보게.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아. 어쩌면 우리가 엉뚱한 놈을 찍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확인하려고 무한에 가는 겁니다.”
“알겠네. 언제든 지원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긴장을 놓지 않고 있을 테니.”
거기까지 말한 호무련주가 눈을 빛냈다.
“그럼 갈 때 그 녀석들과 함께 가는 건가?”
서문덕이 고개를 저었다.
“후기지수 모임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내일 당장 출발할 계획입니다.”
“하여간 빡빡한 사람이라니까. 알았네.”
서문덕은 호무련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기보다는······ 그 벽태산인지 하는 녀석 말일세.”
호무련주는 서문덕이 멍석을 깔아주자마자 열심히 얘기를 토해냈다.
“내가 직접 보려고 찾아갔는데, 마침 중요한 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 말만 전하고 그냥 돌아왔단 말이지.”
“예. 그러셨군요.”
“내가 배려심이 남다른 사람이니까 그렇게 한 거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림도 없지. 암.”
“련주님의 배려심이야 유명하지요.”
서문덕은 감정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추임새를 넣듯 대꾸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데 이 괘씸한 놈이 볼일이 끝났는데도 어제 날 찾아올 생각을 안 하더라, 이 말이지.”
“그랬군요.”
“오늘은 찾아오겠거니 했는데, 웬걸? 제 정혼녀랑 후기지수 모임에 갔다더군.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말이 안 되지요.”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하, 어쩌겠나. 배려심 넘치는 내가 참고 기다려야지. 련주 체면에 그놈 보겠다고 또 쪼르르 달려갈 수도 없고.”
“그냥 후기지수 모임을 둘러보시는 셈 치고 잠깐 다녀오심이 어떠십니까?”
“오! 그게 낫겠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면 내 체면이랑은 별 상관없는 거겠지?”
“오히려 련주님께서 후기지수를 생각하는 마음에 다들 감복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자네밖에 없다니까.”
호무련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나? 내일 떠난다면서 얼른 준비하지 않고.”
서문덕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호무련주는 서문덕이 나가자마자 곧장 후기지수 모임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머금고서.
끝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아침 일찍부터 호무련에서 나와 의창에 있는 의방을 차근차근 돌았다.
두 사람은 긴장감과 결연함이 뒤섞인 표정과 눈빛으로 아주 진지하게 의원들을 살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
일침괴는 천추신의가 자신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천추신의와 함께 모든 의방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겸사겸사 의방에서 일하는 의원들의 실력도 파악해 봤고.
그렇게 의창을 몇 번이나 헤집고 다닌 뒤에야 천추신의와 헤어져 다시 의방을 돌아다녔다.
“고만고만한데?”
일침괴는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돌아봐도 쓸 만한 의원이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침괴의 눈에 들 만한 의원이라면 대단한 명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야 한다.
한데 의창에는 아직 제대로 이름을 날리는 명의가 없었다.
일침괴는 괜히 불안해졌다.
이러다가 천추신의가 덜컥 좋은 의원을 찾아오기라도 하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지 않은가.
내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고 여겼다.
사실 의원을 보는 눈은 한 수 위라고 자부했다.
일침공은 그저 침이나 좀 잘 놓고 사람 잘 죽이는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기운의 흐름을 짚을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걸 잘 이용하면 의원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의원뿐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까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명인만이 가지는 흐름은 절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명인들을 잔뜩 만나봤다.
그러니 이제 그 흐름에 걸맞은 명의만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한데 명의가 없을 줄이야.
일침괴는 의창을 이 잡듯 헤집고 돌아다녔다. 일단 내기를 시작한 이상, 절대 질 수 없었다.
아직 기한은 좀 남아 있었다.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들여 명의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같은 시각, 천추신의 역시 일침괴와 똑같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의창에는 어떤 일인지 쓸 만한 의원이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직까지 천추신의도, 일침괴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내기에 눈이 가려진 상황이었으니까.
* * *
벽태산은 처음 가졌던 선입견을 지워버렸다.
후기지수 모임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애초에 벽태산이 겪은 후기지수가 서문제학, 구양수, 추영학이 전부였다.
거기에 한 명 더하면 종리웅 정도였다.
그들로 인해 후기지수에 대한 인식이 나쁘게 박혔다.
한데 막상 와서 모임에 참석한 다른 후기지수들을 보니 생각보다 멀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