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7)
그러니 이렇게 열망, 아니, 욕망이 타오를 수밖에.
“이게 그러니까 수련에 좋은 보법이거든. 문제가 있다면 좀 어렵고 힘들어.”
“하겠습니다!”
천경완이 더 얘기를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저, 저도 하겠습니다!”
유서연도 대답했다.
벽태산이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별 거 아니니 상관없나. 좋아. 알려주지. 단, 일단 시작하면 무조건 끝을 봐야 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했다?”
“맹세하겠습니다.”
“저도 맹세하겠습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좋아. 일단 구결부터 외워. 내가 아주 친절하게 차근차근 알려주지. 오늘 중으로 입문까지는 해야 하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동시에 말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들의 눈에 고마움이 깃들었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과연 그걸 익히고 나서도 저 눈빛을 유지할 수 있을까?
* * *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거대한 장원에서 진료 중이었다.
장원에 사는 사람 중에 독에 당한 자들이 많았고, 장소가 넓으니 주변에 있는 환자를 이쪽으로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장원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조금도 쉬지 않고 진맥과 치료에 매진했다.
두 사람을 돕기 위해 호무련에서 급히 모은 의원들이 합류했다.
모두 열 명이었는데,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들만으로 독마의 독에 당한 자들의 증상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처방을 내려주면 그걸 토대로 치료하는 건 가능했다.
그조차 안 되는 의원들이 수두룩했으니 어쨌든 큰 도움이 되었다.
호무련에서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호위를 위해 붙여준 무사의 수는 총 스무 명이었다.
수가 많지 않아도 다들 호무련 무사들 중에서는 손꼽히는 강자였다.
그들로서는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호위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흉수가 꾸민 계획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두 의원이었으니까.
그 무사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번득이는 눈으로 주변을 감시했다.
마치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장원에 있는 환자와, 주변에서 데려온 환자들을 모조리 치료한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한숨 돌리고 있었다.
“징글징글하게도 많군.”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좀 수월한 것 같지 않소?”
“그래. 준비를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크긴 하다.”
어제는 두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진료를 해야 했고, 오늘은 한 자리에서 오는 사람을 치료하니 훨씬 효율적이고 빨랐다.
어느새 해가 졌다. 하지만 아직 일이 다 끝난 게 아니다.
호무련에서 데려온 열 명의 의원들이 새로운 환자들을 데리러 갔으니 한두 시진은 더 일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넉넉히 쉴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만히 쉬게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일침괴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 천추신의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
“자신 있소?”
일침괴의 입가가 비틀렸다.
“나 일침괴야, 일침괴. 내가 걱정하는 건 딱 하나뿐이다.”
“그게 뭐요?”
“너.”
“나?”
“너까지 지키면서 싸우려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쳐들어온 놈들 조질 생각이나 하쇼. 난 나대로 알아서 살아남을 테니까.”
“뭐, 일단 믿어보지.”
일침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의를 입고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장원의 담장을 우르르 넘어 들어왔다.
담장을 쭉 둘러싸고 있는 흑의복면인의 수는 백 명에 육박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수인데, 거기에 더해 새로운 흑의복면인들이 담장 위에 나타났다.
담장 아래에 있는 자들 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오십 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담장을 넘어서 도망치는 자들을 막기 위함인 모양이었다.
장내에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쫙 깔렸다.
호무련 무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칼날 같은 기세를 뿌리며 흑의복면인들을 쭉 둘러봤다.
고작 스무 명이었지만, 백 명이 넘는 적을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검을 뽑아 겨눴다.
흑의복면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그 무서운 물건은 치우는 게 어떻겠소? 난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러 온 건데 말이오.”
복면인은 호무련 무사들 뒤쪽에 있는 일침괴와 천추신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뒤에 계신 의원분들께 볼일이 있어서 왔소. 두 분, 겁먹지 마시고 앞으로 나서서 대화를 나눠봄이 어떻겠소?”
그러자 천추신의가 말했다.
“대화야 소리만 들리면 되니 그냥 거기서 말해라. 그리고 너야말로 저 뒤에 있는 위험한 물건들 치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복면인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난 위험한 물건을 가져온 기억이 없소이다만······. 아무튼 무서우시다니 어쩔 수 없지, 그냥 거기서 큰소리로 대화를 나눠봅시다.”
가볍게 섞인 도발에 일침괴의 표정이 꿈틀거렸지만, 천추신의가 그의 팔을 꽉 잡아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막았다.
“저 뒤에 있는 검은 놈들, 평범한 사람이 아니오.”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일침괴는 정신을 집중해서 담장을 따라 쭉 서 있는 흑의복면인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집중해서 보니 희한한 위화감이 들었다.
저들 주변을 감싼 기의 흐름이 좀 이상했다.
“저놈들 대체 뭐냐? 꼭······ 병든 닭 같구나.”
“병든 닭이라기보다는 반쯤 죽어 있는 것 같지 않소?”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반쯤 죽어있다는 말이 훨씬 더 어울렸다. 그 정도로 저들이 가진 기의 흐름이 불안정했다.
“그러니 저놈들을 상대하려면 약점을 확실히 찔러야 하오. 보통 두 가지 기가 교차하는 지점이 약점인데, 솔직히 내가 그걸 파악할 능력은 아직 없소. 형님은 가능하시오?”
일침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약점인 건 확실한 게냐?”
“확실하오.”
“믿겠다.”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침을 한 움큼 꺼냈다.
“시간이나 좀 끌어봅시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천추신의는 당장에라도 침을 날리려는 일침괴를 잠시 말리고 흑의복면인을 향해 소리쳤다.
“할 말이 있으면 해라! 대화 나누자던 놈 어디 갔느냐!”
“두 분이 상의를 하는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오. 혹시라도 우리에게 의탁할 거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 주겠소.”
“뭘 믿고 너희에게 간단 말이냐? 정체도 모르는 것들에게 함부로 몸을 의탁할 만큼 멍청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흑의복면인이 살짝 동요했다. 그의 눈이 크게 일그러지는 걸 보니 뭔가를 건드린 듯했다.
“뭐냐, 설마 네놈이 그 멍청이였던 게냐?”
흑의복면인이 이를 갈았다.
“도발하는 솜씨가 제법이오. 하지만 당신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소. 여기서 전부 죽든가, 아니면 얌전히 따라오든가.”
“흑철방 사람들은 왜 전부 죽였느냐?”
“별 거 아니오. 보물을 가진 자가 그걸 지킬 힘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니겠소?”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자연의 이치 같은 소리 한다. 그런 놈이 멀쩡한 사람을 강시로 만들어?”
흑의복면인이 무시무시한 안광을 쏟아냈다.
“아무래도······ 곱게 끝날 것 같지 않군. 일단 방해하는 놈들부터 정리를 해야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 있던 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일침괴가 그들을 향해 침을 뿌렸다.
촤촤촤촤촤촥!
십여 개의 침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퍽! 퍽! 퍽! 퍽!
열 개가 넘는 침이 정확히 기와 기가 교차하는 지점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비침술이었다.
하지만 모든 침이 목표를 꿰뚫은 건 아니었다.
쩌저저저정!
퍽! 퍽! 퍽!
몇몇은 검을 휘둘러 침을 막아냈고, 몇몇은 약점을 꿰뚫렸다.
약점에 침을 맞은 자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졌다.
“확실히 약점이 맞긴 맞구나.”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일침괴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했다.
침을 막고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호무련 무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저정!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으로 기파가 흩어졌다.
저놈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호무련 무사들과 호각을 이룰 정도였다.
사실 실력 자체는 호무련 무사들 쪽이 위인데, 힘과 속도에서 밀렸다.
그 와중에 새로운 복면인들이 담장을 넘어서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수십 명은 되는 듯했다.
일침괴와 천추신의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갈수록 태산이다.
끝
“끄으으으응!”
천경완은 거의 비명에 가까운 앓는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걸음을 내디디는 데 성공하자 거짓말처럼 그 아픔이 사라졌다.
천경완은 고통이 사라졌다고 해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얼른 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두 번째 고통이 몰려온다.
걷는 도중에도 고통이 오지만, 그건 걷지 않았을 때 얻는 고통과 비교하면 토닥토닥 안마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억지로 걸음을 뗄 수밖에.
“끄으으으윽!”
억지로 걸음을 옮기는 천경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런 천경완 옆에는 똑같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 유서연이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짙은 후회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건 줄 알았다면 결코 구결을 듣는 일이 없었으리라.
벽태산이 알려준 보법은 무량보였다.
처음 이름을 듣고는 정말 대단한 보법일 거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거창한 이름을 가진 보법이 하찮을 리 없지 않은가.
구결을 들었을 때도 그 기대감은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굉장히 난해하면서도 복잡했다.
끝까지 구결을 다 외우고 나니 기대감이 더 커졌다.
그저 구결을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결을 외우면서 벽태산이 알려준 방법에 따라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걷는 내내 몸이 무거웠다. 그리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마치 물에 잠겨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보법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구결, 즉, 내력의 이동이 핵심이었다.
벽태산은 아주 친절하게 구결을 풀어 내력이 움직이는 경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경로에 따른 정확한 걸음걸이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 번 보법을 펼치고 나자, 벽태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보고 눈치챘어야 했다.
한데 천경완과 유서연은 그 뒤로 두 번이나 더 무량보를 펼쳤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무량보는 몸에 한계가 없는 고통과 부하를 준다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벽태산에게 들었을 때, 하마터면 달려들 뻔했다.
최소한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었다.
그때부터 이어진 고통이 천경완과 유서연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무량보는 정말 특이한 보법이었다.
그저 걷는 것뿐인데, 온몸이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그렇다고 걷지 않으면 더 심각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치 얼른 걷지 않으면 넌 죽는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멈추지 마라. 멈추면 몸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이런 말을 듣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무량보에 익숙해지면 내력의 순환이 자연스러워지고 근골이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진다. 오랫동안 수련하면 독에도 자유로워지니 그야말로 무량보 아니겠느냐.”
천경완과 유서연은 속으로 욕이란 욕은 다 했다.
다 좋은데 대체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이 이를 악물고 고통과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연무장에 조용히 들어섰다.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호무련 무사 복장을 한 사내였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벽태산의 표정이 묘해졌다.
“무슨 일이지?”
사내가 벽태산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신의와 괴의께서 공자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날 데려오라고 했다고?”
“예.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벽태산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데?”
“제가 모시겠습니다.”
“모시는 건 모시는 거고, 어디 있느냐니까?”
“선착장에서 좀 떨어진 강변에 있는 작은 객잔에 계십니다.”
“객잔? 환자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객잔에 있었어?”
“예. 이름도 없는 정말 작은 객잔입니다. 사정이 있다고 얼른 공자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제가 길을 잘 아니 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경완과 유서연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벽태산이 사내와 대화를 나누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며 걷고 있었다.
“수련 잠깐 멈추고 같이 다녀올까?”